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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요리. (111/344)

간판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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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저 요리사인 줄로만 알았더니··· 뛰어난 지모까지 지녔을 줄이야.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객잔의 주인이 제갈가의 사위가 될 리가 없던가요?” 

내 대답이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인정하는 듯한 얼굴이 된 비연. 

그녀는 좀 더 공손한 모습이 되어 부탁했다. 

“문주께서 제갈가 같은 머리 쓰는 이들을 조심하라고 하시더니··· 내기는 제가 졌군요. 맞습니다. 공자님의 말씀대로 기루 요리의 비연. 저희 기루 요리에는 저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저희의 의뢰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결국 하오문의 의뢰는 기루의 얼굴인 비연 같은 간판 요리의 레시피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비연이 다시금 내 쪽으로 절을 하며 엎드렸다. 

칼을 들고 흉흉하게 겁박하다가 신속히 태세 전환을 하는 송비연. 

좀 전까지는 조직의 행동대장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다시금 기녀로 돌아온 모습. 

그녀의 카멜레온 같은 감정표현, 태도, 표정 변화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룸살롱 에이스라더니 에이스는 에이스로구나.’ 

내가 화화루에서 준비한 음식을 시식하며 느낀 것은 너무 무난하다는 것. 

광주 본점의 상황은 모르겠지만, 이곳 화화루는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위치에 지어진 데다가 광주 최고의 기녀라는 비연이 이쪽으로 이적까지 해온 상황. 

강남 최고의 기녀라는 기녀계의 탑 아이돌인 그녀가 직접 이적까지 해왔고, 뭐 하나 빠질 것이 없는데 화월루에 밀린다는 것은 다른데 문제가 있다는 것. 

아마도 이분들은 그 문제를 간판 요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들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되물었다. 

“저쪽 요리사의 요리가 뛰어납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만?” 

살짝 뜸을 들이고 대답하는 비연. 

고인 물 베테랑이면서 뭔가 풋풋한 흉내를 내듯 살짝 볼을 붉히며 뉴비 같은 표정으로 그녀가 대답했다. 

“화월루의 차림 제일 마지막에 약선(藥線) 요리를 선보이는데, 그것이 정력(精力)에 좋다는 소문이···” 

정말 요망한 여자였다. 

뭔가 작정하고 의도하고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남자를 유혹하는 행동이 흘러나온달까? 

하지만 저런 날렵함을 좋아하는 것은,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삐뚤어진 시각에서 시작된 것. 

그러니 저런 날렵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네츄럴 본 송 시대 사람인 장진 같은 부류이거나 전생이라면 전자발찌 필요한 부류들. 

더군다나 북유럽 자작나무숲에서 이슬만 먹고 사는 것 같은 모습의 내 엘프 같은 아내 앞에서는, 다들 불 위에서 오그라드는 오징어가 되어버리기에 나에게는 어림없는 개수작이었다. 

오징어에게 대답했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말이다. 

“아, 그래서 고려인삼을 부랴부랴 구매해 상에 올리시려 한 것이군요?” 

“예, 맞습니다. 공자님.” 

그래, 그러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하오문이 우리가 구하는 약재를 알고도 가로챘다기보다는 그냥 서로 상황이 잘못 맞물린 느낌. 

사정을 들어보니 경쟁업체인 화월루가 시장을 선점한 상황에 시도한 몸부림일까? 

상대방 기루의 장사 수완이 아주 훌륭했다. 

기루에서 정력에 좋은 약선 요리를 마지막에 낸다는 그 점은 아주 칭찬받을만한 것. 

기루에 딱 어울리는 요리랄까? 

하지만 그래도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군요?”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내 이해가 안 된다는 물음에 되묻는 비연.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이들이 하오문이 잘 사용하는 방식을 쓰지 않고 뭔가 어울리지 않게 공정경쟁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 

하오문은 뭐랄까? 반칙왕 같은 새끼들. 

이런 상황에서 하오문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상대 기루의 기녀를 납치해서 강제로 이적시키거나 흑색선전을 펼치는 것. 

하오문이 자신 있는 정보와 소문을 이용해 화월루의 약선 요리를 먹고 몸에 큰 문제가 생겼다거나 죽었다고 하는 헛소문을 퍼트리면 되는데, 너무 얌전한 방법이랄까? 

“뭔가 하오문의 방식대로 화월루를 견제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 물음에 인상을 살짝 찌푸린 비연이 대답했다. 

“화월루의 뒷배가 장사랑수대리사평사첨서복건로복주절도판관청공사(將士郞守大理寺評事簽書福建路福州節度判官廳公事)어른 이라서 그런 방법은 힘듭니다. 잘못하면 큰일이 날 수 있거든요.” 

