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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대가리 (115/344)

생선 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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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왕이 드디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아내를 위한 약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동시에 찾아오는 충격적인 사실. 

아내가 먹어야 할 약이 단약이라는 사실에 놀라 까무러칠 뻔했기 때문이었던 것. 

“다, 단약(丹藥) 말이더냐? 정말로 그냥 환약이 아니고?” 

분명히 약왕의 처소 밖에서 약왕과 장진의 이야기를 엿들었을 때는, 아내를 위한 약은 분명 환약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단약이라니. 

“예, 연단술(鍊丹術)로 단약을 만드신다고···” 

다시 한번 물었지만, 단약이 맞는다고 확인시켜주는 장진. 

거기에 연단술. 

아내를 위해 만드는 약이 단약이라는 사실과 연단술이 언급되기에 급하게 장진에게 다시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했다. 

“호, 혹시 홍(汞)이나 연(鉛)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조심스레 묻자 자신이 약왕에게 전달한 약제들을 떠올리는 듯 잠깐 생각에 잠겼던 장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런 것을 말씀하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구하지도 않았고요. 어찌 그러시는 지요?” 

보통 환약이라 하면 약재를 가루 내어 동그랗게 빚어 만드는 약을 총칭하는데, 단약도 동그랗게 굴려 만드는 약이기에 내내 같은 환약에 포함된다 생각할 수 있지만 중원에서 둘은 전혀 다른 약. 

환약이 진짜 병자들을 위한 이 시대에 좀 떨어지는 의학적 지식으로 만든 약 느낌이라면, 단약은 중원 출신 연금술사들이 만든 약을 가장한 그 무엇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는 신선들이 만드는 뭐 그런 대단한 약을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단약(丹藥). 선약(仙藥), 선단(仙丹), 금단(金丹)으로 불리는 중원 사기꾼들의 전매특허 약 중 하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전자는 잘못 만들어져도 약효가 없을 뿐이지만, 후자는 먹으면 중독으로 뒈져버리는 뭐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 

물론 무협 세계이니 소림의 대환단(大還丹), 소환단(小還丹)같은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마법 같은 약도 있겠지만, 전생 중원의 이 시대의 전형적인 단약이라면, 흥(汞)이라 불리는 수은 오십 프로에, 유황과 납인 연(鉛) 같은 것을 섞어 만드는 맹독을 똘똘 뭉친 뭐 그런 것. 

중원 전설에 기록된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약도 같은 계열인 것이다. 

‘다행이구나···.’ 

놀라 물었지만, 다행히 수은이나 납은 들어가지 않는다니 가슴 속으로 안심하며 대답했다. 

“그, 그래 다행이구나.” 

“예?” 

“아니, 약재가 빨리 구해져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아, 예, 어서 형수님이 빨리 치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야기도 전했으니, 저는 일을 보러 이만. 나중에 뵙겠습니다.” 

잠깐 놀랐지만, 아무튼 좋은 소식이 맞았고. 

소식을 전해준 장진은 일이 바쁘다며 곧바로 등을 돌려 들어왔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 그가 시야에 사라지기 전 중요한 사실을 물어야 했다는 것이 급하게 떠올랐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잊을뻔했던 것. 

“진아! 잠시만! 서보거라.” 

“예?! 어찌 아직 물으실 것이 남아있으십니까?” 

“그래, 내 중요한 것을 잊을뻔했구나.” 

“어떤?” 

내가 중요한 것을 잊을뻔했다는 말에 장진이 그것이 무엇이냐며 되물었고, 나는 제일 중요한 것을 궁금해하는 장진에게 확인했다. 

“약왕께서 그, 단약을 굴리실 때. 침을 뱉어서 만들거나 하시지는 않겠지?” 

남만야수궁에서 약왕이 보혈단을 만들 때 생각이나, 혹시 또 더러운 손에 침을 퉤퉤 뱉어 만드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어 묻자 장진이 질색하며 소리쳤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약을 만들 때 손에 침을 뱉어서 만든답니까? 의술을 그리 많이 익히지 못한 저도 세욕(洗浴)을 하고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쯤은 아는데. 형님이 이리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것을 보니, 어디서 못 볼 것을 본 모양입니다. 아무튼 요즘에 의원을 자칭해 사기를 치는 놈들이 많다더니··· 거참···” 

장진의 말에 아내와 영영이가 웃는 것 아닌,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 

우리는 단약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이면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았지만, 단약을 만드는 과정은 아주 고단하고 긴 과정이었다.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장진의 말로는 장의문의 장로들과 의원들이 약왕과 함께 달라붙어 연단로(鍊丹爐)에 내공을 불어넣고, 빻아 가루 낸 약재들을 시간에 맞춰 넣어 단약에 들어갈 재료들로 다시 만들어내는 데만 해도 보름 이상 걸린다는 설명. 

