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젤리 (68/344)

로열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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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젤리.

벌들이 여왕만을 위해 만드는 고오급 액체.

그런 것을 아내가 손님에게 대접하려고 하고 있었다.

긴급상황.

‘갸아아아악! 안돼!’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러대며 걸왕의 초식이 담긴 젓가락을 막아냈다.

몸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이 몸이 된 후로 약간 겉도는 느낌이 들던 몸과 나의 정신이 완벽히 합일된 듯 움직여졌다.

심신합일(心身合一)! 완벽히 하나 된 몸과 정신.

그렇게 하나 된 몸을 이용해 곧바로 이어진 행동은, 그 빠르다는 개방의 거지들보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아내가 남긴 반쪽의 탕수육을 주워 먹는 것.

-츄릅

김을 모락모락 풍기던 반쪽의 탕수육은 내 입안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무척이나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어떻게든 막아낸 상황.

결단코 왕거지 따위가 아내가 남긴 탕수육 반쪽을 주워 먹게 할 수는 없었다.

분명 또 구걸하지 않은 음식은 못 처먹는 계율 같은 것 따위로 주인이 남긴 음식이라는 모양만 내는 행동인 모양인데, 정말 선을 넘은 아주 곤란한 행동이었다.

만일 걸왕이 제갈청이 남긴 탕수육 반쪽을 주워 먹었다면, 무공 한 자락 익히진 못한 범부(凡夫)의 몸이지만, 나와 아내를 위해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목숨을 건 생사결(生死決)을 신청했어야 할 상황.

이건 그 정도로 심각하고 긴박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어떻게든 막아내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릴 때, 내 행동에 아내의 다급한 전음이 날아들었다.

[노, 노공 어째서 그걸?]

걸왕도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그걸 왜 먹나?”

‘왜 먹긴 이 새끼야! 당연히! 남편의 권리지!’

속으로 무식한 거지새끼의 상식 없는 행동을 꾸짖어준 후.

천천히 입을 열어 시선이 집중된 사람들을 향해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계율···”

“계율? 그게 무슨 소린가?”

내 말뜻을 확인하려는 걸왕의 물음.

살짝 인상을 쓰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부인이 음식을 한입 먹고 남긴 것은 계율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지, 거지들은 동냥한 음식이나 주인이 남겨준 음식만을 먹을 수 있으니, 음식을 남겨준 것이지.”

역시나 거지 같은 계율.

“주인. 집의 주인이란, 남자 곧 남편을 의미하는 것. 그러니 제가 남긴 음식을 드려야 맞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생이라면 큰일 날 소리이지만 지금은 송나라 시대.

유교 탈레반이 가장 성할 시기 중 하나이니 문제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잽싸게 탕수육을 하나 들어 쪽쪽 빨기 시작했다.

-츄릅 츄르릅

그리고 소스만 쪽쪽 빨아 소스 빠진 탕수육을 접시 제일 위에 올려두고 뒤로 물러났다.

“크흠···”

내 행동에 갑자기 기침하며 불편한 얼굴이 된 걸왕.

걸왕이 뭔가 아쉽다는 투로 지껄였다.

“아니, 부부는 한 몸이니 딱히 그렇게 구분하지 않아도···”

‘이 새끼 제가 좀 강하다고 결국 생사결을 원하는 건가?’

나는 단호박처럼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아니요. 혹시라도 걸왕께서 계율을 어기게 되는 일이 생기게 할 수는 없지요. 아무렴요. 걸왕의 ‘체면’이 있으니까요.”

그러자 들려오는 아내의 전음.

[노, 노공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나서서. 노공께서 하셔야 하는 일인데···]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자 아내는 우울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그 얼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나는 쓰레기라는 자책감이 솟아올랐지만, 지금은 잠시 참을 때.

“드셔보시지요. 아차! 이 말을 빼먹을 뻔했군요. 아··· 다 먹었다. 남은 건 버리던지, 거지새끼들이나 줘야겠구나.”

“크흠. 고, 고맙네.”

걸왕은 내 말이 끝나자 뭔가 탐탁지 않다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젓가락을 탕수육으로 가져가려다, 내가 단물만 빨아먹은 탕수육 앞에서 뭔가 아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뒤의 거지들을 향해 말했다.

“크흠, 너희들도 같이 먹자꾸나. 거지들이 밥 먹는데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따지지는 않지.”

그 말에 화색이 된 두 거지는 앉은 채로 엉덩이만 움찔거리며 앞으로 나서 걸왕의 양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걸왕이 먼저 낸 만두를 배급하듯 둘의 손에 하나씩 쥐여주고, 그 위에 탕수육을 한 개씩 올려주며 말했다.

“자 같이 먹자꾸나.”

물론 걸왕이 초팔랑이라고 했던 조금 젊은 거지의 만두 위에 올려준 것은, 내가 단물만 빨아먹은 탕수육이었다.

‘영악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그렇게 거지들의 시식이 시작되었다.

먼저 터져 나온 것은 걸왕의 기침.

“후후··· 케헥! 케헬륵! 켈륵! 케헥! 어이쿠, 이 무슨?”

