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 (86/344)

환?

.

중화 요리사가 요리를 배울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배우는가?

칼질? 웍질? 양파 까기 같은 재료 손질? 설거지? 청소?

전부 아니다.

요리사가 되기 위해 제일 처음 배우는 것은 바로 서기, 스텐딩!

주방에서 장시간 서서 일해야 하는 요리사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올바른 자세로 서서 버티는 것이다.

잘못된 자세로 오래 일하다 보면 폐가 눌려 가슴이 눌려 답답해지거나 목이 아프거나 허리가 아파 장시간 일을 할 수 없게 되니, 서기를 가장 먼저 배울 수밖에 없는 것.

전생에 요리를 배울 때도 일주일은 이 서기만 연습했다.

그러니 나의 첫 제자의 교육은 마찬가지로 서기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무협 세계이니 마보(馬步)를 연습하는 것과 비슷하다랄까?

일단 주방 앞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식탁을 하나 가져다 두고 그 위에 통나무를 잘라 만든 도마를 하나 올리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육군도수체조라도 할까 싶었으나, 간단하게.

목, 허리, 손목, 발목을 돌려주고, 허리를 뒤로 꺾어 하늘 보는 자세를 몇 번.

아침을 여는 간단한 스트레칭.

그 후에 본격적으로 서기 연습을 시작했다.

“다리는 어깨너비만큼. 발은 자연스럽게 벌려 팔(八)자 모양을 이루게 해야 한다. 왼발은 약간 왼쪽 앞으로, 오른발은 오른쪽 뒤로. 몸의 중심은 지면에 바로 설 수 있게, 몸의 무게는 몸 전체로 균등하게 배분하고, 재료와의 거리는 주먹 하나만큼.”

“다리를 어, 어깨너비만큼. 발은 자연스럽게 팔자···.”

내 말을 따라 하며 가련이가 로봇처럼 몸을 삐걱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주방 앞에 가져다 둔 식탁 위에 올려진 도마 앞에 서서, 실제 요리할 때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세를 연습하는 과정.

“이 이렇게 말입니까?”

“아니, 다리를 그렇게 넣게 벌리지 말고 어깨너비만큼. 그래. 그만큼.”

하체의 자세가 균형을 이루고 도마와 가련이의 거리가 주먹 한 개만큼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상체의 자세를 알려주려는데, 한쪽에서 어색한 목소리의 물음이 들려왔다.

“이런 수련 중이로구나. 내 다른 곳으로 가야겠군.”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더니, 의조부인 독왕이 우리의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왔다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몸을 쭈뼛거리면서도 계속해서 흘깃거리는 것이 수련 과정이 무척이나 궁금한 것이 분명한 모습.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의조부님. 요리사의 수련은 별거 없으니 그냥 구경하셔도 됩니다.”

“오오, 그래도 되느냐?”

그렇게 반색하는 얼굴로 의조부가 근처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가련이가 약간 신경을 쓰는 듯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가련이 교육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니까 상체는···.”

“어이쿠 청운이가 제자를 훈련 중이었구나.”

이번에는 의부님, 그렇게 한분 두분 인사를 하다 보니 의조부님, 의부님, 고모님, 당영영에 아내와 시비들까지.

아주 나중에는 아침까지 이곳에서 먹겠다며 다들 식탁까지 가져와 둘러앉아 차까지 마시고, 연밥(蓮)과 참외 씨까지 까먹으며 아주 본격적인 관람 모드로 우리의 아침 훈련을 구경했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중원사람들은 씨 같은 걸 까먹는 걸 좋아했는데, 이 시대에는 전생에 인기 있던 호박씨나 해바라기 씨가 없으니, 참외 씨랑 연밥을 까먹는 것.

‘대충 올 사람 다 왔나?’

인사를 하느라 교육이 몇 번 끊겨 좀 짜증이 나긴 했는데, 첫날이라 가족들이 호기심에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가련이의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어디까지 설명했더라?”

“그, 상체는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스승님.”

“아, 그래. 상체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런 수련을 왜 하는 줄 아느냐 가련아?”

생각해보니 이 수련을 왜 해야 하는지 연유에 관해 설명하지 않았기에, 내가 왜 아침부터 서기를 연습해야 하는지, 그 연유를 아냐고 묻자 가련이가 당황하다 개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 또··· 그러니까··· 자, 잘 모르겠습니다. 스승님···”

“뭐 모를 수 있지 지금부터 설명해줄 테니 잘 듣거라.”

내가 설명을 시작하자 가련이가 의욕 가득한 얼굴로 집중한 채 나를 바라봤고, 나는 가련이에게 왜 서기를 연습해야 하는지를 천천히 설명했다.

