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창파(點蒼派)
.
-삐걱 삐걱
관도를 따라 마차 바퀴가 구르는 소리를 배경으로 한 시진쯤 지났을까?
-왈! 왈!
마차에 아내와 나밖에 없으니 조금 과감한 스킨쉽을 시도했는데, 그것은 모든 남자의 로망 다리 베게.
부끄러워하는 아내를 간신히 설득해, 무릎을 베고 누워 달달거리는 마차를 타고 기분 좋게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관도를 따라 울려 퍼지는 개소리에 아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죠?”
“개 짖는 소리가 아니요.”
마차 뒤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게 짖는 소리.
-왈왈! 왈왈왈!
좋은 분위기를 망치듯 멀리서 들려오던 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마차 밖으로 머리를 빼고 한 마디 소리치고 싶었다.
‘거! 나쁜 짓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하지만 아내가 있어 분노 조절이 너무 잘되기에 꾹 참고 그냥 좀 더 다리의 포근함을 느끼자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시간이 좀 지나면 멀어져 들리지 않겠거니 생각하면서.
-왕왕!
그런데 멀어져야 할 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무엇인가가 마차 뒤로 폴짝 뛰어올랐고, 뭔가 시커먼 것이 마차 위로 뛰어올라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고 말았는데, 아내와 마차에 올라탄 시커먼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보니 그것은 덕구였다.
“아니, 이 자식. 여긴 어떻게 왔어?! 덕구야?”
당문 입구에 메어놓은 덕구가 어찌 풀려났는지 우리를 따라오고 말았던 것.
덕구는 우리를 따라오느라 힘들었던지 헉헉대며 마차 위에 널브러졌다.
“어, 어쩌죠?”
덕구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 묻는 아내 제갈청.
이미 따라온 걸 어쩌겠나, 되돌아가서 다시 묶어두고 올 수도 없고.
나중에 마차가 되돌아갈 때 같이 돌려보내야지.
“나중에 마차를 되돌려 보낼 때 같이 보냅시다. 한 시진이나 왔는데 돌려보낼 수도 없을 것 같으니.”
“그나저나 개가 이렇게 사람을 잘 따르는 짐승인지는 몰랐습니다.”
일반적으로 개로 집을 지키거나 도둑을 쫓는다는 생각이 없는 시대이고 보통 개를 키운다면 돼지우리같이 우리에서 기르는 것이 보통이니 아내는 덕구의 행동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마차에 널브러져 씩씩대는 덕구를 보니 그래도 주인 찾아 여기까지 달려온 모양인데.
녀석, 기특해서 급에서 육포를 꺼내 한 조각 입에 넣어주었다.
***
마차에 덕구를 태우고 길을 나선 지 보름.
개 한 마리가 추가된 우리가 탄 마차는 관도를 따라 성도까지 향했다가 운남의 입구에 있는 도시인 반지화(攀枝花)로 향하기로 했다.
운남의 밀림에서 먹을 비상식량을 손대지 않고 여행의 피로를 덜기 위해서 관도를 끼고 마을을 징검다리처럼 지나며 하는 여행,
사천에는 무림 문파가 많은지라 운남으로 가는 길에 여기저기 무림 문파들의 영역을 지나게 되었는데 성도 근처에는 청성파의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성도를 지나 반지화로 가는 길에 있는 아안(雅安)에는 아미산이 가까운지라 아미파의 여승들이 꽤 많이 보였다.
처음으로 중원 전국구 조폭들의 영역을 지나는지라 조금 긴장했지만, 지역구 조폭의 면을 세워주기 위함인지 청성이나 아미파의 조직원들은 대체로 친절했다.
당문의 표식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종업계 종사자를 알아보는 눈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행 중에 만난 청성이나 아미파의 조직원들은 당문의 무사들을 알아보고, 동업자를 만난 기쁨에 먼저 인사를 해오거나 사천의 정황들을 알려주기까지 했으니까.
뭐 생각해보면 우리가 전국구보다 약간 빠지는 지역구 조폭 당문 소속이긴 하지만, 무림맹(武林盟)이라는 거대 조폭 연합에 속해 있는 한식구나 마찬가지.
생각해보면 무림맹이라는 것은, 중원 조폭들의 거대한 꽌시 연합체인 것이고, 거기 속해 있다는 것은 다 꽌시 관계라는 것.
뭐 한식구 취급해주지 않더라도 좀 사람이 어리어리하긴 했지만, 독기로 똘똘 뭉친 당문의 독혈대 대주가 마차 앞에 떡하니 있으니 프리패스는 당연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덕창까지는 별문제 없이 마을들을 지날 수 있었는데, 아미산을 지나서 서창(西昌)을 지나 덕창(德昌)에 이르자, 대주가 마차로 다가와 나와 아내를 향해 말했다.
“공자님 곧 점창파(點蒼派)의 영역에 도착합니다.”
