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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간첩 (126/344)

북에서 온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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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중원인이 아니라면 오랑캐?! 거기에 세작(細作)!” 

놀란 영영이가 그제야 말을 알아듣고 오랑캐라고 외쳤고, 영영이의 말에 나와 아내의 표정이 당황함으로 물들었다. 

아내는 북해빙궁 핏줄이니 하프 북쪽 오랑캐고, 나는 영혼이 동쪽 오랑캐니까 제 발이 저린 것. 

그렇게 영영이의 말에 잠시 어색해진 분위기. 

“크, 크흠.” 

내가 헛기침하며 눈치를 주자 영영이가 자기 말실수를 눈치챘는지 급하게 말을 바꾸며 아내에게 사과했다. 

“다, 다른 나라 사람일 수 있다는 거군요. 미, 미안 청아.” 

“아니에요. 언니.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닐 테니까요.” 

오랑캐라는 뜻 자체가 만리장성 너머 주변 민족들을 싸잡아 야만인 취급하는 것이니 영영이가 사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내의 엄마 그러니까 장모님도 북해빙궁이라는 오랑캐니까 말이다. 

하지만 자금 시기 송나라는 북방 이민족에 대한 위협이 높아질 시기. 

영영이의 저런 반응도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니, 영영이의 사과가 끝나자마자 아내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질문을 해왔다. 

“아무래도 노공의 본가에 새로 들였다는 분들이 아무래도 북쪽 분들인 느낌이죠?” 

“그렇소.” 

들어간 음식 재료의 종류와 그 양을 살펴보니, 몇 명만이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다들 같은 북쪽 출신으로 의심되는 상황. 

만약 일부만 중원인 사이에 타국인이 섞여 있다거나 그 반대라면, 좀 더 식자재가 다양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었다. 

양고기가 아무리 맛있더라도 수십 년 주식으로 먹고살던 인간의 음식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명백히 양고기가 주식인 느낌. 

그리고 이 시대에 양고기를 주식으로 한다는 것은 북쪽 유목민들 뿐. 

그러니까 내 본가에 북쪽 간첩들이 대거 똬리를 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전생도 아닌데 북쪽 간첩이라니!’ 

더군다나 중원인이 아무리 양고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비싼 양을 한 번에 몇 마리씩 매번 구매한다? 

비연의 자료에 보면 류가장은 주변에 어느 정도의 땅을 보유하고 있어 소작을 준다고 되어있는데, 먹고 사는 데 불편함이 없을지는 몰라도 한 달에 몇 번씩 양을 사들이는 것은 더욱 이상했다. 

번지르르한 집을 가지고 있다지만 공작비를 지원받지 않고서야 류가장의 재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뭔가 이상한 점이 가득한 본가. 

이쯤에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북쪽 출신 오랑캐들의 세작들이 차지한 것으로 보이는 본가에 아내와 영영이를 데리고 갈 수는 없었던 것. 

전생의 영향인지 북, 그리고 간첩이라는 이야기에 아주 위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둘을 위험하게 할 수 없어 본가에는 가지 말자고 말하려는데, 영영이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아무래도 위험할 수 있으니, 본가에는···” 

“그럼 결국 오랑 아니. 다른 나라의 세작일지도 모르는 여자가 가가의 아버지를 해치고 재산을 가로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잖아요?!” 

“제 시아버지를 감히! 그건, 확실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군요!” 

아내의 푸른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이며 방안이 싸늘하게 식고, 영영이 또한 눈에서 독기를 뿜어냈다. 

‘제기랄! 유교! 제기랄! 무림!’ 

다른 문화권이라도 부모를 죽인 원수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유교 문화권 플러스 무림이 더해진 문화권에서 부모를 죽인 원수라는 것은 불구대천(不俱戴天). 

즉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 

더군다나 무림 지역구 탑 조폭 집안 출신인 두 여자에게 패밀리는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 

거기에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을 재낀 놈을 살려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내 부모 아니라서 괜찮았지만, 여기서 내가 발을 빼자고 하면 나만 패륜아 같은 존재가 되는 것. 

인간쓰레기로 확정되기 전에 주먹을 쥐고 외쳤다. 

전생 무협 소설에서 한 번쯤 보았을 대사를 치면서 말이다. 

“이, 류청운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사실을 명확히 확인하기 전까지는, 결코 편히 두 눈을 감지 못할 것이오! 비록 무공 하나 모르는 범부이지만 말이오!” 

내 늠름한 모습에 아내와 영영이가 좋아하는 연예인 만난 표정으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공, 훌륭하십니다.” 

“가가, 진정 존경받기 마땅하셔요.” 

‘하, 어쩌지?’ 

둘의 말에 내가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 

영영이 그리고 아내와 여러 가지 방법을 구상해 보았다. 

하오문에게 도움을 받을까도 했지만, 비연을 제외하고 무력이 그다지 강한 놈들이 없으니 그 계획도 제외. 

관에 신고할까도 생각해봤지만, 의심만 가는 상황에서 섣불리 관에 신고했다가 경계심만 심어줄 수도 있는 일. 

