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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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잉 끼이잉
마차 위에 널브러진 덕구가 아내를 향해 구슬프게 낑낑거리고 있었다.
낑낑거리며 누운 백구의 이마에는 혹이 하나 큼지막하게 나 있는 상태.
“노공, 덕구가 많이 아픈가 봐요.”
덕구의 혹을 피해 머리를 쓰다듬던 아내가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축 늘어져서는 아내를 개들 특유의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며 낑낑거리는 덕구.
아주 불쌍해 보이기로 작정했는지 보이지 않던 눈도 살짝 드러낸 상태였다.
“덕구도 배운 것이 있을 테니 그냥 둡시다. 덕구 너 인마. 그러니까 성질 죽여야 해. 아무한테나 달려들면 되냐? 오늘 너 된장. 아니, 춘장 발릴 뻔한 거 알아?”
덕구가 저리 슬퍼 낑낑거리는 것은 백운에게 덤벼들었다가 검집에 한 대 맞고 침을 흘리며 널브러졌기 때문이었다.
멍청하고 둔해 보인다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덤벼들었다가 처맞은 덕구.
여기는 중원.
조선처럼 소치는 농부가 짐승이라도 들으면 기분 나쁠 테니,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해주는 그런 견격(犬格)적인 대우를 기대하면 안 되는 것.
거지새끼 두 마리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서는 칼 든 무림인한테 달려들었으니 당연한 결과랄까?
하지만 덕구의 그런 돌발행동은 덕구에게 슬픈 헤프닝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점창과 우리의 오해를 푼 것은 나의 여러 가지 설명이 아닌 덕구의 행동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달려든 덕구를 검집으로 뚝배기를 내리쳐 간단하게 제압한 백운이 나에게 웃으며 말한 것.
“이거 남만야수궁의 개가 아닌 것이 확실하군요. 이리 둔해서야···.”
그의 말에 그의 사제들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고. 혀를 빼물고 기절한 덕구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후에는 자연스럽게 점창파의 제자들에게 사과받는 순서로 진행.
백운도 자기 사제들이 큰 결례를 저질렀으니, 나중에 신세 한번 갚겠다는 말을 해왔고, 다음에 만나면 밥이나 한 끼 하자는 인사말을 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백운과 헤어지고 이틀, 우리는 결국 운남의 입구 반지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반지화는 운남으로 들어가는 국경도시답게 병사들이 꽤 많이 보였고, 열대작물들과 과일 채소들이 길가 노점에서 아주 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사고 싶었지만, 일단 숙소를 잡고 다음 일정을 논의했다.
“내일 아침 저희는 운남으로 떠나고, 마차와 두 분은 당문으로 먼저 되돌아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대주와 부대주를 제외한 마차와 무사들, 그리고 덕구는 일단 되돌려 보내기로 했다.
우리가 되돌아갈 때는 운남과 사천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장강을 타고 내려가다가 사천의 동쪽에서 관도를 타는 것이 당문으로 되돌아가기 훨씬 빠르기에 내려진 결정.
그렇게 우리의 운남 밀림 서바이벌이 시작되었다.
***
기기묘묘한 새들과 풀들 그리고 벌레들이 지저귀는 운남의 밀림.
남녀 네 명과 개 한 마리로 이루어진 행렬이 운남의 밀림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촤악 촤아악
앞에서 대도(大刀)를 든 대주가 밀림 속의 넝쿨들을 잘라 길을 내며 앞으로 나서고, 류청운과 제갈청 그리고 당영영이 뒤를 따르는 모습.
그런데 그 행렬 제일 뒤쪽에서 밀림으로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가고 있었다.
-오도독 오독
무엇인가 갈리는듯한 그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은 당영영의 입.
당영영이 환병을 깨물어 먹는 소리였다.
당영영은 벌써 사흘째 환병을 씹으며 대주를 쫓아 운남의 밀림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지만 여름의 운남은 당영영에게도 정말 힘든 곳이었다.
