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자(孔子) (141/344)

공자(孔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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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애앵! 흐애앵!” 

“괘, 괜찮아요. 울지 말렴. 아가야.” 

아내의 품 안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 

아기를 달래 본 적 없는 아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다. 

그사이 아기가 날아온 쪽을 바라보자 우리보다 훨씬 큰 배의 뱃머리가 우리 머리 위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뿌연 안개에 위쪽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안개에 서로 보이지 않아 배끼리 해상교통사고가 난 것인가?’ 

-콰탕 

잠깐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선실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영영이가 밖으로 튀어나와 우리 쪽으로 달려오며 외쳤다. 

“가가! 청아! 배에 물이 쏟아져 들어와요!” 

“뭐?!” 

“뭐라고요?” 

영영이의 손을 바라보니 우리의 급과 보따리가 들린 상태. 

다급한 상황에서 짐까지 챙겨나온 영영이. 

뒤로는 덕구가 영영이의 다리 사이로 쏜살같이 빠져나와 우리 쪽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선원들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이다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다들 배 밖으로!” 

“다들 피하시오!” 

“살려주세요!” 

갑자기 벌어지는 아비규환 사람들이 소리를 치며 선실에서 쏟아져 나오고, 갑판 위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런 제기랄 아무튼 물 때문에 되는 일이 없구나!’ 

물가에만 가면 목숨의 위협이 벌어지는 상황. 

이거 정말 굿이라도 한판 벌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이미 전생에 한 번 해난사고를 당했던 터라, 잘못했다가는 인생 2회차 또 똑같은 사고를 당할까 싶어 급하게 둘을 향해 외쳤다. 

“일단 저쪽 배로 넘어갑시다!” 

“알겠어요. 노공!” 

“가가, 얼른 가요. 물이 엄청나게 들어와요!” 

-뿌드드득 끼이익 

영영이의 말과 함께 나무 비틀리는 소리가 나며 기울기 시작하는 배. 

“서두르자꾸나!” 

“예 노공!”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다급해지는 마음. 

일단 우리와 부딪힌 배가 우리 배 보다는 훨씬 더 커 보이기도 하고, 더 이상 우리 배가 기울기 전에 무작정 반대편 배로 오르기로 했다. 

“덕구야 따라와!” 

“월!” 

그렇게 아내와 영영이가 나를 양쪽에서 붙들고 경공을 펼쳐, 삐죽 튀어나온 건너편 배의 뱃머리로 뛰어올랐다. 

그렇게 사람 셋과 개 한 마리가 안개를 헤치고 뱃머리로 뛰어오르자 웬 젊은 커플이 망연한 얼굴로 뱃머리에 매달려 있다가, 우리를 보고 허겁지겁 달려와 아내인 제갈청의 품에서 아기를 뺏듯 안아 들었다. 

“아가! 우, 우리 아가! 괘, 괜찮느냐!” 

“괜찮습니다. 날아오는 것을 제가 받아 다치거나 한 곳은 없을 겁니다. 부인.” 

놀란 목소리로 아기를 살피는 여자에게 아내가 걱정하지 말라 설명하자, 남자와 여자가 연신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는 나중에 하시고 일단 사람들부터 구해야겠습니다.” 

하지만 인사는 나중. 

반대편 배에 아직 남은 사람이 많기에 일단 감사 인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곧바로 이쪽 배의 선원들과 함께 우리가 타고 온 배의 선원과 승객들을 이쪽 배로 끌어 올렸다. 

“자, 어서 사람들이 강으로 다 빠져버리겠소.” 

“이쪽 배로 오르시오!” 

그렇게 한참 사람들을 끌어올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선원을 끌어올리자마자 우리가 타고 온 배가 굉음을 내며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루루루룩··· 꼬로록. 

조금만 늦었어도 몇 명은 배와 함께 빨려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일. 

가슴을 쓸어내리자 영영이의 안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 큰일이 날 뻔했어요. 가가.” 

“그러게나 말이다. 이게 웬 봉변인지.” 

추워 죽을뻔했는데, 사람을 구하느라 몸을 움직여서 그런지 어느새 땀 범벅이 된 몸. 

이제 땀이 슬슬 증발하는지 살짝 한기가 살짝 몰려올 때, 한 남자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공모가 아들을 구해주신 은공께 혹시 존성대명(尊姓大名)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의 물음에 추위도 잊고 가슴속에 뽕이 차올랐다. 

