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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욕각(洗浴閣) (89/344)

세욕각(洗浴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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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외침에 당황으로 물드는 대주의 얼굴.

중원에서는 체면상 사람들 앞에서 쪽을 주면 안 되는 일이지만. 이번 것은 아주 곤란했다.

그러니 든든한 당문의 어른들이 계실 때 한번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 가주 직계 꽌시이니 이 정도 말은 또 할 수 있고 말이다.

‘내 무공을 모르는 요리사라고 이렇게 무시를 한단 말인가?! 내 아무리 무공 한 자락 모르는 사람이라지만 어엿한 당문의 꽌시이거늘!“

마음속에 분노가 솟아오를 때 거듭되는 대주의 변명.

“여기는 다 연유가···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면···”

나에 대한 무시와 자기의 이기적 행동을 당가의 어른들 앞에서 지적당한 대주가 당황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지만, 들어줄 이유는 없었다.

단체생활에서 내가 무공을 모른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이러면 앞으로의 여행이 곤란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따끔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요.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이건 당문의 어르신들이 계실 때 이야기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겠습니다.”

“공자님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대주, 그러나 저런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둘을 엄하게 꾸짖을밖에···

“아니요! 제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시죠.”

당황하는 대주의 변명을 사전에 차단하고 손을 들어 척하고 부대주 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털썩 주저앉는 대주.

‘어쭈구리? 당문은 대주를 연기력으로 뽑나? 지가 잘못해놓고, 선체면 타령하려고 하는 건가 지금?’

고작 지적질 한 번에 무슨 하늘이 무너진 것같은 반응을 보이며, 선체면으로 넘어가려는 헐리우드 액션을 펼치는 대주.

대주를 향해 눈을 한번 흘기며 재빨리 둘을 향해 말했다.

“제가 분명 저기 부대주 뒤에 있는 저희 식량을 두 분께서 나눠서 지고 가야 한다고 미리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이미 식량이 든 급(笈)과 철 냄비를 지고 가는데, 그냥 오신다는 것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저를 무시해, 저에게 저것도 지고 가라는 것입니까?!”

대주, 부대주라고 대접만 받아봤는지 정말 곤란한 분들이었다.

무공 모르는 자들을 부리기만 해봤기에 당연히 나도 하찮은 요리인이니 무시하는 느낌.

내가 그래도 당가의 가주도 살리고 영영이도 살렸는데 나를 이리 소홀히 대하다니.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었던 것.

내가 무공을 몰라 대놓고 저러는 것인가 해서 더더욱 화가 났다.

“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대주.

그가 마치 이등병이 선임병에게 혼나고 ‘잘 못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미 다 들어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원래 이럴 때는 ‘너 귓구멍에 어! #$#$를 처박고 #[email protected]# 했냐?’라고 말해주면, 들었는데 까먹었던 것들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기적이 발휘되지만,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강하게 이야기를 이야기했음에도 안면몰수를 하려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 대주의 모습에 거듭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지? 끝까지 버티겠다는 것인가? 절대 못 들겠다는 것이야?’

대주의 양심 없는 모습에 뭐라고 한마디 더 해야 하나 생각할 때, 그나마 양심이 있어 보이는 부대주가 얼른 움직여 식량이 든 급 두 개를 가지고 왔고, 그중 하나를 대주에게 넘기며 팔꿈치로 그를 꾹꾹 찔러 어서 급을 매라는 듯 재촉했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청운아, 대주가 너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고, 잠시 까먹은 것이겠지, 그리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니니, 너무 책망치 말거라.”

고모님은 얼굴도 미인이라 마음씨도 고우신지 대주의 허물을 감싸주셨다.

그러자 왠지 부끄러운 표정 더하기, 감격에 겨운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대주.

“예, 고모님. 제가 좀 예민했나 봅니다.”

나도 뭐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니고, 약간의 체면 손상과 각자 자기 할 일은 제대로 하자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니 이쯤에서 적당히 마무리하기로 했다.

“고모님의 말씀도 있고 하니 더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자, 그럼 출발들 하시지요.”

내가 출발하자는 말을 했음에도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모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한 표정으로 식량이 든 급을 넘겨받은 채 움직이지 않던 대주는, 잠시 후 넋 나간 표정으로 부대주에게 끌려 길을 나섰다.

‘이거 이번 여행. 고생문이 훤하구나.’

저런 사람을 믿고 남만야수궁을 찾아가야 한다니, 차라리 아내의 레일건이나 믿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급하게 화장실 다녀오느라 까먹었을 수도 있는데 왜 거기서 체면이 떠오른 것이었을까?

