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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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판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선 영영이가 아줌마를 향해 물었다.
“크흠. 이거 한 근에 얼마인가요?”
“아이고 어서오세··· 히익!”
영영이의 부름에 손님인 줄 알고 반색했다가 자신이 사기를 치려 했다가 혼쭐이 난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 놀라는 생선가게 아줌마.
장사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지금 옷차림이 바뀌고 화장까지 했는데도 아줌마는 정확히 영영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영영이의 옷차림이 비단옷인 것 때문인지, 더욱 주눅이 든 목소리로 아줌마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하, 한 근에 다, 닷···”
“꾸에이(貴 귀)!”
그러나 아줌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앙증맞게 소리치는 영영이.
영영이가 외친 꾸에이(貴 귀)라는 말은 한국말로 치면 ‘비싸!’라는 뜻.
무림에서 허튼 소리하는 놈에게 갈(喝)! 이라고 외친다면, 시장에서는 귀(貴)! 라고 외치면 되는 것.
결국 영영이는 아줌마에게 아무 말도 듣지 않고 그냥 비싸다고 외친 것이었다.
‘아니, 영영아 가격은 들어보고 이야기해야지?’
가격을 채 듣기도 전에 소리쳐 같은 편인 나까지도 당황하게 하는 영영이였다.
아줌마도 그 기세에 당황해 영영이를 보고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는 모습만 보일 뿐.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잠시 후 아줌마가 눈을 질끈 감더니 가격을 네고를 제시했다.
“철전 네 개만 주시면···”
“귀(貴)!”
영영이가 귀라고 외칠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는 아줌마.
영영이는 철전 네 개에 만족하지 못하고 상어고기에 코를 가져가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더니, 아줌마를 향해 입을 삐뚜룸하게 하고는 대답했다.
“이거 오줌 냄새가 나는데 그렇게 신선하지 않은 것 같아요!”
상어고기는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그런 향이 날 수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그런 냄새가 나니 당황한 아줌마.
“그러니까 해, 해랑 고기는 원래 그런 냄새가···”
“그럼 원래 냄새가 나는 고기를 손님에게 판다는 건가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저번에 말 한번 잘못했다가 영영이에게 된통 당하고, 아줌마가 상어고기에서 왜 냄새가 나는지를 어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해할 때 영영이의 입이 열리며 기적의 가격이 제시되었다.
“철전 한 개!”
순 날강도 같은 패기로운 가격.
이건, 거래 수준이 아니라 협박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아줌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난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렇게는 모, 못 팔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철 전 한 개면 노점에서 수당 하나 사 먹을 돈인데··· 내 그럼 철 전 세 개만 받을 테니까···”
“귀(貴)!”
대충 애들 과자나 사 먹을 가격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소리.
아줌마는 정색하며 영영이에게 철 전 세 개를 제시했지만 영영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철전 한 개.”
“아니, 그렇게는 못 판다니까요···”
“철전 한 개.”
“아니, 소저 사어는 원래 좀 냄새가 나요. 그러니까.”
“철전 한 개.”
요지부동 철전 한 개를 외치는 영영이.
인성 질이라는 것이 남의 편일 때는 개 짜증 나지만 우리 편일 때는 개 든든한 것.
첫 만남 이후로 다시 한번 영영이에게 든든함을 느끼며 거래를 구경할 때 느껴지는 시선.
“소저의 귀(貴)라고 호통치는 소리가 아주 호쾌 하구만!”
“그러게나 말이오. 귀(貴)! 하하하!”
“소저 기운 내시오! 철전 한 개!”
저번에 1차전이 입씨름으로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면, 2차전은 가격 딜로 이목이 쏠린 상황.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사람이 영영이와 아줌마의 거래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영영이를 응원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면 내 철전 두 개에 드릴 테니까 그렇게 합시다.”
결국 지친 아줌마가 마지막 가격을 제시하고 영영이도 철전 한 개는 거래용 대사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요. 철전 두 개. 아, 그리고 저기 저거 버리는 거죠?”
“예? 어떤 걸? 아 지느러미는 당연히 버리는 거죠.”
이 시대에 저걸 조리해 먹지는 않았으니 당연히 지느러미는 버린다는 아줌마.
그제야 영영이가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목표물인 상어 지느러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버릴 거면 저것도 좀 챙겨줘요. 우리 개 좀 주게.”
‘오!’
왜 쓸데없는 고기를 가지고 계속 딜을 하나 했더니, 만천과해(瞞天過海)!
다 작전인 모양이었다.
