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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는 오랑캐? (125/344)

새엄마는 오랑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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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비연의 말. 

“내 본가가 뭔가 이상하단 말이요?” 

비연에게 묻긴 했지만 뭐 대충 생각해봐도 이상한 집안이긴 했다. 

중원 대부분에 산재해 있는 내 고향 크기의 마을이라면 집성촌(集姓村)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무슨무슨 장이라는 뜻은 지역 유지 느낌에 전생 한국으로 치면 종가집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그런데 종가집 종손을 후처가 쫓아낸다? 

유교 탈레반이 성업하는 중원에서 절대 용납이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이었다. 

집안 어른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난리 블루스 판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은 일. 

악인이라도 집안의 대는 끊기지 않게 해달라 빌면 한 번쯤 용서를 생각해주는 문화인데, 장손이 나가는 걸 집안 어른들이 용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긴 이상했고, 그런 맥락이라면 당연히 수긍 가는 이야기. 

‘이상한 집안은 맞는 것 같은데, 그걸 가지고 말하지는 않았을 테고.’ 

내 물음에 비연이 자신이 앞으로 내밀었던 종이 묶음에서 두어 장을 꺼내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예, 한번 이것을 보셔요.” 

천천히 종이의 내용을 살피자 드러나는 내용. 

「류가장. 삼십여 년 전 북쪽에서 내려와 정착한 류씨 일가가 세운 곳. 

해안가 절벽 위,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곳에 세워져 있음. 

가문원은 1대 가주였던 류성운, 아들 류정후, 며느리 은소화, 손주 류청운. 

1대 가주 류성운 노환으로 사망. 

2대 가주 류정후 원인 모를 이유로 사망. 

며느리 은소화 병환으로 사망. 

손주 류청운 무림 고수가 되고 싶다고 집을 나간 후 연락 두절 상태. 

현재 류가장에 거주하는 것은 류정후의 후처인 곽 씨. 

류씨가문은 외지에서 왔지만, 1, 2대 가주가 흉년에 곡식을 빌려주거나 하는 등의 선행을 많이 쌓아 마을에서 평판은 좋은 상태. 

다만 후처인 곽 씨가 들어온 후 기존에 있던 마을 주민 출신의 하인들을 다 쫓아내고, 외지인들로만 하인을 다시 꾸린 상태라 현재는 별로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음. 다수의 무림인으로 보이는 자들 포함.」 

‘북방의 위협이 계속되니 강남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인가?’ 

장손이 집을 나간다는데 왜 가문의 어른들이 그것을 용납했는가 했더니, 북에서 내려와 강남에 터를 잡는지 얼마 안 된 가문이었던 모양이었다. 

전생으로 치자면 탈북 실향민 정도랄까? 

이 시기에는 북쪽의 위협에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는 시기인지라 인구 이동이 많은 편이었는데, 아마 몸의 가족들도 그 시류에 편승해 강남 최고의 항구도시 중 하나인 복주 근처로 이주해온 모양이었다. 

이주하고 지역 유지 대접받을 정도의 큰 저택을 지은 걸 보면 돈은 좀 있는 집안이었을 테고. 

“그런데 별로 특이한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오?” 

맨 마지막에 다수의 무림인 포함이라는 말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사설 보안업체 직원을 들였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 

그리고 하인들은 바꾼 것이야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니, 크게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아 되물었지만, 비연은 대답하지 않고 두 번째 종이를 옆으로 빼낼 뿐이었다. 

그 종이를 살피자 그곳에는 새어머니라는 사람의 정보가 적혀있었는데 그것을 보니 정말로 뭔가 이상하긴 했다. 

「곽은소 30세 전후의 미 부인. 

복주의 기루에서 일하던 기녀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류가장의 2대 가주인 류정후가 복주의 기루에서 일하던 곽은소가 마음에 들어 후처로 들인 것으로 알려짐. 