아침에 이미 한번 언질을 주었지만, 대주가 굳이 다가와 점창의 영역에 이르렀다고 말을 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주의하라고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정파(正派)무림 소속 문파인데도 불구하고 대주가 경고하는 것은, 장인께서 말씀하셨던 이십 년 전 새외혈사(塞外血史)에 후계자를 잃은 성난 남만야수궁을 맞아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점창파.
점창파는 아미와 청성에서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꽤 큰 피해를 보았고, 야수궁과 점창 둘 다 나중에 서로가 피해자라는 걸 알았지만 죽은 자는 되돌아오지 않는 법.
더군다나 점창 입장에서는 괜히 뚜드려 맞은 것이니 야수궁에 대한 감정이 최악이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가 남만야수궁에 간다는 사실을 절대 알려서는 안 된다고 미리 이야기하셨지만, 이렇게 점창의 나와바리로 들어가니 다시 한번 주의를 시키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대주님.”
내가 대주의 주의에 고개를 끄덕이고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도 내 눈빛을 대하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점창의 영역인 덕창(德昌)으로 마차가 천천히 들어섰다.
다소 우려했지만, 대주의 걱정과는 다르게 덕창에 들어섰을 때는 별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덕창의 한 객잔에 숙소를 정하고 하루를 묵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고, 다음날 출발해 덕창의 남문을 나가 반지화로 향하려 할 때였다.
마차를 가린 천 사이로 덕창의 남문 근처에 경계를 서듯 삼삼오오 흩어져있는 일련의 무사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밖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점창의 사대 제자 허육이라 합니다. 대협의 존성대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공손하지만 은근 압박하는 투로 말하는 점창의 제자.
귀찮은 일을 피하고자 당문의 표식이 있는 옷을 입지 않고 있었기에 검문이라도 당하는 상황 같았다.
남자의 물음에 곧 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천 당문. 독혈대주 범진이라고 하오. 여기 패도 있으니 확인하시오.”
대주의 소개를 들은 점창파 제자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
“이, 이런, 당문의 범진 대협이셨군요. 실례했습니다.”
“아니오. 그래, 무슨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 중원으로 남만야수궁의 놈들이 몇 넘어왔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말립니다. 그런 연유로 점창에서는 덕창과 반지화를 지나 운남으로 들어가는 무림인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문이라면 독물이나 독초를 찾으러 가시는 것일 테니 지나가셔도 됩니다.”
사천당문에서는 운남에 독물(毒物)을 채집하러 많이 다니는 편인지라 으레 또 독물을 채집하러 왔거니 생각하는지, 그냥 지나가라는 점창의 제자들.
그렇게 마차가 천천히 출발해, 마차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점창의 제자들이 우리가 있는 마차 뒤쪽과 가까워질 때였다.
-으르릉
덕구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으르렁댄 것은···
그리고 그런 덕구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던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잠깐! 범진 대협, 마차 안을 잠시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출발했던 마차가 급하게 멈추고 마차 안을 살펴봐도 되느냐는 점창 제자들의 요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난처한 듯한 대주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안에는 귀한 분이 타고 계셔 곤란한데 그냥 지나갈 수는 없겠소이까?”
하지만 대주의 공손한 거절에도 점창의 제자는 직설 화법을 구사하며 안을 살펴볼 수 있게 해달라며 요구해왔다.
“분명 안에서 짐승의 소리가 들려와서 말입니다. 혹시라도 간악한 남만야수궁의 무리를 숨겨주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중원에서 저렇게 직설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흔치 않은데, 확실히 남만야수궁을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모습.
보통 평소의 중원인이라면 ‘좋은 마차인데 내부를 잠시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도 마차를 하나 구해야 하는데 어떤 마차가 좋은지 몰라서 말입니다.’ 또는 ‘안에 귀한 분이 타고 계시다니 꼭 뵙고 인사를 나누고 싶군요.’ 같은 말을 할 텐데 말이다.
“허허, 저희 당문의 체면이 있지 어찌 이리 무례하게···.”
대주가 최후절초로 체면 드립을 시전 했으나, 점창의 제자들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무례에 대한 사과는 나중에 하겠으니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손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어떤 투로 말하고 있는지는 확실했다.
보여주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보겠다는 모습.
[부인 혹시 모르니 면사를 합시다.]
[예, 노공.]
밖에 상황이 난처해 보이자 더는 기다릴 수 없었고 나는 아내에게 면사를 하라고 속삭인 후 밖을 향해 외쳤다.
“대주, 마차를 보여드리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다. 허락하시지요.”
“공자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내 말이 끝나고 마차 뒤쪽 천이 걷히는가 싶더니 머리를 불쑥 내민 두 남자.
-으르르릉
둘은 마차 안을 두리번거리려다가 으르렁거리는 덕구를 보고 화들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으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안에 개! 개가 있습니다!”
“뭐라!”
-채채챙
칼을 뽑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대주의 호통 소리도 들려왔다.
“이게 지금 무슨 짓들인가?! 감히 당문의 마차를 향해 칼을 뽑아 들다니! 당문의 독은 한번 펼쳐지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대충 열받으면 화학무기라도 풀겠다는 듯한 대주의 협박.
