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단(補血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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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형편이 아주 많이 어려웠다.
그렇기에 내가 특별한 날 먹어 본 음식이면서 가장 비싼 음식은 짜장면.
“넌 무슨 음식이 좋으냐 아들아?”
“나? 짜장면!”
내가 무심코 한마디 뱉었던 것이 우리 집이 중국집을 하게 된 계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자주 사주실 수 없던 아버지는, 결국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짜장만을 만들어 주시려고 친한 친구인 동내 중국집 사장님에게 막걸리 한 주전자를 받아다 주고 짜장면 만드는 법을 배워오셨고.
흔한 소면 국수에 정육점에서 얻어온 돼지비계와 양파, 감자, 얻어온 춘장으로 만들어 주신 짜장면이 아버지의 첫 짜장면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위해 만들던 아버지의 짜장면은 날로 실력이 늘어나셨고, 결국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 할 때쯤 우리 집은 시장 한편에서 모퉁이에 짜장면집을 열게 되었다.
다른 메뉴는 하나도 없는 순수한 짜장면집.
내가 왜 다 죽어가는 누님의 개 앞에서 전생의 우리 짜장면집을 떠올렸는가 하면 나도 누님과 같은 일로 몇 번이나 강아지를 잃어봤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의 첫 짜장면 가게에서 말이다.
짜장면집을 하다 보니 당연히 손님들이 남기는 잔반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내 어린 시절은 남는 잔반은 개를 먹인다는 것이 흔한 생각이었기에 우리도 식당 뒷마당에서 개를 기르기로 했었다.
내 첫 개는 누님의 개처럼 하얀 백구였다.
동내 시장통에서 거금 천 원을 주고 사 온 백구.
개 파는 할머니가 진돗개의 혈통이라는데, 그건 사기가 분명했다.
다리 길이가 먼 치킨 마냥 숏다리인데 진돗개는 무슨 진돗개.
그냥 발바리 똥개 새끼지.
하지만 그런 똥개라도 난 우리 땡칠이가 무척이나 좋았다.
시고르자브종 특유의 똥자루만 한 귀여움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 첫 개 땡칠이는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안 돼 죽어버리고 말았다.
저렇게 누님의 개처럼 혈뇨를 누다가 말이다.
“땡칠아! 끄아아아!”
사온지 이틀 만에 죽고 만 땡칠이.
분명 어제까지 만해도 팔팔하던 녀석이 저녁나절에 갈색 소변을 누는가 싶더니 학교를 다녀오니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던 것.
덕 뿐에 개를 판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아픈 개를 팔았다는 클레임을 받고 다른 개를 한 마리 더 내주었다.
두 번째는 흔하디흔한 누렁이.
그러나 누렁이도 우리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사망.
이번에도 어머니는 개 파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따졌지만, 이번에 돌아온 것은 극딜.
“개가 자꾸 죽는데 아픈 개를 판 것 아니에요?! 할머닛!”
“아니, 이 여편네가 집에 마가 껴서 개가 뒤지는걸. 왜 자꾸 내 탓을 해! 이젠 더 못 줘!”
할머니의 말에 당황한 어머니.
결국 우리 집은 며칠 후 가게에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였었다.
꽤 큰 돈을 주고 말이다.
그렇게 무당이 가게 앞에서 방방 뛰며, 마가 끼니 어쨌느니 하면서 어머니의 쌈짓돈을 털어가고, 며칠 후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사주신 것이 흑구.
그러나 흑구도 며칠 만에 똑같은 증상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여편네 그러니까 내가 차라리 절이나 교회에 가자고 했어! 안 했어?! 그리고 그 돈이면 그 비싸다는 동물병원도 데려갔겠네!”
동물병원은 비싸니 엄두도 못 냈는데 알고 보니 굿판 벌인 비용보다는 훨씬 쌌던 것.
물론 어른들이 마가 꼈다니 어쨌다느니 하니, 어머니 딴에는 혹시라도 나나 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굿판을 벌인 것이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말씀이 백번 천번 맞았다.
그래서 나도 전생하고 십자나 만자 형님을 훨씬 신뢰하는 것.
결국 내 세 번째 개도 그날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나중에 내가 좀 더 자라고 나서 그것이 우리 잘못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개에게 해로운 줄도 모르고 손님들이 남긴 짜장을 남은 밥에 싹싹 비벼, 매 끼니 개에게 한 그릇 뚝딱 시켰으니 개가 뒤지지 않으면 이상했던 것.
