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復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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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너라!”
갑자기 밖에다 대고 소리치는 약왕.
약왕의 소리에 내 처소의 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젊은 사내 하나가 쟁반에 김이 나는 대접 하나를 받쳐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
식사를 가져다주려면 시비들을 시키면 될 일이었는데, 들어온 남자는 이십 대 초반의 남자로 뭔가 살짝 상기된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식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갑자기 음식이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몸이 허해서 챙겨주는 간식인가?’
음식을 가지고 들어오는 자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기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장진(張眞) 공자? 공자께서 어째서 직접?”
“오오, 기억하고 계셨군요!”
장의문에 들어설 때 반년 만에 나타난 제 할아버지의 모습에 염라대왕이라도 만난 듯, 이상할 정도로 기겁했던 약왕의 손자 장진이었다.
그는 자기가 가져온 대접을 내 앞에 가져다 놓더니, 뭔가 한껏 기대된다는 모습으로 내 옆에 시립 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장진의 모습과 약왕의 손자가 직접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는데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약왕이 입을 열어 자기 손자가 가지고 온 음식을 나에게 권했다.
“일단 진이가 가져온 요리를 들어보겠나?”
뜬금없는 때에 뜬금없는 요리이긴 했지만, 일단 성의를 봐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수저를 들어 대접 안에 담긴 음식을 확인했다.
‘응?’
“오, 이것이 거한교이탕(祛寒嬌耳湯)인 모양이군요?”
시커먼 국물에 교자가 둥둥 떠 있는 국물 요리.
아마 자기 손자를 부르기 전에 나에게 거한교이탕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봐서는 내 앞에 있는 요리는 거한교이탕이 확실했다.
원래 거한교이탕은 약왕의 선조인 장중경이 동상과 감기에 걸린 환자를 위해 만든 요리.
장사 태수 관직에서 물러나 자기 고향인 남양으로 올라간 장중경이, 북방의 추운 날씨에 빨갛게 동상에 걸린 귀로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감기 걸린 이들이 불쌍해 만들었다는 요리인 것이다.
아마 감기에 걸린 나를 위해 준비한 모양인 듯하여 별생각 없이 숟가락을 들고 교자를 하나 떠 국물과 함께 입안에 집어넣었다.
-후후, 후루룩
따듯한 국물과 함께 느껴지는 교자의 맛.
약이 되는 요리라니 기대감이 솟았지만.
-우욱!
곧바로 구역질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감기로 인하여 떨어진 후각 때문에 그제야 국물에서 진한 한약 냄새가 솟아올랐다.
느껴지는 구역질에 그릇 안을 자세히 확인하니 황천(黃泉)의 하수구에서 건져 올린 듯한 검은 국물은 탕약을 그대로 옮겨둔 것이었고, 그 속에 교자를 넣고 끓인 것.
쌍화탕에 교자를 넣고 끓인 그야말로 괴식(怪食) 이었다.
구역질했다는 사실에 당황해 약왕과 그의 손자를 바라보자, 약왕은 인상을 쓰고 고개를 젓고 있었고 그의 손자는 실망스러운 얼굴이 되어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감풍(感風) 때문에 기, 기침이.”
집주인의 체면을 손상할까 싶어 다급히 변명했지만, 약왕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쯧쯧, 아닐세. 그래, 맛이 어떤가?”
“맛이 정말 개같 아니, 족같 아니, 크흠. 몸이 아주 건강해지는 맛이었습니다.”
약왕의 물음에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자 약왕이 다시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체면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면 괜찮네, 자네가 가진 요리의 식견으로 평가받으려 하는 것이니, 가감 없이 느낌을 소상히 말해주면 좋겠네. 흠흠.”
“가, 가감 없이 말입니까?”
조심스레 되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약왕.
하지만 곤란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나는 요리에 진신인 남자.
다른 평가라면 부드럽게 이야기해줄 수 있지만 요리에 대한 평가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나의 자존심이자 나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어르신 제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요리에 관한 평가라면 그, 뭐랄까 이야기가 좀 날카로워진다고 할까? 아무래도 요리라는 것은 저의 그···.”
요리사들은 요리에 관련된 일이라면 귀신이 되어버리는 저주를 받고 태어난 자들, 세 치 혀끝으로 누군가를 자살로 몰고 갈 수 있기에 조심스레 우려를 표했지만, 약왕은 완고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아마 누가 나에게 자신의 의술에 대해 평가해달라 한다면 나도 비슷하게 말할 테지, 사람을 구하는 의술인데 어찌 그따위로 하겠냐며. 내 다 이해하니 괜찮네. 자네 나이에 무술이 아닌 요리로 식룡이라는 별호를 얻어냈다면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지. 가감 없이 부탁하네. 흠흠.”
