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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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리 백화 살 수 있는 거지? 그렇지?”
나와 약왕의 대화를 듣고 뭔가가 빨리 돌아가는 것을 파악한 누님이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하지만 약왕의 약이 얼마나 빠른 효과를 낼지 알 수 없었고, 백화의 적혈구가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백화가 살지 말지는 모른다는 것.
나는 누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목숨이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끄아아아아···”
내 말에 눈물을 흘리는 누님.
누님이 불쌍해도 어쩔 수 없었다.
괜한 희망을 심어줬다가 아침나절 약왕처럼 물레방아 펀치라도 맞으면, 약왕이야 무림 고수라 상관없겠지만 나의 갈비뼈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니 너무 큰 희망을 품지 못하게 미리 조심시키는 것.
쪼그리고 있다 넘어지면 안 아프지만, 날다 떨어지면 데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저희만 믿으십시오.’라고 말했다가 백화가 죽어버리면, 누님이 가슴을 치면서 ‘살려준다고 했잖아!’라고 말할 것이 뻔한 것.
그러다가 아내처럼 내공이라도 담으면 나는 그냥 피떡 행.
무림인들만 사는 세상에서 허접으로 살려면 사려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전생에 입원하면 의사들이 환자의 증세에 대해서 절대 확답하지 않고, 의학 드라마에서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환자 보호자는 생각보다 무서운 존재였던 것.
“자자, 괜찮을 거예요.”
“그럼요. 가가께서 저리 말씀하셔도 죽어가는 저의 아버지를 구하기도 하셨으니, 그만 슬퍼하시고···”
누님이 하도 구슬프게 우니 영영이와 아내가 누님을 위로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약왕이 손바닥에 침을 퉤퉤 거리며 뱉더니 손바닥 안에서 뭔가를 굴리기 시작했다.
보혈단을 만든다고 했으니 환약을 굴리는 모양인데···
‘침은 대체 왜 뱉는 것인가?’
비위생적인 환약 제조 환경에 경악했지만, 중원에서 이 정도 위생 감각은 흔한 일.
아무래도 ‘중원’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잠시 후 그렇게 환약을 한 알 만들어 온 약왕이 그것을 여덟 조각으로 가르더니 한 조각을 백화의 입속으로 쏙 하고 집어넣었다.
백화의 입속으로 녹아버리듯 사라지는 환약.
약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약왕이 자기를 도와 달라며 부탁해왔다.
“나와 함께 병자를 일단 방으로 옮기세.”
“개를 방으로 말입니까?”
혈뇨까지 눈 상태라 지린내도 좀 나는 상태였는데 서슴없이 방으로 옮기자는 약왕.
내가 개를 아무리 좋아해도 개는 개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는 내 개라는 말에 분노하며 대답했다.
“어허 개라니?! 병자!”
반년 동안 개를 치료하느라 애썼다더니 애견인인 개아범, 다 된 약왕이었다.
***
약왕의 보혈단이 약효를 발휘하는 모양인지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던 백화는 이틀이 지날 때까지 살아있었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으로···
덕구가 그간 좀 친해졌다고 방까지 따라 들어와 백화 옆에 붙어 얼굴을 계속 핥아주고, 백화의 주인인 맹희 누님이 백화에 입에 물을 흘려 넣어주면서 곁을 지켰다.
하지만 오늘로 이틀째.
눈도 붙이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채 백화 옆에 달라붙어 있는 누님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기에
백화 옆에 쪼그려 앉아 자기 무릎에 머리를 처박은 누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맹희 낭자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오시지요. 식사도 하시고 말입니다. 이틀간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백화 옆에 쪼그려 앉은 맹희 누님은 내 말에 미동도 하지 않았고, 나는 약속한 데로 나를 따라 들어온 아내와 영영이를 바라보며 눈짓했다.
내 눈짓에 고개를 끄덕인 둘은 맹희 누님을 양쪽에서 부축하며 말했다.
“이러다 맹희 소저가 먼저 죽겠어요. 백화를 돌보려면 건강해야 하지 않겠어요? 자 어서 가서 식사부터 해요.”
“맞습니다. 자 어서 일어나세요.”
“하, 하지만 백화가···”
그렇게 맹희 누님을 방에서 끌어내 아내와 영영이의 손에 집으로 보내고, 방 밖으로 나가서 맑은 공기를 쐬는데, 마을 사람 교육을 갔던 약왕이 난처한 얼굴로 뛰어왔다.