더군다나 할아버지 몰래 가지고 나온 인면피구까지 쓴 상태라서 그런지 그녀에게 운남의 더위는 더욱 뜨겁게 다가왔다.
인면피구(人面皮具) 안으로 느껴지는 흐르는 땀과 열기,
그리고 무더운 날씨와 모기, 거머리.
잘 때도 푹 잘 수 없고, 가죽 한 장을 깔고 선잠.
더군다나 남만야수궁을 찾아 계속 다리를 쉼 없이 움직이느라 배마저 항상 고파왔다.
그렇게 환병을 씹으며 계속 반복되는 정글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멍하니 대주를 쫓아 한참 발길을 옮기는데 뭔가가 허전해졌고, 허전함이 어디서 오는지 깨닫자 어느새 입속에서 환병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당영영은 급하게 품을 뒤져 환병을 찾았다.
하지만 더 이상 품속에서 느껴지지 않는 환병.
‘벌써?’
이틀째에 류청운 몰래 환병을 꺼내 먹다가 들켜 환병을 각자의 몫대로 나눈 것이 문제였다.
“아니, 부대주님 무슨 영영이도 아니고 환병을 벌써 그렇게 드시면 어떡합니까? 아직 얼마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제가 식량은 잘 관리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이거 완전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네. 아니, 무슨 당문의 여자들은 환병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자신을 향해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면박을 준 류가가는 남은 환병을 네 사람 몫으로 나누어 분배해 버렸다.
그리고 사흘째 당영영의 몫으로 남겨진 모든 환병이 그녀의 입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
‘어쩌지?’
다시금 입도 조금 심심 해오고 있었고 배도 살짝 고픈 상태.
아직 저녁은 한참 남았기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앞에서 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쉬어가시죠.”
그의 말과 함께 크게 잘린 풀잎들이 바닥에 깔리고 넷은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허리춤에 찬 표주박 물통을 꺼내 물을 마시며 손으로 부채를 부치며 쉬고 있자 들려오는 가가와 청이의 목소리.
“아이고, 죽겠다. 야수궁인지 뭔지 대체 어디 처박혀있는 건지.”
“노공, 많이 힘드시죠?”
“아니요. 부인은 괜찮소? 남자라면 사십 킬로 행군은···”
“예?! 사십 킬로?”
“아, 사십 리 길은 거뜬하다는 마, 말이었소. 더워서 내 말이 헛나왔구려.”
주변을 살피니 류가가와 청이는 둘이 이야기를 나누라 바빴고 대주는 주변을 살피는 상황.
당영영은 재빨리 류가가를 등지고 앉아 자기가 메고 왔던 급을 꺼내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아직 남은 환병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류청운과 제갈청을 등지고 앉아 대나무로 만든 급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천을 걷어 안쪽을 살피자 드러나는 종이에 싼 무엇인가.
손으로 더듬으며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류가가께서 당문에서 식량을 준비할 때 정글로 식량을 가져가면 쉽게 상할 수 있다며, 넷이 한 번에 먹을 분량을 종이에 싼 후, 그것을 다시 기름 먹은 종이에 싸고 다시 한번 종이로 꼼꼼히 싸두었기에 이렇게 만져보아야 하는 것.
이것이 말린 쌀이라면 손끝에서 모래같이 느껴질 것이지만 환병이라면 딱딱하게 만져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암기를 뿌리던 예민한 손길로 급(笈) 안의 봉투를 더듬었다.
‘이것도 아니고. 아, 이것도 아니고. 진짜 하나도 없나?’
환병을 분배할 때 하나 정도는 빠졌을 수 있겠거니 생각하며 두 번이나 모든 종이를 만져보았지만,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모래 같은 쌀의 느낌.
당영영에게 큰 실망감이 밀려올 때 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들 출발하시지요!”
그만 쉬고 길을 재촉하자는 대주의 말.
‘칫··· 어쩔 수 없나?
