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과 제자
.
누가 나에게 요리사의 자질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타고나는 재능이라고 말할 것이다.
요리에 관여하는 재능은 여러 가지인데, 정교한 손놀림, 온도를 감지하는 감각, 눈썰미, 기억력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재능을 꼽자면 당연히 맛을 느끼는 것.
화려한 칼솜씨도 불을 완벽히 다루는 웍질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재능이 필요하다지만, 정확히 말하면 기술의 영역.
이런 기술의 영역들은 기본적인 손재주만 있다면, 요리에 입문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술이 완숙에 경지에 접어들고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혀.
예민한 미각인 것이다.
요리학교에서 2년을 수료하면 졸업생과 고급과정을 배울 사람을 나누게 되는데 시험은 단 한 가지.
10개의 간장을 각기 다른 농도로 준비해두고 진한 순서대로 맞추는 것.
통과하는 사람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좋은 요리사가 되는 것은 노력만으로 가능하지만, 정말 뛰어난 요리사가 되는 것은 재능의 영역.
배운 요리의 맛과 간을, 기억과 연습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 기본 토대가 민감한 미각이기에 요리를 배우는 자가 민감한 혀를 가졌다는 것은 큰 축복인 것이다.
그러니 가련이가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생 후 지금까지 해온 요리는 단품.
요리사가 많을수록 낼 수 있는 요리들이 늘어나고 만한전석(滿漢全席) 같은 연회 요리를 내보려면 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력 있는 요리사들이 필요한데, 생각지도 않은 가련이가 재능 충?
참을 수가 없는 것.
내 제안에 놀라 두 눈을 부릅뜬 가련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나와 제갈청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아내인 제갈청이 내가 제자를 들인다는 사실이 흐뭇했던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후 가련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저, 저도 좋습니다.”
그리고는 식탁에서 일어나 아내인 제갈청이 있는 식탁으로 쭈뼛거리며 가더니 조심스레 아내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아마도 사모(師母)인 제갈청에게도 예를 다 하려는 듯한 모양새.
그 모습에 무사들과 아내, 시비 그리고 나까지 미소를 짓고 있는데 가련이가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고는 제갈청을 향해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가, 같은 지, 지아비를 섬기게 되었으니, 처, 첩실로서 보,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다들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싸늘하게 굳어 버리는 얼굴.
아내인 제갈청도 갑자기 튀어나온 가련이의 말에 당황해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에?”
“헤?”
시비들도 놀란 음성을 내뱉었다.
가련이도 자기 딴에는 용기를 내서 한 말인 것 같은데, 사람들의 반응과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버리자, 곁눈질로 사방을 살피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고.
나는 이마를 치며 가련이에게 다가갔다.
“가련아 그, 뭔가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 오해요?”
주변을 살피며 동공에 잔상이 남듯 떨리는 가련이의 시선.
다시금 가련이에게 질문했다.
“아까 내가 뭐라고 했지?”
“저, 저와 분명 일가(一家)를 이루고 싶으시다고···.”
가련이의 말에 아내와 시비들 그리고 무사들까지 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뒤지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자기들이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또 다른 오해가 생기기 전 나는 가련이의 기억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아까 내가 했던 말을 다시 이야기해주었다.
“아니, 나는 분명 일문(一門)이라고 한 것 같은데?”
“예, 그러니까 일문(一門)이니, 일가(一家). 문도 집에 붙어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같은 의미 아닌가요?”
“아···. 그, 그렇게 생각했구나?”
‘묘하게 맞는 말 같네?’
내 첫 제자는 요리 교육에 앞서 중원어 그러니까 국어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가련아··· 그게 말이지···”
내가 천천히 가련이에게 그녀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설명하려 할 때 아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노, 노공. 자, 잠깐만요. 제, 제가 데려가서 설명하겠습니다. 이, 이리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절대 안 됩니다!”
생각해보니 이리 사람 많은 곳에서 가련이가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평생 이불킥은 예정된 것이고, 충격에 목숨을 끊겠다고 할 수도 있는 것.
이 시대 여자들의 감수성으로는 끔찍한 결말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에게 부탁했다.
“내, 그, 그 생각 까지는 못했소. 부탁하오!”
“아, 알겠어요. 노공의 소중한 첫··· ‘크흠’이니 제가 잘 달래 보겠습니다.”
