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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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가 분명 농구공은 아닐 진데···.
머리를 잡혀 들어 올려진 몸 때문에 허공에서 발이 버둥대고 있었다.
“끄아아!”
“청운!”
목이 빠져버릴 것 같아 놈의 팔을 두 손으로 잡고 버티자, 놈이 어머니와 영영이가 분전을 이어가는 곳을 향해 승리에 도취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혈화마녀 모두 멈추라 하시오! 끔찍이 아끼는 아들의 머리통이 터져나가는 것이,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지! 크하하하!”
분개한 표정으로 싸우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
“큭···.”
놈의 협박에 어머니가 비통한 표정으로 무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모, 모두 멈추세요!”
그러나 나 때문에 모두를 위험하게 할 수는 없는 일.
악을 쓰며 어머니를 향해 외쳤다.
“아, 안 됩니다. 어머니! 고, 곧 약왕 어른이 오실 것입니다! 저, 저는 괜찮으니. 제 처와 함께 도망을! 제발!”
약왕이 이미 싸움에 돌입한 것으로 보이니, 시간이 늘어질 뿐 어차피 도착할 것.
나 대신 어머니, 부인, 영영이 거기에 꼽사리로 덕구의 목숨까지라면 내가 감내하는 것이 맞았다.
“청운, 하, 하지만!”
본인 혼자라면 상관없겠지만 내가 아내와 영영이를 언급하자 망설이는 어머니.
그러나 내 말에 어머니가 망설이는 듯 보이자, 놈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지껄였다.
“제법 용감한 말을 하니, 일단 팔다리를 뽑아볼까? 언제까지 용감할지 궁금하구나!”
그리고는 놈이 자기 손목을 붙잡고 있는 내 팔 한쪽을 떼어내 잡아당기며 입맛을 다시자, 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아이의 몸을 상하게 하면, 내 네놈과 같이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싸울 테니, 그리 아세요!”
“어이쿠 이거 무서워라. 알겠소이다. 내 사지는 멀쩡하게 해드리지. 크하하하!”
“어머니 제발! 안 됩니다!”
간절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지만, 어머니와 어머니의 무사들 그리고 영영이는 곧바로 제압돼 바닥에 꿇려지기 시작했다.
“청운. 네, 아버지께 더는 죄를 지을 수 없어요···.”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목숨을 잃고, 거기에 나까지.
가문의 대를 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는 결국 자신을 생각보다 쉽게 포기해 버리셨다.
‘제기랄! 하필이면 이딴 몸으로 태어나서는!’
누구 하나 구해내지 못하고 짐만 되어버린 무력감에 치를 떨 때, 그렇게 모두가 제압되자 놈이 나를 향해 괴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네놈의 사지만 멀쩡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죠!”
놈의 반응에 꿇려진 어머니가 불안감을 느끼고 소리치자, 놈이 계속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혈화마녀의 아들이 쥐새끼마냥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지. 좀 조용히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소이다. 크하하!”
“그, 그만두세요!”
불안감을 느낀 어머니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터져 나오고, 놈의 말이 이어졌다.
“내 내공을 불어넣어 머릿속의 진기를 역혈(逆血) 시켜주마! 분명 내 약속한 대로 사지는 멀쩡할 것이다. 뭐 백치가 되겠지만 말이야. 크하하하!”
“이, 미, 미친!”
놈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놈의 손목을 잡고 버둥거렸지만, 잡힌 손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었고, 곧바로 놈의 손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머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뜨헙! 꺼허억···.”
머릿속으로 밀려들어 오는 뜨거운 무엇인가에 눈알이 까뒤집혀졌다.
그리고 벌벌 떨리는 몸과 함께 들려오는 어머니와 영영이의 외침.
“청운아! 네놈이 감히!”
“노공! 아, 안 돼요!”
‘이, 이렇게 죽는 건가?’
머릿속을 관통하는 뜨거운 충격 후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영혼이 승천하는지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 천천히 밀려들었다.
“노공··· 노ㄱ··· 노···”
“청운··· 청ㅇ··· 처···”
찢어질 듯 귓가를 파고들던 어머니와 영영이의 외침이 옅은 메아리로 변하고.
그렇게 천천히 멀어져가는 소리에 이렇게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머리부터 느껴지는 짜릿하고 시원한 전율.
‘뭐, 뭐지? 왠지 시원해?’
곧 축 늘어졌던 손끝 발끝에 힘이 들어오고, 이상하게 또렷해지고 맑아지는 정신.
‘나, 아, 아직 안 죽었나?’
진기한 체험에 살포시 눈을 뜨자 다시 빛이 눈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놈의 광소가 귀를 찢듯 들려왔다.
