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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엘프와 다크 엘프 (120/344)

하이 엘프와 다크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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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에 불씨를 옮겨 담고 육수를 데우며 약왕을 기다렸다. 

국물이 졸아들지 않도록 은근한 불로. 

“가가, 저희도 먹어볼 수 있는 거죠?” 

“그럼 물론이지. 해랑이 제법 커서 어시(魚翅)도 큰 편이었으니 다들 맛을 볼 수 있느니라.” 

큰 상어였기에 지느러미도 큰 편이어서 어시의 양이 적지는 않았으니, 영영이나 아내도 충분히 맛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기대돼요. 무슨 맛일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어쩔 수 있나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한다는데. 

이미 아무 맛도 안 난다고 미리 말을 해주었지만, 아내와 영영이는 그래도 궁금한 모양. 

아내와 영영이의 기대를 깨기보다 그냥 미소만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기 기다린 지 얼마 안 돼 멀리서 장진이 자기 할아버지인 약왕을 모시고 오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청운 형님께서 할아버지께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음식을 건강에 좋은 보양식으로 준비했으니 어서 가야 합니다. 이러다가 음식이 식어버리겠습니다.” 

“허허, 고놈 참. 알겠느니라. 그나저나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음식?” 

약왕의 물음에 아내와 영영이가 자신들이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장진의 해맑은 목소리. 

“예,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 대가리 말고 오늘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새, 생선 대가리 말이냐?” 

“예,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신다고 하셨던 그 생선 대가리 말입니다.” 

“그, 그렇지···.” 

‘어이구 조놈시끼 진짜! 누구 동생인지 정말 부끄럽네.’ 

정작 부끄러워야 할 놈은 장진인데, 우리 셋이 어디라도 기어들어 가고 싶은 마음을 느끼며 몸을 떨고 있자 약왕이 장진에게 끌려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음식을 대접한다고 이리 찾은 것이냐. 흠흠. 손님으로 와있는 것인데 손님에게 집주인이 대접받는 예는 없는 것인데···.” 

곤란하다는 투로 이야기하지만, 눈은 화로 위와 그릇을 살피는 것이 조금 기대가 되는 표정. 

체면 때문에 직접 묻지는 못하고 천천히 내 주변을 훑으며, 약왕이 대체 무슨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려는지 궁금한 듯 물어왔다. 

식룡인 나의 진가는 이미 거한교이탕에서 충분히 확인 했으니, 다른 음식 맛은 어떨까 궁금한 모양. 

“뭐 나를 위해서 몇 시진이나 준비했다니, 내 거절하기는 힘들고. 그래 어디 한번 내와 보거라. 흠흠.” 

“며칠 전에 뵈었을 때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으셔서 보양식을 좀 준비했습니다.” 

마지못해 먹어준다는 듯한 답변을 했지만, 내가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대답하자 당황한 목소리로 말하는 약왕. 

“고, 고놈 참. 쓸데없는 것을 신경 쓰는구나. 그래 뭐 식룡의 보양식 한번 맛 좀 볼까나?” 

약왕이 자리를 잡고 식탁에 앉은 것을 확인하고. 

대접 하나를 들어 육수를 듬뿍 머금은 어시를 예쁘게 올리고, 전분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한 따끈한 닭 육수를 그 위에 천천히 부었다. 

-쪼르르르륵 

뜨거운 닭 육수에서 올라오는 고소하고 진한 향기와 육수를 듬뿍 먹어 탱탱하고 윤기 나는 어시. 

뜨거운 국물에 열기가 오르기 시작하는 대접을 얼른 약왕 앞에 가져다 놓고 숟가락을 건네며 권했다. 

“자 한번 맛보시지요.” 

내 권유에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고 어시탕(魚翅湯)을 뒤적거리는 약왕. 

어시탕 안에 담긴 면발을 보고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숟가락을 들어 먼저 국물을 맛보기 시작했다. 

-후루룹 

“어허, 뜨끈 하구나. 고소한 닭고기의 맛이 듬뿍 들어있는 탕이라···” 

-후루루룹 

탕이 마음에 드는지 연거푸 탕을 들이켰지만, 어시에는 손대지 않는 약왕. 

아무래도 일반적인 량분인 줄 알고 소화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런 모양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약왕에게 물었다. 

“어르신 어째서 량분(涼粉)은 맛보지 않으십니까?” 