“자네 나 좀 도와줘야겠네.”
“예?!”
약왕은 내가 알려주었던 개 키울 때 먹이지 말아야 할 음식들을 알려주기 위해서 외출했던 상태.
교육이 이리 일찍 끝나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내 물음에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약왕이 대답했다.
“아, 저놈들이 사기꾼 말은 안 듣겠다고···”
야수궁에서 끝까지 능욕당하는 약왕이었다.
***
“덕구야 백화 좀 잘 돌보고 있어. 형 잠깐 다녀온다 알았지?”
-월!
아침에 약도 먹였고 현재는 백화에게 달리 해줄 것이 없는 상태인지라, 일단 덕구와 백화를 두고 약왕을 따라나섰다.
그사이에 또 다른 개 아니, 병자가 발생 되지 않게 하려면 서둘러 교육을 해야 했던 것.
그렇게 약왕과 야수궁주의 도움을 받아 마을 사람들을 모아 개를 키울 때 먹이지 말아야 할 채소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구채(韭菜), 총(蔥), 대산(大蒜), 양총(洋蔥), 산산(山蒜)은 절대 먹이시면 안 됩니다. 아마 개를 잃으신 분들은 기억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것을 먹고 하루나 이틀 후에 갑자기 아프다가 죽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정말인가? 그것 때문에 그럼 개들이?”
“예, 제가 개를 좋아해 개를 기르다 보니 알게 된 사실입니다. 저도 그것을 알아내느라 개를 세 마리나 잃고 말았지요.”
“저, 저런 세 마리나! 소협 충격이 크셨겠소.”
“생각해보니 저 소협의 말이 맞는 것 같소. 우리 금이도 양총(洋蔥)을 먹고 죽은 것 같소!”
“저런··· 그런 것을 우리에게 그냥 가르쳐 주다니.”
“중원에서 온 의인!”
“반년 동안 사기꾼 노인이 알아내지 못한 것을···. 야수족이 소협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약왕의 말은 의심했지만, 이상하게 내 말은 찰떡같이 믿어주는 사람들.
“아니, 반년이나 같이 산 내 말은 왜 안 믿고···”
“개를 키우는 사람이 개의 목숨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 않소?!”
약왕이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이 개 하나로 통하는 사회.
더군다나 약왕과 나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외모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것.
‘약왕 좀 생긴 것이 메기수염에 약간 간신배같이 생기긴 했지.’
호감형 얼굴은 어디 가나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약왕이 끝까지 사기꾼으로 남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 넘겨준 보혈단으로 그에 대한 평가가 수직으로 상승했던 것.
사람들이 약효에 대해서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믿고 먹여도 좋을 것이라 옆에서 거들고 백화도 치료 중이라는 말에 약왕도 치욕의 불명예를 털어냈다.
일부 사람들이 조금 꺼림직해 하는 눈치였지만 이제 대놓고 약왕을 사기꾼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야수궁 사람들에게 개에게 먹이지 말아야 할 음식에 대한 교육을 끝내자, 사람들은 은혜를 입었다며 어디선가 소를 끌고 와 단박에 때려잡아 그 자리에서 잔치를 시작했다.
잔치는 저녁나절까지 계속되었다.
“청운 소협 좀 더 드시고 가시지요.”
“아닙니다. 맹희 소저의 백화가 아직 아프니 상태를 확인하러 가야 합니다.”
“어이쿠. 나도 그럼 한번 가서 살펴봐야지.”
“어르신은 좀 더 술과 음식을 즐기다 오시지요. 어차피 약은 아침에 먹였고 상세만 보는 것이라면 저만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럴까?”
약왕은 사람들이 권하는 술을 받으며 신이 난 상태였기에 나는 백화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먼저 돌아가기로 했다.
덕구와 둘만 너무 오랜 시간 혼자 둔 것.
그렇게 감사해하는 사람들이 한 상 거나하게 차려준 저녁까지 먹고 돌아왔는데 약왕의 모옥은 아직 어두웠다.
아마도 아내와 영영이가 맹희 누님을 잘 케어하고 있는 모양.
혹시 늦은 시간 돌아올지도 모르는 아내와 영영이, 누님을 위하여 일단 집 밖에 있는 등롱에 불을 붙이기로 했다.
