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방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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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이라는 것은 당시 사료나 자료들이 얼마나 존재하느냐에 따라 복원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같이 자료라고는 코끼리를 대충 주관적으로 묘사한 글 하나를 가지고 코끼리를 복원하는 것 같은 미션을 클리어하려면 다른 건 필요 없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납득 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
그러니까 거한교이탕을 만들어 장가의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거한교이탕이라고 말했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 수준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거한교이탕에 최대한 흠이 없어야 했다.
결국 완성도를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거한교이탕(祛寒嬌耳湯) 복원과정은 두 가지 과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탕과 교자.
국물은 영영이가 당귀사역탕을 찾아내어 양고기의 누린 맛을 제거하는 삼계탕 형식의 탕이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고.
실제로 시연해보니 맛이 아주 뛰어났다.
진하게 우린 양고기 국물의 맛과 어우러지는 매콤한 맛과 향긋한 약초들의 향.
우리들의 추리가 틀렸다고 해도 일단 한번 먹은 사람은 결코 아니라고 부정하기 힘든 맛과 감풍에 잘 듣는 탕약 한 가지가 온전하게 들어갔다는 사실에 이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터.
하지만 남은 교자가 문제였다.
사용할 수 있는 재료라고는 밀가루와 양고기.
둘 다 특유의 향이 있어 잡내 제거는 필수인데, 다른 것을 추가해버리면 당귀사역탕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니 복원이라 주장할 수 없었다.
분명 장가에 남아있는 거한교이탕의 레시피의 내용에는 ‘감풍에 잘 듣는 탕약과 양고기를 사용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고,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다른 재료를 넣으면 그것은 더 이상 당귀사역탕이 아니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복원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남아있는 사료에는 양고기와 탕약 두 가지만 기록되었으니까 말이다.
“절반이라니 무엇이 더 남았단 말입니까?”
내 절반 왔다는 말에 남은 것이 무엇이냐 물어오는 장진.
“내 확인시켜줄 것이니 보거라.”
일단 밀가루를 받아 교자를 만들기로 했다.
백번 설명해주는 것보다 한번 먹는 것이 느끼기 쉬울 것이기 때문.
밀가루를 받아 반죽을 만들고 양고기를 다져 순수하게 양고기만으로 이루어진 교아를 빚기로 했다.
교자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지만, 우리가 복원하는 것은 장중경이 우리 제갈형님이 만드신 만두를 파쿠리쳐 만들었을 법한 초기 교자.
그러니까 교자의 원형 상태라 할 수 있는 것.
모양은 귀 모양이라고 했으니 대충 모양은 어떨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전생에 술자리나 길가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
상대방의 귀 모양이 만두 모양이면 얼른 사과하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레슬링이나 권투 같은 격투기 관련된 일을 한다는 증거가 만두귀 하나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양은 시비가 붙었을 때 지려버릴 것 같은 만두귀 모양으로 빚으면 되는 것.
양고기를 받아 기름과 고기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다지고 밀가루 반죽을 밀어 교자를 빚었다.
손으로 꾹꾹 쥐어 열 개 정도 만들어 웍에 육수를 덜어 삶아내 그릇에 담았다.
“자, 다들 한번 먹어보거라.”
내 말에 앞다투어 몰려드는 셋.
숟가락으로 국물과 함께 교자를 떠 셋이 거의 동시에 입안으로 교자를 넣었다.
“음···”
“확실히 양고기 냄새가 많이 나는군요.”
“가가, 이건 좀···”
이제야 내 말이 어떤 뜻인지 깨달은 셋이 베타 버전인 거한교이탕을 보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장진이 괜찮은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형님 그러면 교자를 반으로 갈라 국물에 적셔 먹으면 안 됩니까?”
“그래도 양고기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냄새를 제거하지 않고 이미 익어버린 고기는 다른 것과 섞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지. 더군다나 별도로 먹는 법이 따로 적혀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것을 거한교이탕이라 할 수는 없겠지.”
고기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조리 전부터 신경 써야 하는 법.
이미 익어버린 고기를 육수와 섞는다고 누린내가 제거되지는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남겨진 자료에 먹는 법이 따로 적혀있었던 것도 아니니 먹은 이를 납득 시킬 수도 없었다.
“가가, 그러면 재료를 덜어내 교자를 만들 고기에 섞는 것은 안 되나요?”
따상상한 영영이는 제법 그럴듯한 질문을 해왔다.
이전과 확 달라진 질문 수준.
“내 탕약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더하거나 덜어도 약성(藥性)에 차이가 나지 않겠느냐?”
“참, 그렇군요. 흐음···”
넷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봤지만 뾰족이 떠오르는 생각은 없었다.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였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들 좀 더 생각해보도록 하자꾸나.”
보통은 긴 시간이 필요한 복원의 과정을 손쉽게 반이나 지나온 상태.
지금까지가 운이 좋았던 것이지 마냥 붙잡고 고민한다고 생각이 떠오르진 않을 것이기에 일단은 쉬기로 했다.
