문사두부(文思豆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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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두부(文思豆腐).
문사 두부는 회양(淮揚) 지방의 요리인데, 청나라 때 왕에게 진상했던 음식으로 양주 출신의 스님인 문사(文思)라는 분이 만들었다 해서 문사두부.
채도로 모든 재료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잘라내 그것으로 갱으로 끓이는 요리.
화려한 기예가 필요한 요리이지만, 전분을 푼 물로 끓인 맑은국이다 보니 거지들이 아무리 많이 먹어도 물배만 찰 확률이 높고, 아주 부드러운 음식이니 먹고 나서도 급격히 배가 꺼질 것은 자명한 일.
더군다나 문사 두부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실력에 대한 아가리는 자동으로 닫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요리.
두 거지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곧바로 닭을 한 마리 잡아 육수를 준비했다.
손질한 닭이 냄비 속으로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장작불의 강한 화력에 곧장 물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냄비에서 닭고기의 향이 고소하게 피어오르자 닭고기 요리라도 해주는 줄 알고 거지들이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추르릅
“두부 요리면 충분한데, 소협이 닭요리까지 준비해 주신다고, 하면 저희가 또 성의를 생각해서···”
“닭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겠습니다. 총타주님.”
그런데 설레발을 치기 시작한 거지들은 닭 육수를 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고소한 향에 참지 못하겠던지, 빈 동냥 그릇을 긁어대며 배가 고프다는 시늉을 하며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닭이 아직 멀었나?”
“닭은 너무 삶으면 맛이 없는데···”
-꼬르륵
그렇게 설레발을 치던 거지들이 제갈청의 서늘한 눈빛을 밭고 입을 다물 때쯤, 두부를 사러 갔던 하인이 물이 찬 나무통에 두부 한 근을 사서 되돌아왔다.
“접각부님 이리 부드러운 두부면 되겠습니까?”
손을 넣어 끄트머리를 살짝 만져보니 부드럽게 뭉개지는 두부.
이 시대에는 딱히 연두부, 순두부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부르지 않고 두부라는 말로 부르니 부드러운 두부를 사 오라고 하면 연두부와 일반 두부의 중간쯤 되는 녀석을 구할 수 있는데, 문사두부의 재료로 아주 충분했다.
하인에게 두부를 건네받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문사두부에 필요한 재료는 버섯, 청경채, 닭 육수. 전분.
제대로 하려면 닭 육수를 충분히 끓여 맛을 내겠지만, 이번 요리의 목적은 보여주는 요리.
닭은 나중에 쓸데가 있으니 닭 육수는 일단 그대로 끓게 두고 다른 재료부터 손질하기로 했다.
채도의 날을 한번 살피고 제일 먼저 손에 든 것은 청경채.
중원 대륙에 사는 사람 대부분은 청경채의 줄기 부분의 아삭함을 좋아하지만, 문사두부에 필요한 것은 연한 청경채의 이파리 부분.
굵은 줄기 부분은 잘라 버리고 이파리 부분을 겹쳐 말아 납작하게 누른 후, 채도를 들어 칼질.
-탁. 탁. 탁. 탁.
-탁탁. 탁탁. 탁탁.
-탁탁탁. 탁탁탁. 탁탁탁.
머릿속에 있는 기억에 반응해 몸이 악기처럼 따라 움직이며 칼질을 이어갔다.
천천히 시작해서 속도를 올리며 실처럼 얇게.
처음에는 천천히 시작해 박자와 리듬을 타듯이 이어지는 칼질.
도마와 칼이 만나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가 부엌 앞마당으로 퍼져나갔고, 경쾌한 소리에 흥이 오르는지 거지들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요리학교에서는 이 채도의 칼질을 가르칠 때 처음에는 신문지 같은 종이로 연습을 시킨다.
종이 연습은 칼이 손과 자르는 행위에 익숙해지기 위한 과정.
그리고 칼이 완연하게 손에 익기 시작하면 밀가루 반죽을 뭉쳐 연습시킨다.
밀가루 반죽은 말랑말랑하기에 날이 잘 서지 않았거나 각도를 잘 맞추지 못하면 잘리지 않고 뭉개지니, 정확한 채도의 사용법을 배우는데 밀가루 반죽만 한 것이 없는 것이다.
밀가루 연습으로 칼질의 기본이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 싶으면, 기초 연습 과장이 끝나는데, 그다음부터는 단단한 채소로 시작해서 부드러운 채소, 고기와 생선으로 넘어가는 것이 정석적인 채도 수련.
이런 모든 수련 과정이 끝나면 제일 마지막에 배우는 것이 화려함의 극치인 광동(廣東)요리에 사용되는 요리 장식을 만드는 여러 칼질을 배운다.
그러니 기초의 모든 과정을 우수하게 거치고 조각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나에게는 편(片 피옌), 사(絲 쓰) 두 가지 방법의 정점인 실 같은 채썰기는 비교적 어렵지 않은 것.
