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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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자에 실려 간신히 당문의 문 앞에 당도해 제일 먼저 찾은 것은 풀숲.
“꾸헤엑···”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땅을 내딛자 땅 멀미가 몰려왔다.
발을 디딘 땅이 안면으로 달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어지러움이 밀려왔고, 바로 서지도 못하는 몸 때문에 풀밭에 나뒹굴어야 했다.
무박 3일 청룡열차 생활의 결과였다.
바다에서 고깃배 생활을 오래 하면 뭍에 내렸을 때 땅 멀미를 한다더니, 아마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이 그것인 모양이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자 독혈대의 대주가 다가와 내 몸을 부축했다.
“류청운님 괜찮으십니까?”
‘괜찮겠냐?’
간신히 일어서 술 취한 듯한 걸음으로 비틀대자 보다 못한 무사들이 나를 양쪽에서 부축했고, 그렇게 무사들에게 연행되듯 당문 안으로 들어서자 의조부와 의부께서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던지 경공으로 날아오며 외쳤다.
“처, 청운아 이리도 일찍 도착하다니! 천운이구나!”
“청운아! 어제저녁 네 부인이 도착해 일찍 도착할 것이라 하더니, 이리도 빨리!”
“의, 의조부님 의부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몸은 괜찮은 것이냐? 급하게 오느라 고생했구나!”
두 분 모두 입으로는 나를 걱정하는 모습인데, 뭔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눈치 빠르게 무사들에게 부탁했다.
“차가운 물 한잔과 당매매가 있는 곳으로 좀 옮겨주시오.”
“청운아, 몸을 좀 더 돌보거라.”
“그래, 이런 몸으로 어찌 환자를 보겠느냐.”
역시나 말은 나를 걱정하지만, 의조부는 무사들 앞에서 앞장서 당영영의 처소로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영영의 처소 앞에 도착해 시원한 물 한잔을 받아마시며, 머릿속에서 전생에 보았던 의학 드라마의 장면들을 떠올려보았다.
‘일단 이마 한번 만져보고, 맥박 한번 확인해보고, 동공반사 확인 뒤에 혀도 한번 보고, 심각히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으며, 죄송합니다. 저로서도 잘···’
당영영이 앓고 있는 질환을 내가 치료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고, 내가 진맥하고 몸 좀 살피자 당영영이 기적처럼 눈을 뜨며 치유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
내 딴에는 최대한 뭔가를 한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후
한숨을 내쉰 후,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는데, 영영이가 너무 참혹한 모습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처소 안으로 들어서자, 아내인 제갈청이 당영영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녀를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당영영의 처소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자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노공. 도착하셨군요!”
“부인, 여기까지 오는데 별일은 없으셨소?”
“예, 노공. 별일 없었습니다.”
도적들로 볼링을 친 것은 아내에게 별일에 해당하지 않는 모양.
다치지는 않은 것 같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영영이나 살펴야겠다며 조심스레 침상으로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아내가 일어서 내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독왕 어르신과 숙부님은 아무래도 당 언니의 몸을 살펴야 하니, 밖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간호사처럼 나서서 독왕인 의조부와 의부를 저지하는 아내.
아내의 말에 당영영의 처소 안으로 들어서려던 독왕과 의부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러났다.
“그, 그래? 모, 몸을?”
“그, 그렇지. 물러나자꾸나. 청운이의 의술도 무공같이 함부로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예, 제가 옆에서 노공을 도울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알겠구나. 청운아, 그러면 잘 부탁하느니라.”
“예, 의조부님.”
‘뭐지?’
독왕이나 의부가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데,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아내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끼며 일단 당영영에게로 다가섰다.
다행스럽게 당영영은 환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살짝 잠든 것같이 눈을 감은 모습.
그때 등 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치, 치료를 시작하시나요? 그, 가슴을 누르고··· 이, 입을 맞추고?”
“응?”
이제 보니까 아내가 독왕인 의조부와 의부를 내보낸 것은, 내가 아내인 제갈청을 치료하는데 했던 방법인 인공호흡이나 CPR 등을 당영영에게 할까 싶어 그랬던 모양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아내의 상태를 알고 있었기에 응급 상황에서 시도 한 것이고,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숨이 넘어가는 상황도 아닌데 그걸 시도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내를 향해 설명했다.
“아, 아니요. 그건 숨이 넘어가는 사람에게나 하는 것입니다.”
“그, 그렇군요. 다행, 아니, 큰일, 아니, 그렇군요.”
[치···.]
아내가 자기가 묻고도 뭔가 부끄러웠는지 살짝 볼을 붉히는 모습에 미소를 지을 때.
그럴 리 없겠지만 뭔가 작게 혀 차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누워있는 당영영을 확인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것은 미동도 없는 당영영의 모습.
“어, 어찌 그러시나요?”
