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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등(馬騎燈) (109/344)

마기등(馬騎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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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제(弟), 어째서 노공과 함께 기루에 가야만 하는지 제가 조금 들을 수 있을까요? 이리 늦은 시간에 갑자기 가신다니 조금 ‘걱정’이 되어서요.” 

아내가 갑자기 들이닥쳐 나와 함께 기루를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손끝에서 흩날리는 가루가 된 찻잔과 함께. 

-꿀꺽 

아내의 모습은 아무런 감정의 고저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에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으나, 그 모습을 대한 장진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잔뜩 쪼그라들어 개미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것이 그러니까 고, 고려···” 

“똑바로 대답 못해요! 왜 가가를 모시고 기녀(妓女)가 있는 기루에 가야 하는지 묻고 있잖아요. 지금!” 

“히익!” 

-쿠당탕 

아내에게 잔뜩 쫄아 있다가 영영이의 호통에 화들짝 놀란 장진이, 앉아있던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간신히 다시금 입을 열었으나 이야기가 목구멍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그러니까··· 이, 인삼이···” 

“왜 말을 못 해요? 말을! 답답해라 정말.” 

영영이의 다그침에 어떻게든 용기를 낸 진이가 뱉어내듯 외쳤다. 

“혀, 형수님의 약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제, 약이요?” 

장진이 외친 말에 아내의 분노가 잦아들고, 결국 장진이 이 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게 된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른 후였다. 

“형수님 약이 기루에 있어서···” 

“네?” 

“아니, 무슨 약이 기루에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마 진이가 구하려 했던 고려인삼을 싹쓸이 해한 것이 기루의 관계자인 모양이었지만, 내용을 알지 못하는 영영이는 빽빽 소리를 지르며 장진을 다그쳤다. 

그러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장진이 꽥하고 소리쳤다. 

“아! 좀 조용히 해보쇼 소저는 목소리만 커서는! 당문에서는 요즘 암기술 말고 음공을 가르친답니까?! 사람 정말 간 떨어져 죽겠네!” 

“뭐라고요!” 

“이, 일단 들어보십쇼 혀, 형수님!” 

장진의 설명으로는 내가 장진과 함께 아내를 두고 이 시대의 룸살롱인 기루를 가야 하는 이유는 고려인삼 때문이었다. 

진이가 시중에 나온 고려인삼을 누가 싹쓸이 쳤는지 이틀 동안 확인한 결과. 

알아낸 것이 그 구매자가 복주(福州)의 기루 중 1, 2위를 다투는 큰 기루인 화화루(花花樓). 

화화루의 루주(樓主)가 시중에 나온 고려인삼을 싹쓸이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해서 제가 화화루를 매일 찾아가 루주를 만나려 했으나 이틀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 낮에서야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 제 약에 쓸 고려인삼이 기루 주인의 손에 있다는 말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형수님.” 

“그런데 어째서 노공께서 거길?” 

어느 정도 의혹이 풀린 아내가 움켜쥐고 있던 찻잔의 가루를 모두 손에서 털어내자 진이가 허겁지겁 말했다. 

“제,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화화루의 루주를 만난 진이는 웃돈을 주고 고려인삼을 구매하려 했으나 화화루주가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화화루주의 말로는 화화루는 일종의 프랜차이즈 기루. 

이 시대의 남해무역의 중심인 무역항 투탑은 광동(廣東)의 광주(廣州)와 복건성의 복주이기에 화화루의 본점은 광주에 있고, 이곳 복주는 분점이라는 것. 

본점이야 장사가 잘되지만, 문을 연 지 몇 해 안 된 복주의 화화루는 아무래도 터줏대감인 화월루에 좀 밀리는 경향을 보이기에 이번에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그 이벤트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것이 고려인삼이라는 이야기였단다. 

본점인 광동(廣東)의 광주(廣州)에서 최고 기녀도 지원을 나오고, 그에 맞춰 VIP 손님들에게 인삼을 정력제 대신으로 조금씩 잘라서 서비스하려고 했다나? 

“그래서 제가 사정사정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기에, 형수님이 아프다는 이야기는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식룡이신 형님이 구하시는 것이라 넌지시 이야기했는데, 거기 루주가 한번 꼭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요.” 

“저런, 그렇게까지···. 진 제(弟),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가 장진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준 것에 감사하자, 장진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니 일단 만나자는 것은, 조건에 따라서는 고려인삼을 내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라. 손님들이 고려인삼을 다 먹어버리기 전에 형님을 급하게 모시고 가려고···” 

장진이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영영이가 빽 하고 소리쳤다. 

