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화마녀(血花魔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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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혼술(攝魂術).
정신력으로 상대의 영혼을 제압해 세뇌를 걸거나 꼭두각시를 만드는 무림의 대표적 사술(邪術) 중 하나.
색공(色功)도 섭혼술의 한 갈래로 보기에 약간 위험하고 음험한 느낌의 기술로 취급되곤 한다.
그런 사술의 이름이 새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시, 시바 섭혼술 걸려버리는 건가? 어, 어찌해야 하지? 파사현정? 아멘? 관세음보살?’
등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알고 있는 모든 영험한 것을 주워 외쳤다.
왜냐하면 세뇌라니 어찌 보면 개쩌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상대보다 무공이 상당히 고강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상대가 도가나 불문의 내공을 가지고 있으면 성공하지 못하는 등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것이 섭혼술이기에, 어떻게 걸리지 않아보려고 발악을 해보는 것.
물론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도 나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만약 섭혼술에 걸려버린다면 내가 내 입으로 아내와 영영이의 정체를 불어버릴 것이고, 칠대세가의 두 딸은 마교에 아주 괜찮은 전리품이 될 터.
둘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마음속으로 간절히 부르짖었다.
‘제발! 제발!’
그리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칠 때 깨달은 것은, 내가 섭혼술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는 것.
‘어?! 어?! 자, 잠깐? 이거 벌써 걸렸어야 하는 거 같은데? 왜 생각할 수 있지?’
섭혼술이 걸리면 멍한 얼굴로 정신이 나가버려야 하는데, 나는 온전한 생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함 속에서 새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기도 해라. 분명히 나를 계모라 부르는 것으로 봐서는 섭혼술이 완전히 파훼 되지 않은 것 같지는 않은데. 어설픈 도사라도 만난 걸까요?”
적의를 담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뭔가 다정한 목소리.
하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그대로 굳어있자, 새엄마가 귀밑머리를 섹시하게 쓸어 넘기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머? 눈빛이 아직도 살아있네? 제대로 안 걸렸나? 이상도 해라. 다시 한번 해 봐야 하나?”
새엄마는 내 눈빛이 또렷해 보이자 뭔가 섭혼술이 잘 걸리지 않은 줄 알고 다시금 섭혼술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금 내 눈을 바라보며 뭔가를 하는 듯했지만, 나에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냥 새엄마가 나에게 눈을 맞춰오며 끼를 부리는 느낌.
‘뭐, 뭐지? 정말 잘 안 걸리는 건가?’
그렇게 새엄마가 다시 한번 눈을 맞춰왔고, 나는 일단 섭혼술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걸리지 않는 듯해, 일단 새엄마의 말대로 눈에 힘을 빼고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섭혼술에 걸리는 시늉을 했다.
‘이, 이렇게 하면 되나? 제발 속아라! 제발!’
필살의 연기로 멍한 표정 멍한 얼굴이 된 나.
내 얼굴을 확인한 새엄마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야 잘 걸린 것 같네요. 하지만 어째서 제 섭혼술에 문제가 생겼을까요?”
‘되, 된 건가?’
마음속으로 혼신의 연기가 통한 것을 기뻐할 때, 새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술상을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가까이 앉더니,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처럼 내 볼을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우리 청운이. 이제야 제가 만져보겠네요. 안 본 사이에 어쩜 이리 늠름해졌을까··· 예쁜 아이를 둘이나 데려오고.”
그렇게 볼을 쓰다듬으며 내 손까지 잡는 새엄마의 부드러운 손길.
‘뭐지? 뭔가 이상한데?’
분명 마교의 무서운 분일 것인데 이상하게 나에게 다정한 모습.
그리고 섭혼술까지 걸어 쫓아낸 사람이 보일 반응이라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동안 못 보던 연인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서, 설마? 이건?’
그녀의 그런 행동에서 뭔가 느낌이 왔다.
이건 분명히 그거였다.
‘키잡! 키워 잡아먹으려고, 강한 남자가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며, 무공을 배워오라 내쫓은 것인가?!’
내가 그녀의 속셈을 깨닫고 놀라 할 때, 갑자기 얼굴에 부드러움이 밀려 들어왔고, 깜짝 놀라 무슨 일인지를 살피자 나는 새엄마의 품 안에 안겨진 채였다.
‘무, 무르익었다는 것인가?’
새엄마는 남자의 정기를 내공으로 바꾸는 그런 무공을 익힌 것인 모양.
섭혼술은 원래 색공과 그 궤를 같이하는 무공이니, 이렇게 섭혼술로 내 정신 줄을 빼놓고 나에게 준비된 성교육을 시행하려는 모양이었다.
일본 야동에서나 보던 그런 스토리.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이거 설마? 목내이(木乃伊) 되어버리는 거 아니야?!’