***
한 손에 영영이를 시켜 구입한 상어고기와 지느러미를 들고 장의문으로 되돌아가며 물었다.
“영영아 그런데 어째서 지느러미를 직접 사지 않고 고기를 산 것이냐?”
만천과해인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버리는 거 그냥 달라고 했으면 철 전 한 개 던져주고 그냥 받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그러자 영영이가 설명하듯 말했다.
“시장에서 원하는 게 있다는 표정을 드러내면 절대 안 돼요. 그러면 상인들이 절대 안 깎아 주거든요. 심지어 가격을 올릴 때도 있어요.”
“그래?”
“네, 잘 봐요.”
어시장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준다며 영영이가 한 가판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한물간 붉은 생선 앞에 앉아서 그것을 잠시 살펴보는 척하다 주인에게 물었다.
“이 생선 얼마인가요? 붉은 것이 맛있어 보이는데.”
“철전 여섯 개만 주쇼.”
그렇게 크지도 물이 좋아 보이지도 않는데, 철전 여섯 개면 무척 비싼 편이라 생각할 때 들려오는 영영이의 목소리.
“철 전 다섯 개로 해줘요. 제가 꼭 살 테니까.”
“어허 소저 다른 데를 다 뒤져봐도 이런 ‘붉은’ 생선은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요. 내 철전 여섯 개면 싸게 이야기한 거라니까요. 다른 데 가보면 철전 열 개는 달라고 할걸요?”
시장을 걸어오면 지천으로 널린 것이 붉은 생선이었는데,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상인.
“아, 꼭 사고 싶은데···”
“안 사려면 마시오. 내 다른 이에게 철전 여덟 개도 받을 수 있으니.”
영영이가 몇 번 안달하는 모습을 보이자 생선 장수는 다른 사람에게 철전 여덟 개에 팔겠다며 팔지 않겠다고 하면서, 결국 영영이 입에서 철전 일곱 개를 준다는 말이 나오고서야 생선 장수는 마지 못하는 척 생선을 팔려고 했다.
그러자 영영이가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봤죠?”
“그, 그래.”
전생 한국인들의 종특이 활과 게임이라면 중국인들의 종특은 상인.
달리 비단이 장수 왕서방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턴 종합평가 S. 때로는 F.
채용 여부 심각히 고민 중.
***
장의문에 돌아와 요리를 준비했다.
오늘 만들 요리는 약왕에게 대접할 샥스핀.
상어 지느러미로 만든 스프를 보통 샥스핀이라고 부르고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샥스핀이란 말 그대로 Sharks Fin(샥스핀)이라는 영어를 그대로 읽은 것뿐.
전생 중국에서는 샥스핀이라는 요리를 어시(魚翅), 어시탕(魚翅湯) 정도로 불렀다.
대표적인 고급 중국 요리이며 이 요리 때문에 한 해 수만 마리의 상어들이 학살당한다는 그 요리.
나도 중국 요리를 공부하기 전에는 ‘상어 지느러미 수프라니 어떤 맛일까?’ 엄청나게 기대했었지만 처음 상어 지느러미 수프를 맛보고는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상어 지느러미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은 말 그대로 당면 같은 식감을 가진 콜라겐 덩어리일 뿐이고 어시탕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실제로 국물.
그렇기에 샥스핀을 처음 먹어본 한국 사람들은 다들 한결같은 반응을 하는데, 다들 그것을 맛보면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삼계탕?”
비싼 요리 처먹고 무슨 국뽕같은 소감이냐 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이런 소감을 내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어의 지느러미는 독특한 식감을 가졌을 뿐 그 자체는 아무 맛도 없는 당면 같은 녀석.
심지어 말린 상태로 유통이 되다 보니 당면과 똑같은 특성을 가졌는데.
당면과 상어 지느러미의 공통적인 특성은 국물을 듬뿍 머금을 수 있다는 것.
결국 상어 지느러미 수프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상어의 지느러미가 아니라 국물의 맛인 것이다.
그러니 상어 지느러미 수프는 상어 지느러미에 얼마나 고급스러운 국물의 맛을 입힐 수 있느냐가 맛과 가치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는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상어 지느러미 수프의 진한 국물은 보통 닭을 몇 시간 푹 우려낸 육수를 쓰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평가가 그러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샥스핀을 먹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푹 끓인 삼계탕에 당면을 담가 먹는 기분이 든다는 평이 많고, 실제로도 그런 편이다.
결국 이름만 개같이 화려하고 실속은 전혀 없는 요리라는 뜻.
샥스핀이 먹고 싶나?