다만 류정후는 기루에 출입하는 것을 즐기거나 술을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어서 둘의 만남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마을에 좀 남아있었음. 

또한 몇 년 전 이야기라 정확지는 않았으나 곽은소가 일했다고 알려진 기루에는 곽은소가 일한 것을 기억하는 이가 없었음.」 

정보는 개방과 하오문이라더니, 똑소리 나게 정리된 문서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대로라면 이상하긴 이상하군요.” 

“그렇죠? 더군다나 기루에서 일했다면 저희 쪽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 이상한 일이에요.” 

하오문은 기루에서 일하는 기녀들의 노조나 협동조합 같은 위치. 

모든 기루와 기녀가 하오문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기녀가 하오문에 속해있으니 기루에서 일했다면 당연히 하오문에서 모를 리가 없었는데, 하오문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새어머니의 근무이력을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비연이 확인시켜준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분명 새어머니가 신분을 세탁했다고 봐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멀쩡한 여자가 기녀로 신분 세탁을 할 리가 없으니까. 

기녀에서 일반인으로 신분을 세탁하면 모를까, 멀쩡한 여자가 기녀로 위장할 이유가 없었던 것. 

비연도 납득하기 힘든지 질문을 해왔다. 

“기억을 많이 잃으셨다고 했지만, 새어머니에 대해 뭔가 기억하시는 건 없을까요?” 

비연의 물음에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딱히 떠올릴만한 중요한 것은 없었고 인생 드라마도 살짝 넘겨봤지만 별로 접점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얼굴과 조용한 분이셨다는 것 정도요.” 

“흐음.” 

둘이 한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조금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는데, 그런데 또 이것만 가지고 뭔가 큰 의심을 하기에는 조금 애한 느낌. 

당장 며칠 후면 아내와 영영이의 성화에 셋이 본가를 찾아가야 하는데 꺼림직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참 생각에 빠져있다가 보니 의심스러운 상황에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뭔가 냄새가 나긴 나는데···” 

내 혼잣말에 갑자기 반가워하는 비연. 

그녀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향낭을 바꾸긴 했는데, 향이 거기까지 나던가요? 고려에서 온 아주 좋은 물건이라더니···” 

“구린내가 나는 느낌인데···” 

“네?!” 

잠깐 오해가 있었지만, 의논은 계속되었다. 

비연이 조사한 증거들을 같이 좀 더 면밀히 살펴봤지만, 그 외에는 딱히 드러나는 무엇인가가 없었고, 둘이 고민은 하다가 시간이 늦을까 싶어 일단 화화루를 나서기로 했다. 

화화루의 영업이 얼마 후면 시작할 것이니, 비연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던 것이었다. 

비연은 어차피 오 층에 오를 손님은 없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늦으면 아내 몰래 왔으니 핑계를 대기도 애매했다. 

일어나기 전 비연에게 물었다. 

“정보의 값은 얼마나 내야겠소?” 

‘설마 비싸진 않겠지?’ 

정보의 난이도와 대상에 따라 가격은 바뀔 테고, 우리 집안이 무가도 아니고 뭐 큰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니 크게 비싸지는 않겠지만. 

이런 시가의 의뢰를 맡기는 것은, 일반인인 나에게는 조금 떨리는 일. 

살짝 걱정하는 표정으로 묻자 내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비연이 대답했다. 

“공자께 갚아야 할 빚도 있고, 영영 언니에게도 빚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렇소? 그러면 고맙소이다.” 

영영이의 빚까지 내가 가로채는 모양이지만 괜찮았다. 

그간 나에게 받은 환병 값을 대신한다 생각하면 되니까. 

그렇게 품에 비연이 조사해준 자료를 가지고 화화루에서 나와 장의문으로 향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고 저녁 식사까지도 시간이 남았으니, 얼른 되돌아가 아내와 즐거운 저녁 식사한다는 생각에 빨라지는 발걸음. 