뜨거운 탕수육을 후후 불다 식초의 시큰한 향을 폐로 들이킨 걸왕은 해소 기침을 하듯, 폐를 쥐어짜며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기침하는 사이 먼저 탕수육을 먹은 총타주의 감상이 옆에서 흘러나왔다.

“소(酥 바삭하다.)!”

“첨(甜 달다.)!”

“산(酸 시다.)!”

바삭하면서 달고 새콤하다는 그의 감상.

쓰까묵는 것을 좋아하는 그가 세 가지 맛과 식감이 동시에 혀를 강타하는 충격에 감동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신이 난 얼굴로 내 탕수육을 칭찬했다.

“소협, 그 대단한 칼솜씨도 엄청났지만, 이 요리는 정말 대단하오. 소, 첨, 산이 어우러진 요리라니. 이것을 먹으니 살살 입맛도 도는 것이 참으로 좋소이다.”

그리고 그는 연신 손을 놀려 탕수육과 만두를 먹어대기 시작했다.

아주 탕수육이 맘이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만족한 그와는 다르게 그 옆에 초팔랑은 내 침에 젖은 탕수육을 주워 먹고는 총타주의 감상과는 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달콤하긴 한 것 같은데? 크흠?”

그리고는 혀를 요사스럽게 움직여 자기 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엄청나게 기분이 나빠지는 상황.

그대로 달려가서 면상에 사커킥을 날리고 싶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저 모습이 아내가 남긴 탕수육 반쪽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내 희생으로 아내를 지켜냈으니 다행이랄까?

둘의 그런 감상 사이로 다시금 걸왕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아이고 시다. 셔!”

저 정도 연세이면 당연히 산미(酸味)를 좀 더 강하게 느낄 테니, 레몬 한 알 씹어먹는 기분일 듯.

하지만 또 저 나이 때 강하게 느껴지는 단맛의 유혹에 시더라도 자꾸 먹고 싶을 것이 당연했다.

걸왕은 뜨거운지 후후거리다가 폐로 다시금 초를 맛보고 켈륵 거리며 기침하거나, 탕수육을 입에 넣고 뜨거워 허허, 거리다가 다시금 켈륵 거리는 모습을 반복했다.

그리고 탕수육이 시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기침과 식사를 반복하는 걸왕의 모습.

‘어르신, 숨쉬기 힘드시면 숨을 잠시 멈추셔도 좋습니다.’

속으로 걸왕의 안영(安塋 편안할 안, 무덤 영)을 기원했다.

그렇게 오만상을 찡그리는 걸왕과 신이 난 거지들의 식사가 끝나자, 거지들은 조금 탐탁지 않은 표정인 걸왕과 아주 만족한 두 거지로 나누어졌는데, 거지들을 배웅하는 길에 총타주가 아주 만족한 모양인지 나에게 감격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소협, 앞으로 무림의 평판은 신경 쓰지 마시게. 두 번이나 이리 귀한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내 특별히 신경 쓰겠네.”

게임 내에서 NPC를 상대로 평판을 올리기 위해 반복해서 작업해야 하는 것을 평판작 노가다라고 하는데,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말라는 호언장담.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심술 가득한 걸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어, 개방의 소문이 어찌 사사로운 이득에 휘둘린단 말이냐!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지! 소협과 제갈가 여식의 대접은 잘 받고 가네. 크흠.”

걸왕은 잔뜩 심술이 났는지 아내와 나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뒤돌아 앞장을 서며 대문을 나섰다.

아마도 만족스럽게 식사를 못해 심술이 난 모양이었다.

‘하여튼 무림의 꼰대들이란···’

그리고 그런 걸왕의 모습을 배웅하는 내 귓가에 총타주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소협, 늙은이 말은 신경 쓰지 말게, 맛있는 음식을 혼자 맛있게 못 먹었으니 심술이 난 게지. 아무튼 늙어서 음식 욕심은··· 그리고 다른 명문정파에서 술 얻어먹고, 좋은 소문 내주거나. 그 집 자제들이 사고 친 것 소문 안 나게 해준 게 한두 번도 아니면서. 쯧쯧··· 내 귀한 요리 두 번이나 얻어먹었으니, 개방의 정보가 필요할 때 연락해 주시게. 내 두 번 얻어먹었으니 두 번은 무료로 해줌세.]

이유가 어쨌든 두 번의 무료 홍보찬스 또는 정보가 필요할 때 개방을 두 번 이용할 수 있다는 프리패스권을 얻었으니 나중에 어떻게든 써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멀어지는 거지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내의 쭈뼛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 노공. 죄, 죄송합니다. 아까 제가 너무 나선 듯하여.”

아마 아까의 일을 마음에 담아 둔 모양.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내 양손으로 감싸 쥐며 말했다.

“부인, 오늘 부인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겠소?”

내 물음에 동공에 지진이 나고 있는 제갈청.

그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어 자기 생각을 이야기 했다.

“집안의 주인이신 노공이 하셔야 할 일을 제가 함부로 나서서···”

“아니,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니요.”

