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견(鬪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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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 두부 이후에 아내와 시비들 사이에서 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상태.
대나무 채반을 올린 식당에 갔었던 사소한 사고 따위는 아내의 기억에서 증발해 버린 듯했다.
그리고 아내의 몸종 같은 느낌의 시비들과도 좀 더 친해져, 아침을 먹고 시비들에게 제갈청의 어릴 적 이야기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아가씨 어릴 때는 얼마나 귀여우셨는데요, 꼭 도자기로 빚은 것 같았다니까요?”
‘어릴 때의 제갈청이라···.’
시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의 어릴 적 모습을 흐뭇하게 상상할 때였다.
나에게 근무상태 불량으로 한번 까였던, 정문 근무를 서는 무사 중 하나가 급하게 달려와 나를 찾은 것은.
“저, 접각부님! 바, 밖에 손님이!”
손님이라는 말에 불현듯 떠오르는 눈치 없는 두 거지의 면상.
두 거지의 면상이 자연스레 떠오른 이유는 당연히 내게 찾아올 손님은 없으니, 나를 찾아올 손님이라면 예의 거지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역시랄까?
‘이 새끼들 또 구걸하러 왔나? 아니면? 설마?’
일단 정말 거지들이 찾아왔는지를 무사에게 확인했다.
“또 거지새끼··· 아니, 개방분들이신가?”
“예, 예 접각부님.”
거지라는 사실에 이유가 어쨌든 꼭 좋은 시간에 나타나 나를 방해하는 거지들의 행태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거지들이 다시 찾아왔다는 말에 딜레마가 찾아왔다.
내가 거지들이 다시 찾아오리라 생각했던 연유는 두 가지 정도였다.
첫 번째 연유는 잘 처먹이면 맛집이라고 소문나서 또 구걸을 올 것이 분명했고, 그렇기에 그것을 막으려고 인성질과 함께 문사두부를 먹이고 돌려보낸 것이었는데.
그런데도 찾아왔다는 것은 못 처먹었다고 아쉬워서 다시 찾아온 것.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한번 잘 먹여야 하는데, 그러면 또 잘 처먹고 맛집이라고 모여들 수도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고민이 되는 것.
‘어쩌지? 그냥 한번 잘 먹여?’
원래 전생에도 맛집이라고 소문나면 일반 손님도 많이 늘어나지만, 수많은 타입의 거지들도 몰려드는 것, 블로거지나 블랙컨슈머, 너튜브거지, 아웃스타거지 같은 뉴타입 거지들이 말이다.
전생에도 주인들이 거지인 줄 알아도 대접을 해주는 건, 쫓아내고 악의적 평가가 나오면 법적으로 대처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보다, 그냥 거지새끼 한 끼 처먹이고 보내는 것이 싸기 때문.
더군다나 중원 거지들은 좀 끈질긴 것이 있으니 좀 귀찮은 것도 있고 말이다.
어찌해야 거지들을 털어내나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무사의 얼굴을 바라보자, 뭔가 바짝 긴장한 듯 보이는 무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지 따위에 호들갑을 떨며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으니 연유를 물었다.
“그런데 거지 아니, 개방분들이 찾아왔는데 무슨 그런 호들갑인가?”
“그, 그것이··· 거, 거거 걸”
말을 제대도 못 하고 말을 더듬는 무사의 모습.
아마도 거지들이 찾아온 연유는 내각 생각했던 것 중에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연유인 모양이었다.
무사가 호들갑을 떨며 놀랄 이유는 그것뿐이니 말이다.
‘아. 역시인가? 이 새끼들 정문에서 드러누웠나? 치료비 요구하면서? 이 새끼들 이거 분명히 뺑끼 인데?’
원래 거지들의 본업은 구걸인데 자해공갈도 일삼는 것이 무림 거지.
끈질기게 구걸하다 얻어맞으면 관아에 신고한다면서 삥도 뜯는 것이 무림의 거지인 것이다.
그렇기에 두 거지가 개에게 물렸다는 말에 혹시 다시 찾아오면 그것이 연유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맞는 모양이었다.
개밥 훔쳐먹다가 좀 물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을 때는 좀 놀라긴 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작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기에, 나중에 대체 어떤 개에 물렸나 싶어 나도 찾아가 확인했는데, 곰같이 생긴 아주 복슬복슬한 개.
전생에서는 차우차우라고 불렀던 개였다.
지금은 송사견(松狮犬)이라고 사자개라고 불리는데, 효효(獢獢)라고 애칭으로 부르며, 수레도 끌고 개고기를 먹으면 보통 이 개를 잡아먹는 그런 다목적 개였다.