내가 잠시 옛 기억에 잠겨있을 때, 내 물음에 약왕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조금 의술을 아는 모양인데. 개를 치료하는 것인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니라. 내가 알아본 바로는 개는 인간의 혈도와 다른 서른두 가지 혈맥을 가지고 있으며 훨씬 더 사람의 피륙보다···”
입만 벌렸다 하면 말을 터진 땜 마냥 쏟아내는 약왕.
저 이야기를 다 듣다 보면 그사이에 누님의 개가 뒤질 것 같아 그에게 되물었다.
“확실히 개를 고치면 제 아내를 치료해 주시는 것이죠?”
“어허, 그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도 그러네···.”
씩 웃으면 그에게 대답했다.
“언제 제가 고친다고 했습니까?”
“응? 그럼 어찌 물어본 것이냐? 흠흠.”
“제가 아니라. 어르신이 고치셔야죠?”
“내, 내가?”
자기가 고쳐야 한다는 말에 당황하며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변한 약왕.
반년 동안 사람들에게 털려 무척이나 후달리는 모양이었다.
“사기꾼이라는 말 그만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약왕의 체면도 살리고···”
내 사기꾼이라는 말에 그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금방 가라앉더니, 그가 약간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기회인데 당연히 혹할 수밖에 없는 것.
“호, 혹시 무슨 방도가? 하지만 나도 못 알아낸 것은 네가? 흠흠.”
“저도 개를 키우는 사람인지라 제가 아는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약조만 해주시면 왜 개들이 아픈지 정도는 알 것도 같고···”
내 알 것 같다는 말에 내 옷을 꽉 움켜쥐고 나를 바라보는 누님.
“제발··· 흐흑···”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며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어주자, 내 개들이 왜 아픈지를 알 것 같다는 말에 약왕이 머뭇머뭇하더니 대답했다.
“크흠. 그놈 참 자신감도. 그래, 뭐 무림의 동량(棟樑)이니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마치 반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좋다! 그러면 내 네가 개들이 왜 저리 아픈지 알려주어 내가 치료할 수 있게 돕는다면, 나도 네 아내를 무슨 일이 있어도 치료해 주마!”
“약조하셨습니다?”
“그래! 나 이 약왕의 체면을 걸고 여기 모든 사람이 증인이다.”
약왕의 확답을 듣자마자 누님께 물었다.
“맹희 소저, 혹시 백화가 어제와 오늘 아침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알 수 있습니까?”
아픈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되묻자 누님이 곰곰이 생각에 빠지는 것같은 표정이 되었고, 누님의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먼저 감초처럼 나선 것은 약왕.
그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아해(兒孩)야 내 식(食)은 당연히 살펴보았느니라. 의술을 익힌 자가 환자가 무엇을 먹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기본. 식에서는 아무것도 찼을 수 없었느니라. 원래 병자가 생기면 무릇 의술을 익힌 자라면 당연히 식을 먼저 살피는 것. 네가 그래도 어디선가 제대로 배운 모양이구나? 하지만 말이다.···”
‘거! 영감 정말··· 말 많네···.’
귀가 고통스럽다며 피를 토할 것 같았다.
하긴 약왕이니 분명 그 정도는 살펴보았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약왕이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이 시대에 분류학이 있을 리도 없거니와 문제가 된 음식이 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누님이 좀처럼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듯하여 일단 누님께 물었다.
당황하면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으니 예상 문제를 뽑아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
“구채(韭菜), 총(蔥), 대산(大蒜), 양총(洋蔥), 산산(山蒜)중 혹시 백화가 먹은 것이 있습니까?”
내 물음에 그제야 곧바로 백화가 무엇을 먹었는지를 떠올린 누님.
누님이 기억이 났는지 놀란 눈을 치켜뜨며 대답했다.
“산산! 산산을 먹었어! 하지만 아침에 요리하다가 아주 조금만 주었는데?”
산산이라면 산마늘을 뜻하는 것으로 달래를 말하는 것.
확실히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은 것 같았다.
무릇 개라는 동물은 인간과 달라 먹는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 법.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다 보면 탈이 날 수 있는 것이 개다.
더군다나 누님이 백화에게 산산을 조금만 먹였다고 했지만, 개들이 상태 이상에 빠질 수 있는 양은 5g 정도.
그러니 사람 기준으로 적은 양은 의미 없었다.
“구채(韭菜), 총(蔥), 대산(大蒜), 양총(洋蔥), 산산(山蒜)?”
내가 열거한 채소들을 곱씹는 약왕.
그가 내가 열거한 채소들의 이름을 되뇌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지금 누님의 개인 백화가 앓고 있는 증상은 개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양파 중독증이었다.
