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후(武侯)와 무후(無吼). (113/344)

무후(武侯)와 무후(無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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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해방(漳港海蚌). 

장강항구에서 나는 바다 조개라는 뜻. 

물론 장강 하구가 아닌 곳에서도 잡힌다. 

크면 손아귀에 가득 차는 크기까지 자라는 조개인데 진한 맛이 일품이다. 

탕을 끓여도 좋고 볶아먹어도 맛있는 조개. 

한국에서는 명주개량조개나 황조개라고도 부르는 종류. 

영영이에게 받아든 조개를 손에 들고 생각에 빠져있는데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맛있나요? 이거?” 

“아주 맛있지.” 

내 맛있다는 말에 기쁜 표정으로 영영이가 되물었다. 

“어! 그러면 더 잡을까요?” 

“괜찮겠어?” 

조개를 잡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조금 부끄러운 모습. 

그러니까 혹시나 개다리춤이 부끄럽지는 않은가 물었지만,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물러서지 않는 영영이는 그까짓게 별거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저희밖에 없잖아요?” 

그녀의 대답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해변에서 영영이의 개다리춤 개인기가 다시금 펼쳐지고, 곧이어 아내도 영영이를 혼자만 두기 미안했던지, 옆에서 얼굴을 붉히며 개인기였던 영영이의 공연을 듀엣으로 만들었다. 

‘개 귀여워!’ 

뭘 해도 예쁜 아내와 요즘 그래도 아주 개미 눈물만큼 쪼끔 귀여운 깍두기 영영이. 

그녀들의 춤이 잠깐잠깐 멈출 때마다 발끝에서 큼지막한 조개들이 하나둘씩 잡혀 올라오기 시작했다. 

*** 

가까운 화화루에서 사람을 불러오고 물통을 가져와 조개를 담아 일단 화화루로 옮겼다. 

“하루에 열 번 바다에서 깨끗한 물을 떠다가 물을 갈아주도록 해주시오.” 

“여, 열 번? 말씀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주 확인해서 죽은 녀석들은 골라내서 버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른 조개들도 죽으니까요. 내 이틀 후 다시 오겠소.” 

“예,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가짜 루주에 조개를 부탁하고 돌아 나오자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 된 영영이. 

영영이가 입을 삐쭉거리며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잡은 것인데···” 

왜 우리가 잡은 걸, 다 기루에 주고 오느냐는 영영이. 

뭐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것. 

아쉬워하는 영영이에게 설명했다. 

“저 조개를 맛있게 먹으려면 이틀은 물을 갈아줘야 하는데, 장의문에서 하기에는 힘들어서 가까운 화화루에 부탁한 것이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준비가 다 끝나면 기루에서 가져다 맛을 보여줄 테니.” 

명주개량조개는 해감이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조개들이 안에 머금은 뻘이나 모래를 뱉어내게 하는 과정을 해감이라고 하는데, 보통은 소금물에 담가 하루 정도면 대부분 조개의 해감이 완료되는 데 반해 명주개량조개는 해감이 정말 어려운 조개. 

보통의 조개들은 내장을 제외하고 껍질 안에는 뻘이나 모래를 물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입수공과 출수공을 껍질 밖으로 내밀고 호흡한다. 

그렇기게 물을 갈아주면서 놔두면 조개 안의 뻘이나 모래들이 하루 정도면 조개 밖으로 뱉어내는데, 명주개량조개는 특이하게 죽을 때까지 껍질 안에도 모래를 잔뜩 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본적인 해감만으로도 이삼일은 걸리는 것. 

영영이와 아내가 약속받으려는 듯 되물었다. 

“알겠어요. 가가. 꼭 약속이에요.” 

“저도 꼭 먹어보고 싶어요.” 

“알겠소. 내 약속하겠소.” 

고개를 끄덕이며 둘에게 약속하자 들려오는 소리. 

“월! 월!” 

덕구가 짖어왔던 것. 