더군다나 몸이 완벽히 회복된 것은 아닌지 다시금 몸이 으슬으슬 추워 왔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네, 가가.”
***
“제대로 처방해준 약이 맞아요?!”
귓가에 들려오는 날카로운 영영이의 외침.
무슨 일인지 정신이 들자 영영이가 누군가에게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항의하고 있었다.
“우리 장의문의 탕약을 의심하는 것이오? 할아버님도 그저 형님이 긴 여행에 기가 허해지셔 그렇다고 하지 않소이까?”
“하지만 벌써 이틀이라구요!”
“언니, 약왕께서도 감풍이 조금 심하게 온 것이라고 했으니 진정하세요.”
“아니, 장의문이라고 이름부터 걱정되잖아? 처방이 잘 되었다는데 벌써 이틀이나 이 뜨거운 열에 정신조차 못 차리고 계시는데···”
‘뭐지?’
머리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영영이의 외침에 멍하던 정신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눈을 뜨며 아침부터 찾아와 시끄럽게 구는 영영이를 향해 말했다.
“아침부터 찾아와 이, 무슨 소란인 것이냐 영영아···?”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아침부터 찾아와 이리 시끄러운지 묻자 들려오는 세 명의 놀란 목소리.
“노, 노공?!”
“가가!”
“형님!”
놀란 듯 외치는 셋의 음성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지며 대답했다.
“아니, 왜 이리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시끄럽게 구는 것이냐? 부인, 내 늦잠을 잔 것이요?”
아내인 제갈청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 묻자 아내가 머리를 뭔가로 닦아주며 대답했다.
“노공, 밤에 잠이 드시고 벌써 이틀이나 지났습니다. 기억이 안 나십니까?”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자 왠지 이슬 가득한 눈망울.
놀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이나 지났단 말이오?”
“어머! 어떡해! 가가께서 기억을 못 하시나 봐요. 뭐해요! 좀 살펴봐요!”
영영이가 옆에 서 있던 진이를 내 쪽으로 밀며 외쳤고, 머리를 징징 울리는 영영이의 외침에 짜증을 내며 말했다.
“당매매, 누가 보면, 네가 내 안사람인 줄 알겠구나··· 조금 조용히 하거라. 내 머리가 울리는구나···”
“예?! 에윽··· 그게 걱정이 돼서··· 아, 안사람이라니···”
영영이가 조용해지고 진이가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형님 열이 많이 나고 이틀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앓으셨습니다. 어디 이상한 곳은 없으십니까?”
“머리가 조금 지끈거리는 것 빼고는 괜찮구나.”
“다행입니다. 할아버님께서 몇 번 다녀가셨는데 곧 정신을 차릴 거라 하시더니 그 말이 맞는군요.”
마지막에 헤어질 때 좀 으슬으슬 춥더니 독감이 제대로 왔던 모양이었다.
그전에 왔던 감기 증상은 독감의 전조 증상이었는데, 다 나은 줄 알고 돌아다녔더니 크게 앓게 된 느낌.
놀랐을 아내의 손을 잡아주며 이야기했다.
“부인 미안하오. 놀라지는 않았소?”
“미안하다니요. 이만하시길 다행입니다. 노공.”
‘하긴 너무 빨빨거리고 쏘다니긴 했지.’
아내의 증상을 치료하겠다고 중원 대륙을 와리가리 하며 여행으로 몇 달을 보냈으니 병이 크게 날 만도 했다.
이마를 짚자 아직도 느껴지는 뜨거움.
볼에도 열이 오르는지 볼이 화끈거리는 듯했다.
왠지 정신도 멍하고.
“열이 아직 나는구나···”
혼잣말하듯 중얼거리자 영영이가 자기도 이제 의서를 읽어봤다고 선무당 흉내를 내며 진이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 갈근탕! 열이 아직 안 떨어지시니 갈근탕이라도 준비해주세요! 내 보니까 갈근탕을 마시면 열이 금방 떨어진다고 쓰여있었어요!”
그러자 난처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장진.
“당 소저, 진정 좀 하시오. 내 의술이 뛰어나진 않아도 지금 형님이 갈근탕을 드시면 안 되는 건 알고 있소이다. 갈근탕은 몸에서 많은 땀을 흘리게 해 열을 내리게 하는 것인데, 형님은 지금 긴 여행으로 기가 많이 허해진 상태라 많은 땀을 흘리면 위험해질 수 있으니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 대충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장진.
하긴 땀을 흘리는 것은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하니, 이렇게 이틀이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앓고 있는 상태에서 땀을 대량으로 흘리면 좋지 않을 것 같긴 했다.
그러나 나는 장진의 말에 납득했지만 영영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면 다른 탕약이라도 좀 드시게 내와 봐요! 그래! 쌍화탕! 쌍화탕이라도 내오던지! 아니다. 그 뭐냐 합방 처방! 상한론 보니까 합방 처방인지 뭔지 있던데, 쌍화탕이랑 합방 처방이라도 내와봐욧!”
아주 그냥 상한론 한번 읽었다고 선무당 빙의해서 의원에게 이것저것 해오라며 요구하는 영영이.
