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기관차
.
돌아가신 조상님이라도 뵌 듯 나를 반기는 무사들의 목소리.
뭐 가주를 구했으니까 당문을 살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이 정도 격한 반김은 당연했다.
‘역시 의부의 나와바리에 오니 대우부터가 다르구나.’
미소를 지으며 무사들에게 물었다.
“아, 다들 잘 계셨소? 어디를 급하게 가시는 모양인데···”
그런 나의 물음에 무사들이 내 주변으로 미친 듯이 달려들어 소리치기 시작했다.
“공자님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가씨가!”
“류청운님 어서 저희와 가시지요!”
“아니, 말을 한 명씩···”
“조용!”
여덟 명의 무사들이 몰려들어 다 같이 떠들어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무사가 나서 정중하게 포권을 올리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류청운님. 독혈대(毒血隊)대주 범진이라 합니다.”
붉은 무복을 입은 당문의 무당개구리.
그 개구리들의 수장이라는 뜻.
독혈대라는 무시무시한 무리의 수장이라고는 할 수 없는 무척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자 무사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내가 각 문파의 무사들이나 제자들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각 문파에는 선호하는 얼굴이 있는 모양이었다.
화산의 오타쿠들은 뭔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모습을 선호하는 듯했고, 제갈가는 뭔가 똘똘해 보이는 놈들.
그리고, 당문은 마치 동네 청년 같은 순박한 얼굴을 선호하는 것 같았는데, 역시나 당문 최고의 무력 조직이라는 독혈대 수장의 얼굴도 무척이나 순박한 얼굴이었다.
아마도 저런 평범한 얼굴조차 부지불식간에 독을 뿌리고 암기를 날리는 데 사용하기 위함인 것 같으니, 적일 때 야비하고 우리 편일 때 든든한 당문의 최고 히트 맨 다운 모습.
외견은 평범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것은 독을 사용하는 대량 살인마.
테러에 최적화된 모습이랄까?
“오, 안녕하십니까? 범진 대주.”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일단 반가운 척을 하자 대주가 무사들이 왜 이리 호들갑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지금 류청운님을 만나 뵈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저를요? 아! 혹시 식 아니, 의남매 결의식이?”
아마 의남매 결의식에 대한 것을 상의하거나 준비가 끝난 것을 알리려 한 모양인 것 같아 되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조금 당황스러운 답변이었다.
“아니요. 지금 당영영 아가씨께서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영영이 아니, 당매매가 말입니까?”
‘아니, 얼마 전까지 멀쩡하던 애가 무슨 사경을 헤매? 설마 영영이 이눔시끼?’
“설마! 하돈(河豚)을 잘못 조리해 먹은 것입니까?”
가르쳐줄 때 때 내가 분명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고 일렀거늘!
식탐이 많은 아이라 혼자 몰래 조리해 먹다 실수라도 했나 싶어 물었는데, 생각해보니 독왕도 계시는데 그걸로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것 같기도?
말을 꺼내고 조심스레 대주의 답변을 기다리자 대주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의원들도 많이 다녀가는데, 하나같이 쇠약해지시기만 했다고 하시고, 원인을 모른다고만 하십니다. 괴질이라 의심이 되는 상황입니다.”
전생으로 치면 일단 명확히 판단 내리기 힘들면 증후군이라는 단어 박는 느낌이랄까?
이 시대 의원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 의원들 말은 신뢰하기가 좀 힘들었다.
‘암튼 무식한 새끼들 모르면 다 괴질이래.’
“아니, 괴질이라니···.”
하지만 난처한 상황이었다.
나를 찾아왔다는 것으로 봐서는 내가 가서 당영영을 살펴봤으면 하는 것이 분명한 느낌.
아내의 알레르기 질환을 호전시키고, 당문 가주의 목숨을 구하는 것을 도운 영향으로 뭔가 오해가 깊어진 상황.
사람들은 내가 삼국지가 펼쳐진 시대의 신의인 화타 정도가 빙의했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화타 아니고 요리사인데···
이래서 군대든 어디든 앞에 나서서 나대는 게 아니라던데···.
그렇다고 쭈뼛거리거나 뺄 수도 없었다.
일단 영영이는 내 동생.
유교 탈레반이 통제하는 사회에서 동생이 아프다는데 조금 걸쩍지근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사회매장.
일단 당영영의 증세를 물었다.