영영이와 아내가 조개를 잡을 때 저도 땅을 파헤치며 좀 도왔다고 자기 몫을 주장하듯 짖는 덕구. 

내 생각이 맞는지 덕구에게 묻자 덕구가 대답하듯 짖었다. 

“너도 달라는 것이냐?” 

“월!” 

“알았다 이놈아.” 

*** 

이틀이 지나고 점심때쯤 화화루로 향했다. 

명주개랑조개의 일차 해감이 이제는 다 끝났을 것이기 때문이었던 것. 

그렇게 기루로 향하는 길. 

장진이 뒤를 흘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형님, 기루에 당 소저와 형수님을 데려가도 될까요?” 

장진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 뒤에는 영영이와 아내 그리고 덕구까지 우리를 쫓고 있기 때문, 

“뭐, 상관없지 않겠느냐? 우리가 기루에 기녀를 끼고 술을 마시러 가는 것도 아니고, 기루가 문을 열 시간도 아니지 않느냐.” 

처음에는 영영이가 자신도 가겠다고 해서 조금 난처했지만, 화화루의 영업시간은 해가 지고부터이니 크게 상관없을 테고, 어제 숙박(?)했던 손님들도 아침이면 다 떠났을 테니 부끄러운 장면을 볼 일도 없을 것. 

부엌에만 있다 나올 것이니 크게 상관은 없을 듯싶어 동행을 허락했는데, 그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장진의 입에서 들려오는 실망스러운 목소리. 

저번에도 고려인삼만 받아 바로 나온 터라 진이는 오늘만큼은 한껏 기대하는 모습이었는데, 영영이가 참지 못하고 기루에 자신도 가겠다며 따라붙자, 자동으로 아내와 덕구까지 추가된 것이었기에 실망한 표정이 되어버린 것. 

아마도 영영이와 아내까지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일 때문에 가는데, 장 공자는 왜 그렇게 실망한 표정일까? 풋” 

“에이잉!” 

영영이가 장진을 놀리듯 묻자 장진의 입이 삐뚜름하게 되어서는 터덜터덜 화화루 쪽으로 걸어갔다. 

삐진 장진을 앞세우고 화화루에 도착하자 화화루의 무사들이 우리를 뒷문으로 안내했는데, 그들을 따라 뒷문으로 들어서자 거기에는 비연과 가짜 루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류청운 공자님.” 

“어서 오십시오.” 

“그런데 뒤에?” 

비연이 영영이와 아내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아무래도 기루에 여자가 찾아와 놀란 모양. 

“아, 내, 부인과 매매요.” 

내가 아내와 영영이를 소개하자 비연이 둘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어머! 류공자님의 매매라면 독접(毒蝶) 당영영님과 제갈무후(諸葛無吼) 제갈청님 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당영영이라고 해요.” 

“제갈청이라 합니다. 그런데 제갈무후라면?” 

영영이야 이미 무림 활동을 조금 했던지라 독나비라는 별호를 가진 상태였지만, 아내는 그간 몸이 매우 아팠던지라 무림 활동이 전혀 없었던 상태. 

그렇기에 별호 또한 가지지 못했는데, 비연의 입에서 아내의 별호로 추정되는 단어가 들려온 것이었다. 

그것도 우리도 알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별호가 말이다. 

제갈무후라면 제갈공명 어르신의 작위였던 무향후(武鄕侯)를 줄어서 부르는 것. 

아내에게 붙여질 만한 호칭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 제갈청님은 처음 들으실 수도 있겠군요. 요즘이 복건성 복주의 호사가들 사이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별호인지라.” 

“예? 호사가들 사이에서요? 저는 무림에 어떤 행적을 남긴 적이 없는데요? 더군다나 제갈무후(諸葛武侯)라면 가문의 큰 어르신의 작위 제가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별호입니다.” 

뉘 집 와이프인지 똑소리 나고 공손한 어법으로 대화하는 아내. 

‘아니, 무슨 말을 해도 예쁘냐고?’ 