그런 이유에서인지 장의문의 의원들과 가문의 어른들은 장의문 내부에서 일순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사람들이 사라진 것으로 연단이 시작된 것을 눈치채고 삼일 정도 지났을 때, 아침 일찍 떨어진 보약을 받으러 갔다가, 약왕문의 약재를 관리하는 곳에서 며칠 만에 약왕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르신?” 

“어, 그래 청운이. 삼일만인가?” 

삼일을 꼬박 새웠는지 무척이나 피곤하고 핼쑥한 모습. 

약왕의 모습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삼일이나 연단에 매달려 계셨습니까?” 

“그렇구나, 원래 처음에 연단로에 내공을 불어넣을 때는 조절이 힘들어 내가 직접 나서야 해서 말이야. 아이고··· 나도 이제 나이를 먹는지 힘에 부치는구나. 흠흠.” 

약왕이나 독왕이나 걸왕이나 내가 지금까지 만난 중원의 왕들은,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함 하나로 똘똘 뭉친 그런 느낌이었는데, 사흘 만에 연단실에서 나온 약왕의 모습은 피곤함에 지친 노인네의 모습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몸이? 그다지···” 

“누가 누굴 걱정하느냐? 내, 네 녀석보다 오래 살 것이니 걱정 말거라. 아무튼 그래, 보약은 잘 먹고 있느냐? 몸은 좀 나아졌느냐?” 

‘거참 노인네 걱정을 해줘도 지랄이야!’ 

걱정을 해줘도 좋은 소리를 안 하는 약왕을 향해 입을 삐쭉이며 대답했다. 

“예, 살펴주셔서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약을 받으러 왔나 본데, 나는 좀 쉬다 다시 연단실로 다시 들어가 봐야 하니 볼일을 보다 가거라.” 

“예, 어르신.” 

그렇게 약왕과 헤어지고 보약을 다시금 받아 우리 처소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노인네가 무리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또 영영이 때문에 골머리 썩고 계실 의조부님 생각도 좀 나고 말이다. 

그렇게 걱정을 하며 한 손에 약재를 싼 종이를 들고 우리 처소가 있는 전각에 도착하자, 처소에 딸린 작은 후원에서 차를 마시던 아내와 영영이가 나를 보고 물어왔다. 

“노공,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가가, 얼굴에 수심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얼굴에 걱정이 드러난 모양인지 보자마자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물어오는 둘. 

“아, 지금 약왕 어른을 만나 뵙고 오는 길인데, 연단을 하신다고 많이 수척해 보이셔서 말이오.” 

“저런. 저 때문에···” 

“하긴 저희 할아버지도 맹독을 만드시고 나면, 며칠 힘들어하시고 그러긴 하셨는데, 약왕 어른도 비슷한가 보네요?” 

맹독을 만들면 일반인도 힘들 것 같긴 했지만, 대충 뜻은 알아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와 영영이를 향해 대답했다. 

“부인, 약왕 어르신은 무공이 뛰어나시니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그리고 연단이 꽤 고단한 일인 것 같더구나.” 

원래 내공 있는 고수들은 장수하는 편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이야기하자, 영영이가 옆에서 내 말을 거들었다. 

“그래, 청아 우리 할아버지도 한 이틀 좀 피로한 얼굴로 계시다가, 좋은 음식 먹고 쉬시면 금방 나아지시더라고.” 

“좋은 음식이요?” 

“응, 뭐 독초 같은 거 있잖아. 식사 위에 좀 뿌려서 드시면···” 

“그, 그렇군요.” 

아내가 좋은 음식을 먹고 쉬면 좋아진다는 영영이의 말에 좋은 음식이 무엇인가를 물었지만, 의조부인 독왕께 좋은 음식은 독초인 모양. 

영영이의 대답에 아내가 조금 놀란 듯했지만, 좋은 음식이라는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고. 

아내도 그리 생각하는지 나를 부르며 눈을 맞춰왔다. 

“노공. 저기···” 

아마도 먹고 힘이 나는 음식을 약왕에게 대접하자는 말일 것이 분명한 부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소. 한번 찾아봅시다.” 