나는 약왕과 그의 손자인 장진의 눈치를 보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단, 저도 요리를 만드는 자인지라 거한교이탕은 조금 들어보았습니다. 동상이 걸린 자들이 먹으면 귀가 뜨거워지고 땀이 솟는다 알려진 요리라 알고 있습니다.”
“그래, 맞네. 자네 조금 들은 것이 아니라 아주 자세히 알고 있구만?”
약왕이 내 말에 조금 자부심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솔직히 중원 프리미엄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긴 했지만, 전생의 내가 살던 시대에 알려진 내용이 저 정도.
무슨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귀에 김을 뿜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말이긴 했는데, 뭐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 비슷한 느낌이 드니 그 정도야 그렇다 치고.
“그런데, 지금 나온 거한교이탕은 그, 뭐랄까?”
“가감 없이, 가감 없이 하게. 흠흠.”
내가 눈치를 보며 주저하자 손짓까지 하며 나를 재촉하는 약왕.
그의 손짓에 탄력받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그 요리라는 것은 사람이 먹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저것이 진짜 거한교이탕이 맞습니까? 저건 뭐랄까? 아까 제게 약으로 가져다주신 쌍화탕(雙和湯)에 단지 교아(餃兒)를 넣고 삶은 것일 뿐인데, 일단 교아를 싼 밀가루 반죽은 너무 두꺼워 익지 않은 부분이 있었으며, 안의 고기는 핏물을 잘 빼지 않아 누린내가 너무 심했습니다. 한입 씹자 교아의 맛과 쌍화탕이 어우러져 환장할 맛이랄까? 사람이 절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닙니다. 이 음식을 요리 한자는 정말 요리를 처음 해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군요.”
탄력받아 궁서체로 한 오천 자쯤 열변을 토해내려다 일 절에서 간신히 끊어내자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약왕에게 미소를 지은 채 조심스레 말했다.
“가, 가감 없이···.”
그러자 들려오는 울음소리.
“끄흡··· 끄아아아···”
‘서, 설마 장 공자가 직접?’
내 옆에 그의 손자가 장진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처소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무래도 내가 먹은 거한교이탕은 장진이 직접 만들어 온 모양.
당황해 그가 사라진 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자 약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녀석! 이 정도 말도 견디지 못하고 손님 앞에서! 흠흠!”
약왕이 맘에 안 든다는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약왕이야 젊은 시절부터 워낙 천재 그런 느낌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하니, 범인들이 깨지고 일어서는 그 고단한 과정에 공감할 리가 없기에, 조심스레 그에게 권했다.
“그, 안 따라가 보셔도 됩니까?”
“제깟 녀석 좀 울다 말겠지. 왜 그러나?”
“보통 저렇게 달려 나간 자들은 제가 그간의 통계로 미루어 보면, 통상적으로다가 우물을 찾게 되는 뭐 그런 경향이 있는 듯하여···”
“우물? 무슨 갑자기 우물은··· 허허허···?”
약왕이 나를 바라보고 무슨 갑자기 우물 타령이냐며 웃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진이 이 녀석! 진이 못 봤느냐!?”
“좀 전에 우물 쪽으로 달려가시던걸요?”
하인의 아주 밝은 목소리가 여운처럼 남겨졌다.
***
다행스럽게 사나이라 그런지 장진은 우물 다이빙까지는 시도하지는 않았다.
눈물 짠 게 쪽팔려 우물로 얼굴을 씻으러 간 것일 뿐.
아무튼 그는 얼마 후 그의 할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다시 내 전각으로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식룡.”
퉁퉁 불어있는 눈으로 사과하는 장진.
“아니오. 나도 말이 심했소이다.”
“아닙니다. 가르침을 주시는데 눈물을 보이다니, 송구합니다. 훌쩍.”
아무튼 장진도 어느 정도 진정되었기에 감기에 힘들어 죽겠는데 찾아와 쉬지도 못하게 하는 둘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아까 무슨 부탁이 있으시다고?”
“아, 그래. 그 이야기를 해야지.”
약왕이 내 물음에 이제야 본격적으로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네도 먹어봤겠지만, 우리 가문의 장기 중경 어르신께서 창시하신 거한교이탕은 현재 실전된 상태라네.”
“실전 말입니까? 그럼 제가 먹은 것은?”
“그것은 남겨진 비법을 바탕으로 진이가 재현해 본 것이라네.”
“아니, 비법을 바탕으로 재현했는데 어찌 저런? 아니, 저런 이 아니고···”
당황해 헛나온 말을 취소하려 할 때 약왕이 그의 손자에게 턱짓하자 손자인 장진이 품에서 서책 하나를 꺼냈다.
손때 가득한 오래된 서책.
장진이 그것의 한쪽을 펴 공손히 내 쪽으로 내밀었다.
아마도 거한교이탕의 비법이 적혀있는 책인 모양.
