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루와 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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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장진이 식솔들에게 복원된 거한교이탕을 선보이는 자리.
거한교이탕 복원에 성공했다고 장의문의 꼰대들을 모두 끌어모아 거한교이탕 시식회가 열렸다.
이어 붙인 식탁에 죽 늘어앉은 가문의 꼰대들 앞에는 거한교이탕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고, 장진이 그 앞에서 복윈 된 거한교이탕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 중경 어른께서 남기신 글에 따르면 귀가 붉게 된 채로 상한(傷寒)에 걸려 고생하는 자들을 위해서 만든 탕이라 했으니. 동상 환자들에게 잘 듣는 처방인 당귀사역탕으로 국물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교아는 생강과 오수유를 넣어 만들었지요.”
내가 적어준 대사를 열심히 암기해 말하고 있는 장진.
그런 장진의 설명 중간에 집안 어른들의 지적이 시작되었다.
“그래, 하지만 탕에 교자를 넣어 끓인 것이라면, 진이 네가 몇 번 선보였던 그 쌍화탕 같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니겠느냐?”
“크흠··· 그건 정말 기, 중경 어르신을 모독하는 맛이었지···.”
“그··· 약을 독으로나 사용할 줄밖에 모르는 당문과 다를 바 없는 짓이었소.”
아마도 그 괴식의 피해자가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
몸서리를 치는 집안 어른들은 그 맛을 떠올렸는지 더욱 불신의 얼굴이 되어있었다.
“크흠. 일단 제가 직접 주도 했지만, 이번에는 제 의형제가 되신 식룡이신 청운 형님께서 전체적인 맛을 살펴봐 주셨으니 괜찮으실 것입니다. 한번 맛들을 좀 보시지요.”
내 이름이 한번 언급되고, 장진의 권유에 몇몇이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국물을 맛보더니, 주변 사람들에게 눈빛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런 눈빛.
“먹을 만하구려. 일단 다들 맛들을 봅시다.”
“하긴 요즘 그 이름을 날린다는 식룡이 요리의 맛을 내는 것을 도왔으면, 최소한 저번 같은 맛은 아니겠지···”
천천히 수저를 드는 장가의 꼰대들.
-후루룩, 후룩
그렇게 사람들이 맛을 보는 사이에 장진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제가 그간 만들어 왔던 탕과 다른 점을 느끼셨습니까?”
“글쎄?”
“맛은 있는데?”
약왕과는 다르게 재료를 설명해주었지만, 아직 눈치를 못 채신 어른들.
장진이 거기에 설명을 더했다.
“국물은 양의 뼈와 고기를 당귀사역탕의 처방을 넣어 삶고, 교아에는 생강과 오수유를 넣어 만들었으니. 두 가지를 모두 드시면 당귀사역가오수유생강탕이 되는 것입니다.”
장진의 말에 그제야 무슨 뜻인지를 깨달은 꼰대들.
“그게 무슨!”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당귀사역가오수유생강탕이란 말이냐?!”
국물을 마셨을 때는 당귀사역탕이지만, 교자와 함께 먹었을 때 당귀사역가오수유생강탕이라는 변신 로봇 같은 조합은 가문 남아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기 충분했다.
전투기를 탔는데 탱크와 합체해서 변신 로봇이 된다?
이건 사내라면 절대 참을 수 없는 조합인 것.
탕과 교아가 합체해 완벽한 요리이자 약이 되는 것이니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랄까?
‘탕과 교아를 같이 먹었는데 뱃속에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
“허허, 국물을 마시면 당귀사역탕이오. 교아를 씹어 삼키면 당귀사역가오수유생강탕이라니. 아아, 장중경 어르신의 병자를 걱정하는 뜨거운 마음이 담긴 요리가 ‘확실’합니다.”
“이런 탕이 기, 중경 어르신이 만든 탕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그분의 탕이란 말입니까!”
“완벽하게 거한교이탕일 수밖에 없겠군요! 확실히 이것입니다!”
“솔직히 기대도 안 했는데, 이런 성과라면 진이에 대해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군요.”
솔직히 따지고 꼬투리를 잡으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이런 특이한 조합의 음식을 장중경의 음식으로 포장할 수 있다?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원래는 더럽게 맛도 없는 장진이 만든 거한교이탕 같은 음식이었다는 것보다는 뭔가 그럴듯한 게 있어 보이니까 말이다.