제갈청은 맡겨만 달라는 비장한 얼굴로 곧바로 시비 둘과 가련이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숙소로 향하는 쪽문 너머에서 잠시 후 비명이 들려왔다.
“네에!? 처, 첩실이 아니고 제, 제자라고요?”
“그, 그렇습니다. 지, 진정하세요. 오,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무림인이나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면 일문이라는 이야기는 익숙하지···”
“끕···. 끄아아아아앙!”
“지, 진정하세요. 괘, 괜찮아요. 추,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저, 저도 그랬는 걸···”
“아, 아가씨 잡으세요! 접각부님의 첫 제자가 우, 우물로 뜁니다!”
“주, 죽고 싶습니다! 죽게 해주세요! 엉엉···”
숙소 쪽 마당에서는 한밤중 비명 속에 술래잡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들 피곤해서 자러 가고 싶은 얼굴이었는데, 마당에서 벌어지는 헤프닝에 감히 숙소 쪽으로 발길을 내딛지 못하는 상황.
아직도 가련이의 울음소리와 아내와 시비들이 가련이를 달래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
“그, 그래 동생들을 생각하셔야죠. 조금 부끄러운 일로 어찌 목숨을···.”
“조, 조금이요?! 끄흐으으읍!”
“마, 말을 조심하세요!”
“죄, 죄송합니다. 아가씨.”
가련이의 동생들이 쭈뼛거리며 누나 걱정에 마당으로 향하려 했지만, 식모가 둘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행동을 보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한 모습.
아마 자존심이 강한 것인 모양이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울음과 식당 안의 정적 속에 아이들은 얌전하게 만든 식모가 나를 향해 물어왔다.
“접각부님 그런데 가련이의 구역질은 어찌 된 것이죠? 제자로 들이신다는 것을 보면 어디가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아이에게 탐이 나실만한 무엇인가가 있는 것입니까?”
그녀의 물음에 서로 간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가련이의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지금은 여름의 초입, 아열대 기후인 사천은 이 시기 낮의 온도가 상당히 높다.
전생 한국의 한여름 기온에 가까운 정도.
더군다나 사천은 분지라서 주변보다 기온이 조금 더 높으니 식자재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숙주는 냉장고와 냉방 시설이 잘 되어있는 전생에도 한여름 식당이나 반찬 가게에서 잘 내지 않던 요리.
왜냐하면 그만큼 잘 상하기 쉬운 재료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무쳐서 맛있게 먹었는데, 점심때만 되어도 상하기 쉬운 것이 숙주.
물론 무사가 사 온 숙주는 상한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슈레딩거의 숙주 상태랄까?
싱싱하면서 상한 상태?
살짝 무르기 시작할까 말까 상할까 말까 하는 상태.
이 상태에서 요리해서 바로 먹으면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하지만, 요리하고 반나절만 두어도 금방 문제가 생길만한 그런 상태였는데, 그런 미묘한 상태를 가련이는 상해서 구역질이 난다고 느끼는 것.
혀가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전생에서 본 다큐멘터리에서 채소가 써서 전혀 못 먹는다는 일부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각을 테스트한 적이 있었는데, 확인해보니 정말 그들은 그렇게 느낄 정도로 혀가 예민했던 것.
어떤 재능이든 두 가지 면이 존재한다.
범죄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재능을 승화시키면 뛰어난 형사가 될 수도 있지만 전락하면 반대로 뛰어난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련이 본인은 좀 힘들겠지만, 자기의 재능을 승화 시켜서 훌륭한 요리사가 되느냐 아니면 이것 때문에 전락해 편식쟁이가 되느냐의 갈림길에서 나를 만났으니 가련이의 미래는 어찌 될지 아주 궁금했다.
“······그러니 혀가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해서 그런 것이오.”
“그, 그렇다면 요리를 배우는데 아주 뛰어난 자질이 아닙니까?”
역시 식모도 요리에 진심인지 혀가 민감하다는 말에 바로 요리를 가르치는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저,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너무 자존심이 상해 아이를 너무 구박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날이 조금 더 더워졌으면, 저녁때만 되어도 녹두아가 상해 가련이의 말이 이해되었을 텐데, 가련이가 말을 실수한 것도 있으니, 서로 간에 앙금은 남지 않았으면 좋겠소.”