아내의 고운 목소리와 대화 내용에 감탄할 때 비연이 당황한 목소리로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 무후는 맞는데 그 무후(武侯)가 아니라. 무후(無吼)라고···.” 

“예?!” 

영문을 모르겠다는 아내의 표정과 비연의 설명을 듣는 순간 철렁 내려앉는 가슴. 

‘설마? 장진 이 새끼가!?’ 

고개를 돌려 장진을 찾자 우리가 들어온 뒷문 쪽으로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기던 장진이, 내 눈빛이 메두사의 광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대로 굳어져 눈알만 움직이며 식은땀을 뻘뻘 흘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 듣는 자기의 별호에 당황해 내 얼굴을 확인하던 아내가, 내 시선을 따라가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으며 아내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형수님! 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살려주세욧!” 

*** 

제갈무후(諸葛無吼). 

후(吼) 울 후. 

사자후에 쓰는 한자어가 저 후자. 

노해서 소리를 친다는 의미를 가진 것인데, 원래의 무후(武侯)가 공명 어른이 가진 것은 작위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아내의 별호인 제갈무후의 뜻은 ‘분노해서 소리치는 것이 없는 제갈’. 

그러니 내가 장진에게 생존의 지혜로 알려줬던 짖는 개, 짖지 않는 개에서 나왔을 것이 분명한 별호. 

원래는 제갈불후(諸葛不吼) 정도로 쓰여야 했겠지만, 호사가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더니 라임을 넣어 가문의 큰 어른인 제갈공명 어르신의 제갈무후라는 존경 담은 명칭에 맞춰 만들어진 별호인 것이 분명했고. 

실제로도 확인해보니 술자리에서 장진이 털어댄 이빨에서 시작한 별호. 

-콰지직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비연이 대접한 찻잔이 박살이 나고, 그 모습에 장진이 파들파들 떨어댔다. 

그리고 아내가 장진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스타카토로 끊어쳤다. 

“하, 하. 진 제, 정 말 재 미 있 는 별 호 네 요.” 

“히이익! 잘못했습니다. 형수님!” 

그런 살벌해진 분위기 속에서 아내가 비연을 향해 물었다. 

“비연님?” 

“예?! 예! 마, 말씀하시죠!” 

아내의 부름에 몸을 떨며 대답하는 비연. 

아내가 비연에게 아주 낮은 소리로 물었다. 

“혹시? 제, 별호를 어떻게 조금 소문이 안 나게 할 수는 없을까요?” 

“무, 물론이죠! 저희 하오문에서 처, 철저하게 흘러나가지 않도록 노,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요.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다들 아내의 분노가 가라앉나 싶었는데. 말을 끝낸 줄 알았던 아내가 비연을 다시 불렀다. 

“아차, 비연님?” 

“예?! 마, 말씀하시죠.” 

“제, 노공께 붙은 이상한 소문도 같이 부탁드릴게요.” 

아마 중원 전역에 불능이라고 소문난 것도 없애주려는 모양. 

아내의 행동에 감격할 때 비연이 놀라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소, 소문이라면?” 

“저희 노공 그, 그렇게 약한 분이 아니거든요. 저희 노공 아, 아주 ‘강한’ 남자입니다.” 

아내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 

영영이의 구박을 받으며 물통을 들고 벌을 서는 장진을 한편에 두고 찾아온 목적인 요리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뜨거운 물에 조개를 한번 데치는 것. 

이미 일차 해감이 완료된 상황이지만 명주개량조개는 이정도로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내장에서 모래가 다 비워졌다고 해도 껍질 안에 남아있을 확률이 높은 것. 

끓는 물에 조개를 넣어 입을 벌리자마자 꺼낸 후, 다시 찬물에 조개 속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껍질에서 분리하면 좋겠지만 이 요리는 껍질이 있어야 어그로가 충만해 지는 것. 

조심해서 조개를 씻어내 한편에 준비하고 다음 재료를 준비했다. 

