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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사마귀 (69/344)

암 사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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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운 고생 끝에 다다른 제갈가의 구진문(九進門).

문 앞에 도착하자 우리를 확인한 무사들에 의해 제갈가의 아홉 문이 활짝 열렸다.

볼 때마다 으리으리한 구진문의 모습에 뽕이 차오르고, 동경에서 우리가 돌아왔다는 소리를 들었던지 장인이 경공으로 달려 나와 우릴 반겼다.

“오오! 그래 잘 다녀들 왔느냐?”

“예, 장인어른 별래무양(別來無恙)하셨는지요.”

“그럼, 내 당연히 무탈하게 잘 지냈지. 자자, 어서들 들어가세.”

장인이 우리 부부의 어깨를 두드리며, 우릴 안쪽으로 인도하자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왈왈!

덕구가 그래도 그간 나와 아내를 주인으로 받아들였다고, 장인이 우리 몸에 손을 대니 경계를 하는 모양.

덕구가 짖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장인이 눈을 깜빡거리며 되물었다.

“응? 아니, 이 개는 대체 뭔가?”

“아, 선물로 받아온 것입니다.”

“개를?”

“예.”

개를 선물로 받아왔다니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장인.

북송 때는 국법으로 개고기가 금지된 적도 있고, 불교나 도교에서도 개고기를 금하는 문화가 있어 고기로도 못 쓰고, 집을 지킨다는 개념도 없으니.

잔반 처리나 수레를 끄는 것 외에는 별로 크게 가치가 없는 동물이라 그런 듯했다.

“그래, 뭐 집에도 개는 몇 마리 있지만 송사견이면 나쁘지 않지. 이름이 뭔가?”

“예, 덕구입니다.”

“덕구?”

“뭐 아홉 가지 덕 뭐 그런 건가?”

“아뇨, 그냥 개라는 뜻입니다.”

전생에 시골에 가면 많은 시고르자브종 개들의 이름이 덕구로 불리는데, 이건 한국어로 지은 이름이 아니다.

근원을 따지자면 시골 할머니들이 영어인 도그(Dog)로 개 이름을 부르다 보니 도구, 독구, 덕구로 변화한 것.

실제로는 꽤 있어 보이는 영어 이름인 것이다.

그러니 나도 덕구의 이름을 객지에서 고생하는 영어식 이름으로 작명해준 것.

-아그르르릉

덕구도 이름이 맘에 드는지 신이 난 듯 울었다.

***

처가로 되돌아와서 묵은 빨래를 맡기고 몸을 씻고 있으니, 저녁 식사 전 하인들이 찾아와 장인이 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접각부님 가주께서 찾으십니다.”

“나를? 아?! 알겠네. 앞장서게 내 따르지.”

장인은 아마 우리가 동경에 다녀온 이야기를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인을 따라 장인의 처소에 딸린 손님을 맞은 응접실 같은 곳으로 향하니, 장인이 따듯한 차와 함께 나를 맞이했다.

“그래, 청운이 어서 안으로 들게.”

“예, 장인어른.”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자 따듯한 차한 잔이 권해졌고 차를 어느 정보 비우자 장인의 입이 열리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 시비들에게 동경에 다녀온 이야기는 소상하게 들었네.”

“소상히 말입니까?”

“그래, 이 사람아 걸왕을 뵈었다지?”

“아, 그 왕 거지새ㄲ···. 아니, 걸왕 말씀이시군요?”

“그래, 개방 쪽과 연을 터 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 아주 잘했네.”

개방이 하는 꼬라지를 보니 거지새끼들 도움이 될까 싶긴 했다.

뭘 부탁하면 계율이 어쩌니 하면서 사람 짜증 나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인데.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밥 한 끼로 부려 먹을 수 있는 인력이니 나쁘진 않을지도?

개방은 돈을 받지는 않으니까.

더군다나 무료 홍보권도 얻었겠다, 그 사실을 장인에게 알리니 아주 기뻐했다.

“오, 그래? 두 번이나? 총타주가 아주 큰 인심을 쓰셨구만.”

그렇게 장인과 동경에서 있었던 일을 천천히 이야기 나누고 대충 이야기가 다 끝났다 싶어 언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장인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자네를 이렇게 부른 이유는 동경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시비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족한 딸아이를 무척이나 아껴준다는 이야기를 들어 고맙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네. 고맙네, 내 진심이네···”

딸바보인 장인이 약간 우수에 찬 눈빛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진심이 절절하게 담긴 눈빛.

원래는 딸을 구해줬을 때 받아야 했던 눈빛이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참 길다 싶었다.

하지만 장인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관대한 내가 이해할밖에.

그리고 새벽 시간이나 이렇게 우수에 촉촉하게 젖어 들 때는 마음을 공략하기 쉬운 법.

눈치 백 단인 나의 감이 지금이 적기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청운아! 지금이다!’

아마도 딱 그런 상황인 것 같으니, 장인의 이야기에 재빨리 대답했다.

“이제 평생 저의 사람이니, 아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불면 날아갈까? 잡으면 꺼질까 두려운 불씨처럼 아주 그냥 평생 조심스럽게 아끼겠습니다. 장인어른.”

