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육(糖水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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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오셨으니, 그···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요.”
“크흠. 그럴까? 내 식룡이 이리 권하니 그냥 갈 수는 없겠구먼. 크흠 크흠.”
거지 같았지만 얼른 밥 한 끼 먹여서 보내겠다고 생각했다.
거지가 체면을 들먹거리니 내가 한발 물러날 수밖에···
거지도 체면이 있나? 싶지만 솔직히 거지 같은 최 하류층 애들이 체면과 엮이면 이 중원 대륙에서는 제일 무서운 법.
전생의 무협 소설 같은데 자주 등장하는 장면.
멋모르고 초고수한테 들이댔다 다 털리면, 고수가 ‘내 너희 목숨은 거두지 않을 테니 팔 한 짝은 두고 가거라’ 하는 멘트를 던지는 것은, 너희들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통에 하찮은 너희들을 상대하느라 내 체면이 손상되었지만, 나는 고수니 내가 이정도 선에서 관대하게 용서해줄 테니 꺼지세요. 라는 의미가 있는 것.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중원에서 고관대작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체면을 상하게 한다면, 최소한 죽음까지 이르는 경우는 어지간해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체면을 훼손한 사람의 목숨을 거둬 잔인한 사람으로 보이면 평판 곧 체면이 깎이기도 하고, 적당히 혼내주고 용서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 이 정도로 관대한 사람이요 하면서 그 와중에 체면을 세우는 것.
하지만 거지새끼들 같은 최 하류층 애들과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얘들은 그냥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가진 거라고는 존심.
존심, 그러니까 체면 딱 한 가지뿐.
그러니 대놓고 무시해서 체면을 상하게 한다?
아무것도 없고 체면 한 가지밖에 없는 놈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것은 죽음을 불사하는 원한을 쌓는 것.
딱하나 남은 자존심마저 꺾일 수는 없으니 체면이 손상되면 살인과 죽음도 불사하는 것이다.
체면이란 그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마지노선이랄까?
‘그래, 하지만 내가 무서워서 이러는 게 아니고 더러워서 해준다!’
일단 부엌에 들어가 재료를 살폈다.
몇 번 들락거리긴 했지만 내 부엌이 아니니 무슨 재료가 있는지 살피는 것.
안에 들어가서 대나무 채반으로 덮어준 음식 재료를 살펴보니 아침에 먹다 남은 만두랑 생 양고기, 채소는 부추, 오이, 양파.
요거 요거, 딱 보니 예전 생각이 나는 음식이 떠올랐다.
구채초육사(韭菜炒肉絲).
육 대협과의 추억이 깃든 요리.
‘육대협 잘 계십니까? 구채초육사를 맛보여드리기로 했었는데, 이제 언제나 가능할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추억의 요리 구채초육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사천식이 아닌, 그냥 평범한 방식으로.
고기는 돼지고기가 아니라 양고기로 하기로 했다.
그래도 팔왕이라니 돼지고기를 냈다가 구박당할 수도 있는 것.
뭐 지금 있는 고기가 양고기뿐이지만.
부추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양고기의 살코기를 잘라 화주와 소금 후추로 밑 간을 하고 전분을 묻혀 튀기듯 굽기.
다른 볶음은 웍을 달궈 볶지만, 고기들이 붙지 않게 낮은 온도부터 천천히 볶는다.
튀김옷이 두껍지 않고 살짝 입혀진 듯 보이게 하는 것이 신경 써야 할 부분.
그렇게 고기가 다 익으면 건져두고 웍을 뜨거운 불에 달군다.
여기에 먼저 부추의 뿌리 부분을 넣고 익혀주다 곧바로 남은 부추를 모두 넣고 아주 빠르게 볶기, 부추는 금방 숨이 죽어버리니 아주 빠르게 볶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건져놨던 고기를 넣고 소금간에 참기름.
그렇게 찐 만두와 완성된 구채초육사를 가지고 가 걸왕의 앞에 내려두었다.
“자, 부족한 솜씨지만 맛보시지요.”
그런데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
“크흠!”
걸왕이 뭔가 아주 불편한 표정으로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벌려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크흠··· 내, 식룡이라는 별호를 받았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크흐흠··· 요리사라면 상대방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먹지 못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뭐지 이 늙은이? 반찬 투정인가? 아니면 비건 거지? 아닌데··· 닭고기는 분명 처먹었다고 했는데?’
걸왕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어리둥절할 때, 요리할 때 밖에서 걸왕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남겨졌던 제갈청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노공께서는 무림인이 아닌지라, 무림의 예법을 잘 알지 못하여 실수하신 듯합니다.”
갑자기 왕거지를 향해 사과하는 제갈청.
‘뭐지?’