명주개량조개로는 탕이나 볶음 여러 가지를 준비할 수 있지만, 이곳은 술집이다 보니 탕보다는 당연히 안주로 좋은 볶음을 만들기로 했다. 

먼저 청경채, 죽순, 표고를 준비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뜨거운 물에 데쳐 물을 빼두고, 화구에 불을 크게 올려 웍을 빠르게 데웠다. 

웍이 데워지자마자 기름을 두르고 먼저 단단한 데친 죽순과 버섯 청경채를 넣어 볶아준다. 

-치이익! 촤아아악! 

기름이 담긴 뜨거운 웍에서 맛있음을 느끼게 하는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볶아지는 채소들에 간장 조금과 설탕 약간 그리고 조개를 데칠 때 만들어졌던 국물을 살짝 부어주었다. 

-추와와와와와악! 

조개 육수가 들어가 뜨거운 기름과 만나며 쏟아져 나오는 소리. 

여기에 조개를 넣어주었다. 

-탱탱! 촤르르르륵! 

웍을 빠르게 움직이며 볶아주어야 하는데, 절대 조갯살이 조개에서 떨어지지 않게 부드러운 웍질을 해주는 것이 포인트. 

-촤악 촤악 

몇 번 손을 움직여 부드럽게 재료를 섞어주며 조개를 볶아주었다. 

뜨거운 불에 조개가 순식간에 익어버리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소흥주 한잔과 참기름 살짝. 

소흥주의 향과 참기름의 고소함이 웍에서 폭발하듯 피어나면, 명주개량조개 볶음 완성. 

접시에 담아 조개볶음을 가지고 아내와 영영이가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그런데 접시를 가지고 나왔는데 보이지 않은 아내와 영영이. 

비연도 사라져 어디 갔나 사방을 살피자, 감시자인 영영이가 사라져 머리에 물통을 이고 있던 장진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연의 권유로 오 층을 구경 다녀 오신다고···” 

그리고 그때 계단에서 사람 내려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장진이 급하게 물통을 들어 올렸고, 물통에서 물이 반쯤 쏟아져 그것을 장진이 뒤집어쓰자 아내와 다른 여자들이 계단에서 내려왔다. 

“와, 정말 경치가 좋았어요.” 

“이래서 사람들이 기루 오 층에 가보려 하는 거구나?” 

“그렇죠? 청 언니와 영영 언니라면 언제든지 놀러 오시면 제가···” 

어느새 비연의 언니가 되어버린 둘. 

비연이 이십 대 초중반이라면 둘보다는 나이가 많을 텐데 슬쩍 들어보니 비연이 제일 막내 느낌. 

하긴 중원에서는 센 놈이 형님이니, 그렇게 치면 아내가 제일 언니긴 했다. 

뭐 그건 셋의 문제니 두고, 식어가는 요리를 먹는 것이 시급한 일. 

“자, 다들 맛을 봅시다. 이러다 요리가 식겠소.” 

셋을 부르자 셋이 쪼르르 달려와 젓가락을 들고 영영이와 아내부터 요리를 맛보기 시작했다. 

-후루릅 

조개를 들고 조갯살을 빨아들이는 영영이와 아내. 

곧이어 비연도 맛을 보고, 아내와 영영이 둘이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와! 정말 맛있군요.” 

“힘들여 잡은 보람이 있었네요? 가가.” 

그러나 둘과는 달리 맛을 보고 조금 멈칫한 비연이 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류공자님 맛은 분명히 좋은데, 그, 이것으로 화월루를 넘어설 수 있을지···”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이미 알고 있었던바. 

비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요리의 이름을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요.” 

“요리의 이름이요?” 

“그렇소. 그 요리의 이름은 초서시설(炒西施舌). 서시의 혓바닥 요리라오.” 

그래, 서시의 가슴과 젖을 맛봤으니 이번엔 혓바닥 요리였다. 

죽어서도 고통받는 서시에게 가슴속으로 묵념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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