“아니, 그러면 빨리 이야기할 것이지! 뭐해요! 술 취한 놈들이 다 먹어버리기 전에 어서 이야기하러 가야죠!” 

그리고는 장진을 일으켜 문 쪽으로 밀며 소리쳤다. 

“가가도 어서 서두르세요. 지금 아니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면서요?” 

하지만 그냥 내 맘대로 갈 수는 없는 법. 

이 시대에는 방탄 헬멧도 없으니까 말이다. 

조심스레 아내에게 물었다. 

“그, 부인, 내가 그 비즈니스 아니지, 일로다가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괘, 괜찮겠소이까?” 

내 물음에 아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부인된 자가 감히 어찌 노공께서 기루에 가시는 것을 막겠습니까? 다만···” 

“다만?” 

“믿겠습니다···” 

‘조, 조심하라는 겨, 경고인가?!’ 

그렇다면 이대로 촐싹대고 따라나설 수는 없는 일. 

아내의 걱정을 잠재울 뭔가가 필요했고, 곧바로 아내 안심 프로젝트를 가동하기로 했다.

아내 안심 프로젝트 On.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아내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물었다. 

“부인 내 눈 안에 무엇이 보이시오?” 

해가 지고 있다지만 아내가 안력을 끌어올리면, 내 눈에 비친 자기의 얼굴이 보일 터. 

아내가 자기의 얼굴을 확인하고 가까워진 얼굴에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린 채 조심스레 대답했다. 

“제, 제모습이 보입니다.”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며 대답한 아내. 

나는 고개를 돌린 아내의 귓가에 냉큼 대답해주었다. 

“이렇듯 내 눈 안에는 온통 그대의 모습뿐인지라 다른 여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 나를 믿어도 좋소!” 

저 멀리 지는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듯. 

아내의 얼굴도 붉게 타올랐다. 

*** 

“혀, 형님. 혀, 형수님께서 서, 설마 시, 신공절학을 연마하신 것입니까?” 

옆에 걷던 장진이 아직도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훔치며 물어왔다. 

“형수님께서 찻잔을 가루로 만드신 순간.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차례대로 떠오르며··· 그것이 마치···” 

“마기등(馬騎燈) 같았더냐?” 

마기등 같았냐는 내 물음에 장진이 고개를 맹렬하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마, 맞습니다! 마기등! 마기등이 움직이는 것처럼 아주 빠르게···” 

마기등이란 송 시대의 주마등(走馬燈)을 부르는 이름. 

우리가 보통 삶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는 표현에 등장하는 것이다. 

송 시대 중원에는 가장 큰 명절이 춘절이라면, 가장 화려한 명절은 음력 1월 15일 등롱을 집에 매달아 원소(元宵)절. 

불야성(不夜城)이라는 말이 시작된 송대 수도 개봉의 밤이 수많은 등롱으로 대낮같이 밝아지는 축제인지라 무척이나 화려하다는 평가. 

이 시대에는 원소절을 상원(上元)절 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축제 기간에 매다는 수많은 종류의 등롱 중 한 가지가 마기등. 

등 위에 프로펠러를 달아 등잔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프로펠러를 돌리고,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힘으로 등롱 안쪽의 그림들이 회전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영등(影燈)이라고 부르던 것도 같은 것. 

그러니 마기등에 회전하는 그림처럼 장면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해서, 우리가 주마등 같다는 표현을 쓰는 것. 

인생 첫 주마등을 경험한 장진이 연신 식은땀을 훔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진이 이렇게 인생에 주마등을 겪은 이유는 눈치 없이 기루 이야기를 꺼냈다가 아내인 제갈청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보았기 때문. 

미리 어떠한 이유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으면 좋았는데, 다짜고짜 기루 이야기를 꺼냈으니 감정 컨트롤이 안되는 아내의 내공이 흘러나와버리고 만 것이었다. 

장진에게는 살기도 조금 흘러든 모양. 

그렇게 장진은 주마등을 경험했지만, 나는 약간 기분이 좋기도 근심이 차오르기도 하는 상태. 

내공의 문제로 감정이 컨트롤 안되는 것도 있다고 해도 그렇게 격렬하게 나를 사랑한다니, 기분이 좋기는 한데, 무척이나 부담되는 사랑이랄까? 

귀엽다며 쥐어 터트리고 싶다고 할까 무섭기도 하고···. 