‘아주 그냥 반나절 못 봤는데 또 보고 싶어. 그냥 중독이야 중독. 아마도 해약은 없겠지?’ 

그렇게 싱글벙글 장의문에 입구에 들어서 문지방을 넘자마자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가가?” 

“까, 깜짝이야!” 

갑자기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에 옆을 보자 영영이가 대문 안쪽에 비스듬히 기대 팔짱을 끼고 장의문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영영이의 옆에는 덕구가 영영이와 비슷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요즘 거의 온종일 아내와 딱 붙어 다니는지라 이곳에 있을 리는 없는데, 갑자기 나타난 영영이의 모습에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당매매?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것이야? 혹시 나를 기다렸···” 

“장 공자와 이야기는 잘 나누셨나요?” 

질문을 하며 놀란 내 어깨와 다리 춤을 스치듯 지나는 영영이와 덕구. 

그녀의 물음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무, 물론이지. 본가에 가져갈 선물에 대해서 아주 깊고 중요한···” 

그렇게 당연하지 않냐는 듯 대답하자 영영이가 뒤돌아 입을 삐뚜름하게 덕구를 바라봤다. 

-왈! 

영영이를 바라보고 짖는 덕구. 

덕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영영이가 다시 물어왔다. 

“아, ‘장진’ 공자와 아주 깊고 중요한 대화를 나누셨구나?” 

“그, 그럼 당연하지.” 

‘뭐지?’ 

약간 이상한 영영이의 질문에 급하게 대답하고 말을 돌려 아내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그래, 아내는 안에 있느냐?” 

“네, 청이는 ‘장진’ 공자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쁜 노공을 기다리며 안에 있지요.” 

“그래, 그럼 저녁때도 다 되었으니 가서 저녁이나 먹자꾸나.” 

“그래요. ‘장진’ 공자와 이야기하느라 힘드셨을 테니 어서 가시죠. 가가.” 

묘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영영이를 따라 처소로 향하다가 중간에 손을 씻고 온다며 영영이를 먼저 아내의 처소로 보냈다. 

그렇게 손을 씻고 아내의 처소로 들어서자 나를 맞는 둘. 

“다녀왔소이다. 부인.” 

“오셨나요? 노공.” 

아침과 마찬가지로 하인들이 음식을 준비한 상태였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침과 같이 반가운 분위기가 아니고 뭔가 싸늘한 분위기였던 것. 

‘아직, 내공 제어가 잘 안되나? 방 안이 어째 싸늘한 것 같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야기를 꺼내며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하이고 오랜만에 진이와 선물을 살핀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왔더니, 배가 고프군요. 자자 어서들 먹읍시다.”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채소볶음과 생선 그리고 몇 가지 요리가 차려진 상으로 젓가락을 가져가려 하자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가께서는 분명 장공자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셨는데, 이상한 일이네요. 어제 잔뜩 술을 먹고 병이 난 장공자는 장의문에게 온종일 누워있었다는데, 가가께서는 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오셨을까요? 그리고 몸에서 여자 향내가 물씬 나는데··· 분명 비연이 자랑했던 고려에서 온 향낭에서 나던 향인 것 같은데···” 

“언니,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장공자를 만나러 가셨다는 분이 어째서, 비연이의 향낭에서 나던 향내가 나시는지.” 

-덜그럭 

손에서 떨어져 내린 젓가락. 

머릿속의 털이 몽땅 곤두서는 느낌. 

‘이런 바보 같은! 알리바이부터 만들어두었어야 했는데!’ 

화들짝 놀라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졌는지 앞에 차려진 밥그릇에서 유난히 진한 김이 몽글거리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부, 부인. 내, 내 다 설명하겠소!” 

어쩔 수 있나 동사하기 싫으면 불어야지··· 

*** 

일단 아내와 영영이에게는 어느 정도 사실을 이야기해 줄 수밖에 없었다. 