믿음과 신뢰를 팍팍 심어주는 단어로 골라 딸바보인 장인의 심금을 울리는 멘트를 연이어 던지는 방법.

‘자, 한 번에 2할쯤 갑시다. 장인.’

통 크게 한방을 부탁하며 장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장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허허 이 사람 참··· 내 그렇지 않아도 이번 동경으로의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자네와 청이의 합방을 허하려고···.”

‘뭣!? 무슨 방?’

자고로 뒤에 방이 붙은 단어는 남심을 자극하는 마성이 있는 단어. 피씨방, 모텔방, 후방, 유···.

나는 장인의 말에 그간 장인을 호르몬 불균형과 딸바보에 절어진 몹쓸 인간으로 치부했었는데, 알고 보니 지역구 마피아 보스라 그런지 장인도 사나이!

쓰레기 같은 나의 안목을 탓할밖에···

‘이리 화끈한 사내였다니!’

아마 1할이니 2할이니 하는 것은 장인의 조크였던 모양.

‘나 참, 이런 중년 개구쟁이 같은 귀여운 양반 같으니.’

장인의 말에 제갈가를 위한 나의 포부를 밝히며, 가슴을 두드렸다.

“장인어른 감사합니다! 제가 이 한 몸 불살라 제갈가의 부흥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장인께서는 서운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첫째는 부인을 닮은 딸을 낳고 싶군요. 정말 귀여울 것 같지 않습니까?”

내, 딸을 닮은 손녀라는 말에 이야기를 이어가려다 얼음같이 굳어지며 생각에 빠져든 장인.

생각에 빠져들게 뭐 있나?

제갈청 Jr. 은 장인을 과거로 소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손녀를 보며 딸을 키웠을 때의 기쁨을 되살릴 수 있으니, 딸바보에게 그보다 큰 기쁨은 없을 텐데.

장인이 생각에 빠진 틈에 오늘 밤을 위해 덕구와 조깅이라도 하고 와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러자 그때 생각에 잠겼던 장인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손녀라 조, 좋긴 하겠구만···. 크흠··· 그럼 자네 혹시? 목숨을 걸 자신이 있는가?”

아마 마지막 나의 결심을 확인해보려는 말인 듯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맹렬한 기세로 대답했다.

‘지금 목숨이 문제겠나?’

“어찌 사내가 아내를 아끼는데 목숨을 마다하겠습니까!”

내가 불타는 눈빛으로 장인을 바라보자 장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생각해 볼 게 무엇 있겠습니까?! 당장 오늘 밤에라도 맡겨만 주시지요!”

내 말에 장인이 다시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네. 한 번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예?!”

갑자기 뭐가 위험하고 뭐가 성공확률이 낮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눈을 크게 뜨고 장인을 바라보자, 장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청이가 수적의 머리를 꿰뚫었다고 들었네.”

“아, 레일건 아니, 탄지신통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찻잔과 가구들도 조금 부수었다고 하네.”

‘그런 일이 있었나?’

돌아오는 길에도 사소하게 몇 가지를 부수긴 했는데, 힘 조절이 조금 힘들긴 한 것 같긴 했지만, 설마?

설마가 아니길 바라며 멍한 얼굴로 장인을 바라보자 장인이 아내가 힘을 조절하지 못하는 연유에 관해 설명하기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야기하려면 긴데, 자네도 봐서 알겠지만 우선 청이의 절반은 중원 혈통이 아니네. 이야기 못할 쪽의 혈통인데···”

백인 같은 피부와 푸른 눈, 당연히 전생에 그녀는 일부에서 갓 양녀라 칭송하던 백인의 혈통.

그리고 중원 세계관에 그런 외모를 가진 곳은 단 한 곳.

머리카락까지 은발이면 완벽했지만 그건 장인을 닮았는지 흑발.

나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혹시, 북해빙궁(北海氷宮)의?”

내 물음에 장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갑자기 뛰쳐나가 사방을 살피더니 나에게 되물었다.

동시에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살기.

딱히 나를 향하지는 않았지만 밀려오는 살기에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자, 장인어른?”

“자네, 그걸 어디서 들은 것인가?! 설마 개방, 이 거지 같은 놈들이?”

“아니, 푸른 눈에 은발 북해빙궁이 국룰···”

원래 북해빙궁 하면 차가운 인상의 쿨데레 미녀를 떠올리는 것이 정상이니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이쪽은 뭔가 비밀로 다뤄지는 모양.

혹시라도 또 살기를 쏘이고 드러누울까 싶어 급하게 변명거리를 만들었다.

“제, 제가 소싯적에 그, 잡서를 살펴보다가 주워 본 것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책에 북해빙궁에는 푸른 눈의 사람이 있다기에 무척이나 궁금하던 처에 객잔에서 부인을 보고 그 눈빛에 푹 빠져버린지라··· 책 이름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 맞은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장인을 올려다보자 장인이 잠시 후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서(奇書)를 본 듯하군··· 청이와 연이 되려고 했던 것인가?”

‘휴우··· 어떻게든 넘어갔나?’