괴질이라고 하지만 뭐 큰일이 아니라, 별일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뭐, 환병을 너무 먹어 변비라든지···
그 나이 아가씨들이 많이 겪는 질환이기도 하니···
“그래, 쓰러진 후에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소?”
“벌써 닷새 가까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무엇이오!? 아니, 의원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이기에 애가 닷새나 못 깨어나는데도!”
‘돌팔이 같은 새끼들 정말!’
초 긴급 사태.
닷새나 쓰러져 누워있었다니 이거 정말 긴급 사태였다.
당영영이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내 꽌시 양대 산맥을 지탱하고 있는 한 축이 사라져 버리는 상황.
아니, 영영이가 없더라도 당문의 가주를 구한 공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가주는 나보다 먼저 떠날 사람. 장기적인 안목으로 봐서는 당영영이 필수인데 이거 정말 곤란한 상황이었다.
당문과 나를 연결해주는 고리인 영영이가 없어져 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영영이 이 배은망덕한 녀석! 아버지를 구해주었으니 평생 은혜를 갚고 싶다고 해놓고서는, 이제 좀 도움을 받아보려 찾아가려니까 아프다니!’
정말 얄밉고도 얄미운 녀석이었다.
이건 마치 부도수표 남발하고 상환기간이 다가오자 천국으로 도주하려는 모양새였다.
빚쟁이는 잡아야 하는 것.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일단 가봅시다! 가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때 식당 쪽의 소란을 눈치챘는지 안쪽에서 아내와 시비들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
“노공? 무슨 일이신지··· 어? 당문의 무사들이 아니십니까?”
“제갈청님 안녕하십니까?”
“범 대주께서 여기 어떤 일로?”
아내는 범대주를 이미 알고있는 모습이었는데, 당문의 대주가 다시 당영영이 아프다는 소식을 아내에게 들려주자 아내가 놀라 소리쳤다.
“당 언니가 말씀입니까?! 이 무슨!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는데! 노공 어서 같이 가보시지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이동을 서두르기로 했다.
가련이의 마음도 추스르고 식모에게 새 음식도 몇 가지 알려주려 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일단 제갈가에서 우리를 따라온 무사들과 두 시비 중 하나는 가련이를 데리고 우리를 뒤따르기로 했고, 그중 제갈가에서 온 무사 둘은 가련이의 동생들을 데리고 제갈가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와 아내인 제갈청과 시비 하나는 당문의 무사들과 함께 그들이 식사를 끝내면 곧바로 당문으로 출발하기로 결정이 났다.
“처, 천천히들 드시오. 그러다 체하겠소.”
마음이 급한지 오향장육을 손으로 움켜쥐고 뜯어먹는 당문의 무사들.
거친 남자들의 식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유교자를 출발시켰다.
“어서 출발합시다!”
무사들의 식사가 끝나고 유교자에 몸을 싣자 당문 행 급행열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예전에 제갈가에서 당문으로 유교자를 타고 왔던, 그 도력 높으신 도인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일단 당문에서 끌고 온 유교자는 뚜껑이 없었다.
오픈카라는 말.
안면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
안전벨트 따위는 없는 거친 남자들만 타는 오프로드.
“어얼마아나아 나아암았 소오이이까아”
경공으로 쏘아지는 유교자의 속도에 바람이 따귀를 치듯 안면으로 쏟아지고, 관도를 따라 내가 당문까지 얼마나 남은 것이냐 묻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 한밤중 유교자 위에서 졸다 떨어질 뻔하기를 몇 번, 결국 옷을 찢어 임시 안전벨트를 잡아매고 길을 재촉했지만, 내공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쉴 수밖에 없었는데,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지친 무사들이 자리를 잡고 운기조식을 하는데, 아직 팔팔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마음이 급해 안 되겠습니다. 제가 먼저 달려가 보겠습니다.”
“부인, 좀 위험하지 않겠소? 마음이 급해도 천천히 가는 것이.”
“저도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노공께서는 무사들과 시비가 내력을 회복하면 같이 오시지요.”
한밤중. 당문이 있는 방향으로 폭주 기관차가 쏘아졌다.
-콰과과과곽
그 모습에 독혈대의 대주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가씨께서 시, 신공을 익히신 듯하군요?! 추, 축하드립니다.”