“요리사가 하는 일은 연회와 잔치 같은 큰일이나 요리집의 부엌에서 일하는 것 같은 작은 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단다. 둘 다 뜨거운 불 앞에 몇 시진이나 서서 꼼짝하지 않고 일해야 하는데, 바른 자세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나 목, 등에 통증이 찾아오고, 그러면 오래 일할 수 없는 법. 그래서 바른 서기 자세를 연습하는 것이다.”

“아! 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렇게 설명을 끝내고 상체 자세를 다시금 설명하려 할 때 모여서 차를 마시며 우리의 수련 과정을 관람하고 있던 객석에서 이야기가 들려왔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더니 확실히 제법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아버님 명문 무가의 교육처럼 체계적이기까지 하군요.”

“청운이 저 아이는 저런 것을, 혼자 깨우치다니 확실히 기재네요.”

나를 향해 들려오는 찬사.

내가 만든 과정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내가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21세기 교육이란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니.

중원 조폭들의 주먹구구 훈련보다야 월등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나.

“영영아 할아비가 왜 마보를 계속 수련해야 하는지,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류가가의 설명을 들어보니, 확실히 모든 것은 기초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관람객들의 선플을 받으며 가련이의 주변을 빙빙 돌며 설명을 이어갔다.

“상체는 자연스럽게 똑바로 세우고, 머리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가슴은 약간 집어넣고···”

그렇게 설명을 이어가는데 들려오는 당황한 가련이의 목소리.

“에···”

‘뭐지?’

자세를 연습하는데 갑자기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가련이를 바라보니, 가련이가 아주 당황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스, 스승님 아, 안되는데요.”

“응? 무엇이 안 된다는 말이냐?”

가련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려 그녀의 상체를 바라보니 뭔가 벨리 댄서처럼 배를 꿀렁거리고 있는 가련이.

그리고 가련이의 난처한 한마디가 뱉어졌다.

“가, 가슴이 안 집어넣어집니다···”

‘아뿔싸···’

발육이 뛰어난 가련이에게는 가슴을 넣으나 마나 그게 그것인 것.

가련이는 스승을 번민에 들게 하는 아주 난처한 제자였다.

“크흠··· 그, 그냥 넣지 말고 자연스럽게. 사, 사람의 신체는 저마다 다르니 어깨만 곧 게 펴거라.”

그렇게 자세를 다시 잡아주고 아침을 먹을 때까지 한 시진만 서 있으라고 지시하고, 나도 식탁에 합류해 차를 한잔 받아 마시자 의조부님의 칭찬이 시작되었다.

“청운아 네 가르침이 무공을 가르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 많구나. 또한 나조차 만류귀종(萬流歸宗)의 의미를 다시 새겼으니 매우 고맙구나.”

아마 아까 내가 가련이를 교육하는 것을 듣고 당영영에게 여러 가지를 설명하는 듯했는데, 그것을 두고 고맙다고 하시는 모양.

“의조부님 별말씀을··· 그저 요리사들의 하찮은 가르침일 뿐입니다.”

겸양을 떨며 대답하자 이번에는 의부께서 나를 칭찬하셨다.

“아니다. 청운아 장자(莊子)에 포정해우(捕丁解牛)라는 말이 있느니라. 네가 하돈(河豚)을 요리할 때도 느낀 것이지만, 네 요리 기술 또한 극의(極意)에 달한 듯하니, 극의에 다다른 자들의 가르침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이 있는 법. 겸손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포정해우라는 말은 포정이라는 백정의 소 잡는 기술이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대단하다고 하여 생겨난 고사성어.

기술이나 솜씨가 매우 뛰어난 것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결론 내가 좀 쩐다는 이야기.

그런 당가 패밀리들의 칭찬에 아내가 자신이 칭찬이라도 받는 듯 기뻐하며,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것이 존경받는 남편의 삶인 것인가?’

그렇게 한껏 고양감에 들떠있는데 들려오는 가련이의 떨리는 목소리.

“스, 스승님. 너, 너무 히, 힘이 듭니다.”

이제 한 식경, 그러니까 한 삼십 분 지났는데 들려온 소리는 ’힘들다‘

’벌써 힘들다고?’

내 제자가 아직 처음이라 좀 감이 없는 듯.

허약한 정신을 뜯어 고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은 전쟁터나 마찬가지, 밀려오는 주문을 받아 차례로 내는 것은 쉬운 것이 절대 아니다.

각 분야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막힘없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고, 누군가가 늦으면 재료를 전부 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 주방.

그러니 요리할 때 주방에서는 욕설이 오가기도 하며, 보조일 때는 혼쭐이 나고 눈물을 짜기 다반사.

한 식경 만에 힘들다는 가련이를 혼쭐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련이를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대체 무엇이 힘이 든다는 것이냐? 이제 한 식경 정도 지났거늘.”

내 물음에 바들바들 떠는 가련이.

뺑끼는 아닌 듯 가련이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몸이 안 좋은 곳이 있나?’

