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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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미국에 그런 말이 있다던가?
「신이 인간을 만들었고, 총이 인간을 평등하게 했다.」
평등제조기 아내가 시사혈귀를 평등하게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쩌어억
“끄어억!”
첫발은 도망치지 못하게 무릎.
놈의 한쪽 무릎의 가운데가 손가락 몇 마디만큼 쑥 들어가며, 놈이 그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푸슝! 피유웅!
그리고 연속으로 들려오는 레일건이 날아가는 소리와 함께 따라오는 찰진 타격음.
-쩌억! 뻐어억!
북해빙궁의 내력이라 그런지 중간중간 푸른빛을 내며 예광탄처럼 쏘아지는 탄환도 있었는데, 구경하는 처지에서는 장관이었다.
“끄허어, 자, 잠시···”
놈의 비명이 난사되는 레일건의 발사음과 타격음 사이로 가느다랗게 흘러나왔지만, 난사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곧 녀석은 주먹질 좀 한다고 깝치다가 참교육 당하는 양아치처럼, 몸으로 날아드는 탄알의 피해를 줄이고자 두 팔로 최대한 몸을 가리고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더불어 놈의 뒤에서 자신들의 대장인 시사혈귀의 대결을 구경하던 놈들에게도 재앙이 찾아들었다.
도탄 된 탄알들이 놈들에게 쏟아지기 시작한 것.
시사혈귀는 그래도 고강한 편이기에 형체는 유지하는 모양이지만, 하급 무사들에게는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한발 한발이 기관 포급은 되는지 형체도 없이 갈려 나가기 시작하는 하급 무사들.
놈들이 어떻게든 살려고 몸을 엎드리고, 총탄이 쏟아지지 않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끄아아아!”
“피, 피해라!”
“커허억!”
그리고 옆을 보니 며느리가 펼치는 엄청난 광경에 어머니께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계셨다.
“이, 이건 대체··· 약왕 어른께서 화경이라 말씀하셔서 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요···”
“고, 공자님 부인께서···”
“설마 탄지신통을 대성한 것이었더냐?!”
그렇게 월영과 어머니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넋이 나가버리고, 약왕도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할 때.
한 천여 발쯤 날렸을까?
몸을 웅크리고 미동도 없는 놈의 모습에 사격이 중지되었다.
그리고 사격이 멈췄다는 사실에 놈이 너덜너덜해진 팔을 떨구고 머리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 살려···”
그러나 이것은 놈도 합의한 생사결.
놈의 목숨 구걸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가 냉기가 흘러나오는 팔을 털며,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런웨이를 걷는 모델 같은 워킹.
내 아내지만 뻑이 가버린다고 생각할 때.
아내가 놈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사혈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찬바람 냉랭한 표정으로 가녀린 그녀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쩔어···’
들어 올려진 그녀의 오른손은 엄지로 중지를 잡아 구부린 모습이었는데, 아내는 접은 중지를 놈의 이마에 천천히 가져다 대고는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딱밤을 치듯 놈의 이마를 그대로 후려쳤다.
-쩌어억!
“끄허어업!”
전생에 딱밤 내기를 했다면 여럿 죽여버렸을 아내의 딱밤.
머리를 후려쳤는데 어찌 저런 소리가 나는지 대단하다고 생각할 때, 놈의 몸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털썩
그리고 아내의 앵두 같은 입술이 벌어지며,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이, 일초지적(一招之敵)도 아, 안되는 놈이 가, 감히.”
그리고는 잘했냐는 듯 부끄럽고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대사는 내가 알려주지 않았는데, 설마 애드립인가?’
부창부수(夫唱婦隨), 청출어람(靑出於藍).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적절한 아내의 애드립에 나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감격에 젖어 아내를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브라보 아니, 최고요!”
‘일초지적 안 되는 거 맞긴 하지.’
***
시사혈귀 놈이 사라지고 아내의 레일건 난사에서 살아남은 놈의 병력과 약왕에게 제압되었던 무사들은 곧바로 어머니께 제압되었다.
