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량주와 개잡주 (103/344)

우량주와 개잡주

.

다음 날 점심때쯤 모처럼 바다를 볼 수 있는 기회인데, 감기 든 나를 돌본다며 붙어있는 아내와 영영이를 바다 구경이라고 하라며 밖으로 내보냈다.

“부인, 약왕께서 약을 구하는데, 한참 걸릴 것 같다고 하셨고, 모처럼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복주까지 왔으니. 당매매와 바다 구경이라도 다녀오지 않겠소?”

복주는 바다를 낀, 아름다운 항구도시.

내륙출신들인지라 바다는 태어나서 한 번도 구경도 못 한 아내와 영영이가 이곳으로 오면서 복주에 도착하면 꼭 바다를 봐야겠다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터라 먼저 다녀오라 권하는 것이다.

“아, 아닙니다. 노공께서 아프신데 놀러 다닐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병구완을 해야지요.”

“나는 그저 감풍일 뿐이니 넓은 바다라도 구경하고 오구려.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소. 난 잠시 잠이나 잘 테니. 당매매 부인과 함께 바다 구경이나 다녀오거라.”

“괜찮으시겠어요? 가가.”

“그래, 내 걱정은 말고 다녀들 오거라.”

그렇게 둘을 바다로 보내고 잠이라도 좀 더 자볼까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는데, 밖에서 장의문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청운 공자님, 장진 공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안에 계시는가요?”

“아, 있소이다. 안으로 모시시오,”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쪽으로 향하자 밖에서 장진이 기쁜 얼굴로 들어섰다.

“류 공자, 내 탕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리 직접. 감사합니다. 장 공자.”

장진이 손에든 따듯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대접.

그의 손에서 대접을 받아 후후 불며 탕약을 목으로 넘겼다.

그가 내민 탕약은 뭔가 약왕의 비전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냥 전생에 감기 걸리면 사 먹던 쌍화탕과 아주 비슷한 맛.

“크흐··· 쓰구나.”

그거 건넨 탕약을 다 먹자 왠지 어색해진 분위기.

장진이 뭔가 말할 것이 있어 쭈뼛거리는 것 같기에 물었다.

“혹시 무슨 하시고 싶은 말씀이라도?”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탕약까지 받아먹었는데 이야기 정도야 들어줄 수 있는 법.

그에게 손을 내밀며 이야기를 허락하자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혹, 공자께서는 할아버님께서 거한교이탕의 복원을 부탁하신 연유를 들으셨습니까?”

“아니요. 그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혹시 어떤 연유가 있습니까?”

“다, 저 때문입니다.”

“장 공자 때문이요?”

자기 손자와 같이 요리를 복원하라기에 뭐 그냥 거대 제약기업 회장님이 손주에게 실적 쌓기를 시키는가 싶었는데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뭔가 대단한 무공이나 비전 같은 것도 아니고, 장의문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의술이나 탕약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한 요리를 복원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긴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장의문의 공자 때문이라니 조금 호기심이 들었다.

“제가 연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 선조이신 장기 중경 어르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내 물음에 갑자기 장중경의 이야기를 꺼내는 장진.

“저희 선조이신 장기 중경 어르신께서는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이라는 의서를 서술하였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오오! 상한잡병론! 알다마다요!”

상한잡병론은 전생의 삼국지 마니아였던 내가 즐겼던 삼국지 게임에서, 단명하는 장수들의 수명을 연장해주며 의술을 익히게 해주는 꽤 괜찮은 아이템.

나도 장중경은 그냥 한, 중, 일 삼국에 영향을 준 전설적 의서를 쓴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책이 상한잡병론인 모양.

‘상한잡병론이라면 전설적 의서가 맞지.’

수명을 늘려주고 특성을 깨우칠 정도의 아이템이면 그 정도 급은 되는 것.

내가 반가운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을 하자 장진이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식견이 대단하시군요. 요리사라 들었는데 상한잡병론도 알고 계시다니,”

“뭐, 그냥 제목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내가 겸양을 떨며 말하자 밝아졌던 장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조울증 환자처럼 다시 금방 침울하게 변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중경 어르신께서 집필하신 상한잡병론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설템이 사라졌다고? 장가 이거 콩가루 집안인가?’

선조들이 남겨준 것 중에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는 집안.

요리법이야 소실할 수 있다지만, 의술은 자기들의 밥벌이 기술인데 그것까지 잃었다는 것은 의외기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그 귀한 책을 어쩌다가?”

“전란에 소실되고 만 것이지요.”

“아아, 전란···.”

