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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馕) (127/344)

낭(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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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륵 

영영이가 슬쩍 먼저 차를 맛보고 우리에게 눈빛으로 은밀히 신호를 보내왔다. 

저것은 독이 없으니 먹어도 된다는 소리. 

그녀의 신호에 아내와 내가 입가에 대고만 있던 차를 그제야 목으로 넘기자 새어머니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응, 이러면 곤란한데···.” 

“예?” 

삼십 대의 미부이며 나른한 얼굴을 한 여자. 

이상하게 눈을 삼 분의 이만 뜬 여자가 내 물음에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니. 청운이가 연통도 없이 갑작스럽게 돌아와 처소를 청소시키는 중이긴 한데, 빨리 준비가 되지 않아 곤란하다는 말이었어요.” 

‘저 눈이 내 얼굴을 봤을 때는 분명 전부 떠졌었지?’ 

우리는 현재 류가장 안으로 안내되어 몸의 새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내가 중원을 떠돌던 이야기와 아내들과 결혼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곤란하다는 말을 한 눈앞의 이 말 삼 초쯤 되는 저 여자가 몸의 새어머니 곽은소. 

새어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여자 아니, 누님이셨다. 

더군다나 뭔가 색기를 좔좔 흘려대는 민달팽이 같은 몸짓. 

기루 출신으로 위장했다 생각했는데, 비연보다 어찌 보면 더 끈적한 기루적 매력을 보이고 있었다. 

만약 저 여자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몸의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자의 음심을 자극하는 여자였다. 

그리고 몸의 아버지 사인도 대충 추정할 수가 있었다. 

‘이거 복상사네.’ 

복상사가 아닐 수 없는 행동과 외모. 

몸의 아버지가 사십 중후반이라 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 

‘설마 쓸데없는 기우(杞憂)였나?’ 

사건 개연성 충만한 외모에 잠시 의혹이 사그라들 뻔했을 때쯤, 새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래, 청운이는 얼마나 있다가 갈 건가요?” 

당연히 내가 되돌아갈 것으로 생각하는 새어머니의 물음. 

그 물음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지금 간첩 잡으러 왔지!’ 

정신을 차리고 새어머니의 외모로 사건의 개연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지만, 완벽한 설명은 아니기에 일단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녀의 물음에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준비한 대답을 하기로 한 것. 

“가다니요! 제가 어리석어 계모님을 혼자 두고 무공을 배운다고 허망한 소망을 쫓아 중원을 떠돌았으니,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습니다. 이제 두 아내도 얻어 돌아왔으니, 평생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비장한 표정으로 새어머니를 향해 대답하자 아내들이 아니, 아내와 영영이가 거들었다. 

“예, 어머니. 저희가 앞으로 평생 모시겠습니다.” 

“그럼요. 어머니 이제 노공께서 철이 드셨으니 저희가 합심해 모시겠습니다.” 

대충 나의 컴백 스토리는 무공을 배우려고 중원을 떠돌다 여기저기 뺀지를 먹고 지쳐있던 내가, 한 마을에서 부모님을 잃고 어려움에 처한 여인을 도와주고 인연을 맺어 그녀와 혼례를 올렸다는 스토리. 

다만 그녀의 몸이 허약해 소처를 들이게 되었다는, 그런 배경 스토리를 몸의 새어머니께 이야기한 상태였기에, 내가 평생 모시겠다고 이야기하자 새어머니의 놀라고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펴, 평생 말인가요?” 

“그럼요. 어머니!” 

“저희가 가진 가산도 다 정리하고 돌아왔으니, 여기가 이제 저희의 집이지요.” 

“그, 그래요. 고마운 일이군요.” 

명백하게 당황한 목소리. 

몸의 새어머니 곽은소의 두 눈이 아까 나를 다시 만났을 때만큼 순간 커졌다, 다시 삼 분의 이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때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곽 부인, 류공자님의 처소가 준비되었습니다.” 

“어머, 그런가요? 자 다들 오늘은 멀리서 오느라 피곤했을 테니, 들어가서 푹 쉬도록 하세요. 오늘 저녁은 처소로 보내라 할 테니까요. 밀린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계모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시비를 따라 처소로 향했다. 

이미 다 같이 처소를 쓸 것이라 이야기해둔 상태이기에 우리는 의심 없이 몸이 소싯적에 쓰던 처소로 안내되었다. 

‘지금까지는 일단 잠입 성공적이고.’ 

시비를 따라가는 나와 다시금 양쪽에 달라붙은 영영이와 아내, 그리고 우리 뒤를 졸졸 따르는 덕구. 

이동 간에도 연기를 멈추지 않는 영영이와 아내. 

연기라지만 부드럽고 좋긴 한데 곤욕이라 생각할 때,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아니, 노공. 정말 풍광이 수려한 곳이군요.” 

긴장이 풀렸는지 대사를 치려다 실수하는 영영이. 

조심하라고 영영이의 허리에 감았던 손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좀 더 가면, 곧 내 처소가 나올 것이요. 부인. 그곳이 풍광이 더 수려하지.” 

