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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어 (97/344)

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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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흘리며 수많은 장침을 몸에 꽂은 깽깽거리는 개새끼를 돌보고 있는 약왕의 모습에 잠깐 정신이 유체 이탈을 해버렸다.

‘절맥을 치료하시고 불치병을 치료하신··· 약왕이···’

그런 멍한 정신을 파고드는 약왕의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

“오?! 자네 중원인이었구만! 그래, 그렇지! 중원인이니 그리 예의 바른 것이겠지! 그래, 내가 약왕 장서륜! 그 약왕이 바로 내가 맞네! 흠흠.”

자기 별호와 풀네임을 인증이라도 하듯 알려주는 약왕.

‘시바 이거 누님 말씀이 진짠가?’

약왕이 사기꾼이라는 누님과 야수궁주의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팍팍 와 닿았다.

그것은 나조차도 누군가가 나를 질색하는 식룡이라는 별호로 부른다면, 슬쩍 귀밑머리 정도 넘겨주는 것으로 긍정을 표현하지, 저렇게 남들에게 믿어달라는 듯이 자기 별호를 자기 입으로 부끄럽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입으로 자기 별호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림에서는 개 쪽팔린 행동.

‘나 황금 티어요! 나 은 티어요!’ 같은 자랑질은 무림 초출 하위 티어(Tier)들이나 하는 행동이지 약왕이라는 거창한 별호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절대 아니기 때문.

약왕 정도의 별호라면 프로 중에서도 사대천왕 뭐 이런 끝판왕 느낌의 칭호인데, 무림 초출 하위 티어들이나 자기 별호를 자기가 만들고, 마치 남들에게 광고하듯 저런 식으로 말하지 무려 ‘왕’정도 되는 티어에 오르신 분이 되는 분이 저런 행동을 한다?

‘노망이 나지 않고서야···’

당황한 나에게 약왕의 질문이 들려왔다.

“이런 내 너무 주책없이··· 그리운 별호가 오랜만인지라··· 크, 크흠! 그나저나. 그래, 자네는 누구인가? 흠흠.”

약왕의 물음이 들려와 당황한 정신을 부여잡고 대답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제갈세가에서 온 류청운이라 합니다.”

“제갈가? 그런데 제갈가에서 왔다면서 어찌 류 씨인가?”

내가 속으로 자신을 의심한다고 나를 의심하는 것 같은 질문.

언젠가 한 번쯤 누군가에게서 나올만한 질문이었기에 조금 쪽팔렸지만 대답했다.

“크흠··· 아, 저는 제갈가의 접각부입니다.”

내가 쪽팔린 이유는 이게 내 입으로 데릴사위라고 대답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대의 데릴사위라는 것은, 결국 아내의 몸값을 지급하지 못해 처가에서 몸으로 때우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능력 없는 놈 인증이라는 것.

결국 내 입으로 ‘능력 없고 있는 거라고는 몸뿐이라 처가에서 몸으로 때우는 것이 저의 직업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를테면 송 시대의 한량이자 셔터맨, 개 백수 인증이었다.

그러니 접각부라는 사실을 남들이 이야기해도 조금 뭐 팔리는 기분인데, 내 입으로 처음 만난 약왕에게 직접 이야기하자니 부끄러운 것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 ‘한량이자 셔터맨, 개 백수요’라고 대답하려니까···

약왕이 자기 별호를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는 행위만큼 부끄럽다고 할까?

뭐 제갈가라는 큰 가문의 데릴사위이기에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자격지심인 것이다.

하지만 내 부끄러움과는 다르게 약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 그래 제갈가에 딸이 하나 있었지. 이번에 혼례를 올린 것인가? 그 아이가 벌써 그리 컷 구만, 독쟁이 영감 만나러 간 당문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예, 제가 그 제갈가의 딸과 혼례를 올린 것이 맞···”

“깨갱! 깨개갱···”

대화를 이어가려는데 들려오는 개가 깨갱거리는 소리.

약왕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다시금 개에게 달라붙으며 소리쳤다.

“다시 경련인가!? 내 무척 반갑긴 한데 지금 급한 병자가 있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세나. 알겠지? 어디 가지 말고 밖에서 기다리게 어찌 야수궁에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오랜만의 중원인이니 이야기도 나누고 좀 하세.”

“예? 예···”

뭔가 사람이 그리웠다는 듯이 말하는 약왕.

지금까지 만난 독왕, 걸왕, 약왕까지 약간 다 정상이 아닌 듯한 느낌.

하긴 생각해보니 왕이라는 칭호는 한 방면의 십덕 인증이나 마찬가지, 결코 정상일 리가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이니까.

그의 상태를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이미 침이 빽빽한 상태인 개에게 달라붙어 뭔가 엄청난 기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약왕의 손에서 펼쳐지는 신들린 것 같은 침술.

-휘리릭 휙

바람 소리와 함께 영영이가 암기를 날리듯 그의 손에서 날아가 개에게 틀어박히는 침.

은빛의 침들이 공중을 수놓았다.

‘개같이 화려해!’

