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혼술(攝魂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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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魔敎).
원래 무협 세계에 마교라는 것이 여러 가지 설정으로 등장하지만, 보통은 명교, 백련교, 천마신교(天魔神敎)등의 중원의 밀교 단체들을 비하해서 지칭하는 말.
시대나 설정마다 조금 다르긴 한데, 명교라면 아직 이 시대에 등장하지 않는 단체이고, 백련교도 남송 시기에 시작되는 밀교이니, 남은 것은 천마신교.
힘과 무력을 숭배하고 중원 장악을 노리는 천마(天魔)라는 절대자를 섬기는 대충 그런 단체.
‘딱 북쪽 느낌이긴 하네.’
마교의 방향이 중원에서 꼭 북쪽이 아니더라도 절대자가 다스리고, 힘, 무력을 숭배하는 것까지 전생의 북쪽이랑 비슷하긴 했다.
전생에도 거기는 힘의 대표적인 상징인 크고 아름다운 폭탄인 핵을 숭배했으니까.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마교는 전생으로 치면 이단 사이비 종교.
교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교주의 명령이라면 눈이 돌아가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는 중원의 ‘도를 아십니까?’ 급의 기피되는 존재들인 것이다.
“공자님? 곽 부인께 어찌 알릴까요? 부인께서는 오래 붙잡지 않을 것이니 몸이 피곤해도 잠시만 나와달라 하셨는데요.”
밖에서 답변을 재촉하는 시비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고,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마교의 인물이 유력해 보이는 새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사실에 쉬이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충 생각해봐도 새엄마는 천마신교에서 파견된 책임자급일 확률이 높은 상황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상황을 보니 몸의 집은 천마신교의 대 중원 침략 전초기지가 된 모양이었다.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한 팔구십 프로는 기울었달까?
‘아니, 왜 하필 마교냐···.’
솔직히 나는 정파 무림보다는 마교 체질이긴 했다.
왜냐하면 정파는 혈연, 지연, 학연이 판치던 전생과 같은 꽌시로 이루어진 인맥 중심의 세계.
뭐 하나 하려면 인맥이 없는 사람은 쭈구리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이지만, 마교는 실력 하나로만 출세를 보장하는 실력 중심의 단체이자 남자라면 센 놈이 최고가 되는 그런 멋진 곳이니까.
교주에게 충성한다는 것만 빼면, 꽌시 없는 맑고 청정한 그런 단체가 아닐까?
나의 역천의 육체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
하지만 아내의 엄마 그러니까 장모님이 마교에게 습격을 받은 적도 있다니, 지금 상황에서는 일단 나에게는 불구대천의 원수나 마찬가지였다.
“공자님?”
밖에서 거듭 재촉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영영이가 불안한지 숨을 죽이고 물어왔다.
[어떡하죠?]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오는 영영이와 내 손을 꼭 잡아 오는 아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상의해볼 시간이 필요했기에 밖을 향해 소리쳤다.
“내 음식이 맛있어 대답이 늦었소. 식사하고 반 시진 후에 찾아뵙겠다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공자님.”
그렇게 시비가 사라지고 덕구가 짖어오자 영영이가 자기 앞에 놓인 의자에 진이 빠진 얼굴로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마, 마교의 주구들일지도 모른다면 너무 위험해요. 약왕이 오실 때까지 제가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요. 다, 당장 빠져나가야 할지도 몰라요.”
유목민 스파이였다면 영영이 혼자서라도 몇 명씩 잡아 족칠 수 있겠지만, 마교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보통 같은 기간 수련한 무림인이라도 마교라면 정파의 무림인과 실력 차이가 날 수 있었기 때문.
마교는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초단기 속성으로 강해지는 정상적이지 않은 여러 가지 방법들을 사용하니, 일반적으로 정파의 무림인들보다 무력이 강하다는 것이 마교의 전통적인 특징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더군다나 마교도는 광신도로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 영영이가 자신감 있게 약왕이 들이닥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가 급격하게 자신감이 줄어들어 쭈구리가 된 것.
아내와 영영이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일단 진정들 하고 이야기해봅시다. 당매매 지금 도망쳐야 한다고?”
지금 당장 도망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영영이의 의견에 대해 먼저 의논해보기로 했다.
“예, 노공. 아마 청이가 효시를 날리면, 마교의 주구들이 곧장 이리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 분명해요. 제가 그것을 막을 수 없으니, 일단 도망쳐 약왕 어른과 합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영영이가 긴장했는지 연기에 쓰던 노공이라는 남편에게나 쓰는 표현을 바꾸지도 못한 채 대답했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친단 말이냐? 내 처소에서 마을 쪽으로 난 길은 모두 저놈들이 지키고 있는데.”
