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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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좀 자세히 살펴봐야겠구나!”
“어찌 그러십니까?”
내 물음과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받은 의부가 놀란 얼굴로 세부 진단을 요구했다.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한 의조부의 손동작.
손목에서 시작한 맥을 잡는 것은, 발목, 목 그리고 등, 관자놀이까지 이어지더니, 독왕이신 의조부의 입에서 이번에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건 정말 대단하구나!”
의조부의 경탄에 아내인 제갈청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어주었다.
‘오빠 믿으라고 했지? 나 이런 남자야! 독왕에게 대단하다는 찬사를 받는!’
아내의 추궁에 실토하고 말았던, 아내의 치료를 위한 대증요법중 하나.
내가 무공의 고수가 되는 방법이 실현 가능해 보이자.
시커멓게 죽어가던 아내의 안색이 밝아지며, 아내가 독왕에게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노공께서 무공을 익히기 그렇게나 좋은 신체인가요?”
“아니, 아니다. 내 그래서 놀란 것이 아니라.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내의 물음에 당혹한 얼굴로 대답하는 의조부님.
“그럼 어째서?”
‘아니, 그럼 왜 대단하다고 했습니까?! 괜히 기대감 가지게 하고···’
짜게 식어버린 눈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당황스러운 대답.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독왕의 당황스러운 목소리에 아내가 갑자기 한쪽으로 고개를 떨구며 망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나 노공께서 의술에도 뛰어나시고, 요리도 잘하시는 것이 하늘에서 내린 재능. 하늘에서 내린 재능을 가진 사람은 예로부터 절맥에···.”
‘저, 절맥? 그거 막 요절하고 그러는 거 아냐?’
아내의 망연한 말에 눈을 부릅뜨고 의조부를 바라보자 의조부께서 당황해 손을 내저으며 말씀하셨다.
“아니, 절맥 그런 것은 아니고. 내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 진정하거라. 그래, 청운아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인 이라도 살아가며 자연스레 기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것은 알고 있느냐?”
“예,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기(氣)라는 것의 개념은, 세상 만물을 이루는 근원 중 하나이기에 사람이 살아가며 기를 받아들이기도 내쉬기도 한다는 그런 내용쯤은 한번 들어본 적이 있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 긍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가는 의조부.
“그래,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구나. 사람의 몸에는 단전이 셋 있느니라. 그것은 상, 중, 하로 나뉘게 되는데, 하단전은 아랫배의 중앙에, 중단전은 심장에, 상단전은 머리에 있고, 심법을 익히면 몸으로 들어오는 기를 하단전에 쌓을 수 있게 되며, 고수라 칭하는 경지가 되면 중단전인 심장을 열어 기를 전신 세맥으로 빠르게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단전이 문제인데···.”
갑자기 상단전을 설명하다 말고 멈칫하는 의부.
“뭐가 문제란 말씀인지?”
“무림인의 마지막 목표는 상단전까지 열어 수련을 거듭해 입선(入禪)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 보면 되는데···. 청운이 너는 상단전이 이미 열려있느니라.”
‘헐···. 이거 주인공 보정 씨게 들어갔네? 그래, 전생쯤 해줬으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그래, 생각해보면 그랬다.
다른 세계에 전생한 이런 기이한 상황이면 주인공급으로 취급되어 무림혈사를 막고 삼처사첩을 거느리며 대단한 모험을 해야 하는데, 고작 요리사로 첫날밤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나의 기막힌 상황.
원래 이것이 정상적인 취급인 것.
“아니, 그럼 하, 중 단전만 열어 수련을 좀 하면, 제가 입선한다는. 뭐 그런 말씀이십니까?”
의조부님 이거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실 줄 아는 양반이셨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시는 것이 옹알이 좀 치시는 아주 재간꾼.
개꿀인 상황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나는 막 신선 되고 아내는 이미 선녀? 막 그런 건가?’