‘그 신공이 남편 잡는 신공이요! 내 문드러지는 속을 누가 알꼬···’
***
“벌써 칠 일이 넘었단 말이다. 아이가 대체 왜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야?!”
“진맥한 의원마다 몸이 아픈 것은 아니라 했으니, 약을 먹이면서 기다려 보시지요. 아버지.”
“애가 저리 말라 가는데!”
당영영은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꼭 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벌써 이틀째.
하지만 깨어난 것을 알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며칠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류청운 생각에 빠져있다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뭔가 큰일이 벌어진 상태.
눈을 뜨고 아무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왜 쓰러졌냐고 묻는다면 난처했다.
의남매인 제갈청의 노공이 된 류청운 때문에 심마(心魔)에 들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꼬르륵··· 쪼르륵··· 꼬르르륵···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어, 어쩌지···’
한참 자신의 주위에서 서성거리던 할아버지가 사라지고 자신의 상태를 돌보던 시비들도 식사를 위해 사라진 그 잠깐의 시간.
기회가 찾아왔다.
누워서 입안으로 흘려주는 쓰디쓴 약물만 삼키는 데 한계가 찾아왔던 당영영은 재빨리 침상에 누워 며칠 굶은 영향으로 떨리는 손으로 침상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인가? 어디지? 설마 쓰러졌을 때 시비들이 치웠나?’
그렇게 며칠 굶은 영향으로 떨리는 손으로 침상 속을 뒤적거려 꺼내 든 것은 환병.
류청운이 헤어질 때 챙겨준 것인데, 챙겨줄 때는 서운했는지만 이게 이리 쓰일 줄이야.
‘차, 찾았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지금, 이 순간은 환병이 류청운보다 반가웠다.
당영영은 떨리는 손으로 환병 조각을 잘라 입안으로 가져갔다.
평소에도 고소하고 맛있는 환병이었지만, 며칠 굶고 쓰디쓴 약만을 삼키던 중에 입안으로 들어온 환병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온종일 약만 받아먹은 쓰디쓴 입에 고소하고 달콤한 환병 조각이 밀려들자, 입속에서 느껴지는 꿈같은 달콤함.
‘아, 좋구나.’
그런데 그렇게 두 개째의 환병을 먹어 치우고 있는데 밖에서 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당 언니는 어디 계십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되는 제갈청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분명 누워서 류 가가를 데리러 간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류가가를 데려온다면 제갈청도 따라서 올 것이라 언젠가 같이 도착할 것임을 예상은 했지만 시기가 너무 빨랐다.
무사들이 출발한 건 사흘 전쯤이라 들었으니 말이다.
‘아니, 청이가 어째서?’
당영영은 당황해 얼른 환병 주머니를 침상 속에 집어넣고 다시 정신을 잃은 척을 하기 시작했다.
입에 환병을 잔뜩 머금은 채로.
그리고 그렇게 누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척을 한 지 얼마 안 돼,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제갈청이 안으로 뛰어 들어와 침상 위로 엎어져서는 울기 시작했다.
“언니! 어, 어찌 이리 야윈 얼굴로!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미, 미안하구나. 청아.’
당영영은 가슴속으로 제갈청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깃털처럼 가벼운 제갈청이 엎드려서 울고 있는데 천천히 무게가 올라가는 것 같더니, 곧 침상을 내리누르는 묵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침상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뿌드드드득
‘크흐응··· 이, 이 무슨?’
가슴을 강하게 내리누르는 압력.
살짝 실눈을 떠, 엎드린 채 울고 있는 제갈청을 바라보자.
제갈청이 내리누르는 힘에 자기의 몸이 침상 속으로 꺼져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크흡 처, 청아 그리 누르면··· 아, 안, 안돼!’
-푸우우우우
숨통을 내리누르는 무게에 당영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기 입에 물고 있던 환병을 뿜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놀란 제갈청의 목소리가 귓가를 사정없이 때리고는 온 가문의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어, 언니?! 언니! 이, 이 무슨! 어서들 와보세요! 언니가 무언가를 토해냈습니다!”
밖에서 대기하던 시비와 의원들이 놀란 얼굴로 뛰어 들어와 사방으로 뿜어진 환병 조각을 주워 들고는 망연한 표정으로 외쳤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셨는데, 이상한 것을 토해내다니! 이 무슨 해괴한 괴질이란 말인가?!”
당영영은 그냥 이대로 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