벼랑 끝에 있는 내 처소는 마교도들이 지키고 있는 방향을 지나지 않으면, 마을로 갈 수 없는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상태.
몰래 도망치기라는 것은 불가능했고 뚫고 나가자니 얼마나 고수들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것.
더군다나 내가 경공을 쓰지 못하니 달려 도망친다 해도 금방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마을 쪽으로 도망치려면 피의 혈로를 뚫어야 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인 상황.
그렇게 내 대답에 당황한 영영이와 뾰족한 방법이 없어 난처한 내 귓가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남은 건 저기뿐이군요?”
영영이와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가 열린 창 너머 바다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
-쏴아아···. 철썩!
저 아래 벼랑 끝에 파도가 밀려와 벼랑을 때리고, 파도가 지는 저녁노을에 물들어 붉은 거품으로 부서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셋은 벼랑 끝에 쪼그리고 앉아 오금이 저리는 하반신을 달달거리며 벼랑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밥도 안 먹고 갑자기 벼랑으로 나온 이유는, 아내의 의견으로 다이빙을 시도할만한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벼랑은 너무 높았다.
평균적으로 사람이 10미터의 높이에서 물로 잘못 떨어져도 장 파열이 발생할 수 있고, 15미터가 넘으면 물에 빠질 때 물속으로 8미터 정도 빨려 들어간다는데, 그러면 코와 귀로 물이 쏟아져 들어와 정신을 잃고 그대로 인생 하직할 수도 있는 일.
“너무 높소이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위험하다는 목소리로 말하자 아내와 영영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아래는 물속이니까요.”
“네, 언니 이 정도면 뛰어내릴 만하겠어요.”
올림픽 다이빙 선수도 오금을 저릴 이삼십 미터 높이인데 뛰어내릴 만하다는 둘.
아무튼 무림인들은 다들 자기 기준이라 나 같은 기초 자원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둘은 모르겠지만, 나는 뛰어내리면 아마 정신을 잃을 것이오.”
“저희가 앞뒤에서 노공을 안고 뛰어내리면 안 되겠습니까?”
“예, 노공 저희가 앞뒤로 꼭 안고 뛸게요.”
아내가 내 걱정에 묘안을 내봤지만,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어느 정도 두 분으로 충격 완화는 되겠지만, 높이가 높이고 마냥 장담할 수는 없었다.
앞뒤로 막아주더라도 수면과의 충돌을 둘이 전부 막아주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제비가 물 위를 스치듯 물을 박차고 오른다는 비연답파(飛燕踏波) 같은 경공 수법도 수평으로 이동할 때 사용하는 것이고, 혹시 몰라 발보등공(拔步登空) 같은 자기 발등을 밟고 다시 떠오르는 방법은 없냐고 물었다가 이상한 사람이 될뻔했다.
“그러면 업고 뛰어내리면 안 될까요?”
“너무 위험하오.”
아무리 무림 고수라 해도 자기 무게에 나까지 더해서 뛰어내린다면 수면에서의 충격은 엄청날 터.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지는 해를 배경으로 하염없이 벼랑을 바라볼 때 영영이가 물어왔다.
“그런데 만약 정신을 잃으면 저희가 두드려 깨우면 되지 않나요?”
하프 팽가다운 아이디어랄까?
고장 난 전자제품도 아닌데 쓰러진 사람을 두드리겠다는 영영이.
영영이의 질문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그간 쌓인 긍정 스택을 영향으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당매매, 사람이 물에 빠져 정신을 잃으면, 물이 숨구멍으로 들어가 숨을 쉬지 못하게 되고. 그런 사람을 깨우려면···”
‘잠깐만, 물에 빠진 사람이라면?!’
영영이에게 설명하다 보니 방법이 떠올랐다.
인공호흡과 CPR!
내가 아내를 살렸던 방법으로 혹시 내가 정신을 잃는다면 나를 깨우면 되는 것.
“그렇지!”
“방법이 있습니까? 노공?”
“노공, 방법이 있나요?”
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요. 내가 그대를 살렸던 방법으로 혹시 내가 정신을 잃으면 나를 살리면 되오.”
“노공께서 저를 살리셨던 방법이라면? 이, 입맞춤?”
아내인 제갈청이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물어왔고, 옆에 영영이도 두 검지를 마주 붙이며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
한치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자 다들 지금부터 죽은 사람도 살리는 대법을 전수할 테니 정신을 바짝 차리시오!”
