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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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왕의 정신이 멍해진 틈을 타 들려오는 목소리. 

“자, 약왕! 이제 약조를 지키시오. 어서 우리를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시오! 크하하하!” 

“다, 닥쳐라, 이놈!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못 가느니라!” 

잘못하면 마교의 장로를 구한 것으로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태. 

청운이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마교 놈들을 보낼 수 없다는 두 여자. 

거기에 개새끼까지 짖어대니 정말로 정신이 없었지만, 체면까지 걸고 약조했으니 저놈들은 보내주어야 했다. 

“두, 둘 다 참으시오! 나 또한 저놈을 머리통에 장침을 꽂아주고 싶지만, 이미 나 약왕의 이름을 걸고 약조했으니 보내줄밖에. 나 약왕의 체면을 봐서···” 

둘을 말리면서 약왕은 간절히 바랐다. 

‘청운아 꼭 살아 있어다오.’ 

이 난리를 정리할 놈은 청운이 그놈 하나밖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간절히 생환을 바라던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된 일입니까?” 

*** 

내 시선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떠올리는 듯한 아내의 표정. 

아내의 내공이 이제는 돌아올 시간이니,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에 시동을 걸려는데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왕! 약조를 어길 참이요? 약왕의 체면이 이 정도일 줄이야!” 

체면 드립을 꺼내자 흙빛으로 물드는 약왕의 안색. 

약왕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이, 이제 청운이도 살아왔으니, 우리도 물러나자꾸나.” 

아무리 마교 놈들과 한 약속이라지만, 늘그막에 약속도 지키지 않는 노인네라는 불명예를 얻을 것을 우려하는 모양. 

약왕에게 물었다. 

“어르신, 어르신이 저놈들을 보내주시는 것과는 별개로, 제가 저놈에게 생사결을 청해 저놈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어르신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일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놀란 목소리로 외치는 약왕. 

“그야 그렇겠지만, 서, 설마 생사결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아버지를 잃고 핍박당한 네 마음은 알겠지만, 무공 한 자락 익히지 못한 몸으로 어찌하려 하느냐!” 

약왕의 외침을 뒤로하고 일단 어머니께 놈의 실력을 확인했다. 

“저놈의 실력이 뛰어납니까?” 

“약왕 어르신보다야 못하겠지만, 초절정에 이른 지 한참 되었으니, 약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어찌 그러나요?” 

‘그래? 그렇다면···’ 

“약왕 어르신 제 아내와 저놈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무공에 절대라는 말은 없지만, 네 아내는 내공의 크기만으로는 화경에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니, 네 아내가 지지는 않을 것이다. 뭐 내력을 담은 한 대를 제대로 맞추고 시작한다면, 반드시 이길 테지만. 설마 아내를 앞세워 생사결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오호라! 선빵필승?’ 

약왕의 대답에 계획의 확신이 들었고 사람들을 주변으로 불러 모으고 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할 생각인데, 어찌들 생각하십니까?” 

계획을 듣자 왠지 신이 난 영영이와 어머니. 

“노공, 어머니와 저는 그럼 그것만 하면 되나요?” 

“응, 영영이와 어머니는 그 두 마디만 해주면 돼.” 

“알겠어요.” 

“청운, 저도 알겠어요. 이런 계략이라니. 청운의 성장에 이 어미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연기자들이 준비되고, 아내가 조금 꺼림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공을 이제 쓸 수는 있지만, 조, 조금 비, 비겁하진 않을까요?” 

“절대 아니오!” 

이기는 것이 장땡인데, 아내는 조금 비겁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모양. 

그리고 약왕도 조금 우려를 표현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느냐? 저놈이 의심할 터인데? 된다면 재미는 있겠다 만.” 

“제가 자신 있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있다고? 그럼, 뭐 해보자꾸나. 저놈이 여기서 없어지는 것이 제일 좋긴 하지.” 

“예, 어르신.”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전생에서 전투 민족으로 이름 높은 그곳 출신의 영혼을 가진 몸. 

하루에도 수천, 수백만 번의 가상의 배틀이 벌어지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얼굴도 모르는 상대들과 아수라 지옥, 아비귀환(阿鼻叫喚) 같은 주댕이 파이팅을 거듭하는 민족의 후예인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혓바닥 싸움인 설전(舌戰)의 전장에서 단련된, 전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영혼을 가진 상태랄까? 

그러니 시사혈귀쯤 꼴 받게 해서 이 듀얼을 받게 하는 것은, 나에게는 아주 손쉬운 일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중원인들에게는 체면이라는 약점까지 존재하니. 꼴 받게 하기가 아주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일. 

‘자,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약왕이 체면까지 걸었으니 당연히 자신들을 보내주리라 생각했는지, 슬슬 갈 준비를 하려는 놈들의 앞으로 나서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시사혈귀! 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핍박했으며. 또 아내와 나의 목숨을 위협한 당신에게 생사결(生死決)을 신청하오!” 

“뭐라? 크하하하!” 

갑작스러운 나의 생사결 신청에 가소롭다는 듯 대소하는 시사혈귀. 