‘얼굴도 천사인데 마음씨도 천사야 그냥.’ 

장의문에서 받을 것이 많이 남아있고 노인네가 나를 이상한 소문에 빠트리긴 했지만, 뭐 노인네에게 건강에 좋은 식사 한 끼 정도야 대접할 수 있는 일. 

더군다나 지금 타이밍에 음식 대접은 연단에 좀 더 신경을 써 달라는 푸쉬도 될 것이니까 좋은 생각이었다. 

아내의 말에 긍정하자 그녀가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감사해요. 노공.” 

“부인이 감사할 일은 아니니. 괜찮소이다.” 

‘노인네에게 보약도 얻어먹었으니, 나도 보신이나 한번 시켜드려야겠구나.’ 

약식동원의 측면에서 보면 내 요리도 약의 일종. 

약왕에게 요리로 된 약을 먹인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했고, 아내의 부탁도 들어주는 것이니, 실력 발휘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영영이에게 부탁했다. 

“당매매, 시비들에게 부탁해서, 진이 녀석이 돌아오는 대로 나를 좀 찾아오라 전해주겠느냐?” 

“장 공자를요?” 

“음식을 대접하려면 약왕께서 혹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못 드시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봐야지 않겠느냐?” 

일단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으니 약왕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또 혹시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도 말이다. 

의조부님처럼 맵찔이면 곤란하니까.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못 먹는 음식이면 고욕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 알겠어요. 가가.” 

그렇게 약왕에게 맛있는 압박성 뇌물 요리를 대접하기 위한 우리의 계획이 진행되었다. 

*** 

“한여름 범인들은 떨어지는 기운을 북돋기 위해서 요리에도 삼이나 당귀 같은 약재를 넣기도 하긴 하는데, 원래는 맛있는 음식만 먹어도 약이 되느니라.” 

“그래요? 밥만 먹어도?” 

“뭐, 밥이 보약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다.” 

“밥이 보약이라니 정녕 그러합니다. 노공.” 

그날 저녁. 저녁을 먹고 아내인 제갈청, 영영이와 몸을 보하는 음식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일을 마친 장진이 오늘은 술 마실 일이 없는지 맨정신으로 우리 처소를 찾은 것은. 

“형님, 찾으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박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장진을 처소 안으로 들였다. 

“어, 그래 진아, 어서 오거라. 안으로 들어오거라 차 한잔하겠느냐?” 

“아닙니다. 좀 전에 마시고 와서요. 그런데 저를 찾으셨다고.” 

“내 다름이 아니고, 아침에 보니 약왕 어르신이 연단을 하시라 무척 고단한 얼굴이시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보신할 요리를 좀 만들어드리는 게 어떨까 해서 너를 찾았느니라. 연세도 있으시니,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장진을 찾은 연유를 이야기했음에도 장진은 눈치 없이 자기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일에 왜 자신을 찾았는지를 물어왔다. 

“보신을 위한 요리요? 아, 거한교이탕 같은 그런 음식인 모양이군요. 그런데 어째서 저를?” 

“약왕께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또 싫어하시는 것은 없는지 물어보려고 말이다.” 

“아하. 그런 것이라면 제가 잘 알고 있지요.” 

입안에 욱여넣어 줘야 간신히 알아채는 놈. 

다시 한번 약왕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물었다. 

“그래, 약왕께서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더냐?” 

“예,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생선 대가리를 가장 좋아하십니다.” 

장진이 한치의 머뭇거림도 의심도 없이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통에 순간 굳어져 버린 우리 셋. 

“응?” 

“에?” 

“아?”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다시 한번 물었다. 

“뭘 좋아하신다고?” 

“생선 대가리 말입니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며, 아내와 영영이를 바라보았지만, 둘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니겠죠? 설마?” 

“설마 그 정도로 멍청이 이려고요?” 

‘아니라고 해줘 제발 그 정도로 폐급은 아니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같이 식사할 때, 약왕께서 생선 몸통은 진이 너에게 주시고 머리를 가져가시며 ‘할아비는 이 머리가 가장 맛있더구나’라고 하신 것이냐?” 

그러자 들려오는 목소리. 

“아니, 형님 어찌 그리 소상하게 아셨습니까? 나이를 먹으면 생선 대가리가 좋아진다고 하셨는데, 다른 분들의 할아버지들도 다들 비슷한가 보군요? 하하. 나도 나이 먹으면 생선 대가리가 좋아지려나?” 

‘하, 이새낄 대체 어쩌지?’ 

천진난만한 장진의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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