내 물음에 대접받은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않아 살짝 찔리는지 약왕이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량분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맞으나 내 나이를 먹고는 저것을 먹으면 속이 좀 불편해서··· 몇 시진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고 들었으나 미안하네. 흠흠.” 

그의 말에 다시금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어르신 그것은 그냥 량분이 아니라 속이 불편하지 않은 량분입니다. 한번 드셔보시지요.” 

“응? 그런 량분이 있단 말인가? 어디.” 

속이 불편하지 않은 량분이라는 말에 의심 없이 숟가락을 가져가는 약왕. 

-후루룩 

“허어, 분명 량분 같기는 한데, 부드럽구나! 보통이면 잘 끊기지도 않는 면이어야 하는데. 이리 부드럽다니. 그러면서도 또 진한 육수가 배어 있는 것이 확실히 맛이 좋구나.” 

-후루루룩 

꽤 어시가 맘에 드신 모양. 

딱히 맛이 있는 음식은 아닌데 자신이 좋아하던 음식을 먹으니 그게 만족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량분의 이름이 뭔가?” 

한참 만족스럽게 후루룩거리며 탕과 어시를 들이키던 양왕의 물음.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요리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생선 대가리···. 가 아닌, 해랑의 어시로 만든 탕입니다. 어시탕(魚翅湯)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이것이 해랑의 시란 말인가?!” 

“예, 어르신. 마음에 드셨습니까?” 

“물론이네, 내 이것을 좀 구해놨다가 종종 먹어야겠구만!” 

진이가 알려준 량분을 좋아하는 것이 맞기는 맞는지, 약왕이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고. 

그리고 나자 옆에서 장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형님! 아까 봤던 것이 그러니까, 결국 생선의 지느러미였다는 말씀이군요? 할아버님께서 저리 마음에 들어 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 할아버지 챙겨줬다고 기쁜 목소리로 감사를 전하는 장진. 

‘고놈 착하긴 착하단 말이야?’ 

그나마 애가 착하니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때, 인사까지만 하고 더 이상 말하지 말아야 했을 장진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생선의 대가리뿐만 아니라 지느러미 같은 것도 마음에 들게 되는 모양이군요?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건 어째 좀 특이한 것뿐이군요?‘ 

그의 말에 약왕이 눈을 질끈 감더니 말없이 샥스핀을 들이켰다. 

-후루룩. 

앞으로 진이가 생각하는 약왕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가리뿐만 아니라 생선 지느러미도 포함일 것이 분명했다. 

*** 

약왕에게 샥스핀을 대접하고 며칠 후. 

해가 떨어진 밤. 

약왕이 비단 보자기에 싼 무엇인가를 들고 은밀히 우리의 처소를 찾아왔다. 

약왕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투왕(偸王)처럼 도둑놈들이나 다니는 시간에 찾아온 약왕. 

“이 시간에 어떤 일이십니까?” 

아직 단약을 완성하려면 하루나 이틀은 남았다고 생각해 되묻자, 그가 비단 보자기에 싼 무엇인가를 탁자 위에 올리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나에게 준다는 남자를 강하게 해준다는 그 약이 완성된 것인가?’ 

오밤중에 은밀히 찾아왔다는 것은 은밀히 전해줄 물건을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 

단약 만드느라 바쁠 텐데 ‘그건 또 언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설마 이것은? 저를 강하게···” 

“그래, 단약이 조금 이르게 완성되었···” 

서로가 다른 말을 하는 상황. 

오밤중에 은밀히 찾아와 올려놓기에 은밀히 건네받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실망과 기쁨이 교차하는 감정으로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 그렇군요. 이리 빨리 준비되었다니 다, 다행입니다.” 

“그, 그래. 내 좋은 것까지 얻어먹었으니 힘을 좀 냈지.” 

내 보양식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모양인지, 약왕이 좀 더 힘을 써 단약이 조금 일찍 완성된 모양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간에?” 

“완성되었으니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야···” 

‘노인네 결국 자랑질하러 왔구만?’ 

약왕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보자기를 풀기 시작했다. 

의기양양하게 올린 보자기의 풀자 드러난 것은 그럴듯해 보이는 상자. 

-달칵 

약왕이 그럴듯해 보이는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청아한 향기가 사방으로 흘러나왔다. 

“오, 향이···” 

“어허, 향도 들이키지 말거라.” 