누님의 개는 양파를 먹지 않고 달래를 먹었을 뿐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산산인 달래를 먹은 것이 문제였다.
구채(韭菜 부추), 총(蔥 대파), 대산(大蒜 마늘), 양총(洋蔥 양파), 산산(山蒜 달래)의 공통된 특징은 부추속에 속하는 식물이라는 것.
부추속 식물에는 황 성분이 존재하는데 양파와 파, 부추 등에든 알릴프로필 디설파이드, 마늘에 든 다이알릴 다이설파이드, 다이알릴 트리설파이드등의 황 성분의 물질이 개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들이 양파뿐만 아니라 조심해야 할 채소는 양파, 대파, 쪽파, 마늘, 부추, 달래.
이 식물들에 있는 성분이 개들의 피에 산화적 손상을 줄 수 있고 그런 산화적 손상을 받은 개들의 피는 적혈구가 손상된다.
백화가 혈변을 누는 것도 적혈구가 파괴되어 혈뇨를 흘리는 것.
약왕이 내가 말했던 채소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는지 혼잣말하듯 물어왔다.
“분명 구채(韭菜), 총(蔥), 대산(大蒜), 양총(洋蔥), 산산(山蒜)은 피를 맑게 하는 약으로도 쓰는 것들인데?”
약왕에게 개에 대한 설명과 세포, 적혈구, 산화적 손상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으니 그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야 했는데, 그가 알고 있는 지식 선에서 어떻게든 그를 납득 시켜야 했다.
“약왕 어르신, 약이라는 것을 많이 먹으면 어찌 됩니까?”
“아무리 좋은 약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되는 것. 그걸 물은 것이냐?”
확실히 약왕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고 의술에는 진심이라 그런지 이야기가 술술 잘 시작되었다.
“예, 맞습니다. 어르신. 이 개가 어디가 아픈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개에 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에 대해서?”
“예, 어르신. 개는 사람보다 크기가 작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사람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약이나 채소라도 개에게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으니까요.”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약왕.
“그래, 당연히 그럴 테지 사람도 작은 아이들에게는 약을 달리해야 하니까.”
“그리고 사람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음식이나 약초라도 개에게는 독이 될 수 있지요. 사람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다르다? 그, 그렇지 다르지! 그렇지! 이런 바보 같은··· 내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었다니···”
아무래도 그동안 사람 치료하던 생각으로 반년간 달라붙으셨던 모양.
약왕이 자신 손바닥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그러면 병자가 산산의 독성에 저리된 것이란 말인가?!”
“예, 맞습니다. 어르신. 산산에 들어있는 피를 맑게 하는 약성이 개의 몸에서는 개의 피에 독으로 작용해 피가 묽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혈뇨를 누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약왕이 나를 향해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다급하게 물었다.
원래 양파 중독으로 동물병원에 실려 오는 개 대부분은, 피검사하고 수혈을 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 방법.
하지만 나는 동물의 피에 혈액형이 존재하는지, 또 지금 시대에 어떤 방법으로 수혈을 해줘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치료는 온전히 약왕의 몫.
이제는 그가 자기의 사기꾼 타이틀을 벗기 위해 나서야 할 때였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피가 묽어지면 피를 흘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피를 보충(補充)해주어야 한다는 것뿐.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르신께서 맡겨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내 물음에 약왕이 갑자기 미친놈인 듯 광소(狂笑) 했다.
“크하하하! 내가 누구더냐 나 약왕이니라! 보혈단(補血團) 한 알 아니, 조금이면 되는 일이었거늘 내 반년이나!”
‘그렇지! 보혈단이 있었지?!’
무림 세계 무인들의 상비약 두 가지 중 한 가지.
금창약(金瘡藥), 보혈단(補血團).
금창약이라는 것은 칼이나 날붙이를 쓰는 무림이다 보니 베거나 찔릴 확률이 높으니 생겨난 일종에 신체용 순간접착제.
보혈단은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 수혈 대신 먹는 일종의 긴급 수혈팩 같은 알약.
하도 저희끼리 쑤시고 죽여대니 기형적으로 발달한 두 가지 약품.
약왕은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 들어가 몇 가지 약초와 절구를 가지고 와 인간 믹서기마냥 그것을 갈아대기 시작했다.
“어르신 개는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혹시 몰라 주의 시키니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약왕.
“물론이다. 피를 보하고, 갓난아이와 같은 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무리가 가지 않게 만들 것이니라.”
탈 사기꾼을 하기 위한 약왕의 현란한 손놀림이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