또 만일에 정말 우리가 생각한 것이 맞지 않으면, 재산이 탐나 계모를 모함한 파렴치한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운 상황. 

며칠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의외로 돌파구는 이상한 데서 열렸다. 

아침을 먹고 본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샥스핀이 마음에 들었던지 다시 한번 그것을 부탁하려고 우리 처소를 찾아온 약왕이 우리가 나누던 대화를 주서 듣고 만 것이었다. 

“너희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리 나누고 있었던 게냐? 내가 살짝 듣자니 오랑캐, 세작 같은 아주 재미난 이야기가 들리던데 말이야?” 

나이가 있으시니, 적당히 모른 척하셔도 될 것을, 눈치 없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오는 약왕. 

결국 약왕에게 사실을 이야기해줄 수밖에 없었는데, 이야기를 들은 약왕이 우리를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사실이라면 부모의 원수를 갚고 온 무림에 명성을 드높일 기회인데, 그걸 어찌 고민하는 것인 게야? 일단 부딪쳐 봐야지! 아무튼 요즘 녀석들은 패기가 없어서···. 나 때만 해도 어디 산 적이 있다고 하면, 침통하나 품에 넣고 어느 놈이 선수 치기 전에 일단 달려가 때려눕히고 봤었는데··· 흠흠.” 

바리스타 빙의한 듯 라떼드립을 시전 하는 약왕. 

그의 말에 입을 삐쭉거리며 대답했다. 

무림 소시민으로 살기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는 더러운 금수저를 향해서. 

“그래도 저는 범부(凡夫)이고 아내는 내공을 사용치 말라 하시니···” 

그렇게 나름 우리도 우리만의 사정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자 약왕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쯧쯧··· 핑계는··· 내가 적청쌍괴(赤靑雙怪)를 잡을 때만 해도 무림의 아해들이 이리 패기가 없지는 않았는데···” 

‘이 노인네가 정말?’ 

거듭되는 라떼에 속에서 슬슬 짜증이 올라올 때. 

그의 말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하는 영영이. 

“약왕 어르신, 적청쌍괴는 저의 할아버지가 잡으셨다고 하던데요?” 

영영이의 물음에 약왕이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그놈의 늙은이가 그리 말하고 다니더냐?! 아무튼 독쟁이 그놈.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분명 그 늙은이에게 죽어가는 적청쌍괴를 다시 치료해 준 후. 생사결을 벌여 직접 내 중경금침법(仲景金針法)으로 직접 숨통을 끊었는데!” 

“그, 그러셨군요?” 

실적을 스틸 했다는 이야기를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약왕. 

그의 말에 우리 셋은 다 같이 어색하게 웃으며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귓가에 약왕이 답답하다는 듯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있는데 뭘 그리 고민이냐. 내 뒤를 직접 봐줄 것이니 맘대로 날뛰어 보거라! 아무튼 요즘 것들은 일단 저지르는 용기가 없어!” 

“예? 저희 뒤를 봐주신다고요?” 

“그래, 무림의 아해들을 키우는 것도 나 같은 무림의 어른들이 할 일이니까 말이다. 흠흠” 

“그런데 뒤를 봐주신다면 어찌?” 

갑자기 우리를 돕겠다는 약왕. 

그가 돕겠다는 말에 놀란 얼굴로 되묻자 약왕이 사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약왕문에서 할 일도 거의 다 했고, 마침 심심하던 차인데 재미있을 것도 같고··· 오랑캐라니··· 몇 놈 때려잡으면 다른 팔왕 놈들보다 내 명성···. 크흠. 아무튼 본가로 들이닥쳐서 계모를 확인해보라 이 말이다. 내가 네 아내가 한 두어 번 공력을 끌어올려도 몸이나 혈도에 무리가 가지 않는 환약도 만들어 주고, 내가 밖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들이닥칠 테니까. 이 녀석아!” 

‘그래? 약왕이 뒤를 봐준다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 

슬슬 본가 출동 작전을 짜야 할 모양이었다. 

*** 

[영영아 고만 좀 들러붙거라. 아직 본가가 멀지 않았느냐?] 

내 왼쪽 팔에 달라붙어 자기 신체의 부드러움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영영이를 향해 조용한 소리로 소곤거렸다. 

아직 본가가 보이지도 않는데, 좀 이른 연기였기 때문이다. 

[혹시 나와 있는 놈에게 들키면 어쩌려고요. 이쯤부터는 해야 한다고요. 안 그래 청아?] 

그러자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며 항변하는 영영이. 

거기에 아내까지 영영이를 거들었다. 

[맞습니다. 언니. 노공, 지금 저희 둘은 모두 노공의 아내니까 말과 행동을 조심하세요.] 

‘하, 죽갔네···’ 

양쪽에서 서로 경쟁하듯 나에게 달라붙어 오는 아내와 영영이. 

그리고 뒤를 쫄랑쫄랑 따르는 덕구.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전부 작전 때문이었다. 

