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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황두생(鵝黃豆生) (74/344)

아황두생(鵝黃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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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내 객잔.

가련이의 안내에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수리도 싹 끝내고 내외부도 인테리어를 다시 했는지 말끔해진 모습.

아마 제갈가에서 신경을 좀 썼는지 객잔은 훨씬 고급스러운 모습이 되어있었다.

의자나 식탁도 꽤 마감이 좋은 녀석으로 바뀌어있었고, 문짝이나 창까지 전부 새것인 듯 보였다.

“점주 어르신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그래, 동생들은 잘 있느냐?”

“예! 살펴주신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련이는 아주 신이 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그리고 우리를 객잔 안으로 안내하면서 그간의 일을 정신없이 쏟아냈다.

“점주 어른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당가의 잔치에 다녀오신다고만 하셨기에, 식반행과 주행의 수장들께서 가게를 살펴주셨는데, 그런데 얼마 안 돼 당문에서 사람들이 나와 객잔을 접수 아니, 살펴주시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간에 객잔이 비어서 걱정이었는데, 아마 당가에서 제갈가의 사람들이 도착할 때까지 객잔을 돌봐 준 것 같았다.

‘크, 역시 당문. 든든하다.’

당꽌시의 사려 깊음에 감탄하며 가련이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또 제갈가에서 사람이 나오고···. 점주께서 제갈가의 아가씨와 혼례를 올렸다고 하시지 않겠어요?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식모(食母)가 오고······”

식모까지 이야기하고 잠시 멈칫한 가련이는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뭐 정말 저는 정신이 없었네요. 헤헤”

생각해보니 가련이 입장에서는 당황할 만도 한 것.

객잔 주인이 당가의 잔치에 간다더니, 갑자기 당가에서 와서 가게를 본인들이 관리해준다고 하다가, 제갈가에서 찾아와 객잔 주인이 제갈가에 장가를 들었으니, 이제부터 이곳은 제갈가가 관리한다고 전한다?

조폭형님들이 나와바리의 사업체 관리하다가 서로 합의 보고 사업체 주고받는 걸 보는 일개 직원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아마 내가 제갈가에 장가를 들었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대충 주인 쓱싹하고 사업체 꿀꺽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그 느낌이 어떠할지는 안 봐도 예상할 수 있고, 가련이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얼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많이 놀랐겠구나··· 그런데 나는 더 놀랐어, 결혼 당한 나보다 더 놀랄 사람이 어디 있겠니···’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뭐 나보다 더 놀랐겠나.

가련이의 말에 어색하게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간의 일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한 가련이는 그제야 내 옆에 있는 제갈청의 모습을 깨닫고는 나에게 물어왔다.

“어,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설마?”

“그래, 내, 부인이니라.”

“아, 안녕하십니까? 제갈 부인!”

“예, 반갑습니다. 제갈청이라고 해요.”

가련이는 놀란 얼굴로 이등병처럼 아내인 제갈청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아내도 가련이가 누구인지를 나에게 물어왔다.

아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가련이가 없었고 나 혼자 객잔을 운영하는 상태였기에 직원이 생겼다는 사실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노공, 이분은?”

“아, 내 객잔의 점소이, 그러니까 시종이요. 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노, 노공의 사람?”

“저, 점주님의 사람이라니.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로 간의 인사가 끝나고 객잔 한편에 자리를 잡자, 역시 위치 때문인지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하나도 없었는데. 갑자기 조금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려왔다.

“가련아! 손님이 왔으면 말을 해야지?! 정말 느려 터져서는. 밖에 마당은 다 쓸었느냐? 대체 가슴만 그리 커서는 너는 왜 하는 일도 그리 굼뜬 것이냐?!”

가련이를 사정없이 물어뜯는 목소리.

부엌에서 걸어 나온 여자는 삼십 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동네 아줌마 같은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가련이가 말했던 식모(食母)인 듯했다.

이 시대에는 다양한 하인들이 있고, 그런 하인 중 돈이 되는 일들 대부분은 여자들이 활동하고 있기에 아이가 태어날 때 딸이 태어나면 평민들은 아주 기뻐했다.

여자아이들이 여러 가지 일을 배워, 여러 종류의 하녀로 일하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수많은 종류의 하녀 중 단연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식모인 여자 요리사.

부엌일이라는 것이 보통 여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시대인지라 요리사도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것이 이 시대의 모습.

그런 이유로 제갈가에서 객잔 운영을 위해 데려온 요리사는 여자 요리사인 식모였던 듯했다.