대량 학살을 벌이겠다고 외치는 대주의 말에 상황이 쪼끔 후달렸지만 약간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마차 밖을 향해 다시 외쳤다.
“다들 진정들 하시지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나가서 설명하겠습니다!”
밖에다 큰 소리로 외친 이유는 내가 나가니 괜히 잘못해서 쑤시지 말라는 신호.
아내가 내 팔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저러다 밖에서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당문에 면목이 없었다.
어쨌든 빌려온 무사들인데 깨끗하게 사용하고 돌려줘야지 팔다리 한쪽 떨어진 채 돌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모자란 사람을 더 모자라게(?) 만들어 돌려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뭔가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잘 설명하면 될 듯도 했고.
“괜찮소. 내 나가서 설명하면 오해가 풀어질 테니.”
“그러면 저도 나가겠습니다.”
입술을 꼭 문 아내를 바라보자, 이미 손가락 두 개를 엄지손가락에 걸어둔 상태.
탄알 2발 장전 상태였다.
수틀리면 그냥 헤드샷 쳐버리겠다는 듯한 얼굴의 아내를 보니 마음이 불안하면서도 든든했고, 아내와 함께 마차 밖으로 나서며 다시 한번 외쳤다.
“내 나가니 칼들 좀 조심합시다!”
그렇게 마차의 천을 걷고 밖으로 나가자 가장 가까이 있던 점창의 제자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자에게서 개 냄새가 납니다!”
“뭐라! 당문의 대주께서는 이것을 어찌 설명하실 것이오!”
개 냄새가 난다는 말에 뽑은 칼을 전부 내 쪽으로 향하고 나를 잔뜩 경계하는 점창의 제자들.
덕구새키 걸어가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마차 안에서 이 주 정도 같이 굴렀더니 냄새가 조금 밴 모양인데, 애견인인 나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개 냄새가 나는 듯했다.
‘애견인이 개 냄새가 좀 날 수도 있지 거참···’
“아니, 뭔가 조금 오해가 있는 듯한데···”
점창의 제자들을 향해 오해를 풀기 위해 설명하려는데, 어느새 마차에서 뛰어내린 덕구가 내 앞에서 점창의 제자들을 향해 짖었다.
-아르르릉 왈! 왈왈!
그간 밥을 얻어먹었다고 주인을 지키려는 모양새의 덕구.
역시 개는 이럴 때 키운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덕구의 행동에 파도치는 감동.
‘이 새끼 덕구야! 그간 밥을 먹여준 보람도 있게 주인이 위협받는다고 목숨을 걸고 나서다니··· 하지만 덕구 이 새끼야 그러다 뒤져요···’
그렇게 칼 무서운 줄 모르고 점창의 제자들을 향해 덕구가 짖어대자. 점창의 제자들이 까무러칠 것 같은 목소리로 서로에게 호들갑을 떨어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개! 개다!”
“정말 개입니다!”
“남만야수궁! 본문의 원수! 어서 대사형께 알려라!”
제자 중 하나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뭔가 자꾸 오해가 깊어지는 상황.
일단 나는 덕구를 뒤로 불러들였다.
거지새끼들처럼 물어버리면 곤란하니까.
“오해요. 오해, 뭔가 오해가 깊어지는 것 같은데··· 덕구야 쉿! 그러면 못써요. 어허 덕구 그러면 안 돼!”
-왈왈! 왈! 으르르르릉!
덕구를 제지하자 덕구가 으르릉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어째선지 그 모습에 점창의 제자들은 더욱 놀란 목소리로 외쳐댔다.
“개, 개에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개가 사람의 말을 저리 잘 알아듣다니! 분명 야수궁의 사특한 능력이 확실합니다!”
오해를 풀려고 나셨는데 뭔가 점점 오해가 깊어져 야수궁의 일원으로 몰리는 상황이 되고 있었고, 나를 향해 겨누어진 칼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두둑
그런 상황에서 어디 선가에서부터 들려오는 주먹 움켜쥐는 소리.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니, 아내가 아랫입술을 꼭 깨문 채 양손을 모두 움켜쥐고 있었다.
한 손에 네발씩 총 여덟 발이 장전된 아내의 손.
앞에 있는 점창의 무사들도 총 여덟 명.
“지, 진정하시오. 부인!”
화들짝 놀라 아내를 끌어안으며 저지했다.
-화드득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옷깃 휘날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남자가 경공으로 내 앞쪽으로 날아들어 오며 소리쳤다.
“이 무슨 소란인가!? 남만야수궁의 무리가 나타났다고?!”
늘어나는 점창의 제자들.
이러다가 잠창파 전원 여기서 동문회라도 열릴지 모르는 상황.
높은 사람이 도착한 것 같으니 다시 한번 오해를 풀기 위해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저희는 당문과 제갈가에서···”
“어?! 류형?”
“어?! 자네는?”
다행이었다 둘 중, 한 명이 익히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