‘아이고 영영아.’
내가 걱정되어 그런 것은 알겠는데, 환자 보호자들이 저리 설치면 안 되는 것이다.
치료는 일단 의사를 신뢰해야 하는 법.
뭐라도 대답해주려 장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밀려오는 불안감.
‘부, 불안할 만하구나.’
개잡주 장진은 신뢰감이 느껴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것.
영영이라도 진정시키려 뭐라고 한마디를 해주려 하자 진이가 영영이의 억지에 대답했다.
“소저 상한론 한번 읽었다고 의원이라도 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처방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쌍화탕은 이미 사물탕(四物湯)과 황기건중탕(黃芪建中湯)의 합방 처방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더 이상 다른 처방을 더 할 수는 없습니다.”
합방 처방이란 중원 전통 의술의 칵테일 요법 느낌.
여러 약을 섞어 처방하는 것인 모양인데 영영이는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니, 그냥 일단 나에게 마구 먹이라 요구하는 것 같았다.
“영영아 그렇게 마구 섞어 먹는다고 빨리 나아지는 것이 아니니··· 응? 섞어? 합방?”
“노공, 어찌 그러십니까?”
멍한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말하다 말고 멈추자, 아내가 놀란 얼굴로 물어왔다.
아마 몸이 어디가 불편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모양.
“그래! 합방 처방!”
아내의 물음에 대답할 생각도 못 한 채, 떠오른 생각에 침상에 누워 외쳤고, 그러자 장진이 내 이불을 끌어 올려 다시 덮어주며 다독이며 말했다.
“형님, 빨리 일어나고 싶으신 것은 알겠는데, 제가 할아버님께 확인해서 처방받을 것이니···”
“아니, 그것 말고 진아, 합방 처방 말이다!”
“예?”
“당귀사역탕의 합방 처방은 없는 것이냐?”
내 물음에 서로를 바라보는 셋.
셋은 눈빛을 서로 교환하고는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내가 아파서 억지라도 부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형님, 이리 아픈 와중에도 아우를 생각해 주시다니. 이 장진 형님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이리 아프신데 그것은 몸을 추스르고 나신 후에 확인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요. 노공, 몸을 먼저 추스르시고 지금은 일단 나시는 것만 생각하세요.”
“맞아요. 가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나중에 하셔도 돼요. 지금은 몸만 생각하세요.”
내 몸을 걱정하는 듯했지만, 이런 것은 떠올랐을 때 확인해야 하는 법.
이런 영감 같은 것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확인해야지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느낌이 사라지니 절대 안 될 말이었다.
“아니, 아니. 이런 것은 떠올랐을 때 확인하는 것이다. 상한론 어디 있느냐? 영영아 상한론을 좀 가져다 주거라.”
“가가, 열이라도 좀 내리시면요.”
“그래요. 노공 제발.”
아내와 영영이가 사정을 해왔지만, 꼭 확인해야 했다.
“아니, 괜찮으니 확인을···”
끝까지 내가 고집을 부리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영영이가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가가 제가 살펴볼게요. 알겠죠? 제가 장 공자랑 살펴볼 테니까 누워 계세요. 알겠죠?”
“그래요. 노공, 언니가 당귀사역탕도 찾으셨으니, 언니라면 믿을 만하니 누워계셔요. 언니 어서요.”
“그래, 알았어. 청아.”
당영영은 아내에게 얼른 대답하고는 탁자 쪽으로 걸어가 탁자 위에 있던 상한론을 집어 들었고, 그 모습을 확인하고 안심해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래? 따상상. 당매매라면 믿을 만하지···”
“예? 노공? 따 뭐요?”
아내의 물음이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주변이 아주 조용했다.
창밖을 확인하니 한밤중으로 보이는 어두운 상태.
머리를 만져보자 어느새 열도 떨어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내는 옆에 잠들어있었고, 탁자에는 영영이가 등잔불 아래서 상한론을 집중해서 살펴보고 있었다.
조용히 영영이를 불렀다.
[당 매매]
[당 매매]
“가가?”
내 부름에 놀란 영영이가 큰소리를 냈다가 옆에 잠들어있는 아내를 가리키자 무슨 뜻인지를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쉿!]
[네, 가가 깨셨나요? 몸은요?]
일단 영영이에게 물 한잔을 부탁했다.
무척이나 목이 말라왔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당 매매, 물 좀 부탁해도 될까?]
[잠시만요. 뜨거운 차를 내올까요?]
[아니, 시원한 물 좀.]
-캬
[시원하다.]
그렇게 물을 받아마시고 당영영을 바라보자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한 표정.
[왜? 하고 싶은 말 있어?]
[아, 다른 건 아니고 아까 가가께서 말씀하신 걸 보고 당귀사역탕의 합방 처방을 찾아봤는데, 합방 처방을 찾을 수는 없었는데 신기한 게 있어서요.]
[신기한 거?]
신기한 것이라는 말에 영영이에게 되묻자 영영이가 종이 한 장을 나에게 내밀어왔고.
등잔불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종이를 비추자 특이한 이름의 처방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