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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月影) (130/344)

월영(月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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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月影)! 명을 내리겠어요.” 

“예!” 

나의 양쪽 어깨를 부여잡고 있던 새엄마가 고개를 돌려 시비를 향해 명령했다. 

나를 향한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칼로 끊어내는 듯한 어조. 

“이 아이 그리고 아이가 데려온 여인들과 처소에 숨어있다가, 제가 때를 봐서 사람을 보낼 테니, 어떻게든 시사혈귀와 그놈이 데려온 부하들의 눈에 띄지 않게 아이들을 탈출시키세요.” 

“장로님, 하지만··· 류가장 내에 저쪽의 간자도 있기에 분명 들키고 말 겁니다.” 

“그건 제가 처리합니다. 어서!” 

“하지만 그랬다가 장로께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임명하신 마혈대주(魔血隊主)로서의 명입니다!” 

시비는 뭔가 불만인 모습이었는데 다시 한번 새엄마가 명령하자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 

“큭··· 부대주 월영!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명령을 끝낸 새엄마가 나를 바라보며 시비에게 명령할 때와는 다른 사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청운. 집을 나가서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군요. 묻고 싶은 게 많은데, 우리에게 주어진 촌각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월영을 따라가세요. 집 밖으로 내보내 줄 거예요.” 

“예? 예. 그···” 

뭔가 물어보려는데 새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말이 끝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아려오는 가슴. 

내가 전생인지 빙의인지를 한 후로 몸은 지금까지 어떤 반응도 없었는데, 몸의 잔재인지 아니면 내가 잃고 있던 기억의 영향인지 가슴이 아려오는 것. 

신발을 신으면서도 계속 새엄마를 돌아보게 되고, 시비를 따라나서면서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안타까운데 우리 이러다 둘 다 큰일 난다고 몸아!’ 

그러자 촌각을 다투는 급한 상황에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새어머니가 시비를 향해 명령했다. 

“월영, 청운이가 궁금해하는 것은 궁의 비밀이 아니라면 다 알려주세요. 저대로 쉬 떠나지 못할 것 같으니···” 

그리고 시비의 말을 듣지 않은 채 몸을 날려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빈 정자에 그녀가 마시던 술병만이 덩그러니 남겨졌고, 내가 멍한 얼굴로 그 술병만을 바라보자 시비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공자님.” 

“예? 어? 어어···” 

말과 함께 갑자기 나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든 새엄마의 부하는, 나를 안아 든 채로 땅을 박차며 내 숙소 쪽을 향해 경공을 펼쳐 내달리기 시작했다. 

*** 

얼굴로 쏟아지는 바람과 휘날리는 머리카락. 

눈을 뜰 수 없어 앞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월영의 품에서 내 처소로 향하고 있을 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월! 월! 

덕구 특유의 위엄 없는 짖는 소리. 

아마 내 처소가 있는 절벽 쪽에 가까워져 오는지 덕구가 우리를 발견하고 짖어오는 모양이었다. 

곧 월영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휘날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걷어내자 달빛 속에서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덕구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르르릉··· 

그리고 우리를 확인한 덕구가 두 번 짖는 소리에 처소에서 아내와 영영이가 급하게 뛰어나오더니, 시비의 품에 안겨있는 나를 보고 당황한 채 월영을 둘러쌌다. 

“노, 노공 어찌 된 일이시죠?” 

“가가!” 

“월!” 

순식간에 아내와 영영이 덕구에 둘러싸인 월영.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월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아내와 영영이를 향해 외쳤다. 

“일단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서 설명하겠습니다.” 

월영의 기세에 뭔가 당황한 아내와 영영이는 경계 어린 표정으로 월영을 따라 일단 처소로 들어섰고, 우리가 처소 안으로 들어서자 월영이 나를 아내와 영영이 쪽으로 보내고 화급히 처소의 불을 끄기 시작했다. 

-후 

월영의 손과 지풍(指風)에 의해 하나둘 꺼지는 등과 등롱. 

어두워지는 방안, 월영에게서 나를 받아든 아내와 영영이는 먼저 내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노공, 어디 다치신 것입니까? 그리고 저 시비는? 어찌 된 일입니까?” 

“괜찮소. 다친 것이 아니라 빨리 오려고 그런 것이오.” 

“정말요? 그런데 어떻게 된 거죠? 해치려는 거 같지는 않은데 뭔가 이상해요.” 

시비가 경공을 써서 나를 이리 데려온 것으로 보아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지 않으려는 모양으로 보이는데,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영영이와 아내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끌려가서 이상한 일 당한 건 아니죠? 섭혼술 같은 것에 걸렸다거나?” 

“그, 그렇지는 않구나.” 

이렇게 가끔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영영이의 질문에 당황할 때, 나를 살펴보던 아내와 영영이가 내가 무탈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한 얼굴로 월영 쪽을 바라보며 다시금 물어왔다. 