새어머니에게 모든 정기를 빨리고 중원 판 미라인 목내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할 때 다시 새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쩜 그이와 이렇게 닮았을까요?”
‘응?’
그녀의 말에서 조금 겁이 난 상황에서 나의 역천의 눈치가 뭔가 감을 잘못 잡았음을 알게 되었고, 새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 속에서 슬픔과 함께 내가 아니라 뭔가 내 모습 안에 담긴 다른 이의 모습을 찾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사정이지 대체?’
뭔가 사정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새엄마의 행동과 이야기.
궁금함이 증폭될 때 새엄마가 나에게 다시금 눈을 맞춰왔다.
“섭혼술을 풀고 이전처럼 너와 다정히 밀린 이야기도 나누고, 네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만요. 그러면 우리 둘 다 다시 헤어지기 힘들 테니. 우리의 만남과 이별은 이것으로 끝내도록 해요. 청운.”
그리고 다시 한번 새엄마의 눈빛이 내 눈 안을 가득 메우자 잠겨있던 빗장이 열리듯 머릿속에 뭔가가 열리는 느낌이 들더니 어떤 기억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흑.”
“처, 청운? 왜, 왜 그러는 거지요!? 섭혼술을 너무 여러 번 걸었나?”
새엄마의 다급한 외침이 머릿속을 울려왔다.
***
머릿속이 빠개질 것같은 느낌 속에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아마도 새엄마가 섭혼술로 막아둔 기억인 것 같았는데, 떠오르는 기억은 몸이 가진 새엄마와의 추억이었다.
추억 속의 나는 아직 스물을 넘기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자기 처소에서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여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몸.
잘 그리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새엄마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이놈 이거.’
몸 이 녀석 사춘기 때 집으로 들어온 새엄마를 무척이나 따르고 좋아했던 모양.
솔직히 저 나이 때는 어떤 여자라도 좋아할 나이이지만, 가까이에 예쁜 여자가 생겼으니 마음속으로 무척이나 좋아했던 느낌이었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 큰 집에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중에 예쁜 새엄마가 들어오자 무척이나 따랐던 것 같았다.
“됐다! 새어머니 보여드리면 좋아하시겠지.”
기억 속의 청운이는 그림이 완성되자 그림을 말리는 것도 잊은 채, 그것을 펄럭거리며 어딘가로 뛰었다.
그리고 후원을 걷고 있는 새엄마와 자신의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급하게 멈춰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뒤에 감추고는 천천히 둘에게로 걸어갔다.
“아버님, 돌아오셨습니까?”
“그래, 청운아. 오늘은 별일 없었더냐?”
“예, 소자, 서책을 읽느라 바쁜 때를 보냈습니다.”
온종일 그림만 그렸는데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이어가는 몸.
그런 청운이의 귓가에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청운이가 요즘 서책을 아주 열심히 읽는다고 시비들이 칭찬하지 뭐예요?”
“그렇소? 허허, 그놈 참. 그렇게나 서책 읽는 것을 싫어하더니. 당신이 온 후로 아주 열심인 것 같은 느낌인데.”
“아, 아버지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 제가 언제···.”
그렇게 사춘기의 청운이가 그린 그림이 둘에게 들키고 새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으로 기억이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으로 떠오른 기억은 아주 끔찍한 장면이었다.
“끄허억!”
가슴에서 붉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아버지.
괴인이 손에 쥔 심장이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히이익!”
그 모습에 놀란 몸이 비명을 질러대고.
그리고 그런 비명을 비집고 들려오는, 처음 듣는 분노한 새어머니의 외침.
“노, 노공! 당신 어째서 시키지도 않은 일은 하는 것이죠!”
“노공?! 크하하! 혈화마녀(血花魔女)께서 중원 놈과 사랑놀이에 빠져 대업을 잊으셨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구려.”
“뭐라고요! 시사혈귀(弑死血鬼) 당신이 감히! 이들이 중원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필요한 인물임을 잊었나요!”
“이미 장로께서 마을 사람들에게 후처로 알려졌으니 이놈들이 죽는다 해도 크게 상관없지 않겠소이까? 이들도 그분의 대업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죽을 테니, 어서 그 어린놈도 내놓으시오.”
괴인이 피 묻은 손으로 사춘기의 청운이에게 손짓하자 몸이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고 덜덜 떨며 새엄마에게 달라붙었다.
“어, 어머니···”
“아주 그냥 그놈의 친모가 다 되셨소이다. 하긴 섭혼술에 걸렸으니 당연하려나? 크하하핫! 오랜만에 중원 놈들의 피를 맛보니 기분이 좋구나!”
“당신이 감히! 그분께서 이곳의 일은 모두 저에게 맡긴 것을 잊었단 말인가요? 당신도 제 명을 받아야 하거늘! 감히 그분의 명을 어기겠다는 말인가요? 제가 직접 그분께 아뢰겠습니다!”