영영이의 물음에 대답해주자 대사를 틀린 것이 부끄러웠던지, 내 대답에 영영이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물었다. 

“기, 기대돼요. 노공.” 

사천의 당가나 제갈가의 집보다는 부족할지 몰라도 해변 벼랑 위에 서 있는 집이기에 류가장은 남다른 외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영이의 소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신선놀음해도 어울릴 그런 풍광.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내 처소를 보면 영영이도 아내도 지금 이것보다 훨씬 놀랄 것이 분명했다. 

나도 기억 속에서 보고 깜짝 놀랐으니까. 

그렇게 전각 사이를 걸어 내 처소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내부에 경계를 서는 무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개뿔도 없는 집안인데 사천의 당가나 제갈가급의 보안상태. 

“생각보다 무사들이 많이 늘었구려?” 

우리를 안내하는 시비에게 묻자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인께서 아녀자의 몸으로 홀로 계시니, 아무래도 조금 걱정이 되어서 무사를 조금 늘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오기 전의 몸의 기억을 떠올려보았을 때 류가장에도 원래 무사는 서너 명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해고되었다고 했고, 현재 아내와 내가 류가장에 들어간 고기와 식자재의 양으로 추산해본 인원은 최대 서른 명. 

입구와 전각 사이를 지키고 있는 인원을 계산해보니 열다섯 명쯤 되었고, 그들을 제외하고도 무사 십여 명이 어딘가에 더 있다는 소리. 

“바닷바람이 시원하고 전각들이 훌륭하네요. 하은.” 

“그러네요. 천부인. 저쪽에 대나무들이 너무 멋지게 자라있네요.” 

옆을 보자 영영이와 아내도 풍광을 보며 재잘대고는 있었지만, 눈은 사방을 훑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게 천천히 시비를 따라 몸이 소싯적에 생활했다는 처소에 도착하자 아주 멋진 풍광이 우리의 눈앞에 드러났다. 

깎아지는 절벽 끝에 주변의 대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전각 그리고 뒤로 펼쳐진 검푸른 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전각 주변에 나 있는 대나무를 물결치게 해, ‘쏴아아’ 거리는 소리가 바람과 함께 들려왔다. 

“대, 대단합니다! 노공!” 

“정말 대단해요. 신선들이 사는 모옥 같아요!” 

몸의 할아버지는 뭔가 운치를 아는 분이셨던지, 해안가 삐죽 튀어나온 절벽 위에 한쪽을 막아서 집을 짓고 제일 안쪽 벼랑 위에는 손주의 처소를 지었던 것. 

나도 직접 보는 광경에 이런 대단한 전원주택을 홀랑 하려 했던 몸의 새어머니를 몹시 나쁜 여자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개꿀 전원주택 포인트를 날로 먹으려 들다니! 나중에 은퇴하면 이곳으로 하고 싶구나.’ 

그렇게 우리는 안내된 처소로 들어섰다. 

한동안 사람이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급하게 청소한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그래도 침상과 이불은 깨끗했다. 

“그럼 이따 저녁에 식사를 가져올 때까지 편히 쉬십시오. 공자님과 두 분.” 

“고맙소.” 

“제, 일인 것을요.” 

그렇게 시비가 물러나자 아내와 영영이가 스파이 영화에서처럼 긴장된 얼굴로 처소 내부를 샅샅이 살피고 천장까지 확인한 후, 문을 살짝 열어 덕구를 불러들이며 조용히 명령했다. 

[덕구야 주변에 사람이 있나 좀 살펴봐 줘.] 

-월! 

‘저 저, 개새끼···.’ 

주인은 나인데 주인인 내가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냉큼 달려 나가는 덕구. 

정말 곤란한 놈이었다. 

그렇게 덕구가 달려 나간 지 얼마 안 돼, 처소의 문이 슬쩍 열리더니 덕구가 문까지 열고 들어와 아내와 영영이를 보며 짖었다. 

-왈! 

그러자 아내와 영영이가 그제야 긴장이 풀린 얼굴로 각자 의자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딱히 주변에 감시하는 사람은 없나 봐요. 아무래도 반대편은 절벽이고 앞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으니 그런가 싶기도 하고.” 

“언니 말이 맞을 것 같아요.” 

둘의 말에 지금까지 내가 느낀 것과 둘이 혹시 다른 것을 발견했는지를 물었다. 

“지금까지는 의심 가는 것은 많으나, 딱히 다른 나라 사람이라 보일 만한 것은 없었소. 혹시 둘은 뭐 다른 것을 확인했소?” 

북쪽에서 온 간자들이라고 생각하고 류가장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지만, 의심가는 부분은 많은데 딱히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는데, 영영이가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한 것을 알려왔다. 

“예, 확실히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볼만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어요. 외모도 다들 중원인 같고. 하지만 경계를 서는 무사뿐만 아니라 시비나 돌아다니는 하인들까지 모두 무림인이었어요.” 

“시비와 하인까지 말이냐?” 