“어떻게 된 일이죠? 노공의 계모가 마교의 주구임이 확실하던가요?” 

영영이의 질문에 나를 둘러싸고 둘이 여기저기 살피는 바람에 집 나갔던 정신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월영쪽을 바라보니. 덕구가 아까와는 다르게 밥값을 하겠다는 듯 월영을 견제하는 중이었다. 

양갈비를 신나게 처먹었는지 입 주변에 번들거리는 기름을 처바른 채. 

정말 쓸데없는 행동. 

‘너 인마 중원에 된장이 없어서 다행인 줄 알아!’ 

아까 월영을 따라갔을 때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지만, 그래도 일단 아내와 영영이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기에 마음을 가라앉히며 설명을 시작하려 했으나. 

나보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월영이었다. 

“마교의 주구라니! 계집 아니, 고, 공자님의 소처 분 말을 조심해서 하시지요. 그분은 대 천마신교 마혈대의 대주이시며 삼장로(三長老)이신 혈화마녀 은소화(殷笑花) 님이십니다.” 

빼액하고 소리쳤다가 점점 예의를 차리는 말투와 함께, 갑자기 시간이 멈춰버린 내 처소 안. 

열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에 뜬 달이 바다에 반사되어 마치 두 개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상은 당연히 나였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깜짝 놀랄 전개에 관객들의 숨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삼장로 혀, 혈화마녀!” 

“혀, 혈화마녀!” 

삼장로라는 직책과 혈화마녀라는 새엄마의 별호를 듣고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는 아내와 영영이. 

둘의 반응에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하아··· 이거 잘못하면 무림 공적 확정인가?’ 

“노공, 저 정말인가요? 

“대, 대답 좀 해보세요!” 

“혈화마녀가 어째서 노공을 그냥 놓아준 것이죠?” 

대충 마교는 천마 아래, 대장로, 장로의 느낌이니. 

새엄마는 마교 공화국 서열 삼위 정도 되는 위치. 

아내와 영영이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도리어 질문이었다. 

“그, 그게 그렇게 대단한 위, 위치인가?” 

아까의 기억통합 후에 새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간질대고 울렁거리는 것이, 몸이 새어머니를 얼마나 좋아하고 따랐는지 이해할 수 있는 상황. 

아내와 영영이의 반응에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악명이 낮은 분이어야 나와 그분의 관계를 아내나 영영이가 받아들이는데 충격이 작을 것이기 때문에, 혹시 마교에서 사무직으로만 활동하셨기를 바라며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던 것. 

'제발, 사무직. 제발.'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영영이가 나를 붙잡고 예전처럼 달달 흔들어가며 대답했다. 

“혀, 혈화마녀라면 마교내에서 유일하게 여인의 몸으로 장로에 오른 인물인데, 천마의 첩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아무튼 천마와 아주 가까운 인물이며, 대단한 섭혼술을 익히고 있어 걸린 사람이 자기 스스로 목을 베어 피가 꽃처럼 뿌려진다기에 혈화마녀라고 한다고요!” 

‘아이고, 사무직이 아니라 최전방 지휘관이구나. 그런 분이 어째서 몸을 아들처럼 아끼실까···’ 

잘못하면 이거 빼도 박도 못하고 무림 공적 확정이니, 내가 마음속으로 이걸 대체 어찌 설명해야 하나 난처해할 때, 다시금 들려오는 월영의 목소리. 

“공자의 소처분은 제발 말조심을 부탁드립니다. 감히 그분을 지칭하는 말을 그리 쉽게 입에 올리다뇨! 공자님의 소처이시기에 제가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첩? 흥! 웃긴 말입니다. 혈화마녀께서 그분의 첩이라니. 아무튼 중원 놈들은···.” 

영영이가 천마를 언급한 것을 눈을 부라리며 눈치를 주던 월영은 거기까지만 말했으면 좋았는데 하지 말아야 할 사족까지 달아버렸다. 

”거기에 놓아주다뇨? 잡은 적도 없는데, 어찌 친아들처럼 아끼는 아니, 친아들이라 생각하는 분을 해한단 말입니까?” 

두 번째로 내 처소 안에 떨어져 내린 폭탄. 

“치, 친아들?!” 

“노, 노공께서 혈화마녀의 치, 친아들?” 

아내와 영영이의 치켜떠진 눈에서 눈알이 빠져나올 것만 같았다. 

둘을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치, 친아들은 아니고, 그러니까 친아들처럼 아끼신다고··· 기, 기억을 좀 찾았는데, 마, 맞는 것도 같고···” 

놀란 둘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월영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분이 친아들처럼 아끼시니 그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신교 내부의 사정으로 신교로 모시지 못함이 애석할 뿐.” 

‘아, 알았으니까! 제발 그만!’ 