기술이 얼마나 화려해 보이는지, 사기꾼은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게 또 개를 치료하는 모습이라서 이게 또···

“내 너희를 치료하기 위해 지난 반년 동안 너희들의 혈도를 상세히 파악했느니라! 이번에는 기필코!”

그의 외침에 내 감정이 오르내리고, 의심이 솟구쳤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씨··· 진짜 잘못 찾아왔나?’

하지만 내 그런 마음도 모른 채 진심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약왕.

너무 진심인 모습이기에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나에게 몰려들어 질문을 해대는 아내와 영영이.

“노공, 어찌 되셨나요? 약왕이 맞나요? 사, 사기꾼 아, 아니시죠?”

“가가, 뭐라 하시나요? 우리 청이를 봐주신다고 하던가요? 이상한 분 아니죠?”

둘을 향해 머리를 긁적거리다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약왕께서 혹시 짐승도 치료하시나?”

“예?!”

“가가, 짐승이 뭐라고요?”

“안에서 개를 치료하게 계시는데···”

“?”

“?”

내 개라는 말에 영영이가 되물었다.

“개? 멍멍개? 저거?”

영영이의 손가락 끝에 백화라는 누님의 개와 신나서 뛰어다니는 덕구.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내가 헛간을 나서고 한 시진도 안되 죽고 만 개.

약왕은 어제부터 밤새 개를 치료했다는데 차도가 전혀 없었던 모양이었다.

주인 여자의 슬픔과 원망에 찬 분노를 받는 약왕.

주인 여자가 쌍 물레방아처럼 양팔을 휘두르며 약왕의 가슴을 후려쳤다.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여자의 주먹을 가슴으로 받아내는 약왕.

-파파파파팍

“사기꾼 영감! 고치지도 못할 것이면, 편하게 죽게 놔둘 것이지 우리 호구(虎狗)! 불쌍해서 어쩌누. 엉엉!”

“어허! 노인이 치료는 못 했어도. 자네도 노인이 밤새 돌본 걸 알지 않나? 그 정도만 하세. 고생했소이다 영감.”

“호구야! 엉엉···”

다른 마을 사람들이 여자를 진정시키며 죽은 개와 여자를 끌고 사라졌다.

약왕의 씁쓸한 뒷모습.

어떤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사망한 환자가 개라는 것만 빼면.

“하, 이번에도 실패인가!”

사람들이 개의 사체와 유족들을 끌고 사라지자 약왕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밤새고 욕까지 얻어먹은 약왕이 불쌍할 법도 하지만, 내가 보기엔 못 고친 건 못 고친 것이지만, 개 주인에게 한 소리 들은 것은 약왕의 책임이었다.

약왕 다 좋은데 감성과 멘트가 문제였던 것.

‘미안하네. 내 치료한다고 하긴 했는데···’

저따구로 말하니 원망을 들을 수밖에.

더군다나 유가족을 대하는 감성이 부족했다.

‘거, 침이나 빼둘 것이지.’

원래 의사가 사망 선고를 때릴 때는 침도 다 빼고 편안히 눈감은 모습을 유가족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고, 최소한 그것이 안 되면 살짝 정리라도 해야 하는데, 무슨 응급실에서 수술하다 테이블 데스 한 것 같은 상황에서 환자를 보여주니 그게 사람이든 개든 유족들이 화가 날 수밖에.

개가 아니라 고슴도치 같은 모습을 보여주니 개 주인이 저리 뿔이 난 것이었다.

전생에 의학 드라마를 섭렵했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었다. 원래 무척이나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같은 멘트를 때려줘야 하는 것인데.

그러면 유족들도 저렇게까지는 하지 않는 것인데 그러니 반 이상은 자기 책임이라고 할까?

일단 약왕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하며 일으켰다.

기운도 북돋을 겸 위로까지 담아서.

“어르신 고생하셨습니다. 원래 의학의 발전이라는 것이 수많은 병자의 목숨 위에 쌓아 올려야 하는 것. 오늘은 한목숨을 구하지 못하셨지만, 내일은 두 목숨을 구하시겠지요?”

내 말에 약왕이 언제 의기소침했다는 듯 소리쳤다.

내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래! 그렇지! 류씨 가문의 접각부 제갈청운이라고 했던가? 자네가 뭘 좀 아는구먼. 여기 야수궁 사람들은 착하긴 한데 의술을 모르니. 에잉”

“아니, 제갈가의 접각부 류청운입니다. 약왕님.”

“그래, 그래. 류 제갈. 내 말이 통하는 중원인들을 만나니 이리 반가울 수가! 흠흠.”

‘그래, 잘 데리고 놀다가 제자리에만 가져다 놔라. 류제갈이면 어떻고 제갈청운이면 어떠냐.’

아쉬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처지이니 노인네의 재롱을 받아주며 일단 그의 모옥으로 향하기로 했다.

