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
“끄허어어억!”
마교의 부대주라는 놈의 정수리에 장침이 머리끝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자 칠공(七孔)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량의 피.
“병이 깊은 놈은 이게 제일이니라.”
-팅
약왕이 머리끝에 조금 남은 장침 끝을 손끝으로 튕기자 놈은 선 자리에서 몸을 떨어대다 그대로 통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
-털썩
끝까지 치료를 거부하던 놈이 결국 편안한 안락을 얻은 후, 약왕이 주변을 둘러보자 사방에 널브러진 마교의 무사들.
약왕은 달려드는 심각한 병자들을 위해 가지고 있던 장침을 한 놈당 두 대씩 놔주고 나서야 놈들을 다 치료할 수 있었다.
“독한 놈들.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통에 많이 지체되었구나. 어서 서둘러야겠구나!”
한쪽 팔을 못 움직이게 만들어도 다른 쪽 주먹을 쥐고 달려드는 통에 이각이나 지체되어버린 상태.
모두 고통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치료를 했으니, 어서 청운이의 일행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몸을 날린 약왕이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이제는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도 완전히 끊겨버린 모옥의 뒤편.
절벽 위에 세워진 신선이라도 살 것같은 모옥 뒤였다.
“너무 조용한데, 설마 늦은 것은 아니겠지? 흠흠.”
당가의 아이도 있고 무엇보다 제갈가의 아이도 있으니 별일이야 있겠느냐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너무나 조용한 류가장.
제법 치료할 맛이 나는 놈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흥을 내느라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약왕은 서둘러 인기척이 느껴지는 모옥의 앞쪽으로 발걸음을 서두르려 했다.
그리고 그때 한 여인의 목소리가 모옥 앞 절벽 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덕구야! 나는 괜찮으니, 어서 약왕 어르신을 찾거라! 찾아서 그분을 절벽 아래로 모셔가야 한다!”
“월!”
‘이건 제갈가 여식의 목소리가 아니더냐? 아직 살아들 있었구나!’
아직은 아이들이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상태.
약왕은 허겁지겁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모옥의 측면에서 모퉁이를 돌아나가려 할 때, 눈앞으로 개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월!”
왠지 자신을 보고 잘됐다는 듯 짖어오는 개.
거기에 분노한 남자의 외침이 더해졌다.
“남만야수궁의 천구(天狗)를 끌고 다니다니! 네년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냐!”
약왕은 모퉁이를 돌아 달려 나오는 개를 뛰어넘어, 개가 튀어나온 모옥의 모퉁이를 돌아 앞을 향해 급하게 소리쳤다.
“멈춰라! 이 버러지 같은 마교 놈들아! 감히 너희들이 누굴 핍박하는지 아느냐!”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에 움찔거리는 마교의 무사들.
자신의 일갈에 움찔거리는 마교 놈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찾았다.
그러자 덩치 큰 남자 앞에 제압되어 꿇려진 제갈가의 아이와 조금 떨어진 곳에 제압된 두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셋? 하나는 제갈가의 여식이고, 둘은 처음 보는데, 청운이와 당가의 아이는 대체 어디 간 게지?’
눈에 보이는 것은 재갈까지 물려 제압된 두 여자와 청운이의 처인 제갈청 뿐.
약왕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제갈청에 목에 칼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까 무사들이 말한 대주라는 듯한 놈의 목소리.
“크하하하하! 약왕 좀 늦으셨소이다.”
“어르신! 노공께서···”
“닥쳐라! 이년!”
-씨이잉
“커헉!”
약왕은 장침 하나를 날려 제갈가의 아이를 핍박하는 무사의 머리를 꿰뚫어준 후 마교놈들을 향해 소리쳤다.
“크흠! 네놈은 누군데 내 손주의 집에 나타나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가솔들을 핍박하는 것이냐!”
“소, 손주?”
“마교 놈들이 소식이 늦구나, 몇 번을 이야기해주어야 하는지···. 내 손주의 의형인 류청운의 집이니 내 손주라고 할 수 있지!”
“이런 제기랄 어쩐지 약왕이 나타났다 했더니···”
“어서 사람들을 풀어주지 않으면, 여기서 단 한 놈도 살아나가지 못할 줄 알거라!”
놈들에게 일갈한 후 내공을 끌어올려 주변을 압박하자 뒤편에 반쯤 부서졌던 모옥의 문짝이 그대로 떨어져 나가며 벼랑으로 큰 소리가 퍼져나갔다.