아주 그냥 마교 장로의 사랑하는 의붓아들로 못 박는 월영의 설명에 아내와 영영이는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아내가 곧 정신을 차리고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괘, 괜찮아요. 저희 어머니도 북해빙궁주라고 하시는데, 저희 비, 비슷하네요. 아하하···”

“그래요. 노공. 어른들이 집안이 차이 나면 남자가 기를 못 편다는데, 그 정도는 되어야 저희 당가와 어, 어울리시죠.” 

둘 다 아마 너무 놀라 월영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나를 위로하고 싶은 나머지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한 모양. 

그러자 이번에는 월영이 움찔하며 놀라 외쳤다. 

“부, 북해빙궁주의 딸?! 다, 당가?! 고, 공자님 대체 어, 어디서 아니, 어떻게 저런 여인들을···” 

그제야 영영이와 아내가 서로의 잘못을 깨닫고 월영과 묘한 대치를 시작했다. 

영영이도 품에 손을 넣고, 아내도 레일건의 자세를 잡은 상황. 

월영도 둘의 모습에 바짝 긴장해 출수를 앞둔 자세였다. 

아내와 영영이가 월영을 죽여 입막음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모양인 것 같기에 셋 사이로 끼어들어 급하게 중재했다. 

“자자, 서, 서로 진정들 하시고. 지금 들은 건 서로들 비밀로 하시고, 도망치는 것이나 이야기해봅시다. 아셨습니까? 월영님도 당연히 지금 들은 것은 비밀로 해주시겠지요?” 

아내가 북해빙궁 핏줄인 것이 알려지면 중원 무림에서는 문제가 생기겠지만, 마교에서는 일단 새엄마가 막아줄 수 있는 상황. 

여기서 도망치려면 월영의 안내도 필요했기에 아까 떠오른 기억이 맞다면 새엄마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양쪽을 바라보며 제안하자 그제야 양쪽 다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물러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아내와 영영이가 그제야 뭔가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노공, 그러고 보니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절벽 아래 동굴이 있는 모양인데, 해가 지고 나자 제법 큰 배 한 척이 그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바다로도 도망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맞아요. 배 위에 사람들도 제법 많았는데, 이대로 뛰어내리면 위험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내와 영영이의 말에 월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오 장로 시사혈귀(弑死血鬼)가 타고 온 배를 본 모양이군요. 도망을 계획하셨다면, 어느 정도 알고 오신 모양인데, 공자님의 섭혼술이 풀린 것 때문일까요?” 

“서, 섭혼술?! 노공 괜찮으세요?!” 

“노, 노공께 감히!” 

하지만 섭혼술이라는 말에 다시금 일촉즉발의 상황. 

이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 다시 셋을 앉으라 권하며 이야기했다. 

“안 되겠소 서로 간의 오해부터 풀기 위해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소. 도망치기 전에 우리끼리 싸우다 큰일 나겠소. 월영 계, 아니, 어, 어머니께서 제게 알려주라 하신 것을 먼저 말해주시는 게 좋겠소.” 

“알겠습니다. 공자님.” 

그렇게 시작된 내 질문과 월영의 설명. 

월영이 말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이 애매했지만, 내가 이해할만한 이야기를 해줘야 했기에 보안등급이 상당히 많이 풀렸다. 

먼저 새어머니는 천마의 명령으로 중원 정벌 시 후방 교란을 위해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해 중원으로 남파된 것이었다. 

그리고 송의 관병을 피해 배를 몰래 댈 수 있는 그런 위치를 찾다가 류가장 아래 큰 배를 댈 수 있는 동굴을 발견한 것이었고, 수소문해보니 류가장에는 나와 아버지 단둘만 기거하는 상태. 

결국 우리 집이 자연스레 타겟이 된 것이었다. 

간첩선을 숨기기 좋은 동굴과 배가 들어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데 높은 벼랑. 

갑첩들이 보기에는 이보다 좋은 위치가 없었던 것. 

그렇게 새엄마는 아버지가 외출할 때 섭혼술을 걸어 아버지의 둘째 처로 잠입한 것이었는데, 자신의 둘째 처라고 생각하고 한없이 다정한 사랑꾼 아버지의 행동과 영문도 모르고 새엄마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나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녹아내리고 말았던 것. 

그 후로는 아까 내 기억 속에 떠오른 것대로였다. 

나와 월영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내와 영영이가 입을 가리고 눈물이 글썽대는 눈으로 내 손을 잡아 왔다. 

“그런 일이···” 

“노, 노공.” 

그렇게 새어머니가 사랑에 빠진 스파이였다는 것을 설명하고, 월영이 우리의 탈출 계획에 관해서 설명할 때였다. 

자리에 앉아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덕구가 벌떡 일어나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한 것은. 

“덕구야?” 

덕구의 모습에 영영이가 제일 먼저 반응했는데, 덕구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낀 우리가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자, 멀리서 들려오는 절벽에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깡 

-채깡 

“이, 이건?! 설마?” 

월영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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