그리고 머릿속을 울리듯 환청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류청운 현지화 패치 진행률 50% 이상···’

‘젠장!’

왠지 서글퍼졌다.

***

그렇게 어르신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당문의 입구에 도달하자 우리를 반기는 존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의 마스코트 덕구.

오랜만에 주인을 봤다고 달려들어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덕구.

덕구의 머리를 좀 쓰다듬어 준 후 덕구에게도 알려주었다.

“덕구야 내 멀리 좀 다녀올 테니 잘 기다리고 있거라. 가련이와 시비들이 네 먹을 것은 챙겨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헥헥헥헥”

우리 덕구는 차우차우라서 사람으로 치면 실눈 케릭터.

견공계(犬公界)의 포형님 같은 존재라고 하면 될까?

실눈들은 대체 이게 화가 난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알아들은 건지, 만 건지 알 수가 없는 법.

알아들었는지 말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와 내 손길을 듬뿍 맞본 덕구는 만족했는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잠이라도 들었나 싶어 그대로 두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가시죠.”

“예, 공자님.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일단 마차가 갈 수 있는 거리까지는 마차를 타고 가기로 했기에, 마부와 나중에 마차를 가지고 되돌아올 당문의 무사 서넛을 대동하고 길을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짐을 풀어 마차에 올리고 아내와 둘이 자리를 잡고 출발하려는데, 또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부대주가 마차에 오르려고 했던 것.

나는 마차에 오르려는 부대주의 죽립의 날을 탁하고 잡아채며 말했다.

“부대주님? 여기가 아니신 것 같은데요?”

그리고 턱짓으로 마차 옆 길바닥을 가리켰다.

내 행동에 약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 부대주는 곧 달려온 대주에게 이끌려 마차 앞쪽으로 끌려갔다.

약간 치사하다는 듯한 음성을 남기고.

“치이···”

‘번갈아 가면서 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당문의 부대주와 대주는 둘 다 약간 어리바리한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구만.’

힘과 민첩만 내리찍고 지능은 평균 이하로 보이는 둘을 데리고 그렇게 남만야수궁을 찾기 위한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

-촥 촤착

-휙 휘휘휙

저녁 시간이 지나고 해가 진 밤.

당문 최고의 무력단체 독혈대의 대주 범진은 당문에 입문한 후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저녁 무공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열다섯 살 당문에 들어온 후로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무공 수련.

그의 주먹이 뻗쳐지고 발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바람이 허공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무아지경에 빠져 무공을 수련하는 범진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대주님?”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시비가 한 명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영영 아가씨의 시비 가화라 하옵니다.”

한 번쯤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영영 아가씨를 모시는 시비.

이런 늦은 때에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느니, 범진은 그녀가 자신을 찾은 연유를 확인했다.

“이 늦은 밤에 무슨 일인 것이냐?”

“영영 아가씨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뵙자고 하십니다.”

“영영 아가씨가?”

며칠 전 독왕께 류 공자님을 따라 운남에 가겠다고 떼를 쓰다가 혼이나 방에서 칩거(蟄居)하신다고 들었는데, 그새 기운을 차리셨는지 자신을 찾는다는 영영 아가씨.

난처한 부탁을 하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시비를 향해 물었다.

“아가씨의 처소로 찾아가면 되느냐?”

“아니요. 세욕각(洗浴閣) 뒤에서 뵙자고 하십니다.”

“세욕각? 알겠구나.”

이야기를 전하러 온 시비를 돌려보내고 수련을 멈춘 범진은 재빨리 세욕각으로 향했다.

세욕각은 당영영의 처소와 당화은의 처소 중간쯤에 있는 전각.

당문의 직계들이 목욕하는 곳.

전각 사이사이를 지나 세욕각에 도착했고, 무슨 은밀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세욕각 뒤에서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일지를 생각하며 세욕각 뒤편으로 걸어갔다.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시끄러운 밤이었다.

그렇게 약속 장소인 세욕각 뒤편에 도착했으나 보이지 않는 당영영.

‘아직 도착하지 않으신 것인가? 내가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당영영을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가녀린 여자의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응··· 라라···”

‘뭐지? 오늘 누가 세욕각을 쓰는가?’

혹시 누군가 세욕각을 쓴다면 이곳에 있으면 곤란했다.

그것이 여자라면 더욱더.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범진이 급하게 자리를 뜨려 할 때 들려오는 목소리.