그렇다면 삼계탕에 당면이나 해파리를 잘라 넣어 먹으시라.
실제로 상어를 보호하기 위해서 전생에는 인조 삭스핀도 판매되었는데, 재료는 젤라틴 또는 해파리.
그러니 결국 삼계탕을 끓여서 당면이나 해파리를 담가 먹으면 대충 싼마이 샥스핀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감상은 이쯤 하고 그럼 요리를 시작해볼까?’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럽지만 돈 아깝고 허영 가득한 요리 시작.
제일 먼저 한 일은 닭을 푹 삶는 것.
닭 한 마리를 머리부터 발까지 마늘과 생강을 살짝 넣어 몇 시간 푹 삶는 것이다.
전생에 일부 삭스핀을 파는 곳에서는 치킨스톡을 사용했지만, 그건 정말 안될 말.
더럽게 비싸고 사치스러운 요리에 싼마이 MSG를 잔뜩 넣어 맛을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뭐 이 시대에는 MSG도 없지만.’
닭을 먼저 불 위에 올려두고 감상에서 빠져나와 어시장에서 사 온 어시를 깨끗하게 씻어 먼저 뜨거운 물에 한 번 삶아주었다.
전생에는 잡은 상어의 지느러미를 자르고, 볕에 말렸다가 가열, 탈지, 뼈 제거, 표백까지 해서 건조된 기성품으로 만들어 팔았지만, 그것은 명나라 시대부터 먹던 요리이기에 유통이 좋게 하려다 보니 그런 식으로 발전한 것이고.
전생에는 생 지느러미로도 상어 지느러미 수프를 만들곤 했다.
마른 멸치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생멸치를 이길 수는 없는 논리랄까?
데친 상어 지느러미를 건져내 찬물로 한번 씻어준 후 칼과 대나무 솔로 박박 문질러 상어의 비늘을 벗겨주었다.
모래 알갱이처럼 떨어지는 상어의 비늘.
이것이 오늘날 상어가 상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근원.
지느러미 결 사이로 모래알 같은 상어의 비늘이 들어가지 않게 비늘을 조심히 벗겨냈다.
그렇게 비늘을 싹 벗겨내고 가죽까지 쫙 뜯어내면, 드러나는 것은 투명한 상어 지느러미의 연골조직과 약간의 상어고기.
마지막으로 투명한 당면 같은 지느러미 뒤에 붙은 고기와 기름기를 분리하면, 우리가 필요로 했던 약왕을 위한 소화가 잘되는 당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특별한 면발.
“자, 이것이 해랑의 지느러미로 만든 량분(涼粉) 입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노공.”
“그냥 삶아서 건져내기만 했는데 정말 량분과 똑같군요?”
“형님 무척 신기합니다.”
어느새 이야기를 듣고 나타난 장진까지 어시를 보고 신기해했다.
“진아, 연단실에 알려서 약왕께 오늘 저녁 식사는 내가 준비한다고 알리거라.”
“알겠습니다. 형님.”
부르지도 않았는데 등장한 진이에게 오늘 약왕의 저녁 식사를 내가 준비한다는 것을 알리라고 이야기하고, 당면 같은 상어의 지느러미를 한쪽에 건져 물기를 빼두면 딱히 중간에 할 일은 없었다.
닭 육수가 끓어가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
-부글부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무로 된 솥의 뚜껑을 열자 닭 육수가 고소한 향을 뿜어내며 익어가고 있었고, 여기에 아까 건져두었던 어시를 넣어 닭 육수를 듬뿍 먹여주었다.
이 부분에서 샥스핀을 만드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찐 어시에 육수를 부어 먹는 방법 또는 어시에 직접 육수를 먹이는 방법.
나는 후자의 방법으로 어시에 직접 닭 육수를 먹여 풍미는 올리는 방법이 정통이라 배웠으니 그 방법을 사용했는데, 많은 곳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전자.
그렇게 어시에 충분히 육수를 먹여준 후.
체에 거른 닭 육수에 간장으로 살짝 간을 해 전분물을 풀어 조금 걸쭉하게 만들어 주면 모든 과정이 끝이 난다.
작은 그릇에 상어의 지느러미를 예쁘게 담고 걸쭉해진 육수를 부어주면 허세 가득한 중원 요리의 결정체 샥스핀 완성!
“진아 약왕을 모셔 오너라. 오늘은 생선 대가리 말고 다른 걸 드셔보라고 하자꾸나.”
“예, 형님!”
내 말에 진이가 연단실로 부리나케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