-후후
약왕의 모옥에 있는 부엌에서 화섭자를 찾아 등롱 두 개에 불을 붙여 문 입구에 걸고 등잔 하나에 붙을 붙여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헥헥헥헥
가쁘게 숨을 쉬는 소리와 헐떡이는 소리.
그리고 뭔가 뜨거운 공기.
‘설마 상태가 나빠진 것인가?’
“덕구야 백화를 잘 지키고 있었느냐?”
방 안에 있을 덕구를 향해 물었으나 들려오는 것은 헐떡이는 소리뿐.
-헥헥헥헥
‘뭐지?’
이상한 느낌에 어두운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등잔을 비추자 방 한쪽 구석 덕구의 모습이 드러났다.
백화 옆에 딱 붙어서 얼굴을 핥아주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서 있는 덕구의 모습.
그리고 등잔을 백화 쪽으로 비추자 자리에 보이지 않는 백화.
“뭐야 얘 어디 갔어?”
깜짝 놀라 등잔을 이리저리 비추자 백화의 상태가 좋아졌는지 백화도 덕구 뒤에 일어서있는 상태였다.
“오! 백화 너도 일어났··· 더, 덕구 이 새끼!”
두 마리 개의 모습에 깜짝 놀라 등잔을 떨어트릴 뻔하고 말았는데, 때마침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노공, 안에 계십니까?”
“가가, 저희 왔어요.”
아내와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면 맹희 누님께서도 왔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대로 밖으로 후다닥 달려 나가 문 앞에 서서 세 여자를 향해 말했다.
“와, 왔소? 부인. 여, 영영이도 왔느냐? 맹희, 소저도 오셨소이까?”
“예, 저희 왔습니다. 노공, 저희가 식사를 챙겨왔는데 식사나 같이하시지요.”
“그, 그렇소? 고, 고맙소이다.”
아내가 광주리 같은 곳에 식사를 담아왔기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바로 옆에서 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비켜주겠어?”
맹희 누님이 내 바로 앞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미 한 손은 문고리를 잡아 쥐고 있는 상황.
몸으로 필사적으로 누님을 막아서며 말했다.
“그, 맹희 소저, 내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자, 잠시 시간을 내주겠소?”
“일단 백화부터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자, 잠깐이면 되니 일단 저와 먼저 이야기를 좀 나누는 것이···”
누님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눈치 없는 영영이가 초를 치듯 말했다.
아니, 눈치가 있는데 일부러 나를 곤란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가가 왜 문 앞을 막고 그러세요? 못 들어가게 하려는 것처럼?”
‘영영아! 제발! 눈치 좀! 이건 아니잖아!’
영영이의 말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자, 내 표정과 그런 영영이의 말에 커지는 맹희 누님의 눈동자.
그녀가 손을 떨며 내 어깨를 붙잡더니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나, 나는 괜찮아. 괜찮으니까. 비켜줘. 문 너머에 무, 무슨 일이 벌어졌더라도 괜찮으니까. 비켜줘. 마음의 준비 충분히 했으니까.”
“하, 하지만 소저. 마, 마음의 준비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그 다른 것이고···.”
그녀가 무슨 마음의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안의 광경은 그녀가 예상한 것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나조차 극도로 당황했는데 세분이 거길 들어간다?
“노공, 저희가 같이 들어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에 아내까지 거드는 상황.
아내에게 눈빛으로 이건 절대 아니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그렇게나 잘 통하던 우리의 마음에 어째선지 지금은 통하지는 않았고, 아내는 나를 향해 괜찮다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저희가 같이 있어 드릴게요.”
“맞아요. 기운 내세요.”
“괜찮아. 마음의 준비는 했으니까.”
결국 맹희 누님이 손을 들어 나를 천천히 밀어내고, 영영이가 내 손에 있는 등잔까지 빼앗아 셋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
“!”
“!”
그리고 정적.
잠시 후 방안으로 들어 선지 얼마 되지 않아 셋은 새빨개진 얼굴로 밖으로 걸어 나와 내 옆 의자에 멍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나는 달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 건강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내 물음에 멍한 얼굴의 세 여자의 고개가 사정없이 끄덕여졌다.
“잠시 저대로 두시죠···”
그리고 내 제안에 다시 한번, 세 여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덕구, 이 부러운 새끼··· 이제 누님한테 뭐라고 불러야 하나? 사돈?’
개 사돈도 사돈은 사돈이었다.