-우당탕
그러자 그 모습에 침을 삼키며 긴장하는 마교놈들.
자신을 보고 오줌을 지리는 놈들의 꼴에 마음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떠올릴 때,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나서 자신을 소개하듯 말했다.
“주, 중원에서 가장 단약을 많이 처먹은 늙은이라더니 내공이 무시무시하구나. 허나 늙은이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해도 나 시사혈귀를 뚫고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소이까?”
“시사혈귀! 마교 오 장로!”
다른 놈들이면 모르지만, 마교 오 장로가 앞에 버티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조금 떨어져 있는 둘은 모르겠지만, 시사혈귀 앞에 꿇려있는 제갈가의 아이는 반드시 목숨을 잃을 터.
제갈가의 아이가 내공을 쓸 수 있다면 이리 잡히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내공을 쓸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상태.
일이 잘못되어도 무림의 미래를 위해서 저 아이만큼은 살려야 했다.
곧 화경의 경지에 들어서 자신을 뛰어넘을 중원 무림의 보배니까 말이다.
“제갈가의 아이야 청운이는 어찌 된 것이냐? 그리고 당가의 아이는?”
약왕은 일단 다른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제갈가의 아이에게 물었다.
“어르신! 파파(婆婆)께서 저놈이 노공을 벼랑 아래로 던지고, 언니는 노공을 구하려고 같이 뛰어내리셨다고 하셨습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저희는 괜찮으니 어서 벼랑 아래로!”
“뭐, 뭐라!”
약왕은 급하게 이곳으로 오면서 보았던 절벽의 높이를 생각해보았다.
무공을 배운 당가의 아이는 모르겠지만, 잘못하면 청운이는 목숨을 잃을 높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무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제갈가의 아이를 이대로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마교 놈들과 거래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교의 오 장로라는 놈에게 물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놈에게 묻자 이죽거리며 대답하는 놈.
정수리에 장침을 꽂아주고 싶은 면상으로 놈이 대답했다.
“벼랑 아래 우리가 타고 온 배가 있소이다. 우리가 부상자들을 데리고 그 배를 타고 되돌아갈 수 있게 해주면 되오. 그럼 이 아이는 되돌려 드리지.”
“이런 망할!”
마교의 오 장로라는 놈을 잡으면 일성(一星)이 확실했지만, 이대로 놓아준다는 것에 속이 쓰려왔다.
그래도 화경을 앞둔 제갈가의 아이를 버릴 수는 없는 일.
“어르신 저희는 이곳에서 죽어도 좋으니 제발 노공을!”
자신이 거래를 받아들이려는 듯하여 보이자 제갈가의 아이가 절규하듯 외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납득하게 설명할밖에.
“당가의 아이가 따라갔다고 했으니, 믿거라. 너를 죽게 두고 그 아이가 살아온다면 그 또한 난처한 일. 그 아이가 자신 때문에 죽은 네 시체 앞에서 자책하며 울부짖는 꼴을 보고 싶은 게냐?”
“하, 하지만···”
약왕은 말을 끊고 마교의 오 장로라는 놈에게 외쳤다.
“좋다 셋 다 이리 보내거라. 셋을 무사히 보낸다면, 내 약왕의 체면을 걸고 네놈들을 보내줄 것이니!”
“셋 다 말이오?”
“내 분명 제갈가의 아이와 대화 중에 저들 중 하나가 청운이의 어머니라 들었는데, 당연하지 않겠느냐!”
분명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뭔가가 의심되는 계모라 들었으나 저리 같이 잡혀있다면 뭔가 사정이 있을 것이고, 더군다나 제갈가 아이가 그녀를 파파라고 부른 것으로 봐서는 청운이의 어머니라는 이야기, 당연히 같이 구해야 했다.
소싯적에 여러 협행은 했지만, 미인을 구해주고 감사를 받은 적은 없었기에 대체 어떤 기분일지도 느껴보고 싶었고 말이다.
청운이가 누구를 닮아 그리 번지르르하게 생겼는가 했더니 어머니를 닮은 것이 확실해 보이니까.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번 일로 일성은 못되어도, 소싯적 이루고 싶었던 한 가지 부족했던 소망인 미인을 구한다는 협행을 이제야 이룰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기는 해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지금은 너희를 곱게 보내주어도, 네놈들 중원 땅에 들어오면 이제 살아나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야. 하필 독왕이 애지중지하는 손녀를··· 부디 살아있기를 기도하거라.”