‘크, 존성대명! 내가 이 단어를 좋은 일을 하고 직접 들을 줄이야.’ 

무협지에서 사람들을 구해주다 보면 한 번쯤 들을 수 있다는 익숙한 멘트 존성대명. 

보통 이 멘트가 여자에게서 나오면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날 가져요!’, 남자에게서 나오면 ‘제가 가진 것은 은자뿐이랍니다.’라는 짭짤한 보상을 약속한다는 보증수표 같은 말. 

중원 판 보물 고블린이 등장했다는 신호인 것이었다. 

뭐 아내가 구하긴 했지만, 유교 문화권에서는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 

아내가 구한 것은 곧 내가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멋지게 이마에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호북 제갈세가의 류청운이라 합니다.” 

복건 복주 류가장의 류청운이라고 해도 되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역시나 이름이 중요한 법, 한미한 우리 가문보다는 네임벨류가 높은 제갈가의 이름을 대자 남자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제갈가! 그, 그렇다면 동경의 제갈각님과는?” 

‘응? 숙부님?’ 

갑자기 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처의 숙부인 제갈각 어른의 이름. 

약간의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아, 제갈각님을 아시는군요? 제 처의 숙부님 되십니다.” 

“오오, 이런 인연이!” 

“혹시 제 처의 숙부님을 아십니까?” 

왠지 처의 숙부님인 제갈각님을 아는 것으로 보이는 상대. 

그러고 보니 남자의 뒤쪽에 관병도 몇 명이 보이고, 왠지 옷도 일반적인 옷도 아니고 관복(官服) 비슷한 것을 입은 모습에 되묻자, 남자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 이런 은인께 제 이름부터 밝혀야 했거늘, 경황이 없어.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공부(孔府) 공가(孔家)의 공겸이라 합니다.” 

“공부의 공가라면 설마?” 

“예, 부끄럽지만 맞습니다.” 

어머니의 섭혼술 부작용으로 기억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공부에 대해서 생각하자 곧바로 그게 무엇인지가 떠올랐다. 

공부(孔府) 공가(孔家). 

한(韓)나라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후대의 왕국들도 유교를 가장 중요한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이자, 가장 떡상한 가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공자의 가문인 공가. 

살아생전에는 공자는 가난한 학자였지만,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한나라는 공자의 사후에 그의 후예를 포성후(褒成侯)에 봉해 제후인 왕(王)으로 삼을 정도 우대해주었는데, 송대에 이르러서는 연성공(衍聖公)이라는 세습 작위를 허락할 정도. 

연성공이란 공자 가문의 장자가 곧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를 다스리는 세습 작위를 가진 일종의 영주가 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고로 눈앞의 인물은 현재 중원 유일무이한 영주 가문의 일원이라는 이야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면 연성공과는?” 

“아, 부끄럽지만 제가 이번 대의 연성공입니다. 집안의 어른들이 일찍 세상을 뜨시는 바람에···.” 

‘가문 원이 아니고 연성공 본인이라고?!’ 

이십 대 중반 정도 되는 눈앞의 인물이 곧 중원 최대 종교의 교주이며, 정신적 지주이자 로열블러드이면서 영주라는 뜻. 

잽싸게 태세를 전환하며 공손히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예?! 대인. 제가 감히 몰라 뵙고, 결례를···” 

유교의 국가에서 유교의 정신적 지주 가문에게 건방졌다는 소문이 돌면 사회매장 확정이니,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 

그렇게 내가 공손히 눈앞의 남자에게 예를 취하자 그가 난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머리는 아들의 목숨을 구해주신 분께 이 공모가 숙여야 하거늘 과한 예는 거두시지요. 청운 공자.” 

유교의 최고봉답게 예의가 바른 공자의 자손. 

나도 예의 상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제가 감히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내 대답은 들은 공겸이 다가와 직접 내 어깨를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자자, 어서 고개를 드시지요. 그나저나 동경으로 가시는 것 같은데, 배가 저리되어··· 이 배는 곧 제녕(濟寧)에 도착하는데, 바쁘지 않으시면 제가 곡부로 공자를 초대해도 되겠습니까? 제 아들을 구해주신 은인을 이리 보낼 수는 없어서 말입니다. 더군다나 초겨울 급하게 여행을 시작하신 모양인데, 하다못해 은인께 옷이라도 한 벌 지어드리고 싶습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감사를 받고자 한 일이 아닌지라···” 

현재 내 꽌시는 부족한 아이인 약왕의 손주 장진만이 남은 상태. 

