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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빙궁(北海氷宮) (123/344)

북해빙궁(北海氷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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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단 말인가요?!” 

-드드드드드 

놀라 소리치는 아내의 목소리가 우리 처소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충만해진 자신의 내공을 아직 주체하지 못한 느낌. 

이렇게 감정 변화가 클 때 아직 자기 내공을 주체 못하는 것을 보니, 며칠 각방 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아내의 입을 막고 급하게 처소의 입구로 달려 나가 문을 열고 사방을 살폈다. 

전후좌우 땅바닥과 하늘까지. 

무림에는 특이한 놈들이 많으니 혹시라도 특이한 방법으로 엿듣는 놈이 있을까 싶어서 온 사방을 살핀 것. 

지금부터 아내에게 할 이야기는 절대 누군가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이야기. 

철저한 보안이 필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소 양쪽 모서리로 돌아가 반대편까지 알뜰하게 살피고 안으로 다시 들어오자 아내가 내 과한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는지, 이제는 말라붙은 눈을 훔치며 물어왔다. 

“노공, 어째서 그러시는지요?” 

“혹시 주변에 누가 있을까 싶어서 말이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절대 다른 이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이야기이니, 부인도 꼭 명심하시오.” 

“예? 서, 설마 어머니께서 아, 악인이라도 되시는 겁니까?” 

뭔가 큰 비밀인 듯 행동하는 나의 모습에 놀랐는지, 멀쩡한 엘프녀일 것으로 추정되는 장모님을 악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아내. 

악인은 절대 아닐 테고 아내와 닮은 엘프녀일 것이 분명했지만, 자신이 북해빙궁의 핏줄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아내는 혼자 상상의 판타지 속에 빠진 듯했다. 

“아니요. 부인. 부인처럼 예쁜 아내를 낳아준 분이, 악인 일리는 절대 없지 않겠소?” 

“그, 그렇군요. 예, 예쁜···.” 

망상에 빠져있다가 예쁘다는 칭찬으로 부끄러움에 물든 아내에게 조용히 이야기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들어보시오. 장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장모님께서는 북해빙궁의 후계라고 하셨소.” 

“부, 북해빙궁!” 

놀라 눈을 부릅뜨는 아내의 모습. 

“그, 그것이 정말입니까?!” 

“그렇소. 진정하시오. 부인.” 

손을 잡았다 손이 구겨질까 싶어 아내의 손목을 잡아 손등을 두드리며 아내를 진정시켰다. 

“내, 내가 북해빙궁의···” 

놀란 아내의 감정 변화에 따라 흘러나오는 서늘한 기운. 

손목을 잡고 있다 움찔 놀라며 아내에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늘한 한기가 피부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잡은 손이 뼈까지 시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정, 진정하시오. 부인.” 

그렇게 아내를 진정시키고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지만, 쏟아지는 아내의 질문. 

아니, 질문이 아니라 아마도 혼잣말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장모님이나 장인께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봇물이 터지듯 터져 나오는 감정 섞인 질문들. 

“하, 하지만 어째서 아버님은 저한테 그 사실을 숨기셨을까요? 어머님은 왜 저를 한 번도 만나러 오지 않으셨을까요? 제가 보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똘똘한 아내인지라 조금만 생각해보면 새외혈사 때문에 쉽게 왕래할 수 없고, 장인의 처지도 이해할 수 있었을 테지만, 거대한 사실에 아내의 사고가 멈춰버린 듯했다. 

하긴 다른 것도 아니고 출생의 비밀은 들었다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것. 

자기가 빙궁의 핏줄이라는 사실과 어머니가 살아계신 데도 십구 년이나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그녀에게 답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게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장모님께서는 새외혈사와 빙궁의 내부 사정으로 부인을 만나지 못할 처지에 있으셨지만, 부인이 열아홉이 되는 해에는 빙궁주가 되실 테니, 부인을 꼭 찾아오라고 하셨다고 장인께서 말씀하셨소.” 

“그, 그런···” 

“아마 장모님도 십구 년 동안 오매불망 그대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 분명하니, 나쁜 생각은 하지 맙시다. 남만야수궁도 우리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지 않았소? 북해빙궁도 중원과는 다른 곳이니 만나지 못할 이유가 있으시지 않겠소?” 

“하, 하지만 왜 아버지는 저한테는 끝까지 말씀하지 않으시고 노공께만···” 

투정 부리듯 말하는 아내. 

‘후, 기회인가?’ 

무공을 배웠으면 대성했을 나의 역천의 눈치가 발동했다. 