약왕이 사심 가득한 목적으로 우리의 뒤를 봐주기로 하고, 본가 방문 작전을 세웠는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면 효시(嚆矢)의 끝부분을 자른 것을 아내가 탄지신통으로 공중으로 쏘아 올리고, 주변에서 대기하던 약왕이 그 소리를 듣고 뛰어 들어와 우리를 돕는 것이 이 작전의 골자. 

이 작전은 본가 침투조와 밖에서 대기하다 위험에 빠질지 모르는 내부 인원을 도와줄 구호조로 나눌 수 있는데, 밖에 구호조야 약왕 혼자서 메딕과 무쌍까지 다 찍을 테니 혼자로 충분했고. 

문제는 침투조. 

그 침투조에서도 영영이가 문제였다. 

신분은 숨길 것이지만, 내 아내도 아니고 어떤 이유로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본가 내부의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부터. 

그렇다고 영영이를 밖에서 약왕과 대기 시키자니 내부에 침입하는 전력이 부족했던 것. 

물론 아내의 파워가 월등하다지만 아내의 약점은 실전 경험이 전무(全無)하다는 것이고, 나도 실전 상황은 모르니 내부에서 무슨 일이 터졌을 때 발 빠르게 대처하려면. 실전경험 풍부한 영영이가 내부로 따라가 줘야 했다. 

더군다나 독으로 여러 가지 변수를 만들 수도 있으니 꼭 필요한 존재. 

그런데 어떻게든 영영이의 개연성을 확보해 내부 인원에 넣었다고 쳐도 숙소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내부에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되도록 근처에 처소를 배정받아야 했는데,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나야 내가 쓰던 처소가 있었고 아내도 같은 처소를 사용할 테지만, 영영이가 따로 떨어질 것은 명백했다. 

손님이 오면 사용하는 별채로 안내될 테니까. 

그렇다고 나와 아내. 영영이와 덕구 두 팀으로 나눌 수도 없는 일. 

최소한 밤에 번갈아 가며 눈을 붙이고 전력을 유지하려면 우리는 다 같이 붙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영영이가 같은 방을 쓸 근거가 없으니, 다른 방을 배정받으면 내부에서 전력이 분산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각자 쓱싹 당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내부에서 다 같은 처소를 써야 했는데, 거기서 아내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우리의 모든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명답. 

“가가의 본가 내부에서 따로 떨어져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런 것이면, 언니를 소처라 소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소처도 아내이니 손님 처소에 묵게 할 수도 없었고, 내 처소에서 같이 잔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터. 

안에서 셋이 뭘 할 것도 아니고 본가에 들렸는데 내가 어릴 적 쓰던 처소에서 잠만 같이 잔다는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확실히 그것이면 의심받지 않을 수도 있겠구려! 그런데 화희(火戲)를 해야 하는데 당매매가 잘 할 수 있을지?” 

부득이하게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영영이를 보며 묻자 영영이가 신이나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저 잘할 수 있어요! 누, 누구보다 더 소처를 잘할 자신 있습니다! 아! 화희(火戲)!” 

‘이상하게 영영이가 의욕이 넘치는구나.’ 

며칠 전 영영이가 대답했던 때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자,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연기도 잊을 정도로 배역에 빠져든 것인지, 아내와 재잘거리며 내 몸의 고향 풍광에 대해 떠들고 있는 영영이의 목소리 너머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청운 공자님?”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을 입구에 큰 나무 아래 모여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던 노인 중 하나가 나를 아는 척을 해왔다. 

그리고 쏟아지는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 

“공자님?” 

“청운 공자님이!” 

“공자님 그간 어디 계셨습니까?!” 

얼떨떨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는데 그중 하나의 기억을 몸이 알려주었다. 

“아구(阿九)?” 

“예, 맞습니다. 저 아구입니다!” 

노인의 이름은 아구. 

아씨 집안 아홉째라서 아구. 

마을 주민 출신으로 우리 집의 집사 같은 위치였던 하인 아구 노인이었다. 

“어르신 돌아가시고 상을 치르자마자, 그리 저희에게 말도 없이 사라지시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 몸은 괜찮으십니까? 행색은 왜 이러십니까? 그리고 이분들은?” 

노인의 쏟아지는 물음. 

옷이야 의도적으로 장의문의 하인들의 옷을 빌려 입었으니 후줄근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아내와 소처요.” 

“오오. 이리 어여쁜 아내를 두 분이나? 두 어르신이 살아계셨다면 기뻐하실 일이군요.” 

“선행을 많이 쌓은 류씨 가문의 대가 끊기는 줄 알았더니···. 다행입니다.” 

“공자님의 아내가 두 분!” 

그렇게 눈시울을 붉히는 마을 사람들과 대충 아는 척을 하면서 아삼과 다른 마을 주민들에 둘러싸여 본가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벼랑 위에 지어져 마치 신선이라도 살 것같은 그런 멋진 고택. 

입구의 두 무사가 우리 무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누구쇼? 여긴 어찌 오셨소?” 

‘누구긴 인마!’ 

“계모(繼母)께 아들인 청운이가 왔다고 알리거라.” 

‘집주인이지.’ 

내 대답에 깜짝 놀란 무사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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