핑크빛 미래에 신이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들려오는 의조부의 목소리.
“아니, 무공을 배우기에는 좀 늦기도 했고, 문제는 상단전은 열려있는데 기의 흐름이···.”
“예?”
“네 몸은 어떠한 무공도 익힌 흔적이 없으니 네가 범인임이 확실한데, 어찌 상단전의 기의 흐름이 거꾸로인지···. 이건 뭐랄까? 굳이 이름을 가져다 붙이면 상단전만 역천지체(逆天肢體)랄까? 청운이 같이 바른 놈이 하늘을 거스르는 행동을 할 리도 없을 것이고···.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아니, 무슨 지체? 역천?’
무슨 하늘을 거스른 대죄인 같은 느낌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조부인 독왕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뭔가 의심이 되기도 하는 상황.
전생한다는 것이 순리(順理)라 해도 나는 약간 시대를 거꾸로 올라오거나 아니면 다른 세계로 온 느낌.
‘연어도 아니고··· 제길···’
“설마? 그렇다면?”
“어찌 의심되는 것이 있느냐?”
“제가 삼 년 전쯤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뻔한 일이 있고 나서, 잘 모르는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는데 설마 그것이?”
전생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대충 둘러댄 것인데, 나의 말에 아내 또한 당황했는지 다급하게 물어왔다.
“그럼 혹시 상단전의 문제로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까!?”
아내의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가 더 큰 문제가 생겨 버린 상황에 무척이나 당황한 목소리.
“아니,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도 같고··· 상단전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느니라. 심(心)과 기(氣)에 큰 영향을 준다고만 알려져 있는데, 청운아 혹시 목숨을 구명한 그 후에 정신적으로 무엇인가에 예민해지거나 둔감해지거나 하는 것은 없더냐?”
독왕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것이 있긴 있었다.
“최근 좀 아니, 무척이나 예민해진 것이 있긴 합니다.”
“그래? 그것이 무엇이냐?”
“아무래도 눈치가 귀신같아진 것이, 그 영향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 험한 중원에서 생존기로 눈치 하나 챙겼으니 다행이라 여기자.’
많이 아쉽긴 하지만 생존기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
의조부인 독왕과의 면담이 끝나고 터덜터덜 숙소로 되돌아가는 발걸음.
아내도 나도 슬픈 발걸음.
의조부 그리고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니 눈치 외에도 내가 둔감해진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도적이나 다른 이들의 죽음이나 시체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
‘뭐냐고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무림 세계에서 사람 하나 죽어 나가는 것으로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보다야 나쁘지 않은데 사이코패스는 곤란했다.
다만 다른 감정까지 무뎌진 게 아닌 것이 다행이랄까?
숙소로 향하며 옆을 보자 어깨가 축 처진 아내, 옆에 기운 없이 걷고 있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너무 실망하지 맙시다. 이제 고작 한 가지 방법만 확인해본 상황 아니요? 다른 방법들도 생각해보면 있을 테니, 우리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알겠소? 나는 절대 그대를 포기하지 않을 테니 말이오.”
“노공···”
아내를 가슴팍에 끌어안자 달빛 속에 아내의 푸른 눈이 은하수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내가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공, 먼저 들어가 계세요. 잠시 당 언니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당매매를? 아파 쉬고 있지 않겠소?”
“자, 잠시 잘 자고 있는지만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당매매 처소는 반대 아닌가?’
“부인, 그쪽이 아니라 이쪽 아니오?”
내가 당매매 처소가 아닌 독왕의 처소 쪽으로 향하는 아내를 향해 묻자 아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이쪽도 길이 있습니다.”
“그렇소?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시오. 내 먼저 처소에 가 있겠소.”
“알겠습니다. 노공.”
어두워 길을 잘못 가는가 싶어 물었는데. 내가 모르는 길이 또 있는 모양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먼저 처소로 향했다.