경쾌한 소리가 끝나고 실처럼 잘린 청경채를 슬쩍 들어 올리자, 거지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거지들을 향해 싱긋 웃어준 후, 청경채에서 녹색의 물기가 빠지게 찬물에 담가 한번 헹궈주고 버섯을 똑같은 방법으로 썰어주었다.
전생이라면 당근으로 색을 내주겠지만, 이 시대에는 당근이 없으니 당근은 패스.
오늘 주인공인 두부에 최대한 힘을 주기로 했다.
좀 더 얇고 좀 더 가늘게.
하인이 사 온 두부를 2센티미터 정도의 두께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잘라 도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손끝에 물을 묻혀 두부 위로 조금씩 떨어트려 주었다.
두부에 물을 촉촉하게 뿌려주는 이유는, 물이 윤활제로 작용해, 얇게 자른 두부가 채도의 넓은 표면에 달라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 잘들 보시오. 이건 눈으로도 먹는 요리이니.”
퍼포먼스를 보이기 전, 맛을 보지 못하더라도 두 눈알은 있으니 칼맛은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두 거지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나중에 못 봤느니 어쩌느니 하면 곤란하니 말이다.
“눈?!”
두 거지가 요리를 눈으로 먹는다는 내 말에 저희 눈알을 가리키며 어벙한 표정을 지을 때, 경쾌한 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칼질이 시작되었다.
오른손은 채도를 들고 왼손의 검지는 디귿 자로 꺾어 채도의 면을 받쳐 채도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과 간격을 맞추는 것을 돕는다.
칼을 움직이는 높이는 두부의 높이로 최소화.
편(片 피옌).
-탁 탁탁 탁탁탁 탁탁탁탁탁
이미 충분히 물을 적셔 두었지만 썰 때마다 조금씩 물기가 사라지니, 채도의 넓은 면에 한 손으로 물방울을 흘려가며 부드러운 두부를 최대한 얇게 편으로 썰어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오오, 두, 두부를 이리 얇게!”
“설마 검··· 큽!”
거지 둘이 내 칼질에 놀라 저희끼리 입을 막아대며 호들갑을 떨 때, 아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두부를 이렇게 얇게 썰어낼 수 있다니, 멋있어요. 노공.”
아내의 칭찬과 함께 폭발하는 손동작.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내 칼질이 제갈청의 칭찬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탁 타타타타타탁
‘이곳은 무림의 세계이니 지금 내 칼질을 굳이 표현하자면 심검합일(心劍合一).’
나와 아내가 하나가 아니, 칼과 내가 하나가 되어 부드러운 두부를 편으로 썰어내는 과정.
오늘따라 칼이 쭉쭉 나가며 두부를 복어회보다 얇게 저며내자 주변에 있는 시비들까지 몰려들어 내 칼질의 대단함을 칭찬했다.
“야ㅅ··· 아니, 접각부님의 엄청난 칼솜씨!”
“대단하셔요!”
고작 두부를 편으로 썰어내는데 이 정도의 환호라니.
일정하게 들리던 소리가 끊기고 편으로 썰어내는 과정이 끝나자, 손등으로 이마를 한번 훔치는 시늉을 하며 하늘을 45도 각도로 한번 바라봤다.
최고 멋있는 각도 얼짱 각도.
‘팬서비스 정도는 해줘야지.’
“후···”
그리고 숨을 한번 내쉬니, 내 동작에 제갈청이 달려들어 땀이라도 흐를까, 이마를 비단으로 훔쳐주었다.
아내를 향해 한번 미소를 지어준 후 곧바로 다음 칼질을 준비.
다음 과정은 편으로 썰린 두부에 다시금 물방울을 천천히 떨어트리면서, 썰어낸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천천히 편을 넘기는 것.
채도의 넓은 면으로 두부를 스치듯 쓰다듬으며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손을 세심하게 놀려야 하는 과정.
잘못하면 편을 넘기다 두부가 다 뭉개져 버리기에 물방울을 아주 세심하게 떨구면서 두부 편을 반대로 넘겨 도마 위에 천천히 펴주었다.
그렇게 물방울을 떨궈가며 두부를 넓게 펴주면, 다음 과정의 준비가 끝난다.
다음으로 시작되는 것은 사(絲 쓰).
-탁 탁 탁 탁 탁 탁
처음과는 다르게 작은 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채도.
두부가 밀리지 않게 손으로 위에서 살짝 눌러주고 천천히 수직으로 채도를 떨군다.
조금씩 채도를 이동시켜주며 두부로 머리카락을 만들고 있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나 이외에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자 들려오는 총타주의 감상.
“칼로 자르는 듯한데 두부는 그대로 구만?”
계속된 칼질로 테두리 정도는 살짝 부서져 보일 테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뭉쳐있는 두부가 얼마나 가늘게 잘렸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랄까?
채도를 반복해 움직여 마지막까지 썰어내고, 끝까지 썰어낸 두부를 채도의 넓은 면 위에 조심스레 올려 물이 담긴 그릇 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두부를 물속에 쏙 하고 집어넣으면, 마치 떡처럼 뭉쳐진 듯 보이는 두부.