“하아··· 분명 동충하초를 먹고 있는데 왜 이리 효험이 없는 것 같지? 청운이에게 한번 물어볼까?”

‘응? 화, 화은이?’

-꿀꺽

범진의 침이 목울대를 울리며 꿀꺽하고 넘어갔다.

열다섯 살 당문에 입문했을 때 자신을 충격에 빠트렸던, 당문에서 봤던 가장 아름다운 미녀 당화은.

그녀의 목소리가 세욕각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오매불망 그녀를 가슴에 품은 지 이십오 년.

들려오는 당화은의 목소리에 자리를 뜨려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하지만 멈춰 선 것도 잠깐.

‘무, 무슨 생각이냐 범진! 네가 연모하는 여자의 치부를 몰래 보려는 마음을 품다니 못난 놈!’

잠시나마 당화은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려는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에 자신을 꾸짖은 범진은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주먹 하나만큼 열린 세욕각 뒤편의 창 앞으로···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곳을 통해 몰래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그래··· 어차피 내, 사람이 될 사람. 먼저 조금 본다고 해도 허물이 되지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행위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주며, 범진은 열린 창 사이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세욕각 안쪽은 여러 개의 등이 켜져 무척이나 밝은 상태였는데,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자 들어오는 것은, 뿌연 물안개가 휘장처럼 여자의 뒤태를 가렸다 보여주기를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잠시 내력을 미친 듯이 끌어올려 안력을 돋우자, 그의 눈에 드디어 큰 물통에 어깨를 드러내고 앉은 여자의 뒷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오매불망 그리던 그녀의 뒷모습.

-꿀꺽

물통 속에서 손으로 물을 퍼 올려 자기 어깨에 물을 뿌리는 당화은의 뒷모습이 범진의 시야를 하나 가득 메웠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뿐.

그리고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

[어머, 우리 범진 대주님 여기서 뭘 하실까? 안에 고모님이 아시면 ‘경멸’ 하시겠다.]

그 목소리에 범진의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자, 자신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당영영 아가씨.

얼마나 집중했는지 자신보다 하수인 당영영 아가씨가 접근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큰 실책.

[그, 그게···]

뭔가 변명하려 했지만, 이 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당문에 입문해 독공을 수련하기 위해 독을 마실 때도, 운남의 밀림에서 독충을 잡을 때도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었는데···

정말 이 순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듯 당화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등줄기를 타고내리는 땀방울.

눈을 부릅뜨고 당영영 아가씨를 바라보자 그녀가 속삭였다.

[어떻게 고모님께 다 말씀드릴까요?]

풍이라도 온 듯 맹렬히 고개를 휘젓는 범진.

그런 범진을 보고 미소를 지은 채 당영영이 제안했다.

[제 부탁 들어주실 거죠? 대주님.]

범진은 좌우로 왔던 풍이 위아래로 다시 온 듯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당영영이 곧바로 입을 열어 당화은을 향해 대답했다.

“고모 저예요. 영영이에요.”

“거기서 무엇을 하는 것이니?”

“그냥 달구경을 좀.”

“녀석··· 할아버지께 혼나고 속이 상해 나온 것이구나? 밤바람이 차니 얼른 들어가거라 청운이가 모두 나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병석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느냐.”

“예, 고모님.”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범진은 부대주의 혈도를 제압해 아가씨의 침상에 눕히고 있었다.

“미, 미안하다. 부대주! 못난 나를 용서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부대주의 눈빛에 떠오른 불신을 마주한 범진이 부대주를 향해 비통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지시한 아가씨는 피도 눈물도 없는 듯 비통함에 빠져있는 범진에게 지시했다.

“자 이제는 여자들끼리 옷을 바꿔 입이야 하니까 대주께서는 좀 나가 계세요. 알겠죠?”

“크흑··· 아가씨 이러다가 제가 독왕께 죽습니다···”

“화은 고모께 어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린다면 화은 고모님께 죽지 않을까요?”

아가씨의 말에 범진은 마음에 품은 여인에게 경멸 어린 시선을 받으며 죽는 것보다, 독왕의 손에 한 번에 죽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독나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자신을 부려 먹을 듯했으니까.

***

운남이 얼마 남지 않은 덕창(德昌).

점창파의 제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칼을 뽑아 들고 있었다.

“남만야수궁! 동문들의 원수! 어서 삼대께 알려라!”

제자 중 하나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뭔가 자꾸 오해가 깊어지는 상황.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저희는 당문과 제갈가에서···”

뭔가 자꾸 일이 꼬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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