모든 식솔이 전율하며 기뻐했다.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어른이며, 지금의 장의문을 있게 해준 장중경이라는 전설적 명의의 업적 하나가 멋진 변신 로봇 같은 요리로 다시 세상에 나타났으니, 자손 된 처지에서는 지려버리지 않을 수 없는 것.
장진의 후계 자리는 반석처럼 다져졌다.
***
장의문의 모든 꼰대의 지지를 얻어내고, 장진이 후계자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맡은 것은 약재와 식재 그리고 물품 매입의 전반적인 관리였다.
가문의 후계에게 가문의 전반적인 돈줄을 쥐여 준 느낌.
실권을 쥐여주겠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맡겨진 일에 한량 같은 놈이 잘할까 싶었지만, 의외로 장진은 의욕적으로 일했다.
알고 보니 전생이나 현생이나 이런 큰 가문과 제약회사의 물품 구매는 상당한 돈이 오가니, 접대가 빠질 수 없는 것.
접대면 뭐다? 룸살롱.
장진이 좋아하는 기루를 합법적으로 다닐 수 있으니 장진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놈 새끼 의욕적인 이유가 있었구만.’
거한교이탕을 선보이고, 다음날부터 맡은 바 일 때문에 거래처에 인사를 다니는 장진은 매일매일 술에 취한 채 장의문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잔뜩 술에 취해 여자의 분내를 풍기며 장의문으로 들어서는 장진의 모습 대하기를 사흘쯤 지났을 때, 아침 일찍 보약을 지어줄 테니 진맥을 받으러 오라는 약왕의 부름에 약왕의 처소를 찾았다.
전각들을 지나 그의 처소 앞에서 도착해, 안쪽으로 도착한 것을 알리려 하자 약왕의 처소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할아버님 부탁하신 고려인삼(高麗人蔘)의 매물이 시장에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장진의 목소리였다.
‘진이가 이른 시간에 먼저와 있나?’
어제도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온 것을 봤는데. 이르게도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언제 도착한 것을 알려야 하나 고민할 때 들려오는 약왕의 목소리.
“뭐라? 어째서 말이냐? 총관에게 물었을 때는 분명 구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흠흠.”
장진의 말에 약왕이 그럴 리 없다는 듯 되물었으나 장진의 대답은 약왕의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누군가 장난질을 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희가 고려인삼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웃돈을 주고 사들인 듯합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대체 어떤 놈들인 것이냐! 사람을 구하는 약재를 가지고 장난질이라니!”
약왕의 분노한 외침.
그리고 분노한 약왕에게 장진의 물음이 이어졌다.
“그나저나 고려인삼은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십니까? 귀한 약재인지라 자주 쓰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고려인삼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고 있을 때 들려오는 약왕의 대답.
“청운이의 부인의 치료에 쓸 환약에 들어갈 재료이니라.”
“형수님의 약재였단 말입니까?!”
놀란 장진의 외침.
덩달아 나도 놀라며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대체 어떤 새뀌들이?!’
나를 아니, 아내를 위한 약을 중간에 인터셉트 당했다는 사실에 마음속으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
무엇보다 급한 환자가 여기 있거늘 그것으로 장난질을 하다니!
그렇게 문밖에서 손을 떨며 분노할 때 계속해서 들려오는 둘의 이야기.
“다른 재료들은 어지간히 모였기에 약성을 끌어올리자면 고려인삼이 필수인데···. 사신들이 다시 올 것 같지도 않고··· 고려에서 상인이 언제쯤 들어온다는 이야기도 없더냐?”
“예, 가을이라 바다가 거칠 시기인지라···.”
하긴 가을은 중국과 한반도 쪽으로 태풍이 올라오는 시기.
이 시대의 배는 전적으로 바람에 의지하니 거친 풍랑에는 운항하지 않을 터.
약왕이 낭패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데···. 미리 구한 생약재들이 시간이 지나면 약성이 떨어질 터인데···.”
약왕이 곤란한 하다는 듯한 목소리에 장진이 의견을 내었다.
“그러면 제가 고려인삼을 사 간 자들을 수소문해, 웃돈을 주더라도 다시 사들일 수 있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래, 웃돈을 주더라도 구할 수 있는지. 꼭 확인해보거라.”
웃돈까지 얹어서 고려인삼을 구해보겠다는 장진의 말에 조금 감동에 빠져있을 때였다.