아내를 안심시키는 말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떠오르는 것. 

무림 요리사가 아니라 바람둥이를 했어도 잘했을 것으로 생각하며, 아내를 향해 우수에 찬 눈빛과 버터 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야···” 

“그야?” 

“그대가 이제 영원히 내 사람이니.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뜻이겠지요.” 

아내에게는 혹시라도 어린 아내가 장모님을 보러 가겠다고 때라도 쓸까 봐 이야기를 못 했을 것이고, 나에게는 혹시 하나밖에 없는 사위가 객기를 부리다 죽을까 싶어 이야기한 것일 테지만. 지금, 이 순간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내가 굳어 버리고. 

조금 후 그녀의 입이 망연하게 벌어지며 짧게 몇 마디가 흘러나왔다. 

“영원히··· 노공의 사랑··· 아니, 사람···” 

그리고 활화산같이 불타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에게 돌진하려 했다. 

갑자기 돌입한 위기 상황! 

“자, 잠깐!” 

아내를 향해 소리치며 일단 아내를 멈춰 세웠다. 

좋은 분위기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내만 행복하고 내가 죽어버리면 안 되니까. 

“힘 조절을 잘해서 알겠소?” 

“예? 아··· 예.” 

역시나 똘똘한 제갈 아내답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챈 아내는, 얼굴을 붉히더니 뒷짐을 지고 천천히 내 품으로 밀려왔다. 

아주 안전한 모습으로. 

그리고 향긋한 아내의 체향과 함께 한기가 밀려들었다. 

-부르르 

뼛속까지 차갑게 만드는 한기가 밀려들었지만, 어쩔 수 있나 이빨까지 딱딱거리며 안아 줄 밖에··· 

‘추, 춥구나. 여름에 빙궁 혈통의 부인이 있으면, 죽부인은 필요 없겠어···’ 

사무치는 한기가 가슴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내공이 좀 더 안정되어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발생 되는 문제와 흘러넘치는 냉기에 대한 문제는 천천히 사라졌다. 

몸 안에 내공이 손대면 터질 듯하게 넘쳐흐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부인, 들어가도 되겠소?” 

“가가, 들어오셔도 돼요.” 

아내의 내공 문제로 다른 방을 쓰고 있었기에 아침 식사를 같이하려 찾은 아내의 처소 안쪽에서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간 아내는 시비가 없어 장의문의 하인들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영영이가 며칠간 아내의 모든 수발을 들었는데, 나 대신 아내와 같이 잔 것도 영영이었다. 

그렇기에 아침에 아내를 찾은 것이지만 영영이가 나를 맞은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기분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 아내의 얼굴과 항상 기분이 업되어있는 영영이가 나를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노공.” 

“가가, 저희가 식사를 받아서 준비해뒀어요. 시장하실 테니 자리에 앉으세요.” 

둘의 이야기에 식탁을 보자 하인들의 벌써 아침을 가져다 둔 모양인지, 탁자 위에는 삼 인분의 식사와 차가 차려져 있었고, 따듯한 김이 폴폴 솟아오르고 있었다. 

복건성이 아열대 기후기는 해도 늦가을에 접어들어 그런지 아침저녁으로는 찬 바람이 살살 느껴지고 있었기에, 따듯한 식사를 보니 반가워 나도 모르게 자리에 냉큼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 어서들 먹읍시다.” 

“예, 노공.” 

“예, 가가.” 

영영이와 아내의 안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생선을 넣은 갱(羹)과 만두. 

항구도시라 그런지 생선을 넣어 만든 만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맛있구나.” 

“예, 노공 좀 더 있으니 드시고 말씀하세요.” 

그렇게 즐거운 아침 식사를 이어가는 도중 들려오는 여영이의 충격적인 질문. 

“가가, 그런데 청이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셔야 한다면서요?” 

-푸흡 

먹던 만두를 뿜어낼 것 같아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제 낮에 아내에게 한 이야기였는데, 하루가 지나지도 않아 영영이가 알고 있는 상태. 

분명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친자매 같은 사이라 숨길 수 없었던지 영영이가 장모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영이에게는 숨길 수 없었나?’ 

하긴 언니라고 요즘 수발도 들어주고 그리 애틋하게 챙기는데, 밤에 같이 자기도 하거니와 비밀로 하기 미안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일단 문밖으로 뛰었다. 

주워들은 놈이 없는지 다시금 살피기 위해서. 