가련이는 식모의 목소리에 시커멓게 죽은 얼굴이 되어 곧 달려가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식모님. 객···”

“또 무슨 변명을 하려고!? 밖은 다 쓸었느냐? 방은? 네, 동생들은 나와서 일이나 도울 것이지 또 어디로 간 것인지! 정말 전 점주는 이런 쓸모없는 아이들을 남겨주셔서는···”

수위를 높여가는 갈굼에 식모의 입에서 결국 나까지 언급되자 시비들이 흥분하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식모는 오빠 부대 앞에서 오빠를 비난하는 행위는 목숨을 건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감히 저녀ㄴ···”

팬클럽들이 흥분하면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 시비들을 말려야 했다.

“내, 이야기할 것이니 물러서거라.”

일단 흥분한 시비들을 무르게 한 후 식모를 자리로 불렀다.

“이보시오.”

내 부름에 가련이를 잡아먹을 것처럼 닦달하던 악귀나찰 같은 얼굴의 식모는, 미소를 띤 채 쪼르르 달려와 손을 비비며 우리에게 물었다.

“아이고, 제가 너무 기다리게 했지요. 식사가 아직이시면 저녁 식사를 내올까요?”

여자의 물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그건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고, 옆에서 보니 아이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것 같은데, 옆에서 보기가 좋지 않소이다.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좀···”

여자가 가련이를 너무 닦달한 것을 지적하자 곧 그녀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돌고래 초음파 아니, 이곳은 무림의 세계이니 음공을 쏘아대듯 소리쳤다.

“주인이 가게에서 시종을 혼내는 것을 탓하시다뇻! 더군다나 대체 여기가 어딘지 아시고! 듣고 놀라지 마세요! 여긴 무려 제갈가가 운영하는 객잔입니다! 아무리 손님이라 하더라도 제갈가의 체면이 있지! 사과 해주세욧!”

식모의 서슬 퍼런 목소리.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손님 아니요.”

“손님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욧!”

“주인이요.”

“아니, 그게 무슨 헛소···”

여자는 빽빽 소리를 지르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지 가련이를 바라봤고, 가련이가 빠르게 몸서리치듯 고개를 떨자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뭣?! 옛!? 엣?! 헷?!”

내 주인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 뭔가 이상한 말을 연속으로 뱉어내는 식모.

그리고 여자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대든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던지, 시비들이 빽하고 소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네 이년이 감히 이분이 뉘신 줄 알고! 이 객잔의 주인이시며 제갈가의 접각부이신 류청운님에게 그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요!”

“감히 하찮은 네년이 뉘 앞에서 체면을 운운한단 말이냐!”

아무리 식모가 기세등등해도 시비들은 무공을 익힌 무림인 미세하긴해도 살기를 뿜어내며 하는 호통은 일반인이 깝칠것이 아니었다.

시비들의 호통에 깜짝 놀라버린 식모.

그녀는 내가 누구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곧장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갈가에서 오신 어르신 이였군요. 모, 몰라뵈었습니다.”

태세 변환이 아주 변신 로봇 같은 여인.

분명히 총관에게 이야기할 때 가련이가 일하는데 구박당하지 않게 신경을 쓰라 했는데, 뭔가 전달이 전혀 되지 않았는지 눈칫밥을 먹고 있는 상태로 보이는 것이 확실한 상황.

가련이의 얼굴을 살펴보니 그늘이 진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닌 듯해 보였다.

식모에게 일단 왜 그러는지 연유를 물었다.

사람이 싫은데는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왜 그리 핍박하는 것이요.”

“아이가 일을 잘못하고 너무 굼떠···”

내가 가련이를 뽑고 같이 일은 한 것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두 동생을 위해 열심히 사는 소녀 가장인 가련이가 굼뜨다거나 일을 잘못한다는 말은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가련이 쪽을 바라보자 가련이는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되어있을 뿐이었다.

가련이에게도 일단 이야기를 들여봐야겠기에 연유를 물어보려 입을 여는데, 갑자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점주님?”

“점주님이시다! 점주님!”

비루먹어 비쩍 곪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살이 오른 모습이었는데, 내 얼굴을 기억하고 달려와 두 녀석이 인사를 했다.

“점주님! 이제 돌아오신 건가요?”

“점주님, 이제 돌아오신 것 맞죠? 그렇죠?”

식모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묻는 것이, 누이와 같이 눈칫밥을 꽤 얻어먹은 모양으로 보였다.

“그래, 녀석들 잘 있었느냐?”

“예, 점주님 이제 저희랑 같이 사시는 것이죠?”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아직 노비 생활을 좀 더 해야 한단다.’

해맑은 아이들의 물음에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이야기해주었다.

“내 아직은 일이 있어 완전히 돌아오지는 못했느니라, 잠시 들른 것이란다.”

내 말에 풀죽은 아이들은 다시 슬금슬금 식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안 되겠다 싶어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식모에게 일단 식사를 부탁했다.

식모를 이 자리에서 치우기 위해서.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들을 것이니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시오. 가련이와 아이들과도 함께 먹을 것이니 준비를 부탁하오.”