조심스레 물었다.
“비법이라면 제가 함부로 보아서는 안 될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괜찮네, 그 의서야 이미 많은 사람이 본 책이고, 뒤에 적혀있는 것은 거한교이탕의 비법인데 크게 비밀이 아니니까 말이야.”
하긴 생각해보니 백성들 만들어 먹으라고 뿌린 레시피인데 딱히 비밀은 아닐 것 같아 서책을 끌어와 내용을 확인했다.
『거한교이탕 : 교아를 만들어 탕을 끓이는 것. 감풍에 잘 듣는 탕약과 양고기를 사용함.』
개같이 심플한 레시피.
당황스러운 얼굴로 약왕을 바라보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요리는 아무래도 집안의 여자들이 하는 것이라 따로 비책을 관리하지 않았더니 어느 순간 실전되어 남은 거라고는 그 기록이 전부라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왜 그가 실전되었다고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하긴 이 시대의 요리는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만드는 것이고, 요리라면 당연히 여자들에게 비법이 전해졌을 것이 뻔했다.
내가 살던 현대에도 문맹률이 높은 중원이었는데, 삼국시대와 송대라면 그 문맹률은 더 높을 것이고 더군다나 따로 교육받지 않는 여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터.
그리고 실전을 가속했을 사회적 배경.
북방의 목초지를 모두 잃은 송나라는 알다시피 양을 모두 전량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기에 양은 무척이나 비싼 동물.
고기로 먹는 짐승 중에 제일 비싼 것이 양인데, 동상에 약으로 먹자고 일반인들이 양고기를 사서 먹을 수는 없을 것이고, 귀족들도 굳이 발전된 약이 많은데 이 음식을 해 먹지는 않았을 터.
그런 이유로 민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잊혔을 것이 분명했다.
‘실전된 이유는 알겠고 그럼 부탁할 것이라는 게?’
요리가 실전되었고 식룡인 나에게 부탁할 것이라면 뻔했다.
내 역천(逆天)의 눈치가 사정없이 발동되며 내 촉을 세웠다.
“실전된 이유는 알겠는데 그러면 제게 부탁할 것이라는 게?”
“그렇네. 자네에게 거한교이탕의 복원(復元)을 부탁하고 싶네. 내 손자를 도와 거한교이탕의 복원을 좀 도와줄 수 있겠나? 물론 내 그냥 해달라는 것은 아니네, 큰 사례를 할 테니 어떤가?”
내 전생에도 중원 고대의 요리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많았다.
특히나 송대 요리를 복원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몇 가지는 실제로 복원이 되곤 했지만, 이 거한교이탕은 그때도 누군가 복원했다고 자랑하긴 했지만, 쌍화탕에 교자를 넣고 끓인 장진의 수준을 못 벗어난 느낌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기에 조금 꺼려진달까?
물론 내 전생보다 처음 거한교이탕이 만들어질 시기에 가까운지라 정보도 많고 복원 확률도 높아질 테지만, 복원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기에 조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보이자 약왕이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내 자네에게 꼭 필요한 약도 좀 챙겨주겠네.”
“제게 말입니까?”
‘나한테 무슨 약이 필요하지?’
갑자기 나에게 필요한 약이라기에 난 아프지도 않으니 괜찮다는 소리를 하려는데 약왕이 내가 왜 약이 필요한지를 설명했다.
“자네 왜 자신이 약이 필요한지 모르는 모양이구만. 흠흠. 내 알기 쉽게 설명해주겠네. 자네 부인은 무공을 익힌 무림인. 강인한 체력과 내공을 소유하고 있지.”
“그, 그렇죠?”
“만약 내게 치료받고 괴이한 증상이 사라진다 해도, 자네와 자네 부인의 체력과 내공의 차이는 압도적이겠지?”
“다, 당연하겠죠?”
뭔가 계속 당연한 소리를 하던 약왕이 자기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아한 척을 하며 말했다.
“남자가 무공으로 여인에게 존경받지 못하면 침방(寢房)에서라도 존경받아야 할 것인데··· 흠흠. 나 약왕의 약은 그 여인들에게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나게 하는···”
하긴 생각해보니 약왕은 약의 왕이니 그런 약도 많이 만들어봤을 터.
아주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저는 그런 약이 딱히 필요하진 않지···”
“그런가? 그러면 진아, 복원은 오랜 기간이 걸리더라도 네가···”
“어허, 어르신 제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그래?”
‘성질 급한 노인네 야동도 하이라이트 장면만 돌려볼 것처럼 성질 급하게 생겨서는 사람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저는 그런 약이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무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는 일. 여벌의 목숨으로 수십 알쯤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나쁘지 않겠죠?”
“수, 수십 알?!”
“복원 아주 재미있을 것 같군요.”
거한교이탕 복원 스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