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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왕(藥王) (95/344)

약왕(藥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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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의 소수민족들은 각자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데, 개를 끌고 나온 누님은 다행스럽게 중원어를 할 줄 아시는 모양이었다.

말이 통해 다행이라 생각하며 일행들을 바라보자 다들 긴장한 것이 역력한 모습.

아마 아내는 사람을 잡아다 개밥을 준다는 소문에 대한 의혹이 남아있는 모양이었고, 사천의 본거지를 둔 무인인 대주와 당영영은 이십 년 전 깽판 사건도 있으니 바짝 긴장한 모양이었다.

셋의 표정을 보니 셋에게 교섭을 맡기면 사고라도 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모습이었기에, 일단 풀숲에서 나타난 여인이 어느 부족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나서기로 했다.

개를 끌고 온 것으로 보아 킹리적 갓심이 들기는 했지만, 마냥 희망을 품을 수는 없는 일.

우리가 헤매는 정글이 야수궁 사람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장소 근처라지만 운남에는 워낙 소수민족이 다양하고 많으니, 다른 소수민족 사람일 수도 있는 것.

“덕구야! 조용히 하자!”

일단 시끄럽게 짖는 덕구를 일단 조용히 시키고, 손으로 사람들을 제지하는 행동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일단 풀숲에서 나타난 여인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송 사람, 제갈가에서 온. 류청운이라고 합니다.”

“아? 어, 어. 그래. 나는 야수족(野獸族)의 맹희라고 해. 중원인이 개에 이름을 붙여서 데리고 다니다니 신기한 일이네? 그런데 송 사람들이 여기 운남의 밀림에 무슨 일로?”

이상할 정도로 경계심이 없는 모습.

점창파의 반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누님의 인사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니 어째서?!’

다른 건 아니고 일단 그녀가 축씨가 아닌 맹씨라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맹획 놈의 아내가 축융 누님이셨고 저 누님도 그렇다면 축 씨의 혈통.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한편으로 접고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예, 저희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혼자인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지만, 그녀를 안심시킨 것은 내 말이 아닌 뭔가 이상한 논리.

“이상한 사람이 아닌 건 그냥 봐도 알지. 개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으니까.”

“예? 아, 예. 그, 그렇죠. 저는 개를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뭔가 이상한 논리였지만 덕구로 인하여 경계심이 살짝 풀어진 상황.

곧바로 기회를 살려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 예, 사람을 찾아 헤매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야수족이라면 야수궁과는?”

“아, 중원사람들은 우리를 야수궁이라 부른다지?”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오오!”

“드디어 찾았습니다!”

“공자님 말씀대로 하니 금방 찾았군요!”

그녀가 야수궁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모든 일행이 기뻐했다.

이틀뿐이긴 했지만 밀림의 더위와 곤충은 무림 고수들에게도 힘겨웠던 것 같았다.

사람들의 환호가 끝나자 좀 더 당황한 모습이 되신 누님.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굴? 우리 부족 사람을 찾아온 거야?”

경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대체 왜 자기들을 찾아왔는지 궁금한 듯한 물음.

마침 마라의 국물이 졸아 늘어 붙을 것 같기에 국자를 들어 마라룡샤를 한번 휘저어 준 후 누님께 제안했다.

“저희가 마침 식사 중인데, 혹시 아직 식사 전이시면 저희랑 같이 어떻습니까? 식사나 같이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원래 모든 대화는 따듯한 식사와 이루어져야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것.

내 제안에 누님은 눈을 끔뻑거리시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신기한 일이네. 처음 만난 중원인이 식사를 다 권하고. 그래 뭐 그럼 한 끼 대접받아볼까?”

중원사람이 아닌지 체면 화법이 아닌 직설 화법을 구사하시는 누님.

복장만큼 화끈하신 분이었다.

내가 그녀를 한쪽으로 안내해 앉히자 그녀를 따라왔던 백구도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릇이 네 개밖에 없었기에 일단 내 그릇을 비우고 새로 따뜻한 마라롱샤를 그릇에 가득 담아 맹희 누님께 내밀었다.

“자, 여기 룡하를 까서 드시면 됩니다.”

그렇게 식사를 하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찌 먹을만하십니까?”

“응 매콤하니 맛있네, 화초와 마초는 우리 운남의 부족들도 즐겨 먹거든. 그런데 이거 먹으니 술이 생각나는 맛이네?”

정확한 지적이었다.

마라롱샤는 소야지왕(宵夜之王)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 요리.