“약왕 어르신, 어제부터 잠도 한숨 안 주무시고 식사도 거르셨다니 일단 거처로 가시지요. 좀 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러세! 내 좋은 약초로 차를 내겠네. 가세! 저쪽이네! 그나저나 자네 의술을 배운 적이 있었나? 내가 보기에는 자네가 의술을 좀 아는 듯해서 말이야···”

약왕과 그의 모옥으로 향하며 약왕의 자식들 만나면 내 엄히 꾸짖어 주리라 다짐했다.

노인네를 얼마나 외롭게 두었으면 이리 사람이 그리워 투 머치 토커가 되었단 말인가?

불효막심한 놈들이 분명했다.

***

누님은 자기 개와 덕구를 데리고 놀러 간다고 가버리셨고, 우리는 일단 약왕의 모옥으로 향했다.

잠시 후 모옥에 도착해 약왕이 만들어 준 약차를 마시며 우리가 약왕을 찾아온 용건을 꺼내려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가 다짜고짜 하소연을 시작했다.

자신이 왜 이곳에서 사기꾼 영감으로 불리는지를 말이다.

“아니, 나는 그 사람을 치료하는 의술을 배운 것이지 개는 한 번도 치료해본 적 없는데, 다짜고짜 개를 치료해 달라니···”

“그러면 개는 치료해본 적 없다고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어허 이 사람 나 장중경의 후예가 고쳐준다고 이미 큰소리까지 쳤는데, 어찌 말을 번복한단 말인가? 약왕이라는 내 체면도 있고 말이야···”

정말 중원인들은 체면 때문에 나중에 큰일 치를 것임이 분명했다.

“사기꾼 소리 들으시는 것 보다야···”

“크흠··· 뭐 아무튼 그건 그렇고 자네들은 어찌 이곳을 찾아온 것인가?”

난처하니 말을 돌리는 약왕.

그의 말에 당영영이 약왕을 향해 인사했다.

원래 일찌감치 인사를 시키려 했으나 약왕의 입이 멈추지 않아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

“인사가 늦었습니다. 약왕 어르신 저는 당영영이고 저의 조부님의 존함은···”

“내 그 늙은이 이름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돋으니. 알았다. 독쟁이 노인네의 손녀였군? 그러면 옆에는?”

“안녕하십니까? 제갈청이라 합니다.”

“아 그래, 그 눈을 보니 생각이 나는구나. 아버지는 잘 계시고?”

“저를 아십니까?”

“네 당가의 손녀와 너를 어릴 때 한 번 본 적이 있느니라. 그나저나 너희들이 왜 나를 찾아온 것이냐? 독쟁이가 보냈을 리는 없을 것이고?”

약왕의 물음에 내가 아내의 몸 상태를 조심히 말씀드리고 혹시 고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러자 잠시 아내를 진맥하고 운기조식을 해보라는 둥 여러 가지를 지시한 약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건··· 나 말고는 손을 댈 수도 없겠군.”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묻자 턱을 쥐고 대답하는 약왕.

“확답을 줄 수 없겠지만, 시도를 해보려 해도 이곳에서는 안 되겠구나. 치료해보려면 여러 약재와 침들이 필요한데 복주(福州)의 내 본가(本家)라면 모를까? 이곳에서는 힘들겠구나.”

“본가에는 그러면 언제 돌아가실 예정이신지?”

“여기 병자들을 치료할 때까지는 못 떠나겠지. 나 약왕의 체면이 있지 그냥 떠날 수 있겠느냐? 뭐 기다리면 내 이곳 치료가 끝나고 너희를 제일 먼저 봐주마. 어떠냐? 내 말벗이나 해주면서 의술에 관한 이야기도 좀 나누고?”

약왕의 말에 치솟는 분노!

‘지금도 내 몸속에서는 실시간으로 내 분신들이 수십억씩 죽어 나가고 있을 텐데! 개 몇 마리 따위에!’

수의사도 아니면서 자기 전문 분야도 아닌 치료를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노인네.

정말 팔왕 이 인간들 다시는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밖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아아아앙···!”

“이 목소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누님의 목소리에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해보니, 누님이 자기 개인 백화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약왕의 모옥 앞에 주저앉아 계셨고, 덕구가 백화의 얼굴을 계속 핥아주고 있었다.

“맹희 소저? 이 무슨 일이요?”

당황해 맨발로 뛰쳐나가자 누님이 눈물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백화가 갑자기··· 사기꾼 영감 우리 백화 좀···”

나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면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을 잘 안다더니, 사기꾼이라고 비아냥거려도 희망이라도 가져볼 만한 곳은 약왕뿐인 것 같았다.

누님의 품에 안긴 백화를 급하게 확인하자 코도 마른 상태였고 축 늘어진 상태.

약왕이 곧 달려와 백화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침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또 그 병이군···”

그리고 그 순간 누님의 품에 안겨있던 백화가 혈뇨를 흘리기 시작했다.

-줄줄줄

“백화야!”

그 모습에 누님이 울부짖고.

‘어? 이거 어쩌면?’

이거 잘하면 내가 아는 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기꾼 영감에게 계약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약왕 어른 병자 고치면 본가에 돌아가셔서 제 아내 돌봐 주시는 것 확실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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