그는 입을 삐뚜름하게 하더니 나를 향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흥! 내가 그리 바보인 줄 아느냐!? 내 아까 네놈을 제압했을 때 네놈이 깨알만 한 내공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바. 비 무림인인 네놈과 싸울 수 없으니. 약왕께 결투를 대신 부탁하려고 하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 쓸데없는 소리 말고 길을 비키거라!” 

놈은 내가 무공을 모르는 것을 내세워 약왕에게 대신 싸워 달라고 부탁할 것으로 생각했는지 버럭 화를 내며 대답했다. 

그따위 얕은 수작에 안 넘어간다는 듯이. 

하지만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싸울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신과 싸울 것은 약왕이 아니시오. 아, 물론 어머니도 아니시지. 여기 내 아내가 대신 싸울 것이오.” 

“뭐라?!” 

내가 내 옆에 서 있던 아내의 양쪽 어깨를 잡아 앞으로 내세우자, 당황한 얼굴이 된 시사혈귀. 

아마도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지 아주 조심하는 눈치였다. 

분명 아까 자기가 아내인 제갈청을 잡아 던져 버렸으니, 이상함을 느끼는 것. 

자살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무공도 거의 익히지 못한 여자인 아내가 마교의 장로인 자신과 싸우겠다니 당연히 의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놈이 잠깐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내 쪽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개수작인지 모르지만 비키거라! 내 너희 따위와 어울려 줄 시간이 없느니라!” 

덩치가 산만 한 놈이 주먹도 아니고 조법(爪法)을 쓰는 것이 특이했는데, 아마도 상당히 조심스러운 성격인 것 같았다. 

단순해 쉽게 넘어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경계심 많고 예민한 놈. 

어쩔 수 없이 필살기를 시전 해보기로 했다. 

시대와 나이를 막론하고 가장 잘 통하는 전설적 멘트를 던져보기로 한 것. 

주둥이 파이팅의 바이블, 국밥 같은 멘트. 

「님아 쫄?」 

‘전생에는 어지간하면, 애나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는데···’ 

아주 높은 확률로 통하는 격장지계(激將之計)의 바이블을 곧바로 시전 했다. 

“에이··· 설마 겁이 나신 것은 아니겠지요? 마교의 오 장로쯤이나 되시는 분이···.” 

“뭐, 뭐라?!” 

“아? 겁? 푸훗···” 

“어머, 같은 장로로 조금 부끄럽네요.” 

‘님아 쫄?’은 시대와 나이를 불문하고 그 누구도 참을 수 없는 것. 

거기에 사전에 상의했던 대로 영영이와 어머니가 거들기까지 하니 곧바로 거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뭐, 뭐라! 저 어린놈이!” 

어린놈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곧바로 반격기 시전. 

“허허, 겁이 많으셔서 이리 새파랗게 어린놈에게까지 무시당하시니 좋겠소이다···” 

내 말에 시뻘게진 얼굴로 피라도 토할 것같이 흥분한 놈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좋다! 후회하지 말거라! 네 부인을 잃고 후회하는 꼴을 보고야 말 것이다! 그래! 내 이 싸움에 어울려 줄 것이니라! 그리고 네 목숨도 걸 거라! 내가 이겨 네 집안의 씨를 아주 말려버릴 것이니라!” 

-우드득 

나중에 나이 먹어 잇몸 어쩌려고 어금니까지 씹어대며 흥분을 참지 못하고 대답하는 시사혈귀. 

하지만 뭐 이제 오늘 이후에 놈이 먹을 음식은 제삿밥뿐이니 잇몸은 필요 없을 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소이다! 그러길래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무시당하기 전에 진작 말씀하셨으면 좋지 않았소이까? 마교의 장로씩이나 되어서는 왜 그렇게 겁이 많으셔서는···” 

내가 다시 한번 비아냥거리자 시사혈귀가 분노를 참지 못하는 표정으로 일갈했다. 

“닥치거라! 계집 어서 나서거라! 네년을 저놈 앞에서 잡아 뜯고 내 직접 저놈의 염통을 씹을 것이니라!” 

시사혈귀가 참지 못하겠는지 분노에 파들파들 떨며 몸에서 살기를 흘려대는 통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나야 했다. 

‘어이쿠. 살기 흉흉하구나.’ 

저리 흥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왜냐하면 전생에서도 그럴듯한 놈보다는 하찮은 놈이 싸움을 걸어오며 내가 했던 말을 내뱉으면 화를 더욱 참을 수 없었으니까. 

키보드배틀 중에 같은 말이라도 나이 많은 사람보다 초등학생에게 욕을 먹으면 더 빡 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무공도 배운 적 없는 범인(凡人)인 내게 조롱까지 당했으니 머리끝까지 열이 뻗쳤으리라. 

‘완전히 걸려들었나?’ 

조금 저항했지만, 시사혈귀는 결국 전생에 키보드워리어라는 명예로운 칭호까지 가지고 있던 나에게 낚여 올라왔다. 

“대주 무슨 함정일지 모릅니다. 진정하시고···” 

“뭐라!” 

-우드득 

그리고 자신을 걱정하는 부하의 목을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꺾어버렸다. 

