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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짝 (78/344)

등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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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사람 팔뚝만 한 몽둥이를 꺼내며 다그치는 아내.

산 넘어 산이라고 누가 또 무슨 오해를 만들었을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누군가와 썸을 탄것도 아니고 오해를 만들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한 상황.

“수, 숨기는 것 없소이다! 부인! 지, 진정하시오! 그, 그걸로 때리면 사람이 죽소이다!”

‘가련이와의 오해도 풀었는데 또 누구란 말인가?’

무림인은 모르겠지만, 한 대 맞으면 뚝배기가 그대로 터져 나가버릴 것 같은 몽둥이를 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아내를 진정시키자, 아내가 깜짝 놀라 침상 위로 몽둥이를 떨어트리며 대답했다.

“예?! 때, 때리다뇨. 그, 그것이 아니라. 이걸 물어보려 한 것인데···”

아내의 물음에 눈을 깜빡거리며 아내가 다시 주워 든 몽둥이를 확인하자, 그것은 몽둥이가 아니라 문틀.

며칠 전 가련이가 임신했다고 착각했을 때 아내가 손자국을 남긴, 객잔의 식당에서 객실 쪽으로 향하는 쪽문의 문틀이었다.

“어째서 그걸?”

모양을 보니 잘라 온 것 같지는 않고 잡아 뜯어온 모습.

아마 모종의 이유로 문틀을 확인하고 자기의 몸 상태를 어렴풋이 짐작한 듯한 모양이었다.

“노공, 저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씀해주세요. 저번에 허리를 다치신 것도 저 때문에 그런 것이 맞지요?”

아내의 물음으로 봐서는 영구초야봉인신공을 펼쳤던 날을 묻는 것 같은데, 제갈가 아니랄까 이미 심증은 거의 확보한 상태인듯한 물음이었고, 나의 최종 진술만을 확인하려는 모양.

나는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절대 아니오. 그 덕구 그 새끼가 발정 아니, 덕구가 다리에 매달려 힘을 쓰니 내 허리가 놀란 것이라 하지 않았소이까. 내가 부인에게 무슨 거짓말을 한다고···”

“거, 거짓말! 그럼 보여주세요.”

“뭘 말이요?”

“허리! 다치신 부분요!”

솔직히 의원의 말로는 내 등에는 아내가 그때 세게 움켜쥐는 바람에 시퍼런 손자국 모양의 핏멍이 들었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을 확률이 높으니 그건 절대 보여줄 수 없었다.

치료할 때도 시비들에게조차 말이 나올까 싶어 등 뒤는 보여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직접 등 뒤를 보여달라 요구해 올 줄이야.

“무, 무슨 소리요. 어, 어딜 보겠다는 말이요.”

“드, 등짝 말입니다!”

“어허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예의와···”

-탁 탁

-털썩

아내가 손을 뻗어 목과 허리 부분을 꾹꾹 누르자 나는 그대로 통나무처럼 침상으로 엎어졌다.

아마 혈도라도 짚은 모양.

‘무림 정말 지랄 같은 곳이구나! 아녀자의 손길 두 번에 위엄 빠지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낮져밤이 인데, 그것조차 불가능하니 초라한 모양새.

“부, 부인 이, 이게 무, 무슨 짓이요.”

“드, 등짝을 잠시 보는 것뿐입니다.”

자꾸만 등짝을 보자는 아내.

뭔가 아주 안 좋은 전생의 드립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내인 제갈청이 거칠게 내 옷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부, 부인 너무 거, 거칩니다.”

“자, 잠시만 참으세요! 그, 금방 끝납니다.”

그렇게 내 옷을 걷어 올린 아내는 결국 자기 두 손자국을 발견했는지, 자기 손을 조심스레 내 등의 한 부분, 아마도 남아있는 멍 자국에 대보는 듯하더니.

침상 위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흑···. 흑흑 어, 어째서 말씀해주시지 않은 겁니까?”

본인이 나를 상처입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마음이 아픈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내.

“지, 진정하고 몸을 좀 움직일 수 있게 해주겠소?”

조심스럽게 묻자 다시 목과 허리를 짚는 느낌이 들더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눈물을 터트리는 아내를 조심스레 달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정하시오. 부인 나는 괜찮소.”

“열흘이 넘게 누워 계셨는데 어찌 괜찮다고 하십니까?!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내가 무공을 익히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다 내 탓이오.”

아내를 달래기 위해 내가 자책하는 듯 말하자, 아내가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사건의 전말을 물어왔다.

“제, 몸이 어찌 된 것인지 정확히 알려주세요.”

“아니, 나는 그 무공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무공 때문이란 말씀이군요?”

“아니, 그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장인어른께 묻는 것이···”

“아버지께 다 들으신 모양이군요? 어서 알려주세요.”