내게 계모에게 돈 몇 푼을 받고 쫓겨난 기억이 남아있고, 그렇다 보니 그것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비연에게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찾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런, 그래서 저희가 본가를 방문하자는데 그리 난처한 모습이셨군요?” 

“그··· 티가 났소?” 

“예, 가가. 무척 이나요. 그냥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그런 이유라니.” 

잘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포커페이스가 부족했던 모양. 

그래도 내 설명은 믿어줘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 정말 놀랐네, 영영이 저것이 그럼 아까 검문을 시행한 것인가? 그리고 덕구 이 개새!’

아까 장의문의 입구에서 있었던 일이 후각 검문이었다는 사실에 식은땀을 흘리며, 배신자 덕구 새끼의 행동에 치를 떨고 있을 때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다음부터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하고 가주세요. 제가 걱정하니까요.” 

아내의 미안한 얼굴. 

‘미리 말하면 그런데 가도 되나?’ 

“아, 알겠소. 내 다음에는 반드시 꼭 말하고 가겠소.” 

내 대답에 아내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이고, 영영이가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봤다. 

*** 

우여곡절 끝에 약간은 식은 식사를 끝내고, 증거품으로 비연에게 건네받은 종이를 보여주며 아내와 영영이에게 설명했다. 

“이것이 비연이 조사한 정보를 적은 것이요.” 

“이것이 비연이 조사한 것이라는 거군요?” 

“그렇소. 그런데 조금 이상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어서 말이오.” 

“이상한 이야기요?” 

나는 비연과 나눴던 이상한 점들을 아내와 영영이에게 하나한 이야기했다. 

집에 무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과 새어머니의 출신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확실히 이상한 일입니다. 노공.” 

“확실히 멀쩡한 여자가 기녀였다고 거짓말을 하는 건 좀 이상하네요?” 

나와 비슷한 의견을 이야기하는 둘. 

그리고 아내가 비연이 넘겨준 종이 묶음을 한참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네요. 여기 이것 보세요.” 

아내가 내민 것은 나나 비연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물품 구매 목록이었는데, 류가장의 사람들이 나와서 복주의 시장에서 구매했다는 물품의 목록이었다. 

아내가 내민 종이를 살펴보며 물었다. 

“이것의 무엇이 이상하단 말이오?” 

“거기 음식 재료 구입한 것을 보세요.” 

아내의 지적에 음식 재료 구매 부분을 살피자 아내가 무엇을 말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 이래서 제갈의 피인가!’ 

아내의 똘똘함에 놀라며 외쳤다. 

“확실히! 부인의 말이 맞소!” 

“뭔데요? 저도 알려주세요.” 

아내는 제갈이라서 눈치챈 것이고 나는 요리사라서 눈치챘지만, 영영이는 하프 팽가라서 못 알아듣는 상황. 

팽가의 지적 수준을 고려해 영영이에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여기 이 부분을 보거라. 한번 나와서 사가는 음식 재료를 말이다.” 

“양, 밀가루, 채소.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양은 상당히 여러 마리를 사가지만 밀가루와 채소는 무척 적지 않느냐?” 

“그냥 고기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영영이의 말대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고기를 좋아해도 며칠이지, 구매내용 대부분이 양고기라면 그건 문제가 있었다. 

비싸기도 하고 말이다. 

“아니지. 구매한 양을 보면, 류가장은 대부분의 음식 재료를 구매로 충당하는 모양인데, 강남에서 주식으로 삼는 쌀이 거의 없고, 약간의 밀가루 그리고 상당히 많은 마릿수의 양을 사는 것으로 보아 주식은 양이라고 봐야지.” 

“그게, 무슨 말인데요?” 

영영이의 물음에 턱을 쥐며 대답했다. 

“류가장의 무사들이 중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지.” 

“네에?!” 

뭔가 진한 사건의 냄새가 몸의 고향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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