그렇게 영영이의 말에 화들짝 놀라 어제와 마찬가지로 처소의 문을 열고 사방을 살피고, 혹시 몰라 양쪽 모서리 너머도 살펴봤다. 

그리고 다시금 안으로 들어와 영영이에게 당부했다. 

“영영아 그 이야기는 절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리고 이야기 전에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피도록 하고. 너도 왜 그런지는 알겠지?” 

하지만 요즘 상한가를 치던 영영이가 이제는 하락장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예? 왜요? 살아계신 어머니를 찾아뵈러 가는데 왜?” 

‘그래, 그간 너무 많이 올랐지. 조정 기간에 들어갈 때도 되긴 했지.’ 

답답한 소리를 영영이.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 

[당연히 북해빙궁을 가는 것인데 비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 

짜증을 내며 대답하자 들려오는 놀란 목소리. 

“예? 부, 북해빙궁이요?!” 

“응?” 

‘뭐냐 이거?’ 

영영이의 반응에 시선을 돌려 아내를 확인하자, 아내가 나를 바라보고 계속 손을 저으며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모양인지, 양손을 휘젓다가 굳어진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랄···’ 

나와 아내의 반응에 놀란 얼굴로 우리 둘을 바라보는 영영이. 

중대한 비밀을 내 입으로 이야기하고 말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밖에. 

“그러니까 말이지 영영아···” 

*** 

알고 보니 아내가 영영이에게 말한 것은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와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설레기도 했던지 아내는 영영이에게 그 사실만큼은 이야기하고 말았다고 했다. 

하지만 내 약속대로 자신이 북해빙궁의 핏줄이고 우리가 어디로 간다는 것은 말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내가 넘겨짚어 영영이에게 다 불어버린 것이었다. 

“죄송해요. 노공. 제가···” 

“아, 아니요. 그 정도야 이야기할 수 있지. 실수는 내가 한 것이니, 미안하오.” 

서로에게 사과하는 우리의 귓가에 자신에게 비밀로 하려 했다는 사실에 별로 서운함을 느끼지 않는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해빙궁이라 재미있겠네요. 북해에는 눈이 내린다죠? 눈을 볼 수 있겠네요.” 

한껏 기대하는 얼굴이 된 영영이. 

사천에 사는 영영이가 평생 눈을 볼 일은 거의 없을 테니 호기심이 동하는 표정. 

동생인 청이와 관련된 일이니 굳이 당부하지 않아도 당연히 비밀은 지킬 것이겠지만, 남만야수궁도 무리였는데, 북해빙궁까지? 

따라가겠다고 할 것이 뻔한 느낌이라 자신을 데려간다는 확답받으려 하기 전에 이야기의 주제를 돌려야 했다. 

‘무, 무슨 이야기를 하지? 어머니? 어머니? 아! 그래!’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해 묻는 것이라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영영아 그러고 보니 네 어머니 이야기를 못 들었구나. 네 어머니는 어디 분이시더냐?” 

내 질문에 만두를 잘라 입에 넣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영영이. 

“저희 어머니는 하북팽가(河北彭家) 분이셨어요.” 

‘하북팽가? 아 그래서, 영영이 지능이···.’ 

하북팽가라면 유전학적으로 영영이의 지능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하북팽가라면 괴력을 가진 뇌까지 근육인 그런 느낌의 가문. 

마음속으로 유전 법칙의 위대함을 다시 절감할 때 들려오는 영영이의 목소리. 

“아! 그러고 보니 외가에 가본 지도 무척 오래되었네. 외가에 한번 가야 하는데 언제 다 같이 가요.” 

중원 대장정에 영영이의 외가까지, 누가 보면 우리 셋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오해라도 할 만한 상황이겠지만 일단 영영이에게 대답했다. 

“그, 그래 외가 재미있겠구나.” 

“그래요. 언니 꼭 같이 가요.” 

‘어떻게든 일단 관심은 돌렸나?’ 

마음속으로 살짝 안심할 때 들려오는 질문. 

“그런데 가가, 가가의 고향은 어디라고 하셨죠?” 

“나?” 

“예, 그때 어디라고 하셨는데 기억이···”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만 기억이 안 난다는 영영이의 표정과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그러고 보니 노공의 고향이 분명 복건성의···” 

아내의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대답했다. 

“복주(福州) 근처 작은 마을.” 

“복주 근처 작은 마을이시라고?” 

찌찌 뽕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고향에 와있던 것. 

이어서 영영이의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고향에 온 것도 모르고 계셨다고요?” 

‘그게 내 고향인데 내 고향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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