“우, 우리 백화 살 수 있는 거지? 그렇지?”
나와 약왕의 대화를 듣고 뭔가가 빨리 돌아가는 것을 파악한 누님이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하지만 약왕의 약이 얼마나 빠른 효과를 낼지 알 수 없었고, 백화의 적혈구가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백화가 살지 말지는 모른다는 것.
나는 누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목숨이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끄아아아아···”
내 말에 눈물을 흘리는 누님.
누님이 불쌍해도 어쩔 수 없었다.
괜한 희망을 심어줬다가 아침나절 약왕처럼 물레방아 펀치라도 맞으면, 약왕이야 무림 고수라 상관없겠지만 나의 갈비뼈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니 너무 큰 희망을 품지 못하게 미리 조심시키는 것.
쪼그리고 있다 넘어지면 안 아프지만, 날다 떨어지면 데미지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저희만 믿으십시오.’라고 말했다가 백화가 죽어버리면, 누님이 가슴을 치면서 ‘살려준다고 했잖아!’라고 말할 것이 뻔한 것.
그러다가 아내처럼 내공이라도 담으면 나는 그냥 피떡 행.
무림인들만 사는 세상에서 허접으로 살려면 사려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전생에 입원하면 의사들이 환자의 증세에 대해서 절대 확답하지 않고, 의학 드라마에서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환자 보호자는 생각보다 무서운 존재였던 것.
“자자, 괜찮을 거예요.”
“그럼요. 가가께서 저리 말씀하셔도 죽어가는 저의 아버지를 구하기도 하셨으니, 그만 슬퍼하시고···”
누님이 하도 구슬프게 우니 영영이와 아내가 누님을 위로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약왕이 손바닥에 침을 퉤퉤 거리며 뱉더니 손바닥 안에서 뭔가를 굴리기 시작했다.
보혈단을 만든다고 했으니 환약을 굴리는 모양인데···
‘침은 대체 왜 뱉는 것인가?’
비위생적인 환약 제조 환경에 경악했지만, 중원에서 이 정도 위생 감각은 흔한 일.
아무래도 ‘중원’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잠시 후 그렇게 환약을 한 알 만들어 온 약왕이 그것을 여덟 조각으로 가르더니 한 조각을 백화의 입속으로 쏙 하고 집어넣었다.
백화의 입속으로 녹아버리듯 사라지는 환약.
약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 약왕이 자기를 도와 달라며 부탁해왔다.
“나와 함께 병자를 일단 방으로 옮기세.”
“개를 방으로 말입니까?”
혈뇨까지 눈 상태라 지린내도 좀 나는 상태였는데 서슴없이 방으로 옮기자는 약왕.
내가 개를 아무리 좋아해도 개는 개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는 내 개라는 말에 분노하며 대답했다.
“어허 개라니?! 병자!”
반년 동안 개를 치료하느라 애썼다더니 애견인인 개아범, 다 된 약왕이었다.
***
약왕의 보혈단이 약효를 발휘하는 모양인지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던 백화는 이틀이 지날 때까지 살아있었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으로···
덕구가 그간 좀 친해졌다고 방까지 따라 들어와 백화 옆에 붙어 얼굴을 계속 핥아주고, 백화의 주인인 맹희 누님이 백화에 입에 물을 흘려 넣어주면서 곁을 지켰다.
하지만 오늘로 이틀째.
눈도 붙이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채 백화 옆에 달라붙어 있는 누님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기에
백화 옆에 쪼그려 앉아 자기 무릎에 머리를 처박은 누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맹희 낭자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오시지요. 식사도 하시고 말입니다. 이틀간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백화 옆에 쪼그려 앉은 맹희 누님은 내 말에 미동도 하지 않았고, 나는 약속한 데로 나를 따라 들어온 아내와 영영이를 바라보며 눈짓했다.
내 눈짓에 고개를 끄덕인 둘은 맹희 누님을 양쪽에서 부축하며 말했다.
“이러다 맹희 소저가 먼저 죽겠어요. 백화를 돌보려면 건강해야 하지 않겠어요? 자 어서 가서 식사부터 해요.”
“맞습니다. 자 어서 일어나세요.”
“하, 하지만 백화가···”
그렇게 맹희 누님을 방에서 끌어내 아내와 영영이의 손에 집으로 보내고, 방 밖으로 나가서 맑은 공기를 쐬는데, 마을 사람 교육을 갔던 약왕이 난처한 얼굴로 뛰어왔다.