“크하하하하! 혈화마녀가 분루를 흘리는 꼴을 볼 수 있다니! 크하하!”
‘뭐지?’
뭘 하긴 한 것 같은데 전혀 이상이 없기에 정신을 차리고 시사혈귀를 바라보자, 어머니 쪽을 향해 광소를 마친 놈이, 자기 전리품인 나를 다시 확인하려다가 놀라고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이놈 눈알이!? 대체 어떻게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냐!? 분명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버렸을 것인데!?”
놈의 물음에 엉겁결에 대답했다.
“그것이··· 왠지 모르지만, 머릿속이 시원한 것이?”
“뭣?! 시, 시원하다고?!”
그렇게 놈이 놀란 목소리로 외치고, 내가 멀쩡한 것에 모두의 시선에 나에게 집중되었을 때.
-펑 펑 펑
연막탄 같은 것이 영영이가 있던 자리부터 내가 있는 곳 근처까지 징검다리처럼 터지며 안쪽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도, 독무(毒霧)!”
“숨을 참아라! 바람이 강해 금방 날아갈 것이다!”
“윽! 한 년이 도망을! 잡아라!”
-탁! 탁! 탁! 탁!
그리고 그 독무 속에서 무엇인가 빠르게 내 쪽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바람에 밀려 사라지는 독무 속에서 여기저기 상처 입은 분노한 표정의 영영이가 튀어나와, 사사혈귀 쪽으로 얇은 나비 같은 것을 하나 소매 속에서 쏘아냈다.
-시이잉
너무 얇아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특별한 암기.
암기는 너무 얇아 그런지 파닥거리며 날갯짓하듯 이리저리 몸을 틀며, 진짜 나비가 날 듯, 시사혈귀를 향해 기묘한 몸놀림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암기를 본 시사혈귀가 대경실색하며 외쳤다.
“도, 독접(毒蝶)?! 당가의 계집이냐?!”
놈이 대경실색하는 모습에 조금 기대를 품었지만, 그러나 놈은 날아드는 암기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낮춰 그것을 간신히 피해냈다.
그렇게 영영이의 나비는 허무하게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벼랑 아래 바다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제기랄!’
“케흑!”
하지만 놈이 몸을 낮추는 통에 간신히 땅에 발이 닿았다가 다시 끌어올려져 비명을 지르던 내 귓가에 멈추지 않고 들려오는 영영이의 발걸음 소리.
-탁 탁
놈의 손아귀에서 잡힌 채 흔들리며 시선으로 영영이를 쫓았다.
그러자 곁눈질한 시야에 시사혈귀를 향해 뛰어드는 영영이의 모습이 하나 가득 눈에 들어왔다.
“아, 안돼 영영아!”
“흥! 고작 일류 수준! 그 정도로는 어림없지!”
나를 구해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애쓰는 듯했지만, 마교의 장로에게 달려드는 영영이는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존재.
시사혈귀도 영영이의 몸짓을 보고 그녀의 경지를 짐작하고는 가소롭다 콧방귀를 끼었다.
그리고 한 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놈이 나를 잡은 손을 그대로 두고 다른 손으로 영영이를 상대하기 위해 마주 출수했다.
놈의 손가락과 손톱이 아버지를 죽였을 때처럼 붉은색으로 물들고, 그것이 영영이의 가슴으로 쏘아지고 있었다.
“영영아!”
다급하게 소리치자 뚜렷히 시야에 들어오는 영영이의 표정.
마음이 타들어 가는 내 속도 모르고 영영이는 나를 향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머리에 진기 역혈을 당한 것은 나인데 영영이가 정신이 나가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머리에 꽃이라도 꽂아주면 어울릴 표정.
그렇게 자살을 기도하면서 왜 혜맑게 웃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 영영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덕구야 지금이야!”
뛰어드는 영영이의 몸이 마법처럼 바닥으로 꺼지고 영영이의 등과 어깨를 밟고 날아오른 덕구.
'이게 개멋있다는 뜻이구나!;
영영이를 향해 마주 출수하려 뻗어지는 시사혈귀의 손을 미끄러지듯 피한 덕구는 목을 돌려 시사혈귀의 팔뚝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흥! 개 따위! 내 호신강기(護身罡氣)로?”
개의 이빨 정도는 호신강기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본데, 덕구는 그냥 개가 아니라 대법을 받은 개.
덕구의 이빨이 놈의 팔뚝에 틀어박히고 덕구가 몸을 드릴처럼 회전하자 놈의 팔뚝에서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아니! 이 무슨! 끄헉! 끄허헉!”
그리고 그 순간, 당황한 놈이 나를 뒤로 집어 던졌다.
“됐다!”
간신히 풀려나 신이 나 외쳤지만,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놈이 집어던진 뒤쪽은 벼랑 너머.
