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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성공 (122/344)

실패와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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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얼렁뚱땅 뭉개려던 약왕이 내가 그의 옷을 붙잡고 따지자 어색한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 아내가 보이는 모습이 대체 어찌 된 것인지를 묻는 나의 질문에 흔들리는 눈빛, 더듬는 말투로 답변했다. 

“커흠. 그, 이, 일단 성공은 했느니라. 이, 일단.” 

치료가 성공했다는 약왕의 대답. 

그러나 아내가 평소에 특수한 상황에서 힘 조절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명백히 평소에도 힘 조절이 안 되는 모습. 

액티브 기술이 패시브화 해버렸다면 혜자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기술이 나의 숨통을 조여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 

성공했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답변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일단? 일단? 이 노인네가?’ 

뭔가 상당히 불안한 답변. 

큰 사고를 친 것 같다는 그런 느낌. 

마음을 진정시키며 되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런 상태이죠?”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아내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침상을 분해하고 있었던 것. 

거기에 영영이가 아내를 부축했다가 화들짝 놀라 물러서며, 자기 팔을 문지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영영이도 일류 고수는 되는 느낌이었는데, 치료가 잘 되었다면 저런 모습을 보일 리가 없었다. 

아내의 비상식적인 힘은 두 내공의 특이한 작용으로 인한 것. 

분명 치료 전에 둘 중 하나의 내공으로 완전히 변한다고 했는데, 내공이 정리되었다면 왜 저리 괴력의 아내가 되었던 말인가? 

저걸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그런 의문이 합리적 의심이었다는 것을 일깨우듯 약왕의 답변이 이어졌다. 

“다만.” 

“다만?” 

“그러니까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조금 다른 방향의 성공이랄까? 크흐음.” 

그의 대답에 얼굴을 찡그리며 따지려 하자 약왕의 입에서 뭔가 들려오지 말아야 할 단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네, 혹시, 임독양맥(任督兩脈)이나 생사현관(生死玄關), 환골탈태(換骨奪胎) 같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흠흠.” 

무림인들이 오매불망 원하는 경지 환골탈태(換骨奪胎). 

그 꿈의 경지를 가리키는 단어가 약왕의 입에서 조심스레 흘러나온 것. 

물론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전생의 무협 지식으로는 초절정(超絕頂) 고수가 화경(化境)의 고수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과정. 

내공을 익힌 무림인이 내공의 경지가 일정 수준에 이르러 임맥과 독맥을 뚫는 것을 생사현관을 타동 시킨다고 하는데, 일단 성공만 하면 내공의 사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고, 한서불침(寒暑不侵)이 생겨 더위나 추위에도 강해지는 그런 단계. 

심지어 환골탈태라고 뼈와 근육 피부가 무공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반로환동(返老還童)이 일어나 몸이 젊어지기도 하는, 신선으로 가는 첫걸음이자 무림인들의 일차 목표라고나 할까? 

모든 무림인의 목표가 신선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이 임독양맥, 그러니까 생사현관을 타동해 환골탈태를 하지 못하면, 신선을 향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조금 강한 범인(凡人)으로 늙어 죽는 것. 

지금 팔왕이라고 불리는 분들도 환골탈태는 이루지 못한 초절정 고수의 단계이니, 누군가 임독양맥을 뚫어 환골탈태한다면 팔왕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환골탈태는?’ 

그의 물음에 머릿속의 내용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그야 물론 들어봤지만, 그것이 어찌 지금···. 서, 설마?” 

대답을 하다가 불현듯 드는 생각. 

아내인 제갈청은 그녀의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모든 내공을 격체전공(隔體傳功)으로 물려받은 상태. 

독왕이신 의조부의 말로는 두 분이 친구분이셨다고 했으니, 배분이나 내공도 엇비슷할 터. 

그렇다면 아내의 몸속에는 초절정 고수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상태였다고 보면 되는데, 거기에 장모님이 넣어주셨다는 북해빙궁의 무엇인가가 합쳐져 하나가 된 상태라면··· 

놀란 얼굴로 약왕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눈치챈 것이구나.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느니라.” 

“저, 정말입니까?” 

놀라버릴 수밖에 없었다. 

‘초절정도 아니고 뭔가 훌쩍 뛰어넘어 갑자기 화경?’ 

그런데 아내가 화경의 고수가 되었다면 기뻐할 일이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했다. 

화경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나야 할 증거들이 아내에게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은 것. 