“자네 나 좀 도와줘야겠네.”
“예?!”
약왕은 내가 알려주었던 개 키울 때 먹이지 말아야 할 음식들을 알려주기 위해서 외출했던 상태.
교육이 이리 일찍 끝나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내 물음에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약왕이 대답했다.
“아, 저놈들이 사기꾼 말은 안 듣겠다고···”
야수궁에서 끝까지 능욕당하는 약왕이었다.
***
“덕구야 백화 좀 잘 돌보고 있어. 형 잠깐 다녀온다 알았지?”
-월!
아침에 약도 먹였고 현재는 백화에게 달리 해줄 것이 없는 상태인지라, 일단 덕구와 백화를 두고 약왕을 따라나섰다.
그사이에 또 다른 개 아니, 병자가 발생 되지 않게 하려면 서둘러 교육을 해야 했던 것.
그렇게 약왕과 야수궁주의 도움을 받아 마을 사람들을 모아 개를 키울 때 먹이지 말아야 할 채소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구채(韭菜), 총(蔥), 대산(大蒜), 양총(洋蔥), 산산(山蒜)은 절대 먹이시면 안 됩니다. 아마 개를 잃으신 분들은 기억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저것을 먹고 하루나 이틀 후에 갑자기 아프다가 죽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정말인가? 그것 때문에 그럼 개들이?”
“예, 제가 개를 좋아해 개를 기르다 보니 알게 된 사실입니다. 저도 그것을 알아내느라 개를 세 마리나 잃고 말았지요.”
“저, 저런 세 마리나! 소협 충격이 크셨겠소.”
“생각해보니 저 소협의 말이 맞는 것 같소. 우리 금이도 양총(洋蔥)을 먹고 죽은 것 같소!”
“저런··· 그런 것을 우리에게 그냥 가르쳐 주다니.”
“중원에서 온 의인!”
“반년 동안 사기꾼 노인이 알아내지 못한 것을···. 야수족이 소협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약왕의 말은 의심했지만, 이상하게 내 말은 찰떡같이 믿어주는 사람들.
“아니, 반년이나 같이 산 내 말은 왜 안 믿고···”
“개를 키우는 사람이 개의 목숨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 않소?!”
약왕이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이 개 하나로 통하는 사회.
더군다나 약왕과 나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외모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것.
‘약왕 좀 생긴 것이 메기수염에 약간 간신배같이 생기긴 했지.’
호감형 얼굴은 어디 가나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약왕이 끝까지 사기꾼으로 남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 넘겨준 보혈단으로 그에 대한 평가가 수직으로 상승했던 것.
사람들이 약효에 대해서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믿고 먹여도 좋을 것이라 옆에서 거들고 백화도 치료 중이라는 말에 약왕도 치욕의 불명예를 털어냈다.
일부 사람들이 조금 꺼림직해 하는 눈치였지만 이제 대놓고 약왕을 사기꾼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야수궁 사람들에게 개에게 먹이지 말아야 할 음식에 대한 교육을 끝내자, 사람들은 은혜를 입었다며 어디선가 소를 끌고 와 단박에 때려잡아 그 자리에서 잔치를 시작했다.
잔치는 저녁나절까지 계속되었다.
“청운 소협 좀 더 드시고 가시지요.”
“아닙니다. 맹희 소저의 백화가 아직 아프니 상태를 확인하러 가야 합니다.”
“어이쿠. 나도 그럼 한번 가서 살펴봐야지.”
“어르신은 좀 더 술과 음식을 즐기다 오시지요. 어차피 약은 아침에 먹였고 상세만 보는 것이라면 저만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럴까?”
약왕은 사람들이 권하는 술을 받으며 신이 난 상태였기에 나는 백화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먼저 돌아가기로 했다.
덕구와 둘만 너무 오랜 시간 혼자 둔 것.
그렇게 감사해하는 사람들이 한 상 거나하게 차려준 저녁까지 먹고 돌아왔는데 약왕의 모옥은 아직 어두웠다.
아마도 아내와 영영이가 맹희 누님을 잘 케어하고 있는 모양.
혹시 늦은 시간 돌아올지도 모르는 아내와 영영이, 누님을 위하여 일단 집 밖에 있는 등롱에 불을 붙이기로 했다.