일단 둘에게 죽은 사람도 살리는 대법을 가르쳐준다며 어그로를 끌었다.
이래야 정신 바짝 차리고 교육에 임할 테니까 말이다.
“저, 저희 둘 다요?”
“언니도 말입니까?”
원래 CPR은 혼자 하면 지치니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하는 법.
“물론이요. 원래 혼자서는 지칠 수 있으니, 둘이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하오.”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둘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노공.”
“알겠어요. 노공.”
그렇게 한참, 바짝 집중한 둘에게 CPR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바닷물을 토해내게 하려면 고개를 살짝 돌려 기도를 확보해주어야 한다는 것과 가슴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누르라는 것 등을 설명하고.
실제로 입은 맞추지 않았지만, 하는 시늉까지 한참을 열정적으로 가르칠 때 들려오는 목소리.
“크흠. 저, 공자님?”
갑자기 등 뒤에 들려오는 시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자, 시비가 뒤돌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 어째서?!’
덕구가 경계를 서고 있었고 아내와 영영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둘의 기감(氣感)을 뚫고 가까이 접근한 시비.
‘설마? 시비가 진짜 개 고수?’
설마 새어머니는 가짜이고 진짜 마교의 고수는 시비인가 싶어 천천히 눈알을 돌려 아내를 바라봤으나, 아내는 주저앉은 채 붉게 물든 얼굴로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리고 있었고, 반대쪽을 살피자 영영이는 이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표정으로 누워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대법이라고 그렇게 강조했는데!’
아무리 대법이라도 이 시대의 여자로서 부끄러움은 버텨내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크흐음. 어, 어쩐 일로?”
영영이의 몸을 내 몸으로 가리며 시비에게 묻자 시비가 계속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버, 벌써 반 시진이 가까워 제가 모시러 왔습니다. 저, 정자는 새로 만들어 위치를 모르실까 싶어서요.”
‘시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그나저나 덕구 이 새끼는 뭘 하고 있었기에!’
속으로 덕구의 직무 유기에 분노하며 대답했다.
“그, 그렇소이까?”
“예, 그, 좋은 때를 보내고 계셨던 것 같은데, 처소 안에서 하셔도··· 아니, 어서 가지시오. 곽 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비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아내와 영영이.
둘이 내 등 뒤로 매달리며 내 양손을 꼭 잡아 왔다.
아마 지금 당장 같이 뛰자는 느낌이긴 했는데 시비가 보는 상황에서 뛸 수는 없었다.
실신한 나를 다시 깨우기도 전에 수색이 따라붙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새어머니를 뵈러 갈 수밖에.
“내 잠시 다녀올 테니 좀 전에 못다 한 식사를 하고들 계시오.”
나도 둘의 손을 마주 잡아주며 고개를 돌려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시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새어머니를 보러 가는 게 조금 무서웠지만, 만약 뭔가를 하려 했으면 진작 시도했을 테니 별일은 없겠지 하는 마음을 간절히 빌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처소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드득
뭔가 깨무는 소리.
시비와 내가 둘 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자, 덕구가 아까 우리에게 배달되었던 양갈비 한대를 어느새 다 뜯고, 남은 뼈를 두 발로 잡고 맛난 표정으로 깨물고 있었다.
‘저저! 저눔시끼! 저저 금수만···. 금수 맞지···.’
갈비를 훔쳐 처먹느라 주인을 위험에 빠트린 덕구의 행동에 분노하며, 그렇게 시비를 따라 정자로 향했다.
그렇게 시비를 따라 류가장의 다른 절벽 끝에 도착하자 계모가 정자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계모는 나를 확인하자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청운아? 내가 아까 묻지 못한 것이 있어서 말이에요. 일단 이리 오르세요.”
“예, 계모님. 그나저나 묻지 못하신 것이라면?”
“뭐가 이리 급할까? 일단 올라와 앉으세요.”
그녀의 안내를 따라 그녀의 술상 건너편 자리에 앉자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 새엄마.
그녀의 미소에 잠깐 시선이 멈춘 사이 삼 분의 이, 정도 나른하게 떠져 있던 그녀의 눈이 크게 떠지며, 그녀의 안구가 작았다 커졌다 하는 느낌이 들더니, 그녀의 눈이 밝게 빛나듯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말했다.
“본녀가 건 섭혼술(攝魂術)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서, 섭혼술!’
위험한 새엄마는 나에게 섭혼술을 걸어놨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