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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와 패시브 (121/344)

액티브와 패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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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왕과 약속했던 사흘 후 밤은 구름이 살짝 낀 흐린 날이었다. 

구름 사이로 떠오른 보름달이 숨었다 나왔다 숨바꼭질하는 그런 흐린 하늘. 

비라도 오려는 건지 개구리 새끼가 사방에서 울어 재끼고. 풀벌레 소리까지 시끄러운 기묘한 밤. 

‘재수 없게 왜 날이 흐리고 지랄이냐? 더군다나 왜 개구리까지 쳐 울어 대는 것이지? 아니, 아니지.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중대한 치료를 앞두고 있는데 재수 없게 흐린 날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나중에 오늘 울어 재낀 개구리 새끼들은 다 잡아 튀겨버리겠다고 생각하면서, 약왕과의 약속대로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장의문의 치료실 같은 곳으로 향했다. 

원래 이 시대에는 여자의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남자는 없지만, 내가 아내의 손을 잡고 치료실로 향하는 것은, 밤이기도 하고 오늘 온종일 아내가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그래, 청아 마음을 편하게 먹어.” 

침도 맞아야 한다고 해서 아내인 제갈청은 따듯한 물에 목욕까지 한 상태였는데, 목욕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달빛 아래 드러난 아내의 안색은 약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노공. 오늘 온종일. 바보같이···” 

“아니요. 당연히 걱정될 수 있지.” 

처음에는 단약만 먹는 줄 알았는데 침까지 맞는다니 그럴 수 있었다. 

원래 주사라는 것은 애들이었을 때도, 어른이 되었을 때도 무서운 것이 맞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 

그렇게 아내를 위로하자 옆에서 영영이도 위로를 거들었다. 

“그래, 나도 집에서 독침 맞을 때는 온종일 긴장되고 그랬어.” 

하지만 독침을 맞으면 당연히 긴장이 아니라 그 이상이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뭔가 조금 핀트가 어긋난 위로였지만, 그래도 언니라고 오늘 온종일 아내 옆에 딱 붙어서 아내 멘탈을 케어해주는 영영이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딴에는 언니라고 붙어서 좋은 이야기도 해주고 어디선가 숨겨두었던 자기의 가장 소중한 환병까지 꺼내주던 영영이. 

아 물론, 알고 보니 그 환병은 내 급에서 훔친 환병 이었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 무척이나 애를 쓴 것. 

“당매매, 정말 고맙구나.” 

내 고맙다는 말에 당황한 얼굴이 된 영영이. 

아마도 대놓고 해주는 칭찬이 조금 부끄러운 모양. 

영영이가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옛?! 아, 아니에요. 청이는 제 친동생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 저리 동생이라고 살뜰하게 챙기는데, 비연이 립서비스 더하기 오해를 한 것이 분명하지.’ 

비연의 말 이후로 자꾸 영영이가 조금이나마 의식되는 상황. 

아니라고 자꾸 되뇌어도 한번 침투한 도끼 바이러스는 대상포진처럼 박멸이 힘든지, 가끔 내 정신이 흔들릴 때마다 숙주인 나를 공격하고 있었기에, 다시금 허튼 생각을 털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영영이를 칭찬해준 후. 

둘의 우애 어린 마음을 흐뭇하게 생각하며, 용기를 불어넣듯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자 달빛 아래서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푸른 눈동자.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도 손을 꼭 잡아 왔다. 

“아, 아아! 소, 손!” 

“죄, 죄송합니다. 노공.” 

‘손도 함부로 못 잡겠구나···’ 

그렇게 아내를 진정시켜 약왕이 기다리는 치료실 앞에 도착하자, 치료실의 문을 활짝 연 채로 약왕이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희 왔습니다. 어르신.” 

“그래, 어서 오거라. 흠흠. 자 다들 준비하거라.” 

“예, 어르신.” 

도착하자마자 치료를 시작을 지시하는 약왕. 

아내가 여자인지라 안에는 아내를 돕기 위한 의녀로 보이는 사람이 몇 명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잠깐 사라졌던 아내가 한쪽에서 얇은 가운 같은 것으로 갈아입고 치료실로 다시 들어왔다. 

“자, 저쪽에 벽을 보고 앉거라.” 

약왕의 지시로 아내가 병자를 누이는 침상 위에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벽을 보고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영영이와 내가 앉은 곳을 바라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다 잘될 것이오!’ 

속으로 다 잘될 것이라 외쳤지만, 마음이 전해졌는지 알 수 없었기에 영영이에게 부탁했다. 

“당매매. 아내에게 다 잘 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음을 좀 전해주겠느냐?” 

“알겠어요. 가가.” 