뭐 치악력이 핏불테리어와 맞먹는다는 놈이긴 했는데, 중형 견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고 아무리 치악력이 좋더라도 민첩한 무림인인 개방 놈들이 개한테 물렸다니 확실히 작업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방 놈들은 구걸하다 개한테 물릴까 봐 타구봉법(打狗棒法)인가 하는 무공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개에게 물렸다?
백프로 자해공갈일 확률이 높았다.
‘근데 제갈가에서 자해공갈을 한다고?’
의구심을 춤은 채 일단 소리치며 나섰다.
“일단 가봅시다!”
내가 자리를 박차고 나서자 이번에는 아내 시비들까지 줄줄이 나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버벅거리는 무사를 끌고 정문 밖으로 나서자 두 거지와 함께 예상외의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왕 정도의 나이에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
착하게 생긴 노친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갑네, 소협. 나 걸왕(乞王)이라고 하네.”
‘왕거지?’
왕거지의 소개에 아내와 시비들이 급하게 포권을 하며 예를 취했다.
아주 깍듯한 모습으로 말이다.
“무림 말학 제갈가의 여식 제갈청이 걸왕님을 뵙습니다.”
“어허, 거지 따위에게 그 무슨 예란 말인가? 과한 예는 거두시게.”
일단 아내의 모습에 나도 일단 포권을 하며 예를 취했다.
나야 뭐 무림인이 아니니 그냥 적당히.
“처음 뵙겠습니다. 류청운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제갈청이 내 궁금함을 풀어주듯 전음으로 이야기를 전해왔다.
[걸왕님은 팔왕(八王)의 일원이세요.]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
중원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팔 이라는 숫자를 길하게 여기기에 아마 대충 전국구 대가리 여덟 명을 줄 세운 듯한데···.
아내에게 슬쩍 붙어 귓속말로 물었다.
[팔왕?]
[예, 독왕 어르신은 이미 뵈었죠?]
[그렇소. 부인]
의부님의 아버님 되시니 이젠 의조부님.
성격 꼬장꼬장했던 노친네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머지 설명이 들려왔다.
[독왕(毒王), 걸왕(乞王), 검왕(劍王), 도왕(刀王), 권왕(拳王), 약왕(藥王), 창왕(窓王), 투왕(偸王) 여덟 분을 합쳐서 팔왕이라고 하거든요.]
‘지랄 났네···.’
아내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검왕, 도왕, 권왕, 약왕, 창왕과 독왕인 의조부님 까지는 그렇다고 치는데, 거지새끼랑 도둑 새끼도 전국구 여덟 손가락에 드는 어처구니없는 무림의 현실.
‘아니, 밥 먹고 나와바리 관리와 무공 수련만 하시는 분들이 도둑이랑 거지랑 같은 위치면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어이가 없긴 하지만 아무튼 존나쎈 만렙 왕거지라는 뜻.
‘설마 식구들 개에 물렸다고 직접 찾아온 것인가?’
걸왕이 찾아온 연유를 생각하며, 일단 걸왕 너머의 둘에게도 인사를 했다.
일단 두 발로 멀쩡하게 걷고 있으니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두 분은 다시 뵙는군요. 걸륜 총타주님과 초팔랑이라고 하셨던가?”
내가 인사를 하자 걸왕의 뒤에 숨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둘이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했다.
“소협, 다시 뵙소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둘이 앞으로 나서자 내 등 뒤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힉!”
“저런···”
나는 포권을 끝내고 나서야 내 손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무슨 거지발싸개가?’
피떡이 된 둘의 모습.
급하게 게걸음으로 이동해 둘을 개에게 안내했던 시비에게 조용히 물었다.
[뒷마당에서 키우는 개가 혹시 투견(鬪犬)인 것이냐?]
[아니, 그, 그것이···]
투견이라는 것이 송나라 때 생겨난 놀이이고, 고관대작들이 즐기는 놀이기에 혹시 제갈각 숙부님이 그런 연유로 키우는 것은 아닌가 해서 물은 것이었다.
일반적인 개가 사람을 저리 떡으로 만들 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물음에 시비는 대답하지 못했다.
시비도 둘의 모습을 보자 놀랐던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후··· 이거 또 내가 정리해야 하나? 전생 애견인으로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애견인의 금기어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크흠··· 저희 개는 사람을 안 무는데 말입니다···”
***
내 말이 끝나고 나를 바라보며 걸왕이 한참 눈을 깜빡거렸다.
마치 눈이 침침하다는 듯.
그 모습에 내가 연유를 이야기하자 걸왕이 갑자기 발작하며, 두 거지를 우리가 보는 자리에서 떡이 되도록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뭣!? 개밥을 훔쳐?!”