고작 30분 서 있었는데, 서너 시간 서 있던 것 같은 모습.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 긴장해 자세를 잘못 잡아 허리나 목이 아프면 저럴 수 있었기에 가련이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자세를 다시 잡아주려고 말이다.

“어디가 불편한 것이냐? 혹시 아픈 곳이 있느냐?”

내 물음에 가련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겨, 겨드랑이가 아픕니다.”

“응? 겨드랑이?”

서는 자세가 잘못되면 보통 목이나 허리, 폐가 눌려 가슴이 답답할 수는 있는데, 겨드랑이?

처음 들어보는 증상이었다.

“겨드랑이가 대체 왜 아프다는 것이지? 보통은 목이나 허리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내가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말하자 당영영과 아내가 의자 하나를 들고 호다닥 달려와 가련이를 앉히고는 찬물을 떠와 먹이며 쉬라 권했고, 동시에 고모님의 전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청운아 그, 여자는 가, 가슴이 큰데 한 자세로 긴장한 채 계속 서 있으면 겨드랑이가 아플 수 있단다··· 그런데 저 아이는 좀··· 많이 아플 것 같구나···]

듣는 순간 깜짝 놀라 고모님을 바라보자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고모님.

고개를 돌려 가련이를 바라보자 양손으로 가슴을 웅크리고 있는 가련이.

조용히 가련이를 향해 말했다.

“크흠··· 내, 내일부터는 다른 수련이나 하자꾸나.”

제자 교육 커리큘럼을 다 뜯어고칠 수밖에 없었다.

제자에게 신체적 결함. 아니, 축복 아니, 아무튼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

가련이의 수련계획을 짜던, 그날 저녁.

의혹이 가득했던 영영이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저녁에 잠시 영영이의 처소를 찾았다.

“아가씨 류청운 공자께서 오셨습니다.”

“가가께서? 어서 안으로 모시거라.”

시비가 내가 온 것을 알리자 영영이가 나를 안으로 초대했고, 안으로 들어서자 탁자에 앉아 차를 따르고 있는 영영이의 모습.

영영이가 나를 반기며 물었다.

“가가 늦은 시간에 어찌 찾으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좋은 차를 내리고 있었는데, 잘 되었어요.”

일단 영영이가 안내한 의자에 앉아 그녀가 따라준 차를 마시자, 차를 마시면서 힐끔힐끔 나를 바라보는 영영이.

뭔가 숨기는 것 같은 모양새.

마시던 찻잔을 내려두고 물었다.

“영영아.”

“예, 가가?”

“내 너에게 하나 확인할 것이 있어서 왔느니라.”

“예, 무엇을요?”

확인할 것이 있다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영영이.

영영이를 바라보며 엄지와 검지로 턱을 살짝 받친 채 질문했다.

“영영아 혹시 나에게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더냐? 아니,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숨기는 것이 있더냐?”

“예?!”

당영영이 내 물음에 굳어 버린 채 손을 떨었다.

영영이의 손에 쥔 찻잔에 물결처럼 번져가는 파문.

잠시 후 굳어진 영영이의 턱으로 땀방울이 떨어져 식탁과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톡

긴장한 것이 역력해 보이는 얼굴.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이 확실한 것 같은 영영이의 반응.

너무 몰아붙였나 싶어 좀 더 부드럽게 묻기로 했다.

‘아, 내 너무 날카롭게 물었나?’

“영영아 긴장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보거라.”

“예? 예, 가가.”

취조 하는 분위기에는 큰 비밀을 이야기하기 힘든 것.

차가운 바람보다 따듯한 햇살이 사람의 마음을 녹인다고 하지 않던가.

영영이의 경계를 풀기 위해 내가 먼저 나의 비밀을 영영이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몇 해 전에 내가 목숨을 잃을뻔했으며, 그 후로 이상한 기억들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독왕에게 이야기해준 그대로···

“그래서 혹시 영영이도 이 오라버니의 이야기를 듣고 차를 마시는데, 떠오른다거나 하는 것은 없더냐?”

내가 자기의 이야기를 먼저 해주자 약간 긴장이 풀린 표정이 된 영영이가 내 물음에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실은 차를 마시기 시작한 순간부터 생각나는 것이 있긴 했는데···. 그것이 환···”

‘환? 환생? 그렇구나! 영영이 너도!’

역시 영영이도 환생한 것이 확실히 맞는 것 같았다.

나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전생이 떠올랐거나 하는 전형적인 클리셰의 인물.

같은 환생자를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어디 출신이고 어느 시대 사람인지를 확인해야겠다 생각하면서 당영영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는데 들려오는 당영영의 목소리.

“환··· ‘환병’ 생각이 자꾸··· 아무래도 따듯한 차와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서···”

‘네가 그러면 그렇지··· 환병이 생각나니!? 나는 너 땜에 환장하겠다 영영아!’

정말 영영이는 사람 환장하게 하는데 뭔가 능력이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