직접 다 잘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었으나 나는 전음을 못하기도 하고, 아내의 치료 준비로 바쁜 약왕이나 의녀들을 놀라게 할 수도 있었기에 영영이에게 부탁한 것. 

내 부탁에 영영이가 입을 달싹거리며 아내를 향해 전음을 날리는 듯했고, 아내가 곧 내 쪽을 보며 눈빛으로 대답을 해왔다. 

‘고마워요. 노공.’ 

아내의 눈빛에는 고맙다는 아내의 목소리가 담긴 것 같았다. 

*** 

그렇게 시작된 치료. 

약왕이 먼저 아내에게 주의 사항을 이야기했다. 

“혹시 어디 아픈 곳이 생기거나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말하거라.” 

치료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입을 꾹 닫고 있으려 했지만, 약왕의 말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그 무엇인가와 많이 달랐기 때문. 

“어르신 그런데 고통은 참고, 목소리나 신음을 내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원래 무협 대법 클리셰라는 것이 신음을 조금이라도 내면 대법 실패인 것. 

아내가 대법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상황이니, 여기도 그런가 싶어 되물은 것인데, 약왕이 모처럼 믿음직한 소리를 해왔다. 

“아니, 아픈 것을 왜 참는다는 것이냐? 고통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말을 해야 중간에 어디 문제가 생긴 줄 알 것 아니냐.” 

‘그렇지! 미친놈도 아니고 고통을 왜 참아? 맞지! 맞지!’ 

모처럼 환자 보호자에게 안심함을 심어주는 약왕. 

속으로 약왕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안심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명의 느낌 풀풀 나는 약왕의 말에 다소 안심하며 다시 자리에서 아내의 치료를 지켜봤다. 

“아무튼 아프거나 어디가 이상하면 바로 말하거라 알겠느냐?” 

“예, 어르신.” 

다시 한번 약왕이 당부하고 아내가 대답하자 곧바로 치료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침이었다. 

의녀가 금으로 된 수많은 침이 담긴 침통을 약왕에게 건네고. 

-휘리릭 휙 

금으로 된 다양한 길이의 침들이 약왕의 손에서 아내의 전신으로 파고들었다. 

전신 혈맥으로 침이 날아들어 아내의 혈도로 보이는 곳으로 파고들고 있지만 미동도 없는 아내. 

그냥 꼽으면 될 것 같은데 무슨 무공 초식을 펼치듯 몸을 움직이며 침술을 펼치는 약왕. 

‘그냥 꼽으면 안 되나?’ 

그렇게 약왕의 무공을 펼치는 것같은 화려한 침술이 끝나자 의녀로 보이는 여자 하나가 약왕이 한번 보여주었던 단약 함에서 단약을 조심스레 꺼내 아내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아내의 입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스르륵 자취를 감추는 단약. 

그리고 청아한 향이 치료실 내부에 가득 흘러넘쳤다. 

그렇게 아내의 입 속으로 단약이 사라지고 한 식경 정도 흐른 후. 

“후우···” 

아내가 갑자기 크게 깊은숨을 내쉬었다. 

“어?!” 

놀라서 몸을 움찔거리자 나를 제지 시키듯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하는 약왕. 

영영이도 나를 진정시키려는 것인지 내 손을 꽉 잡아 왔다. 

“진정하세요. 가가.” 

“어, 그, 그래.”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조마조마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영영이는 당가의 자손이라 이런 대법 같은 것은 많이 지켜봤는지 나보다 훨씬 담대했고,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누님처럼 나를 위로해줬다. 

그리고 그때 사방을 밝힌 등잔의 불빛에 아내의 몸이 천천히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물드는 아내의 피부는 마치 밤하늘같이 까만색. 

‘결국 다크 엘프 갸루걸 쪽인가?’ 

다크 엘프 갸루걸로 결정이 나는가 싶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아내를 지켜보고 있자, 아내의 피부는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이번에는 다시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로 변하기 시작했다. 

‘설마? 하이 엘프 차도녀?’ 

하지만 나의 기대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흑색과 백색을 오가는 아내의 피부. 

초조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무사히만 제발!’ 

어떤 엘프라도 당연히 사랑해줄 것이라며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지켜봤다. 

그렇게 천천히 시간이 흘러가고 아내의 피부가 다시 정상을 되찾았다. 

뭔가 상당히 안정화된 모습. 

다 끝난 것인가 싶어 아내를 살피자 약왕이 나를 보며 설명하듯 이야기했다. 

“이제 내공이 전부 원기로 변했으니, 둘 중 하나로 변해 자리를 잡을 것이니라.” 