내 몸이 삼십여 미터 절벽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멍하니 뒤로 떨어지며 손발을 허우적거렸다.
전생부터 물과 무슨 마가 낀 것이지 뒤지려고 하면 항상 물과 관련이라고 생각하며, 혹시라도 살아나면 다시는 물 근처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그렇게 떨어지는 내 시야에 뭔가 믿을 수 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벼랑 끝에서 뛰어내린 영영이가 나를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
그리고 곧 나를 따라잡더니 나를 부둥켜안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잡았다! 이대로 영영 잃어버리는 줄 알았어요!”
‘내가 물건도 아닌데 잃어버리긴 녀석. 하프팽가 다운 소감이구나.’
나를 구해낸 자신이 너무 대견한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영영이.
이젠 완벽한 우량주가 되어버린 영영이.
기뻐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 수면에 부딪힐 때 다가올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려는데, 다가올 충격보다 더한 충격이 나에게 찾아왔다.
“가가를 잃을까 너무 무서웠어요! 가가! 너무너무 좋아해요!”
“뭐어!?”
영영이의 다이렉트 고백에 머릿속에 진기가 이제야 역혈 하는지, 그대로 스파크 튀듯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아, 진기 역혈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버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내가 삼십 미터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고백.
멍한 얼굴로 영영이를 바라볼 때.
-쩌억
-콰루루루루루루룩
‘아차··· 다이빙.’
충격과 함께 곧바로 시야가 암전했다.
***
멀리서 류가장을 살펴보던 약왕은 이제 막 익어 고소한 향을 뿜어내는 비둘기의 다리를 잡아 뜯어, 입으로 가져갔다.
“밖에 나오면 이 맛이란 말이지. 흠흠.”
소싯적 협행을 자주 다녀본 약왕의 느낌으로는 구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렇게 밤이 깊어가는 이맘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곧 자신을 부르는 효시의 소리가 쏘아질 테니, 배를 든든하게 하고 슬슬 갈 준비를 하려는 참인 것이었다.
그렇게 비둘기 다리 하나의 고기를 훑어 입안으로 집어넣고, 고소한 기름의 맛이 막 느껴지려는 찰나.
-꽤애애애애애액!
-푸웁!
입에 넣었던 비둘기 고기를 뱉어낼 만큼 충격적인 소리를 내는 효시가 류가장에서부터 마을을 가로질러 복주를 향해 날아갔다.
“무슨 효시 소리가?”
멍하니 굉음을 내며 밤하늘을 찢어발기는 효시의 소리를 눈으로 좇던 약왕.
그는 곧 효시의 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뜨거운 비둘기의 다리 한 짝을 잡아 뜯어 입에 문 후 재빨리 류가장으로 내달렸다.
“허기를 채울 시간도 주지 않는구나! 내 가서 구운 비둘기만도 못한 일이면, 나를 귀찮게 한 놈들을 다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이정도 일이면 최소한 마교 놈들이라도 서넛 나타나야 하는 것인데! 에잉!”
그렇게 구시렁거리며, 경공을 펼치는 속도에 식어가는 비둘기의 다리를 다 뜯은 약왕이 류가장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들은 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
“입구에 한 놈도 없고, 멀리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까지?! 아이들이 위험하겠구나!”
약왕이 들려오는 소리가 보통 큰일이 아닌듯해 류가장 입구의 담을 재빨리 넘어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 근처에 은신해있던 네 명의 살수가 약왕을 덮쳐왔다.
“이, 미친놈들이 감히! 노부가 누구인지 아느냐?”
묵묵부답.
대답 없이 검을 찔러오는 네 명의 살수.
“굳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손주를 타이르듯 외친 약왕의 소매가 펼쳐지며 무엇인가가 살수들을 향해 쏘아졌고. 달려들던 살수들이 모두 그 자세 그대로 벽이나 나무까지 밀려가 굳은 채 고정되었다.
머리에 하나씩 긴 장침을 품은 채.
“자, 그럼 어디서 온 놈들인지 한번 내력을 살펴볼까?”
입구 쪽에 더 이상 다른 놈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약왕은 네 살수의 내력을 확인해 이놈들이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무력화 시킨 네 살수 중 하나의 목덜미를 짚어 내력을 확인한 약왕의 얼굴에 피어오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미소.
“역혈심법(逆血心法)! 이놈들 이거 마교의 놈들이구나! 흠하하! 그래, 마교 놈들이라면 멧돼지 한 마리 정도는 되지! 얼마나 높은 놈이 와있을꼬? 잘하면 오늘 팔왕이 아니라 일성(一聖)과 칠왕이 되겠구나!”
신이 난 약왕의 신형이 병장기의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곧바로 쏘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