“도, 독왕?”
놈이 독왕이라는 말에 당황하고, 청운이의 어머니가 맞냐는 뜻으로 제갈가의 아이를 바라보자, 제갈가의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왠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어르신. 노공의 어머니! 노, 노공께서 잠시 기억을 잃으셨던 것일 뿐. 치, 친어머니 마, 맞습니다!”
왠지 약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제갈가의 아이가 대답했다.
***
셋 다 내놓으라는 약왕의 으름장.
시사혈귀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였다.
시사혈귀가 보기에는 약왕은 혈화마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이 집의 비리비리한 놈의 어머니라고 착각하는 모양.
분명 천마께서는 때가 이르기 전까지 경거망동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기에, 중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그분의 명을 어기는 것.
그렇기에 혈화마녀를 치우려다 팔왕까지 나타난 지금은 조금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혹시나 아까 뛰어내린 독왕의 손녀가 죽는다면, 중원 놈들이 어찌 반응할지는 알 수 없는 일.
놈들의 반응에 따라서 천마께 명을 어긴 일로 문책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천마께서 하시는 문책이란 죽음뿐.
더군다나 상대는 중원 팔왕 중 제일 성질 더럽다는 독왕.
무슨 짓을 벌일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위험할 수 있겠구나.’
이대로 혈화마녀를 천마신궁으로 끌고 가, 자신과 대립하는 장로들 앞에서 중원 남자와 놀아나고, 중원인을 의붓아들로 삼은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짓을 폭로해, 그녀와 같이 자신과 대립하는 장로들을 실각시키고 싶었지만, 만약에 지금 약왕에게 혈화마녀를 넘겨준다면?
만약에 아까 뛰어내린 독왕의 손녀가 죽었다면, 약왕이 혈화마녀를 구하려고 독왕의 손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독왕과 약왕의 사이가 험악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었다.
그리고 독왕의 손녀가 죽지 않더라도 최소한 혈화마녀와 친하게 지냈던 장로들을 중원 첩자로 몰아세우는 것도 가능할 일.
중원에 혼란을 가져오고, 거기에 신교 내부의 적들까지.
이것이야말로 중원 놈들이 좋아하는 적의 손일 빌어 적을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략이면서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
생각을 정리한 시사혈귀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약왕을 향해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이 집 아들이 친손자나 마찬가지라 말씀하셨는데, 그럼 이 집 아들의 어머니는 며느리쯤 되시겠구려?”
“당연하지 않겠느냐! 어서 셋을 이쪽으로 풀어주거라! 내 체면을 걸고 너희의 하찮은 목숨을 살려줄 것이니.”
“뭣들 하느냐 약왕의 며느리와 손주며느리를 풀어드려야지 크하하하!”
‘약왕의 며느리가 혈화마녀라···.’
약왕이 확답했으니 아주 재미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
마교 놈들에게 체면까지 걸고 살려준다 약속을 하는 것은 속이 쓰렸지만, 그래도 자신의 체면을 걸고 약속하자 제갈가의 아이와 청운이의 어머니 그리고 시비로 보이는 여인은 곧바로 약왕 쪽으로 풀려났다.
-탁탁탁
놈들에게 떠밀려 이쪽으로 달려오는 세 여인.
약왕은 혹시라도 마교 놈들이 이상한 짓을 벌일까 싶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제갈가의 아이를 먼저 풀어준 후.
재빠르게 미부인인 청운이 어머니의 손목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미녀를 구해준 감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 들려오는 옥구슬 같은 인사말.
“구명지은(救命至恩)에 감사드려요.”
‘크, 이것이 미인을 구한 남자가 느끼는 감상이로구나.’
감격에 젖은 채, 이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이야기하려는데, 이어지는 그녀의 인사말.
“혈화마녀 은소화,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어요.”
목소리를 역시나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믿을 수 없는 그녀의 신분.
“누, 누구?!”
믿을 수 없는 그녀의 신분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갈가의 아이를 바라봤지만, 제갈가의 아이는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이 구해준 여인의 신분이 귓가에 들려왔다.
“천마신교 삼 장로 혈화마녀 은소화예요.”
처음 미인을 구해준 협행의 기분은 정신이 아득하게 나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