당가나 제갈가는 이제 꽌시는 아니니 새로운 꽌시 수집이 필요하긴 했다. 

그런 이유로 엉겁결에 아들도 구해준 공겸을 평소라면 꽌시 수집 목록에 넣었겠지만, 공자 가문은 급이 달랐다. 

한나라부터 앞으로 이어질 원, 명, 청나라까지. 

공자의 가문은 중원의 모든 시대 왕국 왕들의 극진한 대우를 받는 저 아득히 높은 가문. 

중원 지역구 탑 마피아 가문의 데릴사위로는 호형호제하기는 힘든 가문이었다. 

아무리 당가나 제갈가가 잘나가도 그건 어디까지나 주먹세계에서나 통하는 일. 

제갈가가 벼슬을 하고 있다지만 공가는 다른 차원의 위치인 것. 

‘되면 좋지만 일단 지금은 아내의 일도 있으니. 적당히 좋은 인상만 남기고 빠지는 것이 좋겠구만.’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머니, 제녕에 내려 다른 배를 잡아타고 다시 동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내와 영영이를 바라보자, 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공부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노공.” 

“예, 가가. 잠깐 들렀다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 얘들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간다는 것인가?’ 

나야 특별히 꽌시 까지는 못가더라도 공부에 가는 것은 요리사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자의 가문은 유교로도 이름이 높지만, 요리로도 이름이 높은 가문이기 때문이었다. 

유교로 명망 높은 가문이 요리에도 이름이 높은 것은 좀 재미난 이유 때문인데. 

과거를 공부하고 유교 경전을 익히는 서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과거급제를 기원하기 위해 공부에 있는 공자의 사당에 들러 제를 올리는 것이 이 시대 서생들의 위시리스트. 

거기에 유명한 문인(文人)이나 고관대작들도 한 번쯤은 꼭 찾는 곳이니 곡부에 있는 공부에는 항상 손님이 넘쳐나는데, 이들을 대접하기 위해 요리를 만들다 보니 공자의 가문은 다양한 고유 요리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전생 중원 요리 중 한 갈래인 산동(山東) 요리의 한줄기를 담당하게 된 것. 

산동 요리에서도 또 별도로 취급되는 것이 공부의 요리인 것이었다. 

그러니 나야 산동 요리 그것도 공부 요리를 직접 체험할 수 있으니 요리사로서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아내와 영영이에게는 좀 의미가 달랐다. 

종교라는 것은 언제나 피와 분쟁을 가져오는 것. 

유럽의 기독교 역사가 피로 얼룩진 역사인 것처럼. 

유교로 인해 동아시아도 피의 얼룩진 역사를 겪게 되는데, 피해를 보는 것은 동아시아의 여자라고 할까? 

유교가 한국에까지 영향을 끼쳐, 1000년 후 명절 수많은 여성을 피폐하게 만들며, 제사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을 아내나 영영이는 알까? 

달리 말하면 공자의 가문은 여자들의 적이며 명절 증후군의 원흉의 가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곳을 뭐 볼 게 있다고 가자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선뜻 대답하지 않자 둘은 다시금 조르듯 이야기했다. 

“곡부에 공자님의 논어(論語)를 공부하는 서생들이 많다는데, 한번 구경해보고 싶어요.”

“저도 곡부의 사당을 한번 꼭 보고 싶었어요.” 

“부인께서도 곡부가 꼭 보고 싶은 모양인데 제 청을 들어주시지요. 자왈(子曰) 하이보덕(何以報德). 이직보원(以直報怨)하고 이덕보덕(以德報德)이니라. 공자께서 은혜를 끼친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은혜에 보답하겠는가? 지극히 공경하고 사심이 없는 마음으로 원한을 갚고, 은혜로써 은혜에 보답하라 하셨으니. 후손이 그분의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시지요.” 

‘아, 이게 공자 왈, 맹자 왈 그것인가 보구나.’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설명. 

아내와 영영이도 좋다고 하고 겨울옷도 한 벌 지어준다니, 한번 들렀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에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감사히.” 

“은인을 모실 수 있어 제가 더 영광이지요. 하하” 

공부의 요리라? 이시기에는 공부에 어떤 요리가 나올지 무척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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