갑자기 약왕의 처소의 문이 열린 것은.
-벌컥
그렇게 약왕의 처소의 문이 활짝 열리며 진이가 얼굴을 드러냈다.
순간 굳어진 나와 문밖의 나를 확인하고 잠깐 놀란 듯했다가 바로 웃으며 인사를 해오는 장진.
“어? 형님?”
“아, 그, 그래.”
이야기를 몰래 들어버린 것 같은 모습이 되어 당황해 말을 더듬었으나 진이는 별말 없이 안부부터 물어왔다.
“그간 잘 계셨습니까? 며칠 인사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아니다. 일은 잘 배우고 있느냐?”
“예, 형님, 덕분에 잘 배우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떤 일로 할아버님 처소에는?”
“아, 보약을 지어주신다고 진맥을 받으러 오라 하시기에···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느냐?”
내가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아, 안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를 들었다는 의미에서 물었는데 되돌아온 대답은 예상외였다.
“아닙니다. 형님. 약재를 구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리는데, 형수님께 필요한 약제는 제가 제일 좋은 것으로 구할 테니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형님. 저 장진! 형님께 받은 은혜는 평생 갚을 것입니다!”
‘하, 이 새끼가 자꾸만 사람 감동하게···.’
장진이 마냥 파락호(破落戶) 난봉꾼만은 아닌 모양.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래. 고맙구나.”
“형님, 저는 급한 일이 있어 아침 일찍 나가 봐야 해서, 그럼 할아버님을 만나고 푹 쉬십시오.”
“그래, 진아 너도 너무 의욕적인 것은 좋지 않으니 몸도 챙기거라.”
“걱정하지 마십쇼 형님 제 일인 것을요. 하하하”
뭔가 믿음직한 소리를 하고 돌아선 장진은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 감동을 산산이 깨트리며.
“어디 보자··· 고려인삼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일단 호대인과 약속을 잡아야겠고··· 약속은 아무래도 화월루(花月樓)에서 해야겠지? 화월루에 비희가 아무래도 허리가 잘록 한 것이···”
‘저눔시끼 이제 보니까?’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장진.
일의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자가 진정한 프로라 했는데, 그렇게 치면 장진 저놈은 진정한 프로였다.
***
장진이 고려인삼을 구한다고 나선 것 같으나 일이 마냥 순조롭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틀간 어떤 소식 없이 장진이 고주망태가 되어 퇴근하는 모습만을 확인한 상황.
그렇게 들려올 희소식을 기다리며, 약왕이 직접 다려다 준 보약을 사흘째 받아 마시면서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고 있을 때였다.
저녁을 먹기 전 아내와 영영이와 함께 장의문의 후원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을 때.
장진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후원의 문으로 모처럼 올바른 정신 상태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외친 것은···
“형님! 형님! 헥헥. 아이고 나 죽네!”
뭐가 그리 급하고 바쁜지 경공까지 펼친 채 달려들어 온 장진.
“아이고 숨 좀 돌리자. 헉헉”
“아닛! 뭐 하는 거예요! 지금!”
“거참! 좀 숨 좀 돌립시다!”
-꼴깍꼴깍
장진은 한참 숨을 몰아쉬더니 우리 앞에 놓인 찻주전자를 입에 물고, 영영이의 눈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아니고. 힘들어라···”
“무슨 일이기에 이리 호들갑인 것이냐. 진아?”
아직 해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장의문에 얼굴을 보인 장진.
해가 지고 어두워서야 얼굴 여기저기에 여자들의 분가루를 바른 채 퇴근하기 일쑤였던 놈이 이른 저녁부터 얼굴을 보인다는 사실에 신기해 되묻자, 숨을 돌린 장진이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형님, 오늘 좀 저와 함께 가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진이 너와 함께 말이냐?”
“예.”
갑자기 저녁 시간에 맨정신으로 들이닥쳐 대뜸 자신과 어디를 가야 한다는 말.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따라 어딜 가야 한다는 말에 장진에게 물었다.
“대체 저녁때가 다 되어가는 때에 어딜 같이 간 말 말이냐?”
그러자 장진이 묘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저와 함께 ‘기루’를 좀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 어디?”
“‘기루’ 말입니다. 형님.”
해선 안 될 말을 꺼낸 장진.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쩌 정!
장진의 기루라는 말에 아내 손에 들린 찻잔이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루에 가려다가 가루가 될 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