“그, 그렇다면?”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제갈청의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훔쳐주며 대답했다.

“그대의 눈물 한 방울까지도 다 내 것이니, 앞으로 다른 이에게 먹던 음식을 내어주는 그런 행동은 절대 하면 안 되오. 알겠소?”

“예?!”

영민한 제갈가의 후손이니 이 정도만 이야기해줘도 알겠거니 싶어, 나도 이야기하고 좀 부끄럽기에 잽싸게 뒤로 돌아 얼른 부엌 쪽으로 도망쳤다.

***

영문 모를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져 버린 류청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비들이 제갈청에게 물었다.

“아가씨, 접각부께서 하신 말씀이 대체 무슨 말씀이죠?”

“눈물이랑 먹던 음식이 대체 상관이 있다는 뜻이지?”

시비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생각하며 고민할 때.

점차 붉게 물드는 제갈청의 얼굴.

그녀의 얼굴이 붉은 화지보다 더 붉게 물들자 이상함을 눈치챈 시비들이 제갈청을 붙잡고 물어왔다.

“아가씨? 얼굴이?”

“대체 무슨?”

“설마? 접각부님이 남기신 말씀의 뜻을 알아차리신 건가요?”

“아가씨 뭐데요? 저희도 알려주셔야죠!”

시비들이 제갈청을 다그치자 제갈청이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 눈물···”

“눈물?”

“다른 이에게 먹던 음식을 주지 말라는 것은···”

“것은?”

“누, 눈물도 물이고 먹던 음식에도 물이···”

“네?”

시비들이 제갈청의 설명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묻자 제갈청이 손으로 얼굴에 부채를 부치며 대답했다.

“나의 누, 눈물 한 방울까지 노, 노공의 것인데··· 으, 음식을 먹으면 치, 침이···”

제갈청의 설명에 두 시비가 입을 가리며 경악했다.

류청운 그는 아주 질투심이 많은 남자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달콤한 신혼여행이었지만, 거지새끼들이 자꾸 찾아오는 통에 일정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처가로 되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정계에 계시는 숙부님 집에 아무래도 정보를 취급하는 개방의 거지들이 자꾸 찾아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아내가 했기 때문인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숙부님의 집에 자꾸 거지새끼들이 들락거리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고, 한 번만 더 찾아오면 나도 폭발해 버릴 듯해서, 복귀 일정을 급하게 잡아버렸다.

뭐 동경의 유명한 건물도 몇 가지 구경했고, 채반이 올려진 등롱 사건 이후에도 몇 번 둘이 저녁을 먹으며 데이트했으니 좋은 추억도 남겼고, 조금 아쉬운 듯 되돌아가서 다른 여행을 기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귀향길에 오르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지 않은 이른 아침.

우리를 호위하고 왔던 호위들과 아내를 대동하고 제갈각 숙부님과 숙모님께 인사를 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그럼 이만 되돌아가겠습니다. 부디 두 분 몸 건강히 다시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 한 두어 달 더 있어도 되는데···”

“숙부님, 숙모님, 안녕히 계셔요.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아, 몸조심하고 꼭 다시 찾아오너라.”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하고 길을 나서는데 뒤로 제갈각 숙부님의 속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정말 그것이면 되겠는가? 아무래도 선물로 그걸 주기에는 내가···”

제갈각 숙부님이 저리 속상해하는 것은 결혼 선물로 무엇이 필요하냐고 하시기에, 내가 달라고 해서 받은 선물 때문.

나한테는 큰 선물인데 아마 본인이 주는 선물로는 마땅치가 않으신 모양이었다.

나는 숙부님의 걱정을 덜기 위해 선물이 마음에 든다는 사실을 재차 말씀드렸다.

“제 마음에 쏙 드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숙부님.”

“아니, 그래도 그런 걸 왜 선물로 달라고 한 것인지···”

“그래도 이놈이 아주 특별한 재주가 있습니다.”

“응? 재주?”

“예, 거지를 혼내주는 재주가 있더군요. 그러니 저는 아주 만족합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개방 거지 둘을 한 번에 제압하는 개가 흔한 것이 아니니, 이만한 선물이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물이었다.

-멍멍

“가자 덕구야”

이름 덕구, 닉네임 걸퇴견(乞退犬).

세상 모든 거지를 퇴치할 우리 새 식구였다.

아주 그냥 다음에 거지들이 나타나면 물어 죽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덕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덕구라고 이름 지은 효효(獢獢)를 끌고 되돌아갈 때는 배가 아닌 육로를 이용했다.

멀미가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 올 때만큼 속도가 빠르지도 않았기 때문인데, 알고 보니 제갈가가 있는 호북과 동경이 있는 하남은 딱 붙어있었던 것.

더군다나 잘 닦인 관도를 이용하면 되니 마차를 타고 이동도 아주 편했다.

그렇게 아내와 여행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제갈가로 되돌아왔는데, 나를 기다린 것은 암울한 현실.

장인이 나에게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전달했다.

“그렇게 된 것이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미안하네···”

“예?!”

영혼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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