“누구요?” 

“장사랑수대리사평사첨서복건로복주절도판관청공사요.” 

‘이 새끼들 진짜!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지랄인지!’ 

긴 관직명에 현기증에 몰려왔다. 

하긴 포청천 그 어른의 관직명이 추밀부사조산대부급사중상경거도위동해군개국후식읍일천팔백호실봉사백호사자금어대증예부상서(樞密副使朝散大夫給事中上輕車都尉東海郡開國侯食邑一千八百戶實封四百戶賜紫金魚袋贈禮部尙書)이니 저 정도면 준수하긴 했다. 

그냥 복건성 복주의 현령 비서 정도의 관직이 뒷배라는 말을 왜 저따구로 어렵게 하는지··· 

이놈의 중원 뜯어고칠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간만에 중원의 현실에 뜨거운 분노를 토해냈다. 

‘어떤 새끼가 코딩했는지 버그투성이 망겜같은 중원!’ 

결국 하오문 놈들은 준범죄자 집단이다 보니, 제일 오줌 지려 하는 것이 구파 일방도 아니고 관인데 그 관의 인물이 뒷배니, 하오문의 방법을 쓰지 못한다는 말.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예, 저희 의뢰를 맡아주시겠습니까?” 

거듭 재촉하는 비연. 

이미 내기에서 이긴 상태. 

고려인삼만 홀랑 가지고 날라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하오문 놈들이 악의에 차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트릴 것이 분명했기에 일단 의뢰는 맡아주어야 했다. 

“의뢰는 맡아줄 것인데, 몇 가지 더 듣고 싶은 것이 있군요.”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공자님, 그런데 몇 가지라면?” 

내가 궁금한 것은 이쪽과 상대 기루가 어떤 식으로 장사하는지, 손님들은 어떤 부류인지 뭐 그런 것들이었다. 

요리를 먹는 사람이 어떤 부류인지 가게가 어떤 식으로 장사하는지 알아야 그에 맞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 

“어떤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지, 가게에 올 때 손님들이 뭘 기대하고 오는지 뭐 그런 것들이랄까요?” 

내 물음에 당황한 비연이 대답했다. 

“어떤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지는 말씀드릴 수 있지만, 기루에 오는 손님들이 뭘 기대하고 오는지는···” 

‘하긴 이 시대에 손님의 니즈와 감성까지 생각하는 마케팅까지는 무리일까?’ 

비연의 대답에 그럼 뭘 물어봐야 생각할 때 지금까지 쫄아서 입을 꾹 닫고 있던 장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그것은 제가 잘 압니다!” 

“네가?” 

“예, 제가 복주의 모든 기루를 꿰고 있으니, 제가 아주 소상히 이야기해 드릴 수 있습니다!” 

내 개잡주가 자신이 원래는 가치 있는 주식이었다며 자신 있게 외치니 조금 껄쩍지근 하긴 한대··· 

일단 장진에게 말할 기회를 줘보았다. 

“뭐, 그, 그래 한번 이야기해보거라.” 

“우선 화월루는 말입니다······” 

자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진. 

쓸데없는 소리는 아닐까 걱정했지만, 장진. 생각보다 이놈 기루에 정말로 진심인 놈이었다. 

화월루의 에이스는 누구며 어떤 손님들이 많이 가고, 화월루에는 뭘 기대하면서 가는지 화화루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마치 논문이라도 한 편 쓴 것 같은 소감을 토해내는 진이 놈. 

말 그대로 기루 박사! 

‘개똥도 약에 쓴다더니?’ 

그 이야기에 비연까지 놀랄 정도. 

“대, 대단하시군요. 장 공자, 그런 식으로는 생각조차 안 해봤는데···.” 

장진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화월루의 기녀들은 대체로 평균적인 미모인 데 반해. 

화화루는 에이스 몇 명이 매상을 이끄는 느낌이라는 것. 

가격 차이는 없었다. 

다만 비연 같은 가게 에이스를 비롯해 상위권 기녀들이 모든 손님을 받지는 못하고, 비연 같은 경우는 순수 어그로 용이니. 

화화루가 화월루에 비해 여자들도 예쁘고 시설도 훨씬 좋은 것은 모두 알지만, 뭔가 찐득하고 끈끈하게 즐기려면 화화루 보다는 화월루를 찾는다는 것. 

거기에 약선 요리와 기녀들의 조합이 아주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고. 

아침에 눈을 뜨면 기녀들이 손님 품에 안겨 아양을 떨면서, 약선 요리를 먹어서 그런지 어젯밤 대단하셨다고 칭찬해주니, 약선 요리의 명성은 더욱 올라가는 상황. 

