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설(西施舌)
.
영영이가 잡아 내가 요리한 조개의 이름은 전생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은 장항해방(漳港海蚌)뿐만 아니라.
귀비방(貴妃蚌), 서시설(西施舌), 서시마가합(西施馬珂蛤).
귀비조개, 서시혓바닥, 서시말대합이라고도 불렸던 조개.
정확히는 영영이가 잡은 명주개량조개와 민물 말조개같이 생긴 녀석을 서시 혓바닥이라고 많이 부르지만. 전생 중원에서는 이 조개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개를 서시 혓바닥이라고 불렀는데, 중원에서 조개 대부분을 서시 혓바닥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서시에 얽힌 여러 가지 설화중 한가지 때문이다.
미인계로 오나라를 파멸로 몰아넣은 미녀 서시가 월나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월왕 구천의 왕비는, 서시가 돌아오면 월왕 구천이 서시에 빠져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해.
심복들을 시켜 서시의 등에 큰 돌을 매달아 항주(杭州)의 서호(西湖)에 서시를 빠트렸는데, 서시는 죽은 후에 이 조개가 되었고. 어부들에게 잡히면 자신의 원통함을 고하고자 하얀 혀를 내밀었다는데서 유래한 것.
전생에서는 그래서 명주개량조개로 한 요리는 꽤 유명한 요리 중 한 가지였다.
다만 나는 외국인인 나는 그 감성을 이해 못하지만 말이다.
뭐 현지인이 된 지금도 이해는 못 하지만.
‘중원 2회차지만 이 감성 정말 모르겠단 말이야···’
죽은 여자가 조개로 태어나 원한에 차 혓바닥을 날름거리면 괴기, 호러 이거늘.
전생의 중원인들은 이 조개를 먹으며 자신들이 서시와 딥키스를 한다는 감성을 느꼈다는데, 이게 참···
‘원한에 찬 여자의 혀를 맛보며 왜 이상한 감정을 느끼냐고?’
중원 몰라도 신기하고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그곳.
아무튼 그 감성이 이 시대에도 통할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놀란 비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시설(西施舌)?! 고, 공자님 서시의 혓바닥 요리라니, 아무래도 이름이 좀 기괴(奇怪)한···”
비연의 말에 아내와 영영이도 움직이던 젓가락을 멈추고 조개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명백히 꺼림직한 얼굴로 말이다.
‘세상에! 중원에 정상인 감성을 가진 이가 셋이나 있었다니! 그래 이것이 정상이지!’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인 서시의 원한에 찬 혓바닥을 볶은 요리라니 그 얼마나 기괴하겠나.
당연히 깜짝 놀라며 거부감이 들 수 있는 것.
셋의 반응으로 지인들이 정상인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며, 혹시 몰라 준비했던 다른 계획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잘 들어보시오. 모든 요리는 스토리텔링 아니, 그러니까 그럴듯한 이야기가 필요한 법이지.”
“그럴듯한 이야기요?”
비연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아마 비연이나 아내 영영영이의 반응은, 이 요리에 대한 특이한(?) 감성과 스토리가 이곳에 자리를 잡지 않아 그런 것이니, 요리를 팔면서 이야기도 파는 작업까지 쳐줘야 했던 것.
중원에 잘 나가는 요리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요리와 같이 파는 것이다.
나중에 비연에게 값을 톡톡히 받아내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자, 일단 내가 기녀라고 생각하고 여기 내 아내를 기루에 온 손님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예? 아, 火戲(화희)를 하시겠다는 것이군요?”
화의란 송나라에서 하던 인형극 중 한 종류를 말하는 것.
나는 아내 옆에 자리를 잡고, 기녀 빙의한 것 같은 손동작으로 아내 옆에 딱 달라붙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렇게 이 음식을 손님 앞에 가져다 놓고, 기녀가 손님 옆에 딱 붙어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아내의 팔짱을 껸 채 아내를 바라보고 기녀 빙의한 듯 미소를 짓자 새빨갛게 물드는 아내 제갈청의 얼굴.
그녀의 입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에··· 그··· 저기···”
“화희이니 잠시만 참으시오. 내 그렇다고 당매매나 비연에게 할 수는 없지 않소?”
아내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내가 그렇다고 영영이나, 비연에게 이럴 수는 없지 않냐고 하자 놀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내.
그런 아내의 팔짱을 낀 상태에서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 이것이 저희 기루에서도 하루에 몇 분 맛볼 수 없는 요리. 초서시설(炒西施舌).”