당영영은 들키기 전에 종이로 싼 식량 한 개를 품 안에 냉큼 집어넣고 급을 메고 재빨리 일어섰다.
그리고 일행이 다시 길을 나서자, 뒤를 따르며 식량이 든 종이를 조금 찢어 말린 쌀알을 꺼내 조금씩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오독 오도독
이미 다 요리해서 말린 것이라 그런지 딱딱하긴 했지만, 입안에 느껴지는 고소함.
쪄서 말린 쌀은 생각보다 많이 먹을만했다.
’생각보다 맛있는데?‘
-오도독
그렇게 당영영의 입으로 말린 쌀알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한지 두 시진 정도 지난 상태.
끈적한 땀이 이마에서 눈으로 흘러들었다.
따끔거리는 눈과 미칠듯한 습도와 열기.
운남의 밀림은 생각보다 최악이었다.
“아이고 죽겠네.”
눈에 흘러든 땀을 훔치며 다시금 앞서 걷는 대주를 따라 끝도 없는 밀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똑같은 광경.
방향은 맞는 건지 마냥 헤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지경이었다.
우리가 운남으로 들어온 지는 사흘 그리고 남만야수궁이 마지막에 확인되었다는 밀림으로 들어온 지 이틀째였다.
일행은 총 다섯. 네 명의 사람과 개 한 마리.
원래 계획했던 것은 사람 넷이었지만, 계획한 사람 이외에 개 한 마리가 추가된 상태.
반지화에서 운남으로 들어오기 전 덕구를 마차에 태워 무사들과 돌려보내려고 했었지만, 이번에도 덕구는 마차에서 탈출을 감행했고 결국 이곳까지 따라오고 말았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야수궁의 위치를 찾아야 했다.
계획에 없었던 덕구의 밥도 챙겨줘야 했기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식량 소모가 빨랐고. 그런 이유로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했던 것이다.
아, 물론 식량 소모를 가속 시킨 것은 덕구뿐만이 아니었다.
식량 소모의 주된 원인은 아까부터 내 뒤에서 오도독거리는 소리를 내는 부대주.
’아니, 무슨 당영영도 아니고.‘
당문의 여자들은 당문에서 밥을 굶기는 것도 아닐 텐데, 환병만 보면 환장하는 모양인지 부대주도 당영영과 마찬가지로 정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환병을 훔쳐먹다 걸리고 말았던 것.
나중에 살펴보니 거의 사오인 분은 사라진 상태.
서바이벌 상황에서 벌어진 이기적인 행동에 눈물 쏙 빠지게 구박했는데도 불구하고 입 꾹 닫을 시전 한 부대주.
결국 식간에 먹으려 했던 환병만을 각자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다 먹고 나중에 달라기만 해봐라!‘
선두에서 대도로 덩굴을 잘라내며 빽빽한 밀림을 헤치며 앞으로 나서는 대주.
멈추지 않고 들려오는 오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다시금 옮기는데 넝쿨을 헤치며 앞으로 나서던 대주가 뒤를 돌아보고는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물소리가 들리는군요!”
“물이요?!”
물소리가 들린다는 말에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인 제갈청도 내 얼굴을 보며 실시간으로 얼굴이 밝아지고 있었다.
정글에 들어와서 어제는 물가를 찾지 못해 꼬박 이틀이나 씻지 못한 상태.
무척이나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표주박 물통에도 물이 거의 남지 않았기에 대주를 향해 외쳤다.
“어서 가봅시다!”
대주를 앞세우고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자 잠시 후 빽빽하던 정글이 조금 걷히며 드러난 것은 멀리 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고 있는 얕은 계곡물.
발목만 살짝 잠길 정도의 얕은 계곡물이 멀리 산에서부터 청량감 있는 소리를 잔뜩 흘러내리며 우리 앞을 흐르고 있었다.
“오오!”
우리 넷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계곡으로 달려가 물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목으로 넘어가는 계곡의 얼음장같이 시원한 물.