비연이 고려인삼을 쉬이 내준다고 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마 마지막에 화월루처럼 손님상에 고려인삼을 내준다고 소문을 냈겠지만, 신통치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원래 시장을 선점한 업체의 점유를 떨어트리고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닌 것. 

저쪽에서 정력에 좋다는 요리로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데, 아무리 고려인삼이 좋은 약이라지만, 그거 몇 조각 잘라 먹는 것보다야 당연히 뭔가가 잔뜩 들어간 익숙한 요리를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흐음. 쉽지 않은 일이긴 하겠군요.” 

들은 이야기를 다 종합해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려인삼까지 받았으니 먹고 입만 닦을 수는 없는 일. 

쉽지 않은 일이라니 손가락을 입술에 물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연기하는 가증스러운 비연을 향해 대답했다. 

“이미 맡아준다고 이야기를 꺼냈으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알겠습니다. 공자님. 소첩, 이 일이 잘되면 공자님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기쁜 표정의 비연이 가짜 루주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루주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손님들을 위해 준비해둔 것을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잠시 후 잘 포장된 고려인삼이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겨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자 상자 안, 이끼에 몸을 뉜 고려인삼 다섯 뿌리. 

“진아, 이 정도면 충분한 것이냐?” 

충분한 양인지를 묻자 장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형님. 다섯 뿌리면 충분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만족한 얼굴로 일어서려는데 들려오는 비연의 목소리. 

“아, 공자님 다른 것도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먼저 받아 가시지요.” 

“다른 것 말이오?” 

다른 약재도 먼저 받아 가라고 이야기하며 비연이 다시금 가짜 루주에게 턱짓했고, 가짜 루주가 다시 한번 밖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오늘 구매해온 것도 가지고 오너라. 식룡께 선물로 드릴 것이니.” 

“예.” 

‘고려인삼 말고 다른 게 또 있었나?’ 

장진에게 혹시 더 필요한 약재가 있었냐는 눈빛으로 물었지만, 장진도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고려인삼을 담았던 상자보다 조금 길쭉하고 가녀린 상자 하나가 기녀의 손에 들려 우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기녀의 손에 들려 나와 비연 사이에 놓인 상자, 기녀가 그것의 뚜껑을 열어 안의 내용물을 확인시켜주었다. 

상자를 열자 흘러나오는 비릿한 냄새와 붉은 비단 천으로 덮인 무엇인가. 

기녀가 비단 천을 걷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말라붙은 막대기와 거기에 매달린 말라붙은 동그란 알 두 개. 

‘대체 이게 뭐지? 죽방울인가?’ 

말라붙은 긴 막대기에 공 두 개가 매달려 있는 모양새. 

대체 이것이 무엇이냐는 뜻으로 비연을 바라보자 비연이 귀여움을 떠는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공자께서 찾으시는 것이 맞지요?” 

“이것이 대체?” 

멍한 얼굴로 묻자 비연이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한쪽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대답했다. 

“해구신(海狗腎)입니다. 공자님. 훗···”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 떠오르는 묘한 미소. 

갑자기 해구신을 선물로 내주는 모습에 당황에 되물었다. 

“어째서 해구신을?” 

내 대답에 비연이 다시금 뭔가 다 안다는 듯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공자님 부끄러워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도 좋은 약재를 최선을 다해 구할 것이니까요.” 

“예? 대체 왜? 무, 무엇을?” 

내 물음에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대답하는 비연. 

“류청운 공자님, 저희는 하오문이랍니다. 이미 공자님께서 동정호의 배 위에서 약왕님과 나누셨던 이야기들이 저희에게 알려졌으니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갑자기 불안해지는 느낌. 

그녀에게 재빨리 되물었다. 

“무, 무슨 이야기가?” 

“공자님께서 그 남성(男性)의 치료를 위해 장의문에 오셨다는···” 

‘아뿔싸!’ 

약왕이 배 위에서 했던 오해를 살만한 이야기가 하오문의 귀에 들어가 버리고 만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하오문 구성원의 한 축이 뱃사공과 짐꾼.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하, 하오문에게 알려졌으니···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겠군요?” 

내 물음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비연. 

“아, 아마도?” 

아무래도 망할 늙은이 덕분에 중원 전역에 불능(不能)으로 소문이 나버린 모양. 

‘제기랄!’ 

고려인삼만 가지고 홀랑 날라버린 것도 아닌데, 이미 악의에 찬 이상한 소문이 하오문 녀석들을 통해서 무림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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