아니, 증거가 하나 있긴 했다.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사고를 칠 수 있는 몸에서 항상 사고를 칠 수 있는 몸이 되긴 했으니까.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협에서의 환골탈태라면 몸에서 혈도에 쌓인 탁기들이 검고 찐득한 국물이 되어 악취를 내며 흘러내리고, 거기에 피부까지 홀랑 벗겨져 피부가 아기 같아지며 젊어지는 것이 국룰인데, 그렇게 치면 아내는 뭔가 경지를 넘었다고 보기는 이상했다. 

그런 환골탈태의 직접적인 증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 하지만 환골탈태가 일어나지도 않지 않았습니까?” 

내가 항변하듯 묻자 정색하며 대답하는 약왕. 

“내가 환골탈태가 일어났다고 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예?! 그럼 대체 무엇이?” 

“크흠. 이것이 설명하려면 긴데 말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아내의 상태에 대한 약왕의 설명이 이어졌다. 

약왕의 말로는 일단 아내의 치료 과정은 제대로 진행되었다고는 했다. 

아내의 내공이 모두 원기로 돌아갔다가 다시 하나의 내공이 되었다는 것. 

“제갈가의 내공은 사라지고 한기를 잔뜩 머금은 기운으로만 변했으니, 일단은 성공인 게지.” 

‘아! 그러면 하이 엘프 차도녀 확정이구나?’ 

일단 원인은 모르겠지만 북해빙궁의 기운이 서로 간의 경쟁에서 이긴 모양. 

하지만 문제는 제갈가의 내공과 아내가 가지고 있던 북해빙궁의 기운에 몸 안에서 가진바 이상의 기운을 뿜어내는 기묘한 상태였다는데, 약왕은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몸 안에서 내공이 서로 부딪혀 좀 더 큰 기운을 만들어내는 상태였는데. 이게 내 단약으로 인해 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 내공이 생각보다 많이 늘어났구나.” 

대충 설명을 들어보니 내공이 흔들고 따불이 된 느낌. 

‘내공이 화투도 아닌데 왜 거기서 따불이 일어나냐고?’ 

따불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약왕을 다그치며 물었다. 

흔들었을 때 내가 따면 두 배지만 잃으면 리스크도 두 배인 것이 따불.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따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설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거듭된 다그침에 들려오는 결론. 

“그러니 네 부인의 몸은 지금 화경이 되기 직전의 내공이 가득 찬 상태인데, 저 차가운 기운에 대해 잘 아는 고수가 진기도인(眞氣道引)을 해주면, 환골탈태가 일어나 화경에 들어서지 않을까 본좌는 생각하는데 말이다···” 

결국 지금 아내는 북해빙궁의 내공 운용법이나 무공을 전혀 모르는 상태인데, 북해의 내공만을 잔뜩 머금은 상태라는 말. 

그렇기에 북해의 내공심법에 따라 저 기운을 인도해주면 화경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나는 약왕에게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러니까 결국 실패했다는 말이군요?” 

“아니지, 서, 성공이지···” 

“예, 실패.” 

목적에서 벗어났으니 실패가 확실했기에 실패를 강조하자 약왕이 목을 가다듬더니 대답했다. 

“본좌가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마음을 굳게 먹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싶었더니, 남만야수궁에서 내가 백화가 아파 걱정하는 맹희 누님께 했던 대사. 

전생 의학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를 다듬은 것을 파쿠리 해 나에게 시전 하는 약왕이었다. 

‘이 영감이 진짜?’ 

*** 

일단 아내의 괴력은 늘어난 내공으로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시간이 며칠 지나자 힘은 자연스레 정상을 되찾았다. 

다만 아내의 현재 상태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은 상태이니, 아주 조심해야 했다. 

“내기가 어찌 될지 모르니 내공 운용도 조심하고, 진기도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빨리 찾아야 할 것이니라. 물론 합방도 절대 안 되느니라!” 

마지막 말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며칠 후 아내의 몸이 안정되고 약왕에게 진맥을 왔다가 약왕의 마지막 말에 나보다 더 실망한 것은 아내. 

그녀의 눈빛은 죽어 암울로 물들었다. 

무공이 증가하는 것은 원한 바가 아닌데 자꾸 무공만 강해지고, 나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던지, 아내는 급격하게 어두워졌던 것. 

아마 요 며칠 아내의 힘 때문에 각방을 써야 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았다. 

그렇게 약왕과 면담하고 우리의 처소에 들어오자 침상에 엎드려 울먹이기 시작하는 아내.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며 말했다. 

“부인, 괜찮소. 걱정하지 마시오.” 

“하지만, 제, 이 기운을 아는 사람이 없는데, 흑. 또 얼마나 찾아다녀야 할지···.” 

“걱정하지 마시오. 내 어떻게든 찾을 테니.” 

아내는 자신의 북해빙궁 핏줄임을 전혀 모르는 상태. 