이제부터 할 일은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마지 지휘자처럼 천천히 두부를 풀어주는 것.
떡처럼 보이는 두부라도 젓가락을 가지고 이 두부를 아주 살살 천천히 풀어주면, 그제야 마법같이 물속에서 두부가 하얀 실처럼 풀리며 사방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실 같은 굵기의 두부가 물속에서 살아있는 생물처럼 사방으로 헤엄치듯 퍼져나가는 모습.
“오오···”
“이건!”
거지 놈들도 눈알은 있는지 물속에서 하늘거리며 풀어져 내리는 두부의 모습에 감탄을 내뱉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내 요리를 무참히 유린한 놈들에게 인성질을 선물할 때.
인성질 ON.
팔팔 끓고 있는 닭 육수에서 닭을 건져내자 거지들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소협, 그래 이제 삶은 닭과 그 두부로 무슨 요리를 만들 것입니까?”
“놀라운 칼 솜씨는 보았으니, 확인 절차는 통(通)이요. 이제 남은 음식이나 먹읍시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졸라대는 거지들. 그들을 일단 진정시켰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준비가 다 끝났으니.”
그리고 건져 올려 따듯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닭을 그릇에 담아 아내에게 건네며 말했다.
“청, 내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소?”
“예, 노공 말씀하시지요.”
“육수는 다 내었고 이 삶은 닭은 이제 기름기가 다 빠져 먹을 수 없으니, 시비들에게 개에게 가져다주라고 말해주겠소?”
내 부탁에 제갈청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물론이지요. 노공.”
그렇게 제갈청의 손에 들린 삶아진 닭이 시비의 손을 거쳐 개를 키우는 곳으로 사라지자, 닭은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던 두 거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다, 닭을 어찌···”
작은 거지가 망연한 목소리로 물었기에 연유를 알려주었다.
“손님께 육수를 내느라 맛과 기름이 다 빠진 닭을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닭의 기름과 맛을 이 육수에 다 담았으니, 아주 좋은 요리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거지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남은 과정을 시작했다.
끓고 있는 닭 육수를 천에 걸러 웍에 넣어준다.
그리고 전분을 풀어 약간 걸쭉하게 농도를 맞춰주고, 이미 실처럼 썰어놓은 청경채와 버섯을 한번 끓는 물에 데친 후 웍에 넣어주었다.
마지막에 넣을 것은 실처럼 자른 두부.
물그릇에 있던 두부를 대나무 조리로 건져내 바로 웍에 넣어, 국자로 갱의 표면만을 휘져서 슬슬 풀어주고 간을 하면.
삼색의 실이 아름답게 엉켜있는 기묘한 갱이 탄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문사두부.
칼맛의 결정체.
갱을 떠 그릇에 담고 잽싸게 두 거지에게 내밀었다.
“자 어서 드셔보시지요.”
멍하니 그릇을 든 거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문사두부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몇백 년 후에는 왕이나 먹는 요리를 처먹는데 기뻐하지 않고 저리 우울한 표정이라니.
“어찌? 맛있지 않으십니까? 드시고 좀 더 드시지요.”
“아니, 마, 맛은 있는데···”
아주 많이 끓였기에 팬클럽 회장인 아내와 팬클럽 회원인 시비들에게도 맛을 보여주니 거지들과는 다르게 아주 감격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씹을 것도 없이 목으로 스륵 넘어가는 것이 속이 따듯해집니다. 노공.”
“저희까지··· 감사합니다.”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입에 문 것 같지만, 부드러운 느낌이 목을 타고 자연스레 흘러가니 정말 대단한 요리입니다. 접각부님.”
‘그래, 이것이 기본적인 반응이거늘’
팬들의 반응에 기꺼워하며, 거지들이 만족해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문사두부를 대접했다.
“통이라고 하셨으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무, 물론이지요. 귀한 요리도 대접받았는데···”
웃으며 대답하자 총타주가 입꼬리를 떨며 대답했다.
그리고 거지들을 문밖까지 배웅하려 했으나 요리도 했으니 힘들 텐데 시비들의 안내를 받아 자기들끼리 가겠다고 극구 거절하기에 거지들을 부엌 앞에서 배웅했다.
하지만 거지들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부엌 담장 너머에서 거지들을 배웅 갔던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개를 어디서 키우냐고요? 개는 어째서? 어떤 개인지 궁금하시다고요?”
그리고 한참 지나 멀리서 시비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약! 소, 손님들이 개에게 물리셨어요!”
***
그렇게 거지들을 잘 보냈나 싶었는데, 이틀 후 또 다른 거지가 손님이라며 나를 찾아왔다.
독왕 정도의 나이에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
착하게 생긴 노친네가 나를 바라보며 인사를 해왔다.
“반갑네, 소협. 나 걸왕(乞王)이라고 하네.”
‘왕거지?’
맛집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어째 왕거지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