내 말에 식모는 어떻게 넘어가나 싶었던지 이마를 훔치며 쏜살같이 부엌으로 도망쳤다.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제가 금방 요리를 내오겠습니다.”

그렇게 식모가 사라지고 아이들에게 본격적으로 물었다.

“식모가 너희를 핍박하는 것이냐? 어찌 된 일이지 점주인 내게 이야기해보거라.”

그러나 아이들은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가련이의 눈치를 보는 모습.

아이들을 다독이며 다시 물었다.

“내 식모가 너희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하려무나.”

한참의 침묵이 이어지고, 혹시 몰라 시장에서 사 왔던 수당(獸糖)을 꺼내 내밀고 나서야 아이들의 입이 열렸다.

수당이란 송대 시장에서 흔하게 팔던 설탕을 녹여 만든 당과(糖菓)의 일종인데 짐승 모양의 틀에 넣어 굳힌 것으로 이 시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곰젤리 느낌의 간식.

개, 사슴, 호랑이, 학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사탕인 것.

이 시대에 수당을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초통령 당선은 확정된 것.

사슴과 호랑이 한 마리씩을 두 아이에게 선물하자 언제 입이 무거웠다는 듯 두 아이의 입이 자동으로 열리며 진실을 토해냈다.

“식모님이 누나를 너무 미워하세요.”

“맞아요. 누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하동의 사자 같은 분이라니까요!”

애들이 말하는 하동의 사자란, 소동파가 황주로 좌천되었을 때 사귀었다는 용구 거사란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 부인의 노발대발하는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의 모습을 시를 지어 디스를 했는데, 거기 나오는 여자를 말하는 것.

대충 시의 내용이 와이프가 빽 소리 지르니 꼼짝 못 하는 친구가 가련하다는 비꼼.

용구거사역가련(龍丘居士亦可憐) 담공설유야불면(談空說有夜不眠)

용구거사는 참으로 가련하다. 밤새 불법을 논하지만.

홀문하동사자후(忽聞河東獅子吼) 주장낙수심망연(拄杖落手心茫然)

하동의 사자 울음소리를 들으니 지팡이는 손에서 떨어트리고 넋을 잃는구나.

‘소동파 그 양반도 참···.’

소동파 그 양반이 대단한 분이긴 했다. 시대를 앞서간 분이랄까?

시가 무슨 랩도 아니고···

친구 와이프를 디스 하는데도 쓰였다니, 더군다나 그걸 애들까지 알고 있으니 성공한 디스랄까?

아무튼, 미워한다면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가련이를 미워한다고? 대체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누나가··· 츄르릅···”

아이들이 수당을 빨며 직장 내 괴롭힘의 원인을 이야기하려 할 때, 식모가 음식을 만들어 식탁 위로 내기 시작했다.

‘거참 타이밍···’

“아이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가련아 식사를 내는 것을 좀 도와주련?”

나긋나긋 다정한 목소리로 식모가 물어오니, 아이들 옆에 눈치를 보던 가련이가 냉큼 뛰어가 식모와 같이 식사를 내오기 시작했다.

식모가 준비한 식사는 아황두생(鵝黃豆生)과 만두, 녹두아(綠豆芽) 볶음.

이름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콩나물 무침과 숙주 볶음.

심지어 하얗게 무친 콩나물무침은 전생에 한국에서 먹던 맛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콩나물이 중국에서 음식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송대.

그러니 숙주나 콩나물을 따로 이름을 나누어 부르지 않고 두아 라고 하면 콩나물, 숙주를 모두 뜻하는데, 숙주를 별도 녹두아라고 부르기도 하니 원하는 대로 부르면 되는 것.

식사로 나온 콩나물과 숙주를 보니, 식모는 전통적인 요리를 배운 사람이 아니라 약간 트렌디한 음식을 내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음식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재료이고 채식의 붐이 일고 있는 송대이니 아마 이런 요리를 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작

콩나물무침을 맛을 보자 아삭한 식감이 느껴졌고, 무침과 함께 만두를 뜯어 먹자 가련이의 식구들이 다들 눈치만 보고 있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지 말고 다 같이 먹자꾸나.”

“하, 하지만···”

눈치를 보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권하자, 아이들이 곧 식사를 시작하고 쭈뼛거리는 가련에에게도 식사를 권했다.

“가련아 너도 어서 먹거라.”

“예, 점주님.”

그런데 가련이가 마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젓가락을 집어 들고, 숙주 볶음을 입에 넣고 몇 번 씹는가 싶더니, 갑자기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우웁··· 우우웁···”

“아니, 가련아 몸이 어디 안 좋은 것이냐? 왜 구역질을?”

당황해 가련이의 모습을 살피자, 갑자기 옆에서 시비와 아내의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엑?!”

“서, 설마?”

“노, 노공?!”

‘왜? 뭐? 뭔데?’

“어?!”

‘너희 뭔가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뭔가 상당히 억울함을 느끼게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쏘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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