***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야만 몸이 회복될 것 같다는 당영영에게, 약속한 몸보신시켜주기 위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침상 옆을 보니 잠들어있는 아내.
밤에 여자들끼리 무슨 할 말이 많았던지 잠들 때까지 아내는 처소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아내는 옆에 누워 잠이 들어있었다.
살금살금 일어나 이불을 조심스레 덮어주고 당문 직계의 식사를 만드는 부엌으로 향하며, 보양식으로 무엇을 만들어 주어야 하나 생각했다.
‘중원에서 환자 보양식이라면, 전생에는 뱀탕이나 거북이 탕 아니면 개고기인데···.’
전생에 호텔로 몸보신하러 오는 손님들이 즐겨 찾던 요리는 거북이로 조리하는 갑어탕(甲鱼汤), 뱀탕, 또는 개고기.
다만 증상에 따라서 찾는 고기가 좀 달랐다.
뭐 고기야 다 단백질에 지방이라는 걸 아는 시대에도 무슨 고기는 어디가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잘 먹히는 이야깃거리였다.
뱀은 기력이 허한 환자의 기력을 폭발시켜 금방이라도 일어날 수 있게 만드는데, 거북이는 기력 자체를 보충해줘 천천히 회복하는 데 좋다고 알려져 있고. 또 개고기는 병을 오래 앓은 사람들의 몸을 회복시키고 기력을 보충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내가 아는 뱀 요리는 환자 회복을 위한 요리는 아니고.’
뱀이야 당문에 제일 많을 것이지만, 뱀탕이야 나보다 당문에서 더 잘 끓일 것 같다는 생각에 다른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남은 건 개인가? 개고기 요리는 만들어 본 적 없는데··· 그런데 개가?’
그러고 보니 당문에서 개를 한 마리도 본 적 없기에 부엌일을 돕는 하녀에게 물었다.
“당문에는 개가 없소?”
내 물음에 대답한 것은 밖에서 경계를 서던 당문의 무사.
당문의 무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당문에 개가 없는 연유에 관해 설명했다.
“류청운님 당문에서는 개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코가 예민한 개들이 독 향에 잘 죽어버려서···.”
“그렇구료.”
‘덕구, 늦게 오라고 하길 잘했구나.’
덕구는 무사들 그리고 가련이와 시비가 데리고 오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덕구를 덜컥 데려왔었다가 잘못했으면 큰일을 치를 뻔한 상황.
덕구 도착하면 당문 밖에 매어놔야겠다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지도 때려잡는 개인데, 하마터면 허망하게 잃을 뻔한 것.
‘그럼 결국 갑어탕(甲鱼汤) 인가?’
“혹시 당문에 귀(龜)가 있소?”
“후원 연못에 몇 마리 있을 것입니다. 어찌 그러시는지?”
“병환으로 누워있다 일어난 당매매의 몸을 보하는 요리는 만들까 하는데, 귀(龜)가 한 마리 필요해서 말이요.”
“귀(龜)를 말입니까?”
한참 거북이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밖에서 의조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
“뭐라? 영영이의 몸을 보할 요리를 만든다? 내 당장 가서 잡아 오마!”
노인네 펄펄 날아 후원으로 달려가더니, 달려간 지 얼마 안 돼 사람 머리통만 한 거북이를 한 마리 잡아 내 앞으로 가져왔다.
“이만하면 되느냐?”
“예, 충분합니다.”
거북이를 들고 부엌 옆 우물가로 향했다.
중화요리를 배울 때 참 지랄 같은 것이 하나 있다.
보통 요리사들은 식자재를 받아쓰기 마련인데, 중화요리의 일부 재료는 산채로 배달 된다는 것. 특히 거북이 같은 것이 그랬다.
요리사라면 잡는 것부터 요리의 시작이라는 뭔가 이상한 논리.
‘내가 백정도 아니고···’
처음 거북이 잡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쓴웃음이 지어졌다.