-꿀꺽꿀꺽
“아으··· 시원하다.”
“후··· 저도 좀 지치는데 다행입니다.”
무공을 익힌 대주도 힘들었는지 물을 들이켜고는 한숨을 후하고 내쉬었다.
시원한 물에 더위를 잠시 씻어내며 옆을 보자 아내가 천에 물을 적셔 얼굴을 닦다 나를 보고는 미소를 지어왔다.
“노공, 물이 참 시원합니다.”
“그렇소 정말 시원하구려.”
그렇게 시원한 계곡물에 더위를 씻어내고 계곡물에 발음 담그고 있다가 생각해보니,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물.
대주를 향해 곧바로 떠오른 것을 이야기했다.
“대주님, 저희 물길을 따라 한번 이동해보죠.”
“물길을 말입니까?”
“예, 아무래도 사람이 다른 건 몰라도 물 없이는 살 수 없을 테니까요.”
내 제안에 잠시 생각에 빠졌던 대주는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은 생각 같습니다. 그러면 이제 얼마 후면 해가 질 테니 조금만 걷다 오늘은 이 근처에서 노숙하도록 하죠.”
그렇게 계곡을 따라 한 식경쯤 걸었을까? 여행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갑자기 뒤에서 부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
그렇게 구박해도 입꾹닫을 시전 하더니.
’잠깐만?‘
아까부터 들려오지 않는 오도독거리는 소리.
’이거 설마 벌써 다 처먹고?‘
입꾹닫에서 한입충으로 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부대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려 부대주를 째려보았는데, 부대주는 한 손에는 뭔가를 꾹 쥔 채 불안하고 초조한 듯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뭐지? 어디 아픈가?‘
손에 든 것을 보니 종이.
’아하! 급똥.‘
“볼일이라면 저쪽으로 가서 하시지요. 잠시 기다려 드릴 테니.”
볼일은 저쪽 풀숲에서 보라고 말해주었는데 부대주가 뭔가 쭈뼛거리는가 싶더니 손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뭔가 냄새 날 것 같은 모습에 조금 뒤로 물러나려는데 들려오는 부대주의 목소리.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저기··· 그러니까··· 몸이···”
뭔가 잔뜩 긴장된 목소리.
뭔가 이상해 부대주 쪽으로 다가서자 갑자기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부대주.
“부대주님!”
“부대주님!”
“아가··· 아니, 부대주!”
달려가 아내와 함께 그녀를 부축하자 그녀가 뭔가 답답한 표정으로 자기 가슴을 움켜 쥐고는, 죽립을 벗어 던지고 얼굴에서 뭔가를 뜯어내듯 벗겨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난 얼굴은 땀에 흠뻑 젖은 당영영.
“영영이?!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언니?!”
나를 따라 부대주를 부축했던 아내가 놀란 얼굴로 당영영을 확인하고, 다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동시에 들려오는 망연한 영영이의 목소리.
“가, 가가 사, 살려주세요···”
“그게 대체 무슨?”
그리고 갑자기 고양이가 헤어볼을 토하기 직전처럼 영영이의 몸이 꿀렁거리며 웨이브 치기 시작했다.
“어찌 이러는 것이야?! 당매매!”
’괴질이 나은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 일이냐며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가 자기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영영이의 상태와 행동에 놀라 영영이를 다시금 살피는데, 그녀가 아까부터 손에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손에서 강제로 빼내어 펼쳐보았다.
“이, 이건?!”
영영이가 손에 든 것은 내가 알파미를 포장해둔 포장지인 기름종이.
“이거 사 인분 다 어디 갔어?!”
그때 내 물음에 사라진 알파미가 어디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당영영의 입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며 사라졌던 사 인분 중, 완성된 식사 일 인분이 눈앞에서 생겨났다.
“꾸웨에에에엑!”
“구에에엑!”
“언니!”
덕구가 신이 나서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