그리고 조개를 하나 들어 아내의 입 앞으로 가져가며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요리를 입에 넣어주는 것이요. 그리고 이렇게 묻는 것이지.”
새빨개진 얼굴로 조개를 입에 문 아내가 부끄러운지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중원 최고 기녀 빙의한 것 같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중원 최고 미녀 중 하나인 서시의 혀는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한가요?”
내 할리우드 배우 뺨치는 연기가 끝나자 아내는 익은 토마토가 되어 손바닥을 수전증 걸린 것처럼 떨어대며 자기 얼굴에 바람을 부치기 시작했고,
영영이와 비연은 입을 ‘오’하고 오므리고 놀란 표정으로 감탄했다.
“이, 이건! 화, 확실히 되겠군요!”
“저, 저도 여인이지만, 가가께서 한 것처럼 한다면, 무척이나 기분이 좋을 것 같긴 해요.”
그리고는 둘 다 다시 한번 초서시설(炒西施舌)을 입으로 가져갔다.
중국 4대 미녀와 딥키스를 하고 싶은가? 화화루로 오라!
이것이 이 중2병 관심종자 같은 요리의 슬로건.
이미 죽어버린 여인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 혀를 탐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 한 번쯤 들러볼 수밖에 없는 것.
왜냐 서시는 중원 4대 미녀니까 말이다.
거기에 이 요리는 프리미엄 한정판인 것처럼 판매할 것이니, 손님들은 먹고 나서 여기저기다 자랑질을 할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 요리를 먹은 손님들은 이리 말씀들 하시겠죠?”
나는 서비스로 두 명의 남자를 연기하며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내가 화화루에 가서 서시의 혀를 맛봤는데 말이지···.”
“서시의 혀? 이미 죽은 여인의 혀를 어찌 맛본단 말인가?”
“어허. 화화루에 가보면 다 알 수 있게 되네. 그 달콤함과 부드러움. 서시의 혀 다시 한번 맛보고 싶구나.”
그렇게 연기를 끝내고 비연을 향해 물었다.
“어찌 이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화화루 요리의 비연입니까?”
내 물음에 비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만족스럽다 마다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입니다! 아, 식룡! 반해 버릴 것··· 아뇨, 언니, 말이 잘못 나와서···”
‘이거, 또 한 명의 고객. 만족시켜 버린 것인가?’
요리로 헤쳐 나가는 중원 라이프 무공보다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
“류청운 공자님, 단순히 요리를 부탁드렸는데, 생각보다 여러 가지가 포함되니, 저희 쪽에서 조건을 다시 제안해야겠군요.”
비연이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하오문도 임에도 생각보다 거래의 도를 아는 비연.
단순한 요리라면 레시피만 전달하면 끝날 일이지만, 초서시설(炒西施舌)은 요리에 사용할 조개를 잡는 법부터, 해감, 요리 레시피, 거기에 기녀에게 교육할 내용까지 포함된 상황이니 종합 컨설팅에 가깝다고 할까?
일종의 설계와 시공까지 함께 하는 턴키 방식의 컨설팅.
그러니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오문의 높은 위치인 비연이 이번 요리 컨설팅의 가치를 알아보고 먼저 보상을 올려주겠다며 이야기를 꺼내올 수밖에 없다고 할까?
“뭐 그건 천천히 이야기해봅시다.”
아직 터지기 전에 조건을 정할 필요는 없는 것.
나는 일단 가치 결정은 조금 미루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꼭 마음에 드실만한 것을 찾아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해구신 같은 것은 필요 없으니. 다른 것을 부탁하오.”
“예? 아! 물론이지요!”
이미 좋은(?) 약은 약왕께 받기로 한 상태이니, 많아 봐야 중복되는 것.
쓸데없는 비린내 나는 해구신 같은 녀석을 더 가져올까 봐 주의시키자 비연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부탁했다.
“공자님, 저희 기녀들이 해야 할 말을 다시 한번 일러 주시겠어요?”
아마 기녀에게 교육할 내용을 자기가 직접 익히기고 교육 시키려는 모양이었다.
“아, 그러면 직접 해보는 게 좋지 않겠소?”
“아! 제가 직접 화희를 해보는 것이군요?”
뭐든지 직접 해보면서 익히는 게 빠를 것이기에 실습을 제안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오려다가 멈칫하는 비연.
그녀가 아내를 어색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습(習)을 조금···”
비연은 아마 나를 대상으로 연습하고 싶다는 모양이었는데, 아내는 대답 없이 미소를 지으며 한쪽 구석으로 시선을 향했다.