영문모를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자 귓가로 제갈청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노공, 제가 아버지께 배운 바로는 거지들, 아니 걸왕께서는 계율 때문에 양고기는 못 드신다고···]
슬금슬금 다가가 아내에게 되물었다.
[아니, 대체 왜 멀쩡한 양고기를 못 먹는 것이요?]
[양고기는 귀한 고기이니 천한 거지는 먹지 않는다고 해요.]
‘이게 또 무슨···’
아내의 대꾸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니 걸륜의 전음도 날아왔다.
[그놈의 계율, 계율! 미안하네, 소협. 영감이 그놈의 계율 타령을 하며, 나 때는 어땠는데 요즘 것들은 어쩌니저쩌니하는 게 말버릇이라네. 거, 그냥 주는 대로 처먹지··· 대체 멀쩡한 고기는 왜 못 먹게 하는 건지.]
걸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거 조합이 아주 유니크했다.
‘아하, 이것이 거지와 꼰대의 환상의 콜라보로구나.’
꼰대 거지라는 특이한 조합.
아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그럼, 다른 고기는 괜찮소?]
[네, 양고기만 안 드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개고기도, 닭고기도 돼지고기, 소고기도 다 드시는데.]
별 지랄 같은 계율도 다 있다 싶었지만, 거지새끼라도 앞에 있는 걸왕은 전국구 마피아 보스중 하나.
‘그래, 이슬람인이나 채식주의자 대접한다고 생각하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금방 다시 음식을 내오지요. 개방에 그런 계율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습니다. 걸왕 어르신.”
“아하! 그런 것이었나? 내 그럼 당연히 기다려야지··· 그리고 자네 아내도 무림인이고 이제 자네가 속한 제갈가도 무가이니, 사소한 것들은 익혀두는 게 좋겠네. 나야 관대하니 그렇다고 해도 중원에서 살다 보면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꼰대 영감치고는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 걸왕.
일단은 맞는 말이니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일단 다시 부엌으로 향하며 하인을 불러 급히 돼지고기를 사 오라고 부탁했다.
“가서 돼지고기를 몇 근 사 오너라.”
“돼지고기 말씀입니까?”
“그래, 빨리 좀 부탁한다.”
“예, 알겠습니다. 접각부님.”
하인이 돼지고기를 사러 간 틈에 잠시 머리를 굴려보았다.
걸왕에게 어떤 맛(?)을 보여주어야 할지 말이다.
‘맛. 맛이라···’
맛이라는 것은, 뇌에 느껴지는 혀의 자극.
그러니 혀의 자극은 곧 혀에 있는 미각 세포가 느끼는 음식이 주는 자극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혀에 느껴지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곳은? 미뢰.
이 미뢰에 느껴지는 기본 맛인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의 조합이 결국은 맛.
그러니 정의하자면, 모든 요리는 이 기본 네 가지 맛들을 조화를 이루게 해, 뇌에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작 왕거지 밥 먹이는데 거창하게 맛부터 생각하는 것은, 잘해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주는 대로 처먹지 어디 와서 꼰대질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제갈청에게 사과를 받다니.
사형 확정.
걸왕의 꼰대질에 흑화가 마려웠다.
중원의 암흑 요리사 빙의 직전.
자 그렇다면 노인네가 가장 좋아하는 맛은 무엇일까?
바로 단맛.
나이가 들면 혀에 분포한 미뢰의 숫자가 감소하고 크기도 작아진다.
이런 원인으로 미각이 느끼는 단맛과 짠맛을 느끼는 기능이 감소해 나이를 먹으면 음식을 더 달게 먹게 되고 더 짜지게 되는 것.
그리고 신맛과 쓴맛을 감지하는 부분이 강해져 신맛을 더 크게 느끼고 쓴맛도 마찬가지.
어르신들이 양갱, 박하사탕 같은 것을 달고 살고 케첩에 설탕을 타 드시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나이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맛이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 신맛.
돼지고기와 전분과 단맛과 신맛이라~
걸왕을 위한 요리로는 탕초(糖醋) 확정이었다.
탕초(糖醋)란 단맛과 신맛을 내기 위해 설탕과 식초가 들어간 소스를 이용해 만든 요리를 총칭한다.
전생에 한국의 국민 음식이던 탕수육과 과포육(锅包肉 꿔바러우) 광동지역의 고노육(古老肉)같은 것이 이 탕추 소스를 이용한 대표요리.
다만 한국의 탕수육의 소스가 새콤달콤한 파인애플이나 사과들의 과일을 넣고 좀 더 달콤하게 먹는 음식이라면 중원의 탕추 소스는 신맛이 훨씬 더 강하다.