혹시라도 허튼짓을 못 하게 섭혼술이 사용되었기에 이제 그들은 시사혈귀가 아닌 어머니의 충실한 부하로 변모했다.
“자, 제 눈을 바라보세요. 행복해져요.”
‘저, 저건 설마?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질 수 있고?’
전생의 무엇인가가 생각나는 어머니의 집단 섭혼술.
그렇게 어머니의 부하가 된 놈들을 시켜 류가장 내부를 정리하고, 죽은 놈들을 놈들이 타고 왔던 배에 싣자 어느새 점심때.
어제저녁부터 시작된 일련의 소동이 이제야 간신히 끝이 난 것이었다.
‘무슨 본가 방문 한번 하는 게 이렇게 힘이 드냐?’
이젠 어머니의 무사가 된 놈들이 류가장 내부를 정리하는 일로 바쁠 때.
그사이 나는 약왕에게 잠시 치료를 받았다.
약왕의 말로는 어디 부러지거나 한 곳은 없다고 했지만, 몇 주는 요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엄청난 귀향 난이도에 진절머리를 치며. 바닷물에 빠져 소금기 가득한 몸을 씻어내고 의복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을 씻은 전각에서 걸어 나와 삐걱대는 몸을 끌고 천천히 처소로 향했다.
온몸이 두드려맞은 느낌이라 빨리 몸을 누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이젠 정말 좀 쉬어야겠구나.”
그렇게 정말 한동안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내 처소에 도착했을 때.
월영이 처소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쉬고자 하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어머니가 나를 찾고 계신다고 알려왔다.
“공자님, 은소화님께서 부르십니다. 괜찮으시면 어젯밤 이야기 나누셨던 정자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어머니께서?”
“예.”
‘무슨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
씻고 나오자마자 어머니께서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에, 욱신거리는 몸을 끌고 어머니가 기다리신다는 정자로 향해야 했다.
간절히 눕고 싶었지만, 어머니와 밀린 이야기도 있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월영을 따라 밤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정자로 향하니, 아내와 영영이도 몸을 씻고 의복을 갈아입고 나왔는지, 깨끗해진 모습으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저의 목숨을 구해주시고, 저의 노공이 되셨습니다.”
“어머!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그나저나 우리 청운이가 요리라니.”
“어머니, 노공의 요리는 정말 맛이 있어요. 한번 드셔보시면 반드시 마음에 드실걸요?”
월영이 준비했는지 난리가 났던 집에서 차까지 준비해 마시고 있는 셋.
셋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이게 행복한 삶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도 본가가 생겨서 이제 아내의 몸값만 치르면 데릴사위 그만두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연에게 저번 일의 삯으로 가게 하나 구해달라 해. 복주에 가게를 내고, 본가에서 출퇴근하면 어떨까?’
아주 괜찮은 생각.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그렇게 정자 쪽으로 다가가자 셋이 나를 발견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왔다.
“청운 요리사가 되었다니 정말인가요?”
“어머니, 그냥 요리사도 아니고. 무림에 명성을 떨치는 요리사. 그 별호도 대단한 ‘식룡’이에요.”
“시, 식룡이요?! 용의 별호까지!”
그렇게 그간의 일이라든지 요리에 대해 몇 가지 담소를 나누고 나자, 어머니께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제가 할 이야기가 있어요. 청운.”
“예, 말씀하시지요. 어머니.”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에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자, 그녀의 입에서 믿기 힘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청운. 저는 오늘 밤에 떠나려고 해요.”
이곳에서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영영이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꿨었는데, 갑자기 떠나시겠다는 어머니.
‘아차 여, 영영이는 아니지.’
아무튼 갑자기 떠나시겠다는 어머니.
당황해 뇌에 혼선이 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놀란 목소리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 떠나신다니요? 갑자기 어딜? 혹시 제게 부담이 될 것 같아 그러시는 것입니까? 혹시라도 시사혈귀와 같은 파벌인 장로들 때문이라면···.”