하긴 중국도 이민족의 침입을 꽤 받았고 자기들끼리도 엄청나게 치고받았으니 전쟁 중에 소실되었을 수도 있는바, 내가 속으로 사라진 전설템에 안타깝다고 생각할 때 장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서진(西晋)의 왕숙화(王叔和)라는 자가 중원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던 중경 어르신의 가르침이 담긴 죽간을 모아 정리해 둔 것이 있었고, 이십여 년 전쯤 조정의 교정의서국(校正醫書局)에 내로라하는 의원들이 모여 그것을 토대로 어느 정도 복원해 놓았습니다. 그것을 상한론(傷寒論)이라 부르지요.”

“오오, 복원에 성공하셨구려.”

전설템은 소실되었어도 레어급으로 되살려 다행이라 생각하며 잘됐다고 웃어주자 들려오는 그의 대답.

“다만 미 완성본입니다. 본래 16권이라 알려진 상한잡병론이 10권이 되고 말았지요.”

삼 할 이상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레어템도 못되고 그저 잡템.

‘이 새끼가? 장난하나? 말을 자꾸···.’

전설템이 잡템이 되었다는 사실과 조울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진처럼 이야기도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하는 내용이기에 슬슬 짜증이 날 때쯤.

결국 이야기의 전말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상한잡병론의 복원 작업은 일종의 정부 주도 사업이고, 왕숙화의 기록보다 장 씨들의 기록이 더 나을 것이 없어 복원에 장 씨들은 참여할 수 없었는데, 책이 나오고 나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실전된 상한잡병론의 편린을 왕숙화라는 자가 모아둔 것까진 좋았는데, 거기다가 원전에 없는 내용인 오행 사상을 집어 넣어두었는데.

장가에서 왕숙화의 기록을 사용할 때는 그가 오행을 넣어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상한론을 살펴볼 때 오행 사상을 제외하고 왕숙화의 기록을 사용하지만.

교정의서국에서 나온 책에는 오행 사상을 마치 장중경이 기록한 것처럼 포함하고 있기에 경악했다고.

원래 상한론(傷寒論)이란 몸이 차가운 기운에 상함으로써 오는 질병의 치료에 대한 것을 쓴 책.

독감 치료에 중점을 둔 책이라 보면 되는데, 여기에 오행이 들어가면 치료의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 되고 마니, 후예인 장가들이 발작을 일으켰다는 것이 일의 자초지종이었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정부 주도 사업이라는 것은 다 그런 모양이었다.

원래 저런 걸 복원하려면 자손들 의견도 좀 들어보고 자료가 같아도 비교해보고 해야 하는 것인데···.

“쯧쯧··· 원래 관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습니다. 장 공자.”

안타까운 듯 혀를 차며 그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건 그렇고 그것이 왜 장진과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 듣지 못한 상태.

“그런데 그것이 어찌 장 공자와?”

“그것은 제가 부족하여···”

상한론 사건 이후 장의문의 가솔과 제자들은 두 개의 의견으로 갈라졌는데, 하나는 치욕을 씻기 위해 직접 상한론을 복원하자는 의견과 남아있는 상한론을 가지고 더욱 계승 발전시키자는 의견이었다고.

양왕은 진보주의 인사라서 후자를 지지했지만 가문 내부에서는 전자의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

그 와중에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장진이 후계로 낙점되자 보수주의 가솔들이 의술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장진에게 실적을 요구한 것.

자신들을 흡족하게 할 실적.

그래서 이미 실전된 기록은 어쩔 수 없으니 개중 가장 쉬운 거한교이탕이라도 복원해 보수주의 가솔들을 달래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아하! 거대 제약회사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구나 이거?’

생각해보면 약왕은 중원에서 제일가는 제약회사의 회장.

그리고 눈앞의 장 공자는 그 후계자인 차기 회장.

경영권 분쟁을 승리로 이끈 순간, 장진은 차기 회장이 될 것이고···!

머릿속에 번갯불이 튀었다.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장 공자. 그런 연유라면 제가 더욱 힘을 내야겠군요. 제 모든 실력과 힘을 다하여 복원을 성공시켜야겠군요.”

“저, 정말이십니까?”

내 말에 기뻐 놀란 눈을 부릅뜨는 장진.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복윈을 하려면 이게 아주 밀접하게 자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지요!”

장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하기에 조심스레 그에게 제안했다.

“제가 뭐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모름지기 사람은 비즈니스 아니, 일 적으로 만나다 보면 관계가 좀 딱딱해진다고나 할까? 일해주고 삯을 받는다? 그 얼마나 정 없는 관계입니까?”

“예? 그, 그렇지요?”