뜨거워서 후후 불다가 잘못해 향을 들이켜면 기침이 콜록콜록 나올 정도로.
하인이 사 온 돼지고기를 손가락 굵기로 썰어주었다.
전생이라면 순 살코기로만 만들겠지만, 지방을 고기의 가장 맛있는 부위라고 생각하는 송나라 때는 고기 요리라면 지방과 같이 썰어내 주는 것이 일반적.
지방과 고기를 적당한 비율로 맞춰 썰어준 돼지고기를 소금과 후추로 밑간해주고, 달걀노른자와 함께 밀전분에 버무려 잠시 기다렸다.
전생과 다른 점이라면 밀 전분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밀전분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후추를 듬뿍 넣는 것 정도.
그리고 고구마나 감자 전분으로 조금 더 바삭한 맛을 내주거나, 중화요리 식으로 건조 전분에 고기를 버무려 튀기는 간단한 방법도 있겠지만, 지금 가능한 것은 밀전분을 이용한 물 반죽뿐.
고기를 썰고 밑간을 해주는 사이 온도가 오른 기름에 반죽 하나를 떨어트리자 폭발하듯 기름에서 맛있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팅 팅팅 촤아아아아아
밑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이 탕탕 터지는 소리를 내다 곧장 튀김반죽이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튀김 요리할 때 들려오는 맛있는 소리가 빗줄기처럼 부엌 안을 꽉 채웠다.
-촤아아아
재빠르게 나머지 반죽을 떼 기름에 넣어주었다.
-촤아아아아아 치이이이이이
-탕 탕
튀긴 돼지고기가 익어가는 중간중간 대나무 조리로 건져 국자로 두드려, 붙어있는 튀김들을 떼주며 튀김옷이 살짝 노릇해질 때까지 한번 튀겨주는 과정.
튀김이라는 요리가 주는 미칠듯한 고소한 향이 부엌 밖으로 슬슬 흘러나가자 밖에서 거지들이 저희끼리 쑥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킁킁. 이건 돼지고기 향이구나.”
“방주는 그게 맡아지시오?”
“어허 이놈아 나 걸왕이야 걸왕.”
“완전 개코요 개코.”
“개 하니까, 네놈들이 도적도 아닌데 개밥을 훔쳐 온 것이 다시 생각나는구나. 방주에게 개밥을 먹이다니. 괘씸한 놈들!”
-빠악
“끄어억!”
부엌 밖에서는 박 터지는 소리가, 부엌 안에서는 튀김이 맛있게 익어가며 기름방울 터지는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울려 퍼졌다.
튀김은 한번 건져두었다가 다시 한번 튀겨 고소함과 바삭함 그리고 혹시나 밀 전분에 남아있을 밀 특유의 향을 날려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소스.
한국식은 물에 설탕과 식초를 타고 채소를 몇 가지 넣어주거나 과일은 넣어주는 것이지만, 정통 탕추 소스는 웍에 식초를 직접 때려 넣고 끓이며 만드는 것.
달궈진 웍에 식초를 때려 넣자 식초가 곧장 끓어오르며 식초의 톡 하고 쏘는 향이 폐를 직격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켈륵! 켈륵! 하오 죽겠구나.”
여기의 사당(沙糖)을 넣어 달콤함을 추가하고 밀전분을 추가하면 탕추 소스 완성.
다만 밀 전분을 넣을 때는 고구마나 감자 전분보다는 양을 좀 더 넣어주어야 한다.
밀 전분에는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이 많아, 응집력이 감자나 고구마 전분보다 좀 떨어지니 양을 늘려야 하는 것.
그렇게 완성된 소스에 튀겨놓은 고기를 다시 한번 볶아 큰 접시에 맛있게 담아내면 탕초육(糖醋肉), 탕수육(糖水肉) 완성.
접시에 담아낸 탕초육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이젠 제집인 듯 맨바닥에 반쯤 드러누운 걸왕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자, 어서 드시지요.”
그런데 반쯤 드러누워 미동도 하지 않는 걸왕.
‘이 새끼 또 왜 이러지?’
뭐가 또 있나 싶어 아내를 바라보자 제갈청이 젓가락을 들고 쪼르르 딸려와 탕수육을 하나 집어 한입 베어 물더니, 아주 맛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미소를 지은 후 걸왕 쪽을 보며 말했다.
“아··· 다 먹었다. 남은 건 버리던지, 거지를 줘야겠구나.”
그리고는 자기가 먹던 탕수육 반쪽을 그릇 제일 위에 올려두었다.
그제야 미소를 띠며 일어나는 걸왕.
걸왕이 활짝 웃으며 아내가 남긴 반쪽의 탕수육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자, 잠깐!”
그 모습에 급하게 걸왕의 젓가락을 막아서며 외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