-후후
약왕의 모옥에 있는 부엌에서 화섭자를 찾아 등롱 두 개에 불을 붙여 문 입구에 걸고 등잔 하나에 붙을 붙여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헥헥헥헥
가쁘게 숨을 쉬는 소리와 헐떡이는 소리.
그리고 뭔가 뜨거운 공기.
‘설마 상태가 나빠진 것인가?’
“덕구야 백화를 잘 지키고 있었느냐?”
방 안에 있을 덕구를 향해 물었으나 들려오는 것은 헐떡이는 소리뿐.
-헥헥헥헥
‘뭐지?’
이상한 느낌에 어두운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등잔을 비추자 방 한쪽 구석 덕구의 모습이 드러났다.
백화 옆에 딱 붙어서 얼굴을 핥아주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서 있는 덕구의 모습.
그리고 등잔을 백화 쪽으로 비추자 자리에 보이지 않는 백화.
“뭐야 얘 어디 갔어?”
깜짝 놀라 등잔을 이리저리 비추자 백화의 상태가 좋아졌는지 백화도 덕구 뒤에 일어서있는 상태였다.
“오! 백화 너도 일어났··· 더, 덕구 이 새끼!”
두 마리 개의 모습에 깜짝 놀라 등잔을 떨어트릴 뻔하고 말았는데, 때마침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노공, 안에 계십니까?”
“가가, 저희 왔어요.”
아내와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면 맹희 누님께서도 왔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대로 밖으로 후다닥 달려 나가 문 앞에 서서 세 여자를 향해 말했다.
“와, 왔소? 부인. 여, 영영이도 왔느냐? 맹희, 소저도 오셨소이까?”
“예, 저희 왔습니다. 노공, 저희가 식사를 챙겨왔는데 식사나 같이하시지요.”
“그, 그렇소? 고, 고맙소이다.”
아내가 광주리 같은 곳에 식사를 담아왔기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바로 옆에서 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비켜주겠어?”
맹희 누님이 내 바로 앞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미 한 손은 문고리를 잡아 쥐고 있는 상황.
몸으로 필사적으로 누님을 막아서며 말했다.
“그, 맹희 소저, 내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자, 잠시 시간을 내주겠소?”
“일단 백화부터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자, 잠깐이면 되니 일단 저와 먼저 이야기를 좀 나누는 것이···”
누님이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눈치 없는 영영이가 초를 치듯 말했다.
아니, 눈치가 있는데 일부러 나를 곤란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가가 왜 문 앞을 막고 그러세요? 못 들어가게 하려는 것처럼?”
‘영영아! 제발! 눈치 좀! 이건 아니잖아!’
영영이의 말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자, 내 표정과 그런 영영이의 말에 커지는 맹희 누님의 눈동자.
그녀가 손을 떨며 내 어깨를 붙잡더니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나, 나는 괜찮아. 괜찮으니까. 비켜줘. 문 너머에 무, 무슨 일이 벌어졌더라도 괜찮으니까. 비켜줘. 마음의 준비 충분히 했으니까.”
“하, 하지만 소저. 마, 마음의 준비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그 다른 것이고···.”
그녀가 무슨 마음의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안의 광경은 그녀가 예상한 것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나조차 극도로 당황했는데 세분이 거길 들어간다?
“노공, 저희가 같이 들어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거기에 아내까지 거드는 상황.
아내에게 눈빛으로 이건 절대 아니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그렇게나 잘 통하던 우리의 마음에 어째선지 지금은 통하지는 않았고, 아내는 나를 향해 괜찮다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저희가 같이 있어 드릴게요.”
“맞아요. 기운 내세요.”
“괜찮아. 마음의 준비는 했으니까.”
결국 맹희 누님이 손을 들어 나를 천천히 밀어내고, 영영이가 내 손에 있는 등잔까지 빼앗아 셋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
“!”
“!”
그리고 정적.
잠시 후 방안으로 들어 선지 얼마 되지 않아 셋은 새빨개진 얼굴로 밖으로 걸어 나와 내 옆 의자에 멍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나는 달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 건강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내 물음에 멍한 얼굴의 세 여자의 고개가 사정없이 끄덕여졌다.
“잠시 저대로 두시죠···”
그리고 내 제안에 다시 한번, 세 여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덕구, 이 부러운 새끼··· 이제 누님한테 뭐라고 불러야 하나? 사돈?’
개 사돈도 사돈은 사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