가슴을 쓸어내리자 장인이 다시금 문을 열고 밖을 살피더니, 외부의 하인들에게 한동안 이쪽으로 오지 말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청이는 북해빙궁의 핏줄이 맞네. 내 아내가 이십 년 전 빙궁의 후계였기 때문이네. 자네 혹시 이십 년 전 새외혈사(塞外血史)라는 것을 들어본 적 있는가?”

“새외혈사(塞外血史)라면?”

“이십 년 전 새외 무림인들이 중원에서 일으킨 혈겁을 말하네.”

대충 장인의 말을 들어보니, 중원에 놀러나온 새외무림의 후계자 몇몇이 마교의 소행으로 보이는 습격에 무참히 살해되었고, 그것이 중원의 구대문파의 소행이라는 오해가 빚어낸 참극이라는 것.

다만 빙궁의 후계는 지나가던 장인이 영화처럼 구해내 보호했고, 그 와중에 눈이 맞아 아이가 생겨 버렸다는··· 뭔가 로망 넘치는 말이었다.

뭔가 이 세계의 주인공 같은 스토리.

난 쩌리 요리사인데···

‘이것이 기만자인가?’

“그럼 장모님께서는?”

“청이를 낳고 빙궁으로 끌려갔네···”

장인은 당시에는 무공이 고강하지는 않았지만, 다 죽어가는 장모를 살리고, 추격해오는 마교를 제갈가의 패시브인 머리를 굴려 구해냈다고 했다.

하지만 마교는 처참히 찢기고 불탄 시체를 이용해 빙궁을 속이는 데 성공했고, 화가 난 빙궁이 중원으로 쳐들어와 중원 북부에서 혈겁을 벌였다는 것.

나중에 장모와 꽁냥거리던 장인이 혈겁의 소식을 듣고, 아이를 가진 장모를 데리고 빙궁에 소식을 알렸을 때는, 이미 북쪽의 수많은 문파가 피해를 본지라.

아직 그때의 상처가 있는 중원 북쪽의 문파들은 아내가 북해빙궁 후계의 혈통임을 안다면 참지 않을 것이니, 절대 어디에도 알리지 말라 신신당부했다.

“예, 그런데 그것은 그렇고, 그것이 어찌 첫날밤에 제가 위험한 것이 되는지?”

자꾸 사설이 긴 장인에게 눈치를 주며 되물었다.

급해 죽겠는데 사설이 너무도 길었던 것.

“내 이번 여행에서 시비들에게 청이의 상태를 확인하라 명했는데, 청이의 몸에 생긴 문제가 조금 심각해진 듯하네.”

“예?! 어, 어디가 말입니까?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아프다는 말에 점심 나가서 먹어버릴 것(정신 나가버릴 것) 같았다.

그러자 내 어깨를 두드리는 장인의 손길.

“그리 놀라지 말게 죽거나 그런 것은 아니네. 다만 내공에 문제가 있어서···.”

“무, 무슨?”

장인이 아내의 몸 상태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현재 아내의 몸에는 태어나자마자 북해빙궁에서 넣어준 기운과 땅콩 알레르기로 사망할뻔한 것을 살리기 위해 할아버지께서 넣어준 내공 두 가지가 공존하는 상태.

땅콩 알레르기가 심할 때는 아내의 몸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했던 두 기운이, 알레르기가 사라지자마자 남아도는 기운을 주체 못하는 상황이라고.

북해빙궁의 기운은 냉기를 포함한 강한 자연의 음기.

제갈가의 현원전단신공(玄元全檀神功)은 하늘의 근원이 되는 기운을 온전히 쌓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운.

완벽히 이질적이지도 그렇다고 섞이지도 않는 두 기운이, 몸 안에서 이상한 상태로 자리를 잡아, 막 주화입마에 걸리고 그런 건 아닌데, 감정의 변화에 쉽게 반응하며 흥분하거나 기쁘거나 분노하거나 할 때 가진 기운 이상의 힘을 뿜어내는 통에 힘 조절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그러니 초야(初夜)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자네가 다음 날 아침 해를 볼 수 있을지···.”

결국 당장 첫날밤을 치르는 것은 내 마음이지만, 짝짓기하고 나면 수컷을 잡아먹는 암 사마귀같이 그녀가 원치 않더라도, 첫날밤이 나의 즐거운 기억과 함께 행복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제갈청이 나를 앞니가 쏙 빠지게 키스해주고, 갈비뼈가 으스러지게 안아줄 수도 있다는 결론.

장인의 말로는 여행을 가기 전에는 그냥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자꾸만 심해지는 것 같고.

돌아오자마자 시비들에게 보고를 듣고 직접 확인해봤더니, 맞는 것 같다고···

‘이건 아니야!’

“그렇게 된 것이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미안하네···”

“예?!”

영혼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찌 치료할 바, 방법이 없겠습니까?!”

“물론 몇 가지 방법이 있네.”

‘휴우··· 역시 중년 개구쟁이. 그걸 먼저 말해야지!’

역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지, 몇 가지나 방법이 있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인을 다그쳤다.

“어서! 방법을 알려주십쇼!”

이거 나에게는 새외혈사 따위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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