제갈가 아니랄까 셜록 홈스도 아니고 말을 꺼내기가 무서웠다.

뭔가 말을 꺼내면 다 들통 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인데, 최후의 수단인 묵비권을 행사했지만, 다음 이어지는 아내의 말과 행동에 바로 진실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제 몸값을 치르겠다고 하신 것도, 설마 이것 때문에 거짓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아, 아니오. 저, 절대 아니오! 사나이 류청운이 아내 몸값도 치르지 못···”

“거짓이 아니라면 저는 상관없으니, 오늘 당장 안아주세요!”

당장 안아달라며 옷고름을 풀어내려는 행동을 취하는 아내.

아직 갱년기 부부도 아닌데, 목욕을 끝낸 아내가 옷고름을 말아쥐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좀 더 오래 살고 싶었다.

바로 진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말이오······ 그리된 것이라고 하오.”

“그, 그런···”

장모님 이야기는 쏙 빼고 나머지 사실은 아주 숨김없이 이야기해야 했다.

장모님 관련은 장인께서도 절대 만나러 가는 그 순간까지 아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으니, 절대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알려졌다가는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내 이야기가 끝나자 아내의 얼굴은 실망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거대한 실망에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얼굴.

아내의 표정을 보니 잘못하면 가련이랑 둘이 나란히 우물을 찾을지도 모르는 모습이 되어있었기에 아내를 달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냥 우리 이렇게 생각합시다. 감풍(感風)에 걸린 것이라고. 지금 의조부님을 찾아뵈러 가는 것도 무슨 방법이 있는지를 찾으러 가는 것이니, 금방 방법을 찾지 않겠소? 의조부님은 그 대단한 독왕이 아니시오.”

원래 아내에게는 당가로 출발할 때 살짝 거짓말을 했던 상태.

내가 한 거짓말은 원래 송대의 결혼 문화에서는 여자가 시집을 오고 시간이 조금 흐르면 자기 친정에 남편과 인사를 드리러 가는 과정이 있는데, 내가 데릴사위이니 친가를 자처하는 당가에 인사를 가자고 말한 것.

아내는 당영영을 만난다는 사실과 내 친가나 마찬가지인 당가에 인사를 하러 간다는 말에 의심 없이 따라나섰는데, 그것이 자신의 상태를 살피러 간다는 것이었다는 말에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저, 저를 위해서였다니··· 그리고 가, 감풍이라니···”

그리고 내 감풍이라는 말에도 기뻐했다.

감풍이라는 것은 이 시대에 감기를 지칭하는 말인데, 아내를 달래기 위해서 감기처럼 잠시 왔다 가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야기했더니 역시나 알아들은 모양.

‘어떻게든 오늘 밤은 넘겼나?’

하루라도 빨리 어떻게든 치료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떻게 무슨 병인지 알겠소?”

늦은 밤 영문도 모르고 당문에 붙잡혀온 의원은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당문의 금지옥엽의 진맥을 해야 했다.

그리고 당문 아가씨의 맥을 짚어보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맥을 잡아봐도 딱히 어떤 병이 있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당문의 아가씨가 무림인인지라 맥까지 강하게 뛰니 대체 증세가 무엇인지를 살필 수가 없었던 것.

거기에 옆에서 독왕이 안광을 빛내며 노려보니 더욱 증상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와 이것이 아가씨의 맥인지 자기의 떨림인지도 구분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는 법.

의원을 눈을 한번 질끈 감고 독왕을 향해 자신이 알아낸 것을 이야기해야 했다.

아니, 모르는 증세라는 것을 실토해야 했다.

“그것이··· 몸이 쇠약해지기는 한 것 같으신데, 딱히 어떤 병이라고는···”

“뭐라! 아이가 아프지 않은데, 어찌 정신도 차리지 못한단 말이오!”

“이, 일단 몸을 보하고 허한 기를 보충해줄 탕약을 지어 올리겠지만, 정확한 원인은 저로서는···”

무섭게 다그치는 독왕의 물음.

그 물음에 증상이 더 나빠지지 않게 탕약이라도 올릴까 되물었지만, 되돌아온 것은 독왕의 벼락같은 외침이었다.

“다른 의원을 불러오거라!”

“아버지, 지금 그 의원이 여덟 번째 의원입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의원은 모두 다녀갔습니다. 이제 의원을 찾으려면 성도까지 사람을 보내야 할 듯합니다.”

당영영이 혼절한 후 경공이 날랜 당문의 무사들이 이미 근처에 있는 의원을 모두 잡아들인 상태.

가까운 큰 도시인 면양(綿陽)에 있는 뛰어난 의원들까지 모두 데리고 왔던 터라 이제 멀리 떨어진 성도(成都)로 직접 사람을 보내야 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서 성도로 사람을 보내거라!”