“아니요. 그것 때문은 아니고 십만대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 어째서?”
내게 부담이 될까 봐 다른 곳으로 떠나시려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 천마신교가 있는 십만대산(十萬大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저는 제가 모시는 분께 씻을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상태. 오늘 밤새 류가장이 시끄러웠으니 금방 소문이 날 것이고, 제가 이곳에 남아있으면, 그분께 폐가 됩니다. 그리고 시사혈귀의 사체와 보고도 드려야 해서요.”
‘천마와 어머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남아있으면 약왕 때문에 전향 신고도 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마교의 장로가 전향해왔다는 정치적 선동에도 이용될 테니, 천마에게 폐가 된다는 것인가?’
그리고 아마도 시사혈귀가 죽었으니, 어머니가 직접 본사에 방문에 보고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 그럼 언제 되돌아오시는 것입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대신 월영을 통해서 서찰을 보낼 테니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잠깐 갔다가 대충 이쪽 소문이 가라앉고 조용해지면 돌아오시나 싶었지만. 하지만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는 어머니.
잠깐도 아니고 이 중원에서 가족이라는 것이 이제 생겼는데 생기자 마사 사라질 상황.
“그, 그런.”
“어머니, 저희가 잘 모실 테니, 그냥 저희와 사시면 안 되나요?”
“네, 어머니 그냥 저희와 같이 살아요.”
“둘이 있어 제가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는 것이에요. 청운을 잘 부탁해요.”
아내와 영영이도 졸라댔지만, 어머니의 결심은 확고한 모양이었다.
하긴 마교의 장로쯤 되시는 분이니 자기의 처우를 혼자 결정하실 수는 없을 터.
이대로 이렇게 어머니를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꼭 가셔야 한다면, 내가 가진 재주로 마지막을 화려하게 환송할밖에.
“그, 그러면 떠나시는 길, 소자가 마지막으로 요리를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청운이요?”
“예.”
어머니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미소 지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셨다.
“그래요. 알겠어요.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어요.”
이미 저녁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
송나라 군함이나 감시를 피해 몰래 움직여야 하는 배인지라 밤이 어두워져서야 출발한다고 하셨으니, 요리를 빨리 시작해야 했다.
‘무슨 요리를 하지?’
당장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살펴보기 위해서 부엌으로 향했지만, 간밤에 시사혈귀의 습격으로 시작된 싸움이 부엌을 덮쳤던지 부엌에 남은 재료가 별로 없었다.
내 객잔 첫 영업 때와 같은 익숙한 모습의 부엌.
외부부터 치우느라 아직 부엌은 손도 못 댄 느낌이었다.
“이런 낭패가.”
부엌의 모습에 당황한 내 귓가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제가 밖에 민가에 나가 음식 재료를 사 와 볼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나, 민가에 좋은 재료가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긴 바닷가니 그래도 내륙보다 음식 사정은 좋겠지만, 평민들이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을 리는 만무한 일.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민가에 요리에 쓸만한 재료가 없을 것이 분명하오,”
“그도 그렇군요.”
“그러면 가가, 아니면 제가 경공으로 복주로 가서 비연에게 좋은 재료를 좀 빌려달라 해볼까요?”
비연에게는 좋은 재료가 있긴 있을 테지만, 그럴듯한 요리라는 것은, 모두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고 재료를 받아와 요리를 시작한다면 분명 어머니가 떠날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
“비연에게 받아오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때를 맞추지 못할 것이 분명하구나.”
“그럼 아까 동굴에 가서 생선이라도 좀 잡을까요?”
‘가만? 비연? 동굴? 그래!’
“그래! 동굴로 가보자꾸나!”
영영이의 말에 빠르게 만들 수 있으면서, 어머니와의 이별에 가장 어울리는 요리가 떠올랐기에, 아내와 영영이를 데리고 급하게 동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