“응?”
다들 아내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지금까지 벌을 서고 있는 장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놈을 잊고 있었구만. 진아, 그만 이리 오거라.”
비연이랑 아내 앞에서 쓸데없는 모습을 연출할 필요는 없는 것.
아내에게 이상한 별호를 만들어버린 죄로 벌을 서고 있는 장진을 부르자, 땀과 물에 흠뻑 젖은 장진이 물통을 내려두고 손을 바들바들 떨며 우리 쪽으로 다가와 빈자리에 앉았다.
“이, 이제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아내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가슴을 쓸어내리는 장진.
“어휴. 정말 혼 좀 더 나야 하는데.”
영영이가 가슴을 두드리며 답답해했지만, 약왕의 손자를 두드려 팰 수도 없고, 이정도가 한계.
“이야기는 들었을 테니 거기 앉아서 비연의 습이나 돕거라.”
“알겠습니다. 형님.”
비연의 부탁에 기녀 하나가 가져온 마른 천으로 땀과 물을 훔친 장진이 자리에 앉아 제 놀던 대로 포즈를 잡으며 시키지도 않은 애드립을 시작했다.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비연의 허리에 손까지 두르고, 좀 전까지 혼났다는 사실조차 잊고 말하는 장진.
“그래, 어디 한잔 따라보거라.”
영영이가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젓고 아내도 다시 한번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연도 눈썹을 꿈틀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인, 이것이 저희 기루에서도 하루에 몇 분 맛볼 수 없는 요리. 초서시설(炒西施舌).”
“오오! 서시의 혀라니! 내 그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맛봐야겠구나!”
다시금 이어진 장진의 쓸데없는 애드립과 내가 그녀가 기억하는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조개를 하나 손으로 들어 장진의 입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중원 최고 미녀 중 하나인 서시의 혀는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한가요?”
대사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고, 에이스 기녀라 그런지 감정 표현도 풍부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려 하는데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츄르릅. 츕츕.
뭔가 끈적하고 더러운 소리가 우리들의 귓속을 더럽히듯 들려왔다.
비연의 옆을 바라보자 장진이 살짝 벌려진 조개껍데기 사이에 혓바닥을 밀어 넣고는, 마치 키스를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조개의 속살을 혓바닥으로 훑고 있었다.
-에렐렐레. 츕츕.
그 흉한 모습에 뒤로 흠칫 물러서는 비연.
물장사하면서 남들은 상상하지 못할 여러 가지 일을 겪어봤을 비연이였지만, 그 모습은 정말 흉해 못 참겠다는 듯 비연이 내 쪽을 보며 물었다.
“고, 공자님. 다른 손님들도 다 저렇게 흉하게 처먹을··· 아니, 드실까요?”
엄지와 검지로 턱을 쥐고, 잠깐 생각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연이 허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 정말 이럴 때는 그냥 어느 집 첩으로라도 들어가는 게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자 영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신세를 한탄하는 비연의 옆으로 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천천히 두드려 주었고.
-츄릅 츄르릅
“어휴 형님,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조개껍데기를 핥는 장진의 목소리가 눈치 없이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
이틀 동안 개다리 춤을 추며 조개를 잡는 법이라든지, 해감을 하는 법, 거기에 손질하는 법까지 화화루의 요리사나 하인들에게 가르치고 비연을 통해 보안을 철저히 했다.
이 시대에 요리 레시피의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고, 비슷하게 따라 만든다고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는데, 그래도 명주개량조개의 해감법을 알아내려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전생에도 손질이 힘들어 현지인들도 잘 먹지 않거나 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아무튼 그렇게 화화루의 조개 요리는 이틀이 지난 후에나 기루의 손님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는데, 예상했던 대로 그다음 날부터 화화루에는 손님이 미어터지기 시작했다.
저녁때 슬쩍 들러본 화화루는 그야말로 문전성시(門前成市).
“서시혀가 벌써 떨어졌다고?”
“죄송합니다. 대인 준비된 양이 벌써···”
“허허 내 이야기를 듣고 여항(余杭)에서 왔는데.”
기루 앞에 서시혀를 맛보겠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던 것.
그렇게 화화루는 염원하던 업계 1위 차지를 차지하고, 우리는 다음 날 아침 약왕이 그렇게나 염원하던 아내의 치료를 위한 단약(丹藥) 제조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드디어 단약 조제에 들어가신다고 합니다. 재료가 모두 모였거든요!”
장진이 아침 일찍 찾아와 우리에게 단약 제조 시작을 알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