뜻을 풀자면 밤 요리의 제왕으로 전생에서는 술꾼들이 사랑하는 요리로 알려진 것.

곧바로 급으로 다가가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한 병 가지고 있던 화주(火酒)를 꺼내와 나뭇잎을 접어 술잔으로 만들어 술을 따라 내밀었다.

“저, 술 괜찮으시면 한잔 어떠십니까? 이상한 건 안 들었습니다. 정말로. 지, 진짜로.”

혹시나 오해할까 싶어 뒤에 의심될만한 말을 덧붙이고 말았는데, 그녀의 옆에 앉은 개가 ‘월’하고 살짝 짖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받아들었다.

“그러네? 우리 백화(白花)도 아무것도 없다고 하네?”

그리고는 내가 따라준 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크으··· 좋다.”

맛있는 음식과 술.

분위기가 풀려가는 듯해서 궁금한 것을 물을까 눈치를 보고 있는데, 누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 부족을 찾아온 거야? 아까 내가 야수족 사람이라고 기뻐하던데?”

돌직구로 물어오는 누님.

괜한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받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기에 나도 정직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야수족이 아닌 중원사람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운남의 밀림에서 중원사람을?”

“예, 혹시 약왕(藥王) 어르신이라고 얼마 전에 이 근처에서 약초를 채집하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내 물음에 뭔가 생각에 잠기는 듯한 그녀.

그러고는 그녀가 물어왔다.

“혹시 누가 아파?”

“예? 예.”

“소중한 가족인가 보지?”

그녀의 물음에 아내와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예,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족입니다. 그러니 혹시 어디 계신 줄 알면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아··· 이런···”

뭔가 긴 장탄식을 흘리는 누님.

그 탄식에 어찌 그런 탄식을 흘렸는지 알려달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안타까운 얼굴로 대답했다.

“내 맛있는 요리와 술까지 대접받았고, 남 일 같지 않아 알려주는 것인데···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야···”

“예?! 어, 어째서···”

맹희 누님의 말에 망연하게 되묻자, 그녀가 짜증 난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약왕이라는 그 영감. 순 사기꾼이거든.”

“예?!”

그녀의 대답에 나를 비롯한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했다.

***

약왕(藥王) 장서륜(張瑞崙)은 반년이 넘게 야수궁의 마을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 중이었다.

원래는 독왕과의 대결에서 쓸 여러 가지 약초를 찾아 운남으로 들어왔고, 약초들을 찾아 약으로 쓰기 위해 여러 가지 손질과 과정이 필요해, 독왕과의 승부를 위해서는 약초들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했지만, 병자(病者)를 두고 떠날 수가 없었던 것.

장중경의 후예인 자신이 병자를 두고 물러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왕의 자존심이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대체 차도가 없으니···. 흠흠’

반년 가까이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해 보았으나 차도가 없는 병자들.

더군다나 역병인지 병자들은 가끔 나타났다.

병자들의 증상은 어지러움과 설사, 구토.

심한 병자들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 쉬는 것을 힘들어하거나 황달이 찾아오기도 했다.

며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병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며칠 만에 건강해져서 일어나니 더더욱이 이상한 일이었다.

‘이, 무슨 해괴한 질환인지···’

다행스럽게 요 며칠은 새로운 병자가 생기지 않아 안심하며 야수궁에서 준비해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달려와 외쳤다.

“사기꾼 영감 또 병자요!”

“끄흐읍!”

사기꾼이라는 말에 치솟는 분노.

어쩌다 약왕인 자신이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단 말인가!

속으로 분노하며 자신을 부르러 온 사내를 향해 물었다.

“병자는 데려다 놓았나? 흠흠.”

“그렇소. 얼른 가봅시다. 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남자의 비아냥을 질끈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 약왕은 침과 몇 가지 약을 챙겨 곧바로 남자를 따라 병자가 생기면 모아두는 집으로 향했다.

마을의 산길을 지나 구름이 걸려있는 봉우리 아래 보이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집.

역병일 수도 있기에 병자를 모아두는 곳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지푸라기가 깔린 바닥에 상세가 심각한지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병자.

그리고 병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여자가 병자에게 달라붙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약왕은 다급히 병자에게 다가서며 가족인 여자에게 물었다.

“병세가 나타난 지는 얼마나 되었는가? 흠흠.”

하지만 눈물범벅인 얼굴로 고개를 든 여자는 약왕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약왕을 데려온 남자에게 원망하듯 말했다.