화가 날대로나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그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혹 누가 돕거나 나서거나 비겁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약왕께서 보증하겠소?!” 

이리 흥분한 상황에서도 여러모로 챙기는 외모는 곰인데 여우 같은 놈. 

우리의 계획대로라면, 마침 약왕이 나설 타이밍이었는데, 자신에게 때마침 물어오자 약왕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대답했다. 

“물론! 어떠한 비겁한 행위나 도움도 없을 것을, 나 약왕이 보증하지! 다만!” 

“다만? 또 무슨 수작 이시오!” 

약왕이 말미에 다만이라는 말을 외치자, 놈이 인상을 쓰며 외쳤다. 

혹시나 수작을 부리려는 건 아닌가, 짜증을 내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약왕의 대답. 

“저 아이는 무림 말학 정도의 위치. 그리고 자네는 마교의 오 장로. 배분 차이가 심하니 삼 초식(招式) 양보 정도는 당연히 해야겠지?” 

약왕의 말에 놈의 얼굴이 괴기스럽게 일그러지고 크게 대소하며 대답했다. 

“크하하하하! 또 무슨 수작인가 싶었더니. 이 천마신교의 장로가 상당히 우습게 보였나 보구려! 무슨 신공절학을 익혔는지 모르겠지만, 삼 초식으로 이 천마신교의 장로를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크하하하하!” 

그렇게 한참 쳐 웃던 놈이 약왕에게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삼 초식! 무림 말학에게 당연히 양보해드려야지 않겠소. 이 천마신교의 오 장로 시사혈귀가 직접 가르침을 내리는 것이니 말이오. 뭐 가르침의 삯은 저년과 저놈의 목숨이겠지만. 좋소이다!” 

그렇게 아내와 놈의 생사결이 결정되었다. 

내 처소 정면 벼랑을 등진 공터. 

시사혈귀의 부하인 마교의 무사들과 우리 일행이 서로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벼랑 너머 해 떠오르는 바다를 배경으로 생사결이 시작되었다. 

서로 한 발자국씩 떨어진 위치에서 시작된 생사결. 

약왕이 둘을 향해 외쳤다. 

“자! 바다 위로 태양이 완전히 떠 오르면 시작하시오!” 

수평선에 아슬아슬 걸려있던 태양이 완벽히 떠오르자 시사혈귀가 아내를 향해 소리쳤다. 

“오거라! 크하하하!” 

놈의 외침에 재빨리 뒤로 물러나는 아내. 

“크하하하하! 기세등등하더니 시작하자마자 겁이라도 난 것이냐?” 

아내가 물러나자, 맨손이니 당연히 맨손을 쓰는 적수공권(赤手空拳)을 쓴다고 생각했는지, 놈이 이죽거리며 비웃었다. 

아내가 맨손으로 무기가 없으니 주먹이나 손바닥을 사용하는 권이나 장을 주특기로 하거나 다리인 각법을 사용한다면, 당연히 팔다리를 사용할 수 있는 거리 안으로 뛰어들어 초식을 펼쳐야 하는데, 뒤로 물러나니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전생에는 그런 말이 있다. 

웅크리는 것은 도움닫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놈의 비웃음 속에 레일건 첫발이 발사되었다. 

-푸슝! 

갑자기 들려온 기묘한 소리. 

그리고 놈의 산발한 것 같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곧바로 놈의 볼에서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이, 무, 무슨! 괴, 괴물 같은 내공이!” 

원래 내공이라는 것은, 공격과 방어를 위해 몸에 단지 두르는 데도 많은 내력이 사용되는 법. 

그것을 강기형태로 만든다? 거기에 허공으로 날린다? 

어지간한 내력으로는 시도도 못 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날리는 것을 넘어 살상시킬 정도의 위력으로 낸다는 것은, 어지간함을 넘어선 엄청난 내력이 아니고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기에 시사혈귀가 저리 기겁하는 것. 

그러나 마교의 장로답게 곧바로 아내의 행동에서 단점을 파악한 놈은 행복한 미래를 예견하는 모양이었다. 

“네, 네년의 내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법. 몸동작으로 보아 다른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이 초식 후에 잡아 뜯어주마!” 

그러나 저놈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아내가 지금 단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폈을 뿐이라는 것. 

저것은 대충 영점을 잡고 거리를 확인하려는 예광탄. 

그리고 초식은 공격 기술의 연속동작. 

아내가 내 쪽을 바라보고 한번 울상을 지었다. 

아마도 아까 너무 비겁한 건 아닌가 물었었는데,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 

그리고 귀엽게도 입을 삐쭉 내밀며 놈을 향해 초식의 이름을 외쳤다. 

“사, 삼천격(三千擊)!” 

“뭐, 뭐라?!” 

아내가 초식의 이름을 외치자 기겁하는 놈. 

그리고 아내의 손에서 발사된 레일건의 탄알들이 놈의 몸으로 사정없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퓨퓨슝! 퓨슈웅! 

일 초식은 이제 시작이었다. 

‘총으로 쏘면, 한 탄창이 일 초식이야. 연결 동작이니깐. 근데 내공이 남아돌아서 탄창이 좀 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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