“그러데, 그런 사이가 아니라 본디 좀 더 가까운 사이··· 예를 들어 가족이라든가··· 뭐 가족의 일이라면 삯을 받는 일이라 해도 누구나 더 힘을 내지 않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그러니 가족의 일이라면 제가 좀 더 힘을 낼 것도 같고··· 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혹시, 공자만 괜찮으시다면 저와 의형제를 어떻게 크흠. 생각이 조금? 어떻게?”

살짝 뉘앙스만 띄웠는데 놀라 까무러칠 것처럼 좋아하는 장진.

“저, 정말입니까? 고작 저따위와? 식룡께서는 이미 많지 않은 나이에 무림에서 명성이 자자한 분이고, 저는 아직 일개 의생일 뿐인데··· 제가 시, 식룡님의 의형제?! 조, 좋습니다!”

신이 난 장진을 향해 말했다.

“그래? 그럼 일단 형님이라고 불러보거라.”

“예?!”

중원 최대 제약회사 후계자 꽌시 줍.

***

몸이 조금 더 회복된 다음 날부터 장진과 본격적으로 복원을 시작했다.

『거한교이탕 : 교아를 만들어 탕을 끓이는 것. 감풍에 잘 듣는 탕약과 양고기를 사용함.』

가장 오래되었다는 거한교이탕의 레시피를 옮겨적은 내용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나와 장진.

다른 건 모르겠고 양고기로 만드는 교자 국은 맞을 것인데, 탕약이 들어간다니 이게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

“그런데 진아 어제 제가 맛본 그 거한교이탕은 어찌 만든 것이냐? 내가 먹어보니 뭐 쌍화탕에 대충 만든 교아를 삶은 그런 맛이던데···”

“크, 크흠. 혀,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만든 교아를 쌍화탕에 넣고 삶은 것입니다.”

대충 때려본 것인데 그대로 이실직고하는 장진이었다.

“아, 그러면 여기 나온 대로 감풍에 잘 듣는 탕약인 쌍화탕에 교아를 넣은 것이구나?”

“예, 마, 맞습니다. 형님.”

‘허허, 이거 참.’

거대 제약회사 회장 손주라고 도움이 될 것 같아 꽌시에 넣었더니 애가 영영이 급의 지능을 갖춘 모양이었다.

아무리 요리에 개념이 없어도 그렇지, 초등학생 같은 생각을 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진아 나중에 내가 사람 하나 소개해주마.”

“사람이요?”

“그래 너랑 벗을 하면 잘 어울릴 듯하구나.”

“오,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내와 바다 구경을 나간 영영이를 생각하며 한 명은 독쟁이, 한 명은 약쟁이 집안이니 친구 하면 좋겠다 싶었다.

수준도 비슷한 것 같아서···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러면 내가 먹은 것이 쌍화탕이 맞았구나?”

“예, 형님 저희 집안의 비법을 약간 쓰긴 해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쌍화탕이 장중경 어르신의 시대에도 있던 것이냐?”

“예?!”

깜짝 놀라는 장진.

복원하느라고 고민 좀 했나보다 했더니, 이거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던 모양.

“감풍에 잘 드는 탕약으로 만들었다면, 당연히 장중경 어르신의 시대에 있는 탕약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장진이 내 당연한 말에 감탄을 내뱉었다.

“아!”

‘아? 아? 이 새끼를 정말 새로 얻은 동생만 아니면!’

뭔가 부족해 보이는 장진을 향해 물었다.

“내, 궁금해서 그런데. 동생이 약왕님의 손주인데도 그···. 의술이 조금?”

약왕의 손자라고 보기에는 가진바 실력이 많이 빠져 보이는 것.

기반 지식도 부족하고.

대체 평소에 뭘 하고 지냈기에 그런가 싶었더니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 그것이···. 나, 남자끼리니, 말씀드리는데. 기, 기루에···.”

“기루?!”

하긴 생각해보니, 중원의 여덟 왕이라는 팔왕 중 하나인 약왕의 핏줄인데도 불구하고 승계에 태클이 들어온다는 것은 뭔가 결격 사유가 있다는 것.

거대 제약기업 손주라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기루 그러니까 전생으로 치면, 룸살롱에만 주야장천 다니셨던 모양이었다.

‘재벌가 망나니 도련님인 느낌인가? 아니, 그래도 저렇게 백면서생처럼 생겨서 기루를?’

그래도 망나니라 하기에는 애가 싸가지가 없진 않았고, 이미 꽌시가 된바.

어쩔 수 없었다.

하나하나 챙겨줄 수밖에.

‘이래서 전생에 주식 전문가들이 싸다고 아무 주식이나 덥석 사지 말라고 한 것이구나!’

저평가된 우량주인 줄 알고 풀매수 했는데···

고평가된 개잡주였다니!

마음속으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