“사기꾼 영감은 뭐 하러 데려오셨습니까?!”

“그냥 죽게 두는 것보다야 사기꾼 영감이 보게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다시 한번 들려오는 사기꾼이라는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

‘이 약왕이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단 말인가?!’

중원에서는 자기의 약 한 첩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보통인데, 이곳 사람들은 자신을 사기꾼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말대로 반년간 아직 한 명의 병자도 치료하지 못했으니까.

‘어쩌다 내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그렇다고 약왕 체면에 물러날 수도 없고···’

약왕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처음 이 괴질을 앓고 있는 환자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독왕과의 대결을 위해 운남으로 들어와 약으로 쓸 몇몇 독초와 운남 밀림 높은 산에서 자란다는 약초를 찾아 밀림을 헤매다 보니 만난 사람들.

“송의 노인이 어찌 운남 밀림에 혼자 돌아다닌단 말이오?”

짐승을 끌고 다니는 모습에서 예상했지만, 그들은 야수궁의 일원이었다.

이십 년 전 새외혈사로 자신을 경계할 만도 했지만, 야수궁의 사람들은 송의 시골 마을 사람들처럼 아주 순박했다.

점창파에 큰 피해를 주고 사천 무림을 전율하게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공을 익힌 흔적으로 보아 무인이 확실한데 시골 촌부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약초를 구하기 위해 밀림에 들어왔소이다. 이거 야수궁의 땅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죄송하오이다. 흠흠.”

“그 무슨 우스운 소리요. 밀림이 어디 야수궁의 땅이란 말이요. 운남 밀림은 모든 부족의 땅이지, 야수궁만의 땅은 아니지. 밀림에는 독충도 많고 노인 혼자 이곳에 둘 수는 없으니 따라오시오.”

“아니,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그렇게 엉겁결에 따라간 새외무림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야수궁은 운남의 다른 여러 부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남의 흔한 소수 부족이 사는 큰 마을의 느낌.

다만 다른 점이라면 짐승들을 아주 많이 키우고 짐승들을 가족같이 사랑한다는 것과 모든 부족원이 무공을 연마하고 익히고 있다는 것.

심지어 짐승까지···.

원래 운남의 밀림에서 약초를 모으기 위해 긴 시간을 보내려 했기에 야수궁의 마을에서 며칠만 묵고 떠나려 했지만, 야수궁 사람들은 자신이 약초를 찾기 위해 왔다는 말에 빈집까지 한 채 내주고 음식도 마련해 주었다.

“아니, 이거 미안해서···.”

“어차피 빈집이고 늙은이가 밀림을 어찌 혼자 돌아다닌단 말이오. 그리고 식사는 어차피 만드는 요리 조금 덜어주는 것뿐이니 괜찮소.”

불편했던 점이라면 체면을 중시하는 중원과 다르게 돌려 말하지 않는 그들의 대화법에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지내다 보니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야수궁에서 마련해준 집에서 묵으며 약초를 모으던 어느 날.

질 좋은 약초를 모아 쪄서 말리고 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집 밖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눈물을 흘리며 한 가족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던 것.

길가에 나와 있던 사람에게 물으니 병자가 생겼다고 알려주었다.

약왕은 곧바로 야수궁주를 찾아갔다.

“병자가 생겼다는데 내가 좀 살펴볼 수 있겠소이까? 흠흠.”

“영감이 말이오?”

“내, 자랑은 아니지만 중원에서 약왕(藥王)이라는 별호를 가진 늙은이. 내가 못 고치는 병은 없으니 그간 베풀어준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해주겠소?”

“오, 그게 정말이란 말이오? 가끔 병자가 생겨 크게 고민이던 차에 잘됐소이다! 빨리 가봅시다!”

그렇게 야수궁주와 함께 찾아간 곳은 병자를 두는 외딴집.

“다들 걱정하지 마시오. 이 노인이 약왕이라는 별호를 가진 노인이었다는 구료! 이제 모든 병자는 이 노인이 고칠 것이니 안심하시오.”

“저, 정말입니까?”

“자 어서 우리 아이를 먼저 봐주십시오. 제일 병세가 심각합니다.”

병자의 가족들이 좌우로 비켜서고 지푸라기 위에 놓인 세 병자가 약왕 앞에 드러났다.

“깨갱깨갱···”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헐떡거리는, 개 세 마리.

“아니, 이게 그러니까···”

약왕 생전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종류의 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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