붉은 기억.
‘머리를 자르면 거북이가 춤을 추거든···’
이젠 익숙하니 재빨리 처리하기로 했다.
연못에서 잉어라도 잡아먹으면서 잘 자랐는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거북이.
특이하게 머리 쪽 등갑에 반달 모양의 무늬가 있었는데, 도마에 올려놓고 머리를 내미는 순간.
-탁
피를 빼고 등갑과 복갑이 연결되는 부분을 채도로 내리쳐 반으로 갈라 고기를 분리했다.
거북이의 고기가 제일 많은 곳은 팔다리의 근육 부분.
또 이제부터 만들 요리에는 거북이의 간이 필수.
간과 고기를 추린 후 나머지 부분은 버리고, 손질한 거북이를 부엌으로 가져가 요리를 시작했다.
먼저 거북이 고기는 먹기 좋게 각을 떠 준비하고, 웍에 기름을 둘러 자른 양파와 으깬 생강을 넣고 향이 충분히 우러날 때까지 볶아주었다.
-촤아아
향긋한 생강의 향과 볶아지는 양파에서 흘러나오는 달큰한 냄새.
거기에 먹기 좋게 자른 거북이의 살과 간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 볶아준다.
-치이익 촤아악 촤아악
윅을 움직여 볶아지는 거북이 고기를 뒤집어주며 그렇게 볶아주다가 물을 충분히 부어준 후, 마포에 넣은 닭 한 마리와 함께 한 시진 끓여주면 되는데. 중요한 재료가 생각났다.
부엌 밖으로 뛰쳐나가 의조부님을 찾아가려는데, 어느새 식탁과 의자를 가져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의조부님과 의부님.
둘은 나를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셨다.
“크흠··· 어찌 그리 허겁지겁 달려 나왔느냐?”
“잘 잤느냐 청운아? 크흠···”
어색하니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의부님과 의조부님.
한입만을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모양새, 필요한 재료가 당가에 있는가를 물었다.
“혹시 당가에 동충하초(冬蟲夏草)가 있겠습니까?”
“동충하초를?”
“예, 아무래도 몸을 보하는 요리인지라.”
“아니, 대체 무슨 요리이기에 동충하초가? 청운아 고려인삼, 녹용과 더불어 동충하초가 제일 비싼 약재임은 아느냐?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가···”
의부님이 놀란 얼굴로 물으셨다.
아마도 약도 아니고 요리에 그런 귀한 재료가 들어가는 게 이해가 안 되는 모양.
그러나 손녀에게 진심인 의부 독왕께서는 통 크게 지르셨다.
“아니다, 그 정도는 넣어야 우리 영영이의 보양식일 테지.”
그리고 잠시 후 의조부님의 지시에 화영 숙모님이 동충하초를 가지고 당도하셨다.
“갑자기 동충하초를 가져오라고 하시기에 가져는 왔는데···”
귀하게 취급되는 모양인지 금테 두른 상자에 고이 모셔져 있는 동충하초.
한 움큼 꺼내 쥐자 세분이 놀라 눈을 부릅뜨기에 살포시 쥔 손을 풀어 절반을 덜어내며 물었다.
“이게 아주 비싼가 보죠?”
대체 얼마나 비싸기에 세분이 저리 경기를 일으키시나 싶어 물었는데, 내 물음에 고모님께서 떨리는 입꼬리로 말씀하셨다.
“동충하초 하나에 은자 다섯 냥 정도?”
“예?!”
‘조그만 풀뿌리, 네 개에 금자가 한 냥이라고?!’
나는 화들짝 놀라 겸손하게 손에서 동충하초를 좀 더 덜어내었다.
영영이의 입속으로 은자가 한 번에 다섯 냥씩 들어가는 것이 상상되었기 때문.
‘영영아 아까워서 그런 거 절대 아니다. 사람이 잘 살수록 아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