-빠악
-뻑
“아이고 거지 죽네! 끄어억!”
“그, 그것이 아니오라! 꺼흐윽!”
“그럼 내가 먹은 것이 개밥이란 말이냐?!”
뱀처럼 휘어지는 몽둥이찜질.
뒤에서 아내와 시비들의 감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이 개방의 명물 타구봉법,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입니다. 아가씨”
“그렇구나. 저리 절묘한 힘 조절이라니, 저기 보거라 기문혈(期門穴)을 쳤는데도 기절하지 않는구나. 기절시키지 않고 고통만 줄 수 있다니!”
그렇게 한참 매타작이 끝내자 걸왕이 나를 향해 사과를 해왔다.
“아이고 미안하게 됐네. 우리 방도가 결례를 저지른 듯하네. 아무튼 요즘 것들이란··· 쯧쯧···. 아차, 내 이리 찾아온 연유는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라네.”
“이야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시지요.”
둘을 신나게 두드리고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노인네의 정력에 감탄하며 일단 그를 안으로 모시기로 했다.
힘 좀 쓰셨으니 목도 타실 테고, 의조부님과 같은 배분이라니 마냥 집 밖에 세워둘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걸왕을 안내해 손님을 모시는 곳으로 가려 했지만, 전각 안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기에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이틀 전 거지들이 찾아왔을 때처럼 부엌 외부에 의자와 식탁을 내놓고 자리를 권했는데, 갑자기 걸왕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멀쩡한 의자를 놔두고 갑자기 식탁 아래 맨바닥에 주저앉은 것.
“어찌 바닥에?”
기이한 행동에 놀라 어쩔 줄 몰라 하자 총타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소협 원래 거지는 계율상 식탁 앞에 앉지 못하네.]
내가 ‘아니, 님들은 이틀 전에 식탁 앞에 앉았잖아요?’ 하는 눈빛으로 총타주를 바라보자 다시금 전음이 들려왔다.
[우리가 식탁에 앉은 것은 절대로 비밀이네, 거지라고 식탁에 앉지도 못한다니, 정말 거지 같은 계율 아니겠나?]
그의 말대로 참 진짜 거지 같은 계율도 다 있었다.
결국 바닥에 앉은 셋에게 차를 대접하며 걸왕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걸왕의 이야기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해서 확인하러 온 것이네.”
개방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야 유명하니 기분 나쁠 건 아니었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웬 미친놈이 혼례식에 있었던 일을 개같이 아니, 거지같이 써서 전달했던 모양.
내가 무슨 무공 고수로 알려 질뻔한 상황이기에 확인을 나온 것이라는 말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 내가 어깨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걸왕을 향해 오른팔을 내밀었다.
무림 고수로 알려지는 데다가 거기에 용이라는 별호가 있으면, 어쭙잖은 놈들의 비무(比武) 신청이나 쏟아질 것이니, 행복하게 사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한 것.
원래 유언비어는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맞았다.
꺾어진 만자 팬클럽에서 나온 아주 주옥같은 말도 있지 않은가.
‘선동은 단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해명하고 증명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냈을 때 이미 대중은 선동된 상태다.’
“그냥 직접 확인해보시지요. 그 뭐 맥을 짚는다거나 뭐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있나?”
내가 무림인이라면 맥을 짚겠다는 것도 실례이고, 짚으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아주 순수 일반인인 내 처지에서는 걸왕의 손때만이 신경 쓰일 뿐.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도 내가 무림인이 아니니, 내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걸왕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안 짚어봐도 알겠네,”
그렇게 오해가 풀리고 걸왕에게 되물었다.
“그럼 이제 의혹은 다 정리된 것이겠지요?”
“물론이네.”
그리고 잠시 정적.
“오해가 잘 풀렸으니 다행입니다···.”
“그렇지?”
“그···. 별로 바쁘신 일은 없으신가 봅니다?”
“거지가 바쁠 일이 뭐 있겠나?”
“하하··· 그, 그러시군요···”
끝났으면 일어나서 가지 왜 안 가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귓가에 다시금 전음이 들려왔다.
[소협, 그 내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우리 늙은이 식사한 끼 대접해줄 수 있겠나? 그, 걸왕 체면상 어디 가서 밥도 못 얻어먹고 나왔다면, 그게··· 무림에서는 알아서들 다 챙겨주는데 자네는 무림인이 아닌지라 모르는 듯하여 내 직접 말해주는 것이네··· 걸왕 체면이라는 게···]
아니, 이 새끼들은 왜 모든 이야기가 밥으로 끝나지?
정말 거지 같은 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