그렇게 아까의 일을 떠올리며 장진과 목적지로 향하는데 장진이 아직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저, 저는 형수님이 그리 무서운 분인 줄 몰랐습니다. 평소에 말도 별로 없으시고, 아주 얌전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그 말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떠는 장진. 

그런 장진에게 생존을 위한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 

“동생, 혹시 개에 대해서 잘 아는가?” 

“개요? 글쎄요? 그다지 알지 못합니다만.” 

가죽같이 키우는 개이니 거대 제약회사 손주가 개 따위를 신경 쓸 리 없으니 당연했다. 

천천히 장진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내 개를 좋아해 가까이 기르니 알게 된 것인데, 개에는 두 종류가 있네.” 

“두 종류 말입니까?” 

“그렇지. 우선 첫 번째가 짖는 개네. 이 개들은 맹렬히 짖으며 경고하지. 하지만 짖는 개들은 무서운 개가 아니네, 자신도 겁이 난다는 표현이거든. 무서워 공격당하면 살기 위해 물지언정 절대 먼저 물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 

개가 짖는 것은 경고에 표현인 동시에 자신도 겁이 난다는 표현. 

그러니 개가 짖어올 때 다가가 겁을 주거나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절대 물지 않는다. 

“그럼 두 번째 개는 무엇입니까?” 

진이가 내 설명에 궁금한지 곧장 두 번째 개가 무엇인지 물어왔다. 

“두 번째 개는 무는 개라네. 이 개들은 경고 따위는 하지 않지. 분노하면 절대 경고하지 않네. 행동으로 옮길 뿐이지. 그러니 짖지 않는 개는 조심해야 하는 것이네.” 

“그, 그렇다면?” 

소동파 그 양반 때문에 하동의 호랑이라는 여자가 이쪽에서 좀 치는(?) 걸 크러쉬 한 여자로 알려졌지만, 남편에게 바가지나 긁는 평범한 여자일 뿐. 

진정 무서운 여자는 호북의 제갈 청. 

내 말의 뜻을 알아듣고 장진이 눈을 부릅뜨며, 오늘 자신이 요단강 너머를 잠시 구경하고 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 

화화루는 상당히 멋진 기루였다. 항구도시 한편 오 층짜리 전각에 멀리 수평선 너머로 지는 태양이 보이고, 한쪽에는 백사장이 한쪽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펼쳐져 있는 수려한 자리에 세워진 모습. 

치자등이 입구를 수놓고 치자등마다 올려진 대나무 채반. 

대나무 채반의 모습에 흠칫 놀라며 입구로 들어서자 입구 양쪽의 기도인 무사들이 우리를 맞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룡 류청운님.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리지도 않았는데 내 얼굴을 알고 우리를 안내하는 무사들. 

무사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걸린 붉은 휘장과 여기저기 흩어진 테이블에서 기녀들을 끼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 일 층에서부터 삼 층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사 층부터는···” 

자기가 룸살롱 선배라고 딱 붙어 설명충 빙의해 기루 시스템을 설명하는 장진. 

장진은 아주 신이 나서 침까지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별로 들을 필요는 없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전에 가봐서 그런 것은 아니고, 전생의 무협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한 지식이랄까? 

무림의 기루 시스템이야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시스템. 

삼 층까지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지만, 사 층 이상은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것. 

사 층부터는 특출난 재주가 있거나 명망이 높은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고, 오 층은 이곳 화화루의 콧대 높은 최고 기녀가 직접 맞는 시스템. 

물론 그녀가 마음이 움직일 만한 사람일 경우에만 말이다. 

‘아, 사 층으로 올라오라 하면, 가오가 상하는데?’ 

설마 사 층에서 맞는다면, 기분이 별로일 것으로 생각하며,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안쪽에 기다리고 있던 기녀 하나가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 

“루주께서 오 층으로 모시라 하십니다.” 

‘이런 나란 놈 결국 오 층인가?’ 

당연한 결과인지라 감흥은 없었다. 

당연한 결과에 뒷짐을 지고 계단 쪽을 바라보는데 하나둘 느껴지는 시선. 

오 층으로 모시라는 기녀의 아주 가녀린 목소리였지만, 시선들이 집중되고 있었다. 

결국 일 층에 술을 마시던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진이가 어깨에 힘을 빡 주며 국어책 읽듯 말했다. 

“제, 의형제이신. 식. 룡. 류청운. 형님. ‘오층’으로 오르시죠. 형님 덕분에 오 층 구경을 다 하겠습니다. 아하하하!” 

장진의 신이 난 웃음이 화화루 일 층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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