새어머니는 앙칼진 목소리로 연거푸 괴한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분께서 분명히 앞으로 그분이 다스릴 사람들이니, 범인들의 목숨을 함부로 취하는 것을 금하셨는데, 어찌 그분을 명을 이리 쉽게 어긴단 말인가요!”
눈을 부릅뜬 채 언쟁을 이어가던 둘은 그분이라는 단어로 새엄마가 괴인을 압박하자 그가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흥. 내, 그분의 명을 잊은 듯한 혈화마녀에게 경고를 해준 것이지, 그분의 명을 거역한 것은 절대 아니요. 혈화마녀의 일은 장로 회의에 올릴 테니 그리 아시오!”
그렇게 놈이 꼬리를 말고 멀어지는가 싶더니, 뒤를 돌아 나를 향해 괴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흐, 네놈 운이 좋구나! 하지만 내 다음에 만날 때는 네놈의 목숨도 거둬주마. 네 아비와 같이 말이다. 중원 놈들의 대를 끊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지. 크하하하!”
그 말에 몸의 시야가 어두워지며 새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운! 청운아···”
그리고 이어지는 기억의 마지막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새엄마의 얼굴이었다.
“어, 어머니···”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몸.
병이라도 앓았던 듯 핼쑥해진 모습으로 몸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 한밤중 류가장의 문 안에서 새엄마를 부여잡고 물었다.
“그, 그 사람은 누군가요? 아, 아버지가···”
“미안해요. 다 저 때문에. 이리될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청운이 너 알고 보니, 생각보다 험한 일 겪었구나?’
불쌍한 몸의 과거사에 측은한 마음을 느낄 때 새엄마의 고백이 시작되었다.
“죽고 죽이며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 청운이의 아버지를 만나고 처음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것이 섭혼술이 보여준 하룻밤의 꿈이라도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을 만큼. 청운이 미안해요. 이곳에 있으면 더 위험해질지도 모르니 이렇게 떠나보낼 수 없는 저를 용서하세요. 그리고 강한 남자가 되세요.”
그리고 그녀의 고백이 끝나자 내 얼굴을 부여잡은 새어머니의 보드라운 손이 내 시선을 자기 눈과 맞추더니, 그녀의 동공이 시야 가득 들어오며, 새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듯 들려왔다.
“청운이는 어릴 적부터의 꿈인 무공을 배우고 싶어 집을 나가는 거예요. 사내대장부니까요. 급에는 은자가 충분히 있고, 소매 안쪽 바느질로 꿰맨 곳에는 친어머니가 남긴 금자가 하나 들어있어요. 혼자 지낸다면 몇 해는 충분히 지낼 수 있을 거예요. 금자는 끝까지 아껴야 해요. 무림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알겠죠?”
“예. 어머니.”
“저는 계모. 몹시 나쁜 여자예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청운이를 내쫓은 나쁜 여자. 앞으로 저를 부르실 때는 계모라 부르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아니라. 알겠죠?”
“예. 계모님.”
“그리고, 절대, 절대. 초절정에 이르지 않고서는 집으로 돌아오면 안 돼요. 알겠나요? 그리고 돌아올 때는 꼭 강한 무림인들과 같이 오셔야 해요. 자, 이제 떠나세요.”
“예. 계모님.”
내 대답을 마지막으로 새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고.
멍한 얼굴의 내가 한밤중 길을 걸어 아직 빛이 밝은 복주 쪽으로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청운? 청운!”
정신을 차리자 새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
그녀의 부름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
“어, 어머니?”
“어떻게?!”
내 어머니라는 대답에 놀란 그녀의 목소리.
‘이런 젠장···’
사정은 확인했고 그녀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내 입으로 세뇌가 풀린 것을 고백해버린 상황.
그녀의 말대로 이 상태로 헤어지면 깔끔했는데, 입에 쓴맛이 남겨지듯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 어째서 섭혼술이···. 서, 설마?”
그녀가 나를 부여잡고 물어왔다.
“설마! 숨이 끊어졌던 적이 있었던가요?!”
그리고 놀란 그녀의 물음과 함께 나를 이곳까지 안내했던 시비가 경공을 펼쳐 정자로 날아들어 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혈화마녀님 오 장로 시사혈귀(弑死血鬼) 주무흔이 배를 타고 당도했습니다!”
“오 장로 시사혈귀 그자가요?! 어, 어째서 하필 지금!”
시사혈귀라면 몸의 아버지를 해친 그놈.
그놈이 공교롭게 다시 이곳을 찾은 모양이었다.
‘이런 제기랄! 그 미친놈인가?’
나를 바라보는 새엄마의 시선과 기억 속에 남겨졌던 시사혈귀라는 자의 이야기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