아내가 약간 말을 더듬으며, 내가 왜 당영영을 바라봤는지를 물어오기에, 아내가 앉아있던 의자에 걸터앉으며 대답해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요. 내 잘못들은 모양이오. 무슨 소리가 들린 듯도 하여.”
그렇게 아내가 앉아있던 의자에 걸터앉아 이곳에 들어오기 전 먼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 대로 이불을 들추고 당영영의 손을 빼내어 진맥하는 시늉을 시작했다.
원래 누군가를 속이려면 우리 편부터 속여야 하는 법.
아내한테 당영영의 상세를 살피기 위해 뭔가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당영영의 손목을 붙잡자 뭐 내가 의원도 아니니 알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손목이 가늘고 피부가 부드럽고 저 손목으로 내 숨통을 움켜쥐면 뒈질 수도 있다는 감상 정도가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마를 짚어보아도 열이 크게 높다거나 하지 않았다.
보는 김에 혹시 아내인 제갈청처럼 어떤 알레르기는 아닌가 싶어 목덜미도 살펴보았지만, 딱히 어떤 이상도 없었고.
동공은 어떤가 싶어 한쪽 눈꺼풀을 강제로 잡아 벌려 보았지만,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는 눈동자.
그런데 마지막으로 입을 벌려 혀를 살펴보려고 당영영의 턱을 쥐고 입을 벌리자 어디선가 고소한 향이 콧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응? 무슨 고소한 향이? 이 향은?’
뭔가 아주 익숙한 향기.
향기를 쫓아 천천히 코를 가져가자 왠지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무, 무슨 일이신가요?”
향기를 쫓다 말고 아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서 익숙한 향기가 나서 말이오. 분명 이것은 환병의 냄새 같은데···”
분명 환병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것도 그 누가 만든 것도 아닌 내가 만든 환병.
언제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동경으로 가기 전 만들어 당영영에게 선물로 주었던 그 환병 말이다.
내가 당영영에게서 나는 환병의 냄새를 내가 만든 것으로 확신하는 이유는, 환병이라는 것이 그냥 밀가루 뭉쳐서 넣어 튀기는 것뿐이지만, 나는 환병을 만들 때, 맛을 위해 설탕도 넣고, 밀가루 특유의 향을 없애기 위해 계피도 살짝 갈아 넣었기 때문이었다.
고소하게 튀겨진 밀가루의 향과 그 속에 숨겨진 계피의 향.
또 튀길 때 기름도 유채유와 참기름을 살짝 섞어서 만들었으니, 고소한 참기름 냄새까지 섞인 환병은 분명 내가 만든 환병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밀려드는 환병 냄새에 두 가지 의혹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왜 혼절해 며칠째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하는 당영영의 몸에서 환병의 냄새가 나는 것인지.
그리고 식탐 많은 녀석이 지금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않았을 텐데, 어째서 지금 나는 환병 냄새가 내가 한참 전에 만들어 준 그 환병의 냄새인 것인지.
머릿속에 가득한 의혹을 품고 다시금 향이 강했던 당영영의 얼굴 쪽으로 코를 가져가는데, 아내가 뭔가 삼류 드라마 배우 빙의한 것 같은 말투와 행동을 하며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어, 어머. 다. 당 언니가. 누. 눈꺼풀을. 우. 움직였어요.”
초등학생 국어책 읽는 느낌의 말투.
‘뭐지?’
이상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아래 누운 당영영을 바라보자, 왠지 당영영이 목덜미까지 시뻘겋게 물든 채 파르르 눈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 당매매? 정신이 들어!? 당매매? 나야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이상한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며칠 앓아누운 아이가 일어났으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를 묻자 당영영의 입이 천천히 열리며 고소한 냄새와 함께 당영영의 입에서도 초등학생 국어책 읽는 것 같은 말투가 흘러나왔다.
“류, 가.가. 저를 구. 해. 주. 셨. 군. 요.”
아내와 당영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무슨 혀가 굳는 그런 종류의 전염병인가?’
***
잠시 후 내부의 소란에 밖에서 의부와 의조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공의 공수이니 안에 들려오는 소리를 확인한 모양.
“무, 무슨 일인 것이야? 드, 들어가도 되는가?”
“청운아 무슨 일이더냐? 영영이가 눈을 뜬 것이냐?”
둘은 더 이상 못 참겠던지 문을 열고 화들짝 놀란 얼굴로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침상에 눈을 뜬 당영영을 보자 바람같이 침상으로 달라붙어 소리치기 시작했다.
“영영아, 할아비다 할아비 알아보겠느냐?”
“영영아? 정신이 드느냐?”
둘의 질문에 당영영은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같이 처연하게 한쪽으로 고개를 꺾더니, 입을 열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보면 한 떨기 애처로운 꽃 같은 그런 분위기를 풍기면서 말이다.
“하, 할아버지. 아버지···”
“그래! 이 녀석아, 어찌 된 일인 것이야!”