독왕이 참지 못하고 거듭 소리치자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당영영의 이마를 닦아주고 있던 당화은이 말했다.

“아버지 그러지 마시고 청운이를 불러 보시지요?”

당화은의 말에 독왕이 그제야 류청운을 떠올렸다.

당황해 생각하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니 류청운은 당가의 가주를 살리기도 했고 괴질에 시달리던 제갈청의 병도 치료했다는 재주를 가진 녀석.

청운이라면 믿을 만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동경에 갔다 들었는데 벌써 융중산(隆中山)에 되돌아왔겠느냐? 그리고 아무래도 거리가 있으니, 청운이가 서두른다 해도 시간이 걸릴 텐데? 그간 아이의 용태가 어찌 될지 알고···”

의남매 결의식에 대한 것을 상의하려 이미 사람을 한번 보냈었는데, 동경에 제갈각에게 인사를 하러 가 류청운을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 전해 들은 터라 독왕이 조심스레 되물은 것.

그 말에 당화은이 자신의 의견을 독왕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제가 영영이를 살펴보았을 때도 그리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진맥해본 의원들 모두 쇠약해지긴 했지만 맥은 강하게 뛴다 했으니, 탕약을 먹이며 청운이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보시지요.”

“크흠! 대체 이게 무슨 일인 것이야!”

팔짱을 낀 독왕이 방안을 서성거리자 당화은이 거듭 독왕에게 되물었다.

“아니면 약왕님께 보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독왕과 약왕의 사이를 잘 알고 있는 당화은이 묻자 독왕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놈은 운남의 밀림에 들어가 있을 텐데, 그놈을 찾는 것은 청운이를 데려오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내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았으니 그전에는 찾기 힘들 것이야···”

독왕이 이야기한 내기란 독왕과 약왕의 오래된 내기를 말하는 것.

5년에 한 번씩 만나 독왕이 결코 해독할 수 없는 독을 선보이면, 약왕이 그것을 해독해 보이는 내기.

아직 만남까지 한해나 남았느니, 그전에는 운남의 밀림 어디에 처박혀있는지 찾을 수 없을 것이 뻔했기에 독왕은 머릿속에서 약왕에 관한 생각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그리고 당화은이 처음 이야기했던 류청운을 부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냥 청운이를 부르자꾸나.”

“아마도 지금쯤은 동경에서 되돌아왔을 것이고 청운이는 경공을 배우지 못했으니, 경공이 날랜 자들과 유교자(有轎子)를 같이 보내시죠. 아마 청운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 동생이 이리 아프다면 한걸음에 달려올 것입니다.”

경공의 고수들이 매고 달리는 가마를 보내자는 말에 독왕이 좋은 생각이라며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좋은 생각이구나 어서, 유교자와 발 빠른 무사를 보내거라!”

야밤의 달빛 속에서 당문의 무사들이 유교자를 매고 뛰어나와 날랜 경공을 펼치며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첫 목적지는 호북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 있는 심우현 이었다.

***

냉채 요리인 오향장육은 첫날부터 생각보다 호평이었다.

식모에게 오향장육을 가르쳐 주고, 다음날부터 제대로 만들어 식힌 오향장육을 객잔의 메뉴로 추가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천에서 매운맛을 선호하는 이유는 한여름에 더위에 입맛이 금방 떨어지니 입맛을 돋우기 위함인데, 식초가 들어서 상큼한 맛을 내는 소스와 먹는 차가운 고기 요리이니 입맛도 돌고 더운 음식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지 않아도 되니 얼마 되지 않는 손님이었지만 손님들이 아주 만족했던 것.

“접각부님, 손님들이 아주 만족해하셨습니다!”

식모가 밖에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들어와서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여름 장사는 그럼 이 요리로 하는 것이 좋겠소. 내 날이 추워질 때 만들 요리도 하나 알려주고 갈 테니 날이 추워지면 그것을 해보시오.”

추위가 찾아오면 따듯한 국물 요리를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어떤 국물 요리를 추가할까 생각하는데, 밖에서 뭔가를 쿵 하고 내려두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안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일손을 도울 사람이 구해지지 않은 상태인지라, 식모가 손님들이 들어서는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달려 나갔는데, 잠시 후 기쁜 얼굴로 부엌으로 달려들어왔다.

“당문에서 온 손님이 여덟 분이나 계십니다!”

“당문에서 말이오?”

“예, 밖에 유교자를 매고 오셨는데 식사만 하고 바로 떠나신다고 하네요.”

오랜만에 단체 손님에 신이 난 식모에게 부엌을 부탁하고, 혹시 아는 사람이 있나 싶어 밖으로 나섰더니.

부엌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당문의 무사들이 소리쳤다.

“류, 류청운님!”

“공자님!”

“이, 이리 천운이! 이곳에서 공자님을 뵐 줄이야!”

무척이나 반가운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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