향기에 놀라 감탄사를 내뱉자 향도 들이켜지 말라는 약왕. 

‘아니, 어차피 공중으로 날아가는 향을···’ 

유난을 떤다 생각하며 상자를 들여다보자 안에는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만 한 금빛으로 빛나는 단약(丹藥) 하나가 비단 천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가 증발이라도 하는지 단약 위에는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 일렁이고, 그와 함께 싱그러운 향이 사방으로 뿜어지는 단약. 

그 모습에 놀란 얼굴로 약왕을 향해 물었다. 

“이, 이것이?” 

“그렇느니라.” 

“오오···” 

-달칵 

영롱한 모습에 멍하니 단약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상자가 닫혀버렸고. 

약왕이 상자를 닫자 곧 사라지는 향기. 

아쉬운 마음에 약왕을 바라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아내의 치료에 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내 살펴보니 네 부인인 제갈가의 아이는 두 가지 내공이 서로 섞이지 않는 상태. 이 단약은 원기(元氣)에 가까운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는 단약으로, 두 기운이 하나가 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니라.” 

아내의 몸 안에 존재하는 두 내공이 물과 기름 같은 상태 같은 느낌이라 했으니, 약왕의 단약은 계면활성제(界面活性劑) 같은 작용을 하는 모양이었다. 

물과 기름을 강제로 섞어주는 그런 효과를 가진 느낌.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며 약왕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기에 부작용을 미리 생각해보지 않을 수는 없는 법. 

“혹시 잘못될 가능성도 있습니까?” 

혼시 부작용이나 잘못될 위험성은 없는지를 확인하자, 내 물음에 걱정된 얼굴로 내 손을 꼭 잡아 오는 아내.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약왕께서 봐주시니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몰라 묻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예, 알겠습니다.” 

아내를 안심시키고 약왕을 바라보자 그가 부작용에 관해서 설명했다. 

“뭐 잘못된다고 해도 기혈이 뒤틀리거나,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할 염려는 없으니 걱정 말거라.” 

“그러면?” 

“근본적으로 내가 연단한 단약은 소림의 대환단 같은 내공 증가 단약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느니라. 다만 소림의 대환단 같은 것들이 가진바 원기를 내공으로 바꿔 주는 것이라면, 이 단약은 내공을 다시 원기로 되돌려 둘 중 하나로 자리 잡게 해주는 것이지. 흠흠.” 

“오호···.” 

‘아아, 계면활성제가 아니라. 리셋 시킨다는 그 말이구만?’ 

결국 약왕의 설명은 저 단약을 먹으면 아내의 내공이 전부 원기로 바뀐 다음에, 아내가 가지고 있는 둘 중 하나의 내공으로 변해버린다는 말. 

장모님이 넣어주신 것은 아마도 북해빙궁의 내단 같은 것일 테고, 아내의 할아버님이 넣어주신 것은 제갈가의 내공. 

북해빙궁의 내공이 승리하면 아내는 하이엘프 차도녀가 될 것이고, 제갈가의 내공이 승리하면 무공을 쓸 때 피부가 검게 물든다고 했으니 다크엘프 갸루걸. 

‘무엇하나 양보하고 싶지 않구나!’ 

무엇 하나 나쁘지 않은 선택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니 너무 힘든 현실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 

다크 엘프든, 하이 엘프든 차별하지 않고 힘껏 사랑해주리라 다짐하며 물었다. 

“그럼 치료는 언제부터?” 

내 물음에 약왕이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대답했다. 

“내 천리(天理)를 살펴보니 사흘 후 밤이 달이 어두워지는 날. 그날이 좋을 것 같구나. 둘 다 양(陽)보다는 음(陰)이 큰 기운들이니, 그날이 좋겠지.” 

“알겠습니다. 어르신. 혹시 따로 준비할 것은 없겠습니까?” 

혹시 따로 준비할 것은 없느냐 묻자. 

약왕이 우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나 편히 먹고 있거라. 이 약왕이 직접 살핀다는데, 어찌 얼굴에 그리 근심이 가득한 것이냐? 흠흠.” 

개 치료하는 현장을 본 입장에서는 당연히 조금 걱정될 수밖에 없지만, 일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예, 어르신.” 

그리고 생각해보니 치료 후에 만나게 될 흰 엘프나, 검은 엘프도 모두 남편을 기쁘게 하는 엘프였기에 일단 걱정보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치료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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