장인이 일단 비밀로 하라 했으니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었는데, 울먹이던 아내가 난데없이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고 간곡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청. 

“노공, 생각해보니 더는 안될 것 같습니다.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는 아내. 

“부탁 갑자기 무슨 부탁 말이요? 내 뭐든 들어줄 테니 이야기해보시오.”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준다고 대답하자 아내가 조심스레 나를 설득하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공, 먼저 아이를 낳지도 못하고 남편을 모시지도 못하는 저를 아껴주셔 정말 감사합니다. 괴질에 걸려 죽어가는 저를 살려주시고 또 아내로 맞아 이리 아껴주시기까지 하니, 이 은혜를 어찌 갚을까요?” 

“어허 그 무슨 소리요.” 

뭔가 이상한 분위기. 

먼저 떠날 사람 같은 그런 운을 띄우는 아내의 말투. 

불치병은 아닌데 실망감에 조금 오버 하나 싶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봤더니, 갑작스러운 말도 안 되는 제안이 들어왔다. 

“제가 노공을 모시지 못하는 몸이니, 당연히 제가 나서 소처를 들여야 하는 것인데, 제 욕심 때문에 노공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그, 그래서 하는 말인데 소, 소처를 들이시는 것이 어떠실까요? 마, 마침 좋은 사람인 영ㅇ···” 

‘소처? 뭐지? 첩, 몸종 이런 건가?’ 

본체의 기억을 오래간만에 떠올려보자, 떠오르는 정보. 

소처란 아내가 본처의 구실을 못 할 때 얻는 둘째 부인. 

‘이 새끼 이거 쓸데없는 정보는 왜 정확히 알고 있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어허! 그 무슨 쓸데없는 소리요!”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는 아내의 요구에 깜짝 놀라 소리치자 아내가 내 눈빛을 바라보며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노공. 제 부탁인데도 안 되겠습니까?” 

“그. 그게 대체 무슨 부탁이란 말이오?!” 

버럭 화를 내며 대답했다. 

“어찌 내가 조강지처를 대신해 다른 여자를 맞는 나쁜 놈이 되길 권한단 말이오!” 

가난할 때 사귀었던 친구나 고생한 아내를 대신해, 다른 아내를 또 얻는 파렴치한 놈이 되라고 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내게 소처를 들이라 권하는 근거는 공자가어에 등장하는 칠거지악 때문인데, 그것은 유교를 통해 많이 알려진 칠거지악만을 생각해서 그런 것. 

칠거지악이 언급될 때는 항상 함께 삼불거(三不去)가 같이 따라다니는데, 삼불거란 돌아갈 곳이 없는 여자, 남편과 함께 삼년상을 치른 여자, 같이 고난과 가난함을 겪은 여자는 쫓아낼 수 없다는 이야기. 

물론 소처를 맞는 것이 아내를 쫓아내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와 그간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던가? 

그런데 인제 와서 소처를 들이라니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하, 하지만··· 흑···” 

내 호통에 아내의 호수 같은 푸른 눈에서 눈물방울이 쏟아졌다. 

“미, 미안하오. 갑자기 소리쳐서.” 

아마 이 시대의 여자들 감성으로 지금 이런 상황이 아내에게 부담감이 심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유교가 문제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장인이 이야기할 때까지 비밀로 하려 했지만, 저렇게 부담이 심해 소처까지 들이라 종용할 줄을 몰랐던 것. 

아내를 다독이며 장인이 비밀로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꺼내 아내에게 희망을 심어주기로 했다. 

“진정하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보시오. 부인. 내 결혼할 때 장인께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도 부인의 내력을 진기도인 해줄 사람을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예?! 빠, 빨리요?” 

울먹이다가 자신의 내력을 진기도인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눈물을 훔치고 되묻는 아내. 

아내의 등을 쓸어주며 대답했다. 

“장인께서 열아홉이 되면 장모님에 대해서 알려준다고 하셨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예, 그렇습니다. 노공.” 

아내의 말로는 아내가 어릴 때 어머니에 관해 물으면, 장인이 열아홉에 이야기해준다며 계속 이야기를 피했다는데, 아내는 지금이 열여덟 가을이니, 몇 달 후면 곧 열아홉. 

더군다나 장모께서 아내가 열아홉이면 북해빙궁의 주인이 되어 아내를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고 했으니, 지금부터 천천히 북해빙궁으로 이동하면 해가 바뀌어 아내가 19세가 될 때 북해빙궁에 도착할 터. 

“장모님께서 아마 부인의 내력을 진기도인 해주실 것이요.” 

“네?!” 

아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씨암탉 좀 얻어먹으러 북해빙궁(北海氷宮)이나 가봅시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장모님 뵈러 북해빙궁 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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