“사람을 알아보니 다행이구나. 다행이다 정신을 차려서!”
그리고 그때, 아내가 다시금 국어책 읽는 말투로 외쳤다.
“대. 대단하셔요. 노공. 정말. 신묘한. 치료입니다.”
아내의 말 한마디에 영영이를 살피던 의부와 의조부가 나를 향해 달려들더니, 나의 손을 붙잡고 감격한 표정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처, 청운아, 고맙구나!”
“네가 네 의매를 살렸구나! 고맙구나, 청운아!”
“예? 아니, 저는 뭐 한 게 없는데···”
“어허, 청운아, 지나친 겸양은 필요 없느니라 우리 사이가 아니더냐.”
얼떨떨한 얼굴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내가 필사적으로 내 눈빛을 피하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뭐지?’
***
당영영이 깨어난 후에는 의원들이 다시금 영영이를 진찰했는데, 딱히 어딘가 아픈 것 같지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
그냥 며칠 굶었으니 기운이나 차리게 하려고 미음이나 끓여오라 해서 미음을 먹였더니, 당영영은 생각보다 빠르게 기운을 회복했다.
식탐이 많은 녀석인지라 미음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아 배가 고프다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는데, 오랜 공복 후에 정신을 차리면 미음 같은 것부터 천천히 먹어야 한다는 내 말에 당영영은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결국 내일부터 기운을 차릴 음식을 만들어 준다며 간신히 당영영을 달래고, 나와 아내는 그날 저녁, 의조부의 처소를 찾아갔다.
어쨌든 영영이가 깨어났고 내가 치료한 게 되어버렸으니, 분위기 좋을 때 우리가 찾아온 목적에 대해서 도움을 받아보기로 한 것.
“의조부님 저 청운이 입니다.”
“청운이? 이 밤에 무슨 일이더냐? 아무튼 들어오거라.”
내가 찾아왔다는 말에 독왕인 의조부가 문을 열고 처소 안으로 우리를 초대했고, 우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찌 이 밤에 둘이 같이 찾아온 것이냐?”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어허, 청운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부탁이 아니라 할아비께 그냥 해달라 하면 되느니라. 그래 무슨 일이더냐?”
이 집 식구 여럿 살려 그런지 무척이나 관대해진 의조부 독왕.
일단 의조부께 아내의 증상에 관해 설명했다.
“······ 해서 의조부님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아니, 그런 일이···”
내 설명에 아주 당황한 표정을 짓는 독왕.
독왕은 뭔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아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청아 내 잠시 맥을 잡아봐도 괜찮겠느냐?”
“예, 물론입니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의형제의 아버지인 독왕이 맥을 잡겠다는 말에 아내가 손을 내밀었고, 독왕이 조심스레 아내의 손목을 잡아 뭔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독왕의 입에서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이해 못하겠다는 말투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정말 기이하구나. 본디 내공이라는 것이, 상반된 기운이라면 서로 밀어내 몸이 터져나가야 하고,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면 섞여 혼탁해지기 마련인데, 이건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이미 대략의 증세를 장인을 통해 들었기에 장인이 했던 이야기를 내 표현으로 다듬어 물은 것.
“그래, 마치 물과 기름같이 섞이지 않는다는 네 표현이 정확하겠구나. 청아 어디 한번 공력을 끌어올려 보겠느냐?”
맥을 짚은 채 의조부가 다시 아내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자 아내가 기운을 끌어올리는 듯했고 잠시 후 다시금 놀란 의조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지금까지 많은 것을 보았지만, 이리 기이한 것은 처음이구나 서로 섞이지 않는 내공이 같은 혈도로 움직이다니. 세 맥으로 전혀 다른 기운이 빠르게 바뀌며 쏟아지는 것은 처음 보는구나.”
“어찌 방법이 없겠습니까?”
내 물음에 의조부께서 천천히 고개를 저으셨다.
“나도 처음 보는 것이구나.”
실망으로 물드는 아내의 얼굴.
재빨리 다른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의조부님 그럼 혹시 제가 무공을 배워 아내의 힘을 버티는 방법은 없겠습니까?”
장인과 이야기할 때는 무공을 배우는 방법도 있다는 약간 방법론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 실천적인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때.
고수인 의조부는 전생으로 말하자면 엘리트 중의 엘리트.
강남 일타강사의 자질이 충분하신 분이니 뭔가 단기속성 방법이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당문에서 벌써 두 목숨 구했으니, 영약 같은 것 좀 챙겨주면 더 빠르지 않을까?’
절박한 얼굴로 묻자 의부가 내가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몸인지를 확인해준다고 하셨고, 나도 의부를 향해 손목을 내밀어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내를 짚었을 때보다 더 놀란 의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것은?!”
‘뭐 전생자 보정으로 막 천무지체(天武肢體) 그런 건가?’
기대감으로 눈을 초롱초롱 뜬 채 의부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