“이를 말씀입니까. 접각부님의 사람을 함부로 대한 저를 관대히 용서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그렇게 어느 정도 사건이 정리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호위무사들은 식탁 여기저기 엎드려 졸기 시작했다.
또 아이들도 식탁에서 곯아떨어진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언제 가련이가 진정이 되나 하품하며 기다리고 있자 시비 하나가 달려와 나를 불렀다.
“접각부님 어서 오세요!”
“어떻게 잘 진정이 되었느냐?”
“예, 자진은 어떻게든 막아냈습니다.”
“그, 그래. 아, 알겠다. 그런데 나는 왜?”
“가보시면 압니다.”
시비를 쫓아 아내와 내가 묵기로 했던 객실로 들어서자 가련이가 의자에 고개를 반쯤 꺾고 시커멓게 죽어버린 눈빛으로 망연히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이 엄청난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눈도 붕어처럼 부은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객실 안으로 들어선 것을 확인하자, 다시금 눈에서 눈물방울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훌쩍···.”
아내가 어찌 달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찌어찌 진정된 상황.
그래도 다시 눈물을 흘리기에 어쩔 줄 몰라 하자 아내가 침상에 앉아있다가 나에게 옆에 앉을 것을 권해왔다.
“노공 이쪽으로 앉으세요. 노공의 첫 번째 제자가 구배(九拜)의 예를 올린다고 합니다.”
‘구배지례(九拜之禮)라?’
분위기가 좀 그랬는데 아무튼 제자를 받았으면 구배의 예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
주춤주춤 아내의 옆에 자리를 잡자 아내가 가련이를 향해 말했다.
“가련아? 스승님께 구배의 예를 올려야지?”
가련이는 좀비 같은 몸짓으로 몸을 움직이더니, 휘적휘적 걸어 우리 앞으로 와서는 큰절을 올렸다.
구배지례(九拜之禮)라고 해서 아홉 번 절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구배지례라는 것이 주관(周官)이라는 주나라 시대 예절에 관한 책이 경전에 포함되면서 주례(周禮)가 되었고, 그 안에 포함되어 있던 아홉 가지 절하는 방법을 뜻하는 단어인 것.
계수(稽首),돈수(顿首),공수(空首),진공(振动),길배(吉拜),흉배(凶拜),기배(奇拜),포배(褒拜),숙배(肅拜)등의 아홉 가지 절하는 방법 중 스승에게 예를 올리는 절은 계수(稽首).
머리를 땅에까지 붙이는 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련이의 이마가 천천히 땅에 닿고 아내가 공손한 예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가련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또 울고 있는 모양.
그렇게 눈물 속에 내 첫 제자가 탄생했다.
평생 이불킥의 헤프닝과 함께.
***
혹시 모를 우발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가련이는 한동안 시비들과 자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물론 우물에도 무사들이 배치되었다.
덕분에 바로 당가로 출발하려 했던 계획을 수정해서 가련이가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잠시 객잔에 머물기로 결정.
차후 계획은 일단 제자가 되었으니 가련이는 우리와 동행하기로 했고, 아내의 배려로 그녀의 두 동생은 제갈가에서 책임지고, 무공이면 무공 학문이면 학문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주기로 했다.
물론 식모에게도 오향장육의 레시피를 가르쳐주고 식반행의 수장인 천 대백에게 일 도울 사람을 부탁해 주기로 했다.
물론 바둑이는 제외.
그렇게 어느 정도 객잔에서의 일들이 정리된 삼 일째 밤.
깨끗하게 씻고 이미 잠든 아내의 옆에 조용히 기어들어 가 잠을 청하려 했는데, 갑자기 아내인 제갈청이 눈을 번쩍 뜨며 나에게 물어왔다.
“노공, 제게 숨기는 게 있지 않으십니까?”
“으, 응? 수, 숨기는 것 말이오?”
“예···”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숨기는 게 없는데? 뭔가 이상한 상황.
뭔가 또 다른 오해가 생겼나 싶어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설마 내가 부인께 무엇을 숨기겠소. 절대 그런 것은 없소이다.”
그러자 아내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불속에서 아내의 손자국이 찍혀있는 사람 팔뚝만 한 몽둥이를 꺼내 나에게 내밀며 물었다.
“이래도 없단 말입니까?!”
‘무, 무슨 의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