“예, 노공, 분명 걸음걸이가 평범한 여인의 걸음걸이가 아니었지요.” 

“그리고 하인들도 태양혈이 솟아오른 것이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역력했거든요.” 

서로의 물에 아내와 영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결국 류가장이 무림인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인데··· 시바 이거 실수인가?’ 

시비까지 무림인이라는 말에 조금 쫄려오는 상황. 

“계모도 무림인은 아니었소?” 

혹시 계모까지 무림인인지 묻자 아내와 영영이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뭔가 긴가민가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확신할 수 없어요. 저런 무림인들을 거느린 것으로 보아 무림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맞아요. 반박귀진(返璞歸眞)에 오른 무인일 수도 있으니까요.” 

새어머니가 무림인이라면 무척이나 고수라는 말. 

약왕급은 아니더라도 그 바로 밑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약왕만 믿고 있다가 잘못되면 큰일 나겠구나.’ 

혹시 몰라 다시 한번 영영이와 아내의 준비 상태를 점검했다. 

“영영아, 혹시 문제가 생기면 약왕이 오실 때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 

“물론이에요. 독은 하수와 고수를 가리지 않으니까요. 더군다나 이쪽으로 오는 길이 좁으니, 약왕께서 오실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어요. 다만 바람이 강해 뿌리는 독은 쓰지 못할 것 같아요.” 

“부인도 혹시 모르니 약왕께서 챙겨주신 약을 꼭 필요할 때 먹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노공.” 

일단 그렇게 우리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밤에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할 테니 번갈아 자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는데, 제일 먼저 잠을 청한 것은 영영이었다. 

영영이가 잠이 들고 한 시진쯤 흘렀을까? 

처소 안에서 나와 아내가 밖에서 덕구가 경계를 서고 있을 때 덕구의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왈! 

그리고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는지 밖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식사를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자 하인 둘이 시비와 함께 안으로 들어와 서로 손에 가지고 있는 요리들은 식탁에 내려두었고, 대충 셋팅이 끝나자 하인들이 물러나고 시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곽 부인께서 공자께서 오랜만에 돌아오셨다고, 조금 특색있는 요리를 준비하라 하셔서 준비했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군요.” 

‘그렇게 나오시겠다?’ 

우리가 갑자기 들이닥쳐 다른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으니. 자기들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내며 이유 거리를 만든 모양.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 중원을 여행하면서 힘들 때는 굶기도 하고, 먹을 것이 부족할 때는 석자갱 같은 요리도 먹은 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음식을 가리지는 않으니까.” 

“어머, 석자갱이라니. 무척 힘든 생활을 하신 모양이군요?” 

“뭐 여행하다 보면 다 그런 것 아니겠소.” 

그렇게 사담을 나누다 시비를 내보내고 일단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았다. 

혹시 몰라 환병을 가지고 온 상태였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비상식량을 아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무슨 요리를 내왔느냐에 따라서 어느 나라의 밀정인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영영이가 조심스레 식사를 덮은 천을 스르륵 벗겨내자 들어온 것은 양구이와 야채와 같이 볶은 것으로 보이는 양고기, 

그리고 삶은 양고기. 

“와! 전부 양고기군요! 여긴 또 뭐가 들어있을까?” 

양고기를 좋아하는 영영이가 입맛을 다시며, 기대 어린 표정으로 마지막 남은 천을 벗겼다. 

그런데 영영이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둥근 무엇. 

“이것은?” 

“이건 뭐죠?” 

아내와 영영이가 생전 처음 보는 음식에 조금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낭(馕)?” 

“낭이요?” 

“낭이라면 어디 요리인가요?” 

낭이란 난. 

인도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그 밀가루 빵인 난을 가리키는 것. 

‘이 시대의 난을 먹는 주변국이 어디가 있었지? 일단 북쪽은 아니고··· 인도? 아니야 인도에서 먹는 난이라기에는 좀 생긴 것이···’ 

표면에 깨까지 뿌려진 것이 완전히 다른 문화권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고, 중국의 영향을 받은 주변국 어딘가가 분명했다. 

‘분명 전생에 중국에서 이런 난을 먹는 곳이라면··· 아! 위구르!’ 

전생에도 위구르 지역은 주변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식문화가 다양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주식은 난과 양고기. 

위구르 쪽 난이 확실했다. 

‘위구르가 지금 지명으로 치면··· 그래! 신강(新疆)!’ 

알아낸 사실을 신이 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 이게 아마 신강 쪽 요리인 것 같은데. 신강에 뭐가 있더라?” 

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묻자 두 여자가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교(魔敎)···” 

“마교···” 

“마, 마교!?” 

놀라 두 눈을 부릅뜨고 외치자 밖에서 덕구가 다시 한번 짓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곽 부인께서 식사가 끝난 후 물을 것이 있으니, 정자에서 잠시 단둘이 뵙자 하시는데요.” 

‘어, 어쩌지!’ 

북에서 온 간첩을 잡으러 왔는데, 북이 아니라 서쪽에서 온 무서운 분들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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