‘오. 이제 리셋이 되고, 스위치가 켜진다는 말이구나.’ 

이제 떠오르는 색으로 아내가 영원히 하이 엘프 차도녀로 남을지, 다크 엘프 갸루걸이 될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순간. 

-씨이잉. 

“응?” 

뭔가가 볼을 스치고 날아가는 것 같은 소리. 

스친 볼을 만지자 손에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어? 이것이?”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해 멍한 표정으로 핏방울을 보고 있자 귓가에 약왕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피하거라!” 

-씨잉 씨이잉 

그리고 곧바로 들려오는 연속으로 뭔가가 날아드는 소리. 

영영이가 재빨리 멍한 내 앞으로 튀어나와 기합 소리를 내며 팔을 움직여 뭔가를 낚아챘다. 

“하얏!” 

깜짝 놀라 영영이의 손을 바라보자 등잔의 불빛에 반짝이는 무엇인가. 

‘금침?’ 

아내의 몸에 박혔던 금침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의녀들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도, 도망쳐!” 

약왕의 피하라는 외침과 의녀들이 도망치는 모습에 영영이가 나를 자기 등 뒤로 감싸며 소리쳤다. 

“가가, 뒤로! 뭔가가 잘못된 거 같아요!” 

“뭐?! 뭐가 잘못되었다고?!” 

놀라 아내 쪽을 바라보자 아내의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땀과 그녀의 전신에 틀어박혔던 금침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모양인지,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그녀의 옷. 

“부, 부인!” 

나도 모르게 아내인 제갈청을 부르며 침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뭔가 큰일이 나고 있는 것 같았고,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안된다!” 

그러나 나의 움직임은 고작 한 걸음이었다. 

영영이가 놀라 급하게 나를 붙들었고, 어느새 달려온 약왕에게 잡혀 혈도가 눌리는가 싶더니, 곧 통나무처럼 뻣뻣해져 약왕과 영영이의 손에 치료실 밖으로 끌려 나왔던 것. 

“부, 부인!” 

“지금 가까이 가면 위험 하느니라!” 

“하지만! 부인이!” 

둘의 손에 끌려 나가는 나와 전장의 빗발치는 총알 같은 금침. 

“잘못된 것은 아니니 걱정 말거라!” 

“가가! 약왕께서 괜찮다고 하시니 진정하세요.” 

약왕의 호통 소리와 나를 안고 진정시키려는 영영이. 

-씨이잉 씨잉 피잉 

금침이 쏘아지는 소리는 꽤 한동안 이어졌다. 

총알 소리 같던 금침 소리가 잦아든 것은 새벽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 

그렇게 사방으로 쏘아지던 금침 소리가 잦아들었고, 혈도가 풀리자마자 영영이 약왕과 함께 치료실로 뛰어 들어갔다. 

쏘아진 금침 때문인지 모든 등잔이 꺼져버려 새벽녘임에도 아직 어두운 치료실 안. 

“부인!” 

“몸에 손대지 말거라!” 

급하게 아내를 향해 달려갔지만, 약왕의 호통 소리에 물러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자 우리를 따라 들어온 의녀들이 등잔에 불을 켰고. 

빛이 들어오자 아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고고히 앉은 아내의 모습. 

그런데 신기한 일은 아내의 피부가 검은색도 흰색도 아니라는 것. 

‘뭐지? 어,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된 일이냐며 다그치듯 약왕을 바라보자 약왕이 내 시선을 피하며 아내에게 다가가 진맥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의 맥을 짚는가 싶더니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건!” 

“무, 무슨 일입니까?!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의 반응에 놀란 목소리로 묻자 약왕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가 쭈뼛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게 그러니까···” 

그리고 그때 들려오는 영영이와 아내의 목소리. 

아내가 눈을 뜬 모양이었다. 

“청아! 정신이 들어?” 

“언니? 몸이 이상해요. 마치···” 

“응? 마치?” 

“깃털처럼?” 

-우지끈 

들려오는 소리에 아내 쪽을 바라보자 아내가 침상을 짚고 침상 아래로 내려오려다 짚은 부분이 그대로 터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게 무슨!’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무슨 일인지 설명을 요구하듯 약왕을 바라보자 내 시선에 당황한 모습이었던 약왕이 급하게 소리쳤다. 

“대, 대성(大成)을 축하하느니라! 허허 이런 기연이!” 

뭔가 급하게 얼렁뚱땅하려는 모습. 

급하게 약왕에게 다가가 그를 붙잡고 되물었다. 

“잠깐! 설명이 조금 필요한 것 같습니다만? 어르신.” 

분명 특수조건에서 발동하는 액티브스킬이 어째서 항시발동 패시브스킬로 변했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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