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채(孔府菜)
.
연성공전(延聖公殿).
제녕(濟寧)에서 하선해 마차를 타고 한나절 정도 이동하자 저 멀리 우리 앞에 나타난 거대한 대문.
대문의 마빡에 큼지막하게 박혀있는 글자와 함께 뒤로 으리으리한 수십 채의 가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대단해요. 노공.”
“가가, 우리 집 보다 훨씬 커요.”
제갈가나 사천당문도 작은 것이 아닌데, 공부에는 비길 것이 아니었다.
공자의 후손들인 공 씨들이 모여 사는 큰 마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중원의 공부는 그러니까 이슬람교로 치면 메카, 유대교로 치면 예루살렘.
역시 중원의 국교이며 최고 교단의 성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시대를 거치면서 명, 청 시대에는 황제의 궁궐보다 더 컸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지금도 만만치는 않았다.
‘역시 돈 버는 데는 종교가 제일이라니까?’
그렇게 그 대단한 모습에 다 같이 감동할 때, 종교단체 건물을 접하니 떠나신 어머니가 살짝 떠올랐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천마신교라는 천마를 신으로 떠받드는 일종의 종교인이니까 말이다.
‘잘 계실까? 천마에게 문책당해서 죽거나 그러시는 건 아니겠지?’
천마신교에 여자 장로는 엄마 하나뿐이고, 월영은 아니라 했지만, 중원인들 사이에서는 엄마가 천마의 첩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니, 상당히 최측근인 모양이라 설마 큰일이야 있겠냐고 생각하면서도.
떠나가실 때 슬픈 얼굴이었다는 이야기에 아무래도 가슴 한구석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
‘잠깐 그러고 보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리 떠나는 어머니의 얼굴이 슬펐어도 내 마음이 왜 이렇게 불편한가 싶었더니, 이거 우리 엄마는 중원의 국교인 유교도 아니고, 중원에서 마교라고 부르는 이단 사이비 종교에 빠져 집을 나간 상태나 마찬가지.
천마신교가 왜 이단이냐 할 수도 있지만, 살아있는 천마를 신으로 모시니 이단 사이비가 맞긴 맞았다.
천마가 좀 센 인간이지 신은 아니니까.
전생에도 이단 사이비에 빠져 가출하는 가족들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아마 그 기억 때문에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 죽기 전엔 못 고친다는데···. 어머니!’
그렇게 잠시 어머니 걱정을 이어갈 때.
연성공 공겸의 부끄럽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끄럽군요. 공자께서는 청빈(淸貧)한 삶을 말씀하셨는데, 후손들이 이런 곳에서 사는 걸 꾸짖지는 않으실까 걱정입니다.”
며칠 이동하며 공자의 후손이라는 공겸을 살펴본 결과.
원래 집안이 잘살거나 선조들의 혜택으로 노력 없는 뭔가를 누리는 종자들은 보통 개차반이가 마련인데, 저분은 정말 인격체였다.
말투부터 몸가짐, 그리고 마음 까지.
사람이 아니고, 그냥 한 권의 도덕책.
그러나 단점이라면 그런 그의 말투 마음 몸가짐이 사람을 질리게 한다는 것.
대체 얼마나 태어나서부터 유교를 머리에 때려 박았으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고 생각될 정도.
사람이 여유도 있고 좀 그래야 하는데, 너무 빡빡하신 분.
중원 판 로봇 같은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할까?
‘사람이 너무 바른생활이야.’
그의 부끄럽다는 대답에 냉큼 대답해주었다.
“사람이 궁핍하게 사는 것이 청빈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 깨끗하게 하는 것이 청빈이 아니겠습니까? 공겸 대인께서는 이미 깨끗한 마음으로 청빈하게 살고 계시니, 공자님께서도 당연히 칭찬하실 겁니다.”
“저런, 저를 그리 높이 평가해주시니 몸들 바를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혹시 청운 공자도 학문을 하는 것입니까?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제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저런, 일개 요리사에게 너무 과한 칭찬이십니다.”
“아닙니다. 포정해우라고······”
뭐 학문은 아니고, 중원 기초 자원으로 살아남기 위해 증가한 생존 압축 혀 근육일 뿐이지만, 어쨌든 좋은 인상을 심어주며 그렇게 착착 차근차근 꽌시 스텍을 쌓아가고 있을 때.
마차가 공부 앞에 가까워져 오자, 급을 맨 서생들이 입구에 아주 바글바글한 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노공, 웬 사람이 이리 많죠?”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이죠?”
아내와 영영이가 놀란 목소리로 묻자, 공겸의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들 과거(科擧)시험을 준비하는 서생들입니다. 사당에 제를 올리고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서 몰려든 것이지요. 개중에는 논어를 배우러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겨울의 초입이라 사람이 적은 것이에요.”
“사람이 이 이렇게나 많은데요? 이게 적은 거라고요?”
안 돼도 입구에 있는 사람만 이백여 명은 되어 보였는데 이게 적은 것이라니.
그리고 얘들이 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니 갑자기 뭔가 데자뷰가 느껴졌다.
‘아,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뭔가 익숙한 느낌이기에 생각해보니, 공부의 정면의 광경은 전생의 노량진의 같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니 애들도 결국 전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애들.
공시생이 많은 전생 노량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동 인구가 이렇게 많다니 장사로 개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원 판, 컵밥 한번 팔아?’
그렇게 어찌 나중에 친해지면 객잔 분점 한번 비벼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차에 내려 공부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관청인 공부(孔俯),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공묘(孔廟), 그리고 공자와 그의 후손들의 묘가 있는 공림(孔林)이 그것이었다.
유교의 총본산답게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역시나 공자의 위패를 모신 공묘.
여기오면 일단 공묘로 가서 참배를 드리는 게 필수 코스라고?
공묘로 들어서자 이미 많은 참배객이 참배를 올리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사당 안쪽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절을 하며 참배를 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공자 가문의 현 가주인 공겸의 손님.
그의 안내를 받아 아내들과 사당 안으로 들어서자 쏟아지는 시선 속에 섞인 시기, 질투 그리고 수군거리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저자는 누구요?]
[글쎄 연성공께서 직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걸 보면, 어느 고관대작 집 망나니겠지.]
[학문에 뜻도 없는 놈들이 여긴 대체 왜 오는 것인지.]
[에이 더러운 세상! 난 이번에 떨어지면 벌써 십 년인데···]
[그런데 꼬락서니가··· 두 아가씨 모시는 하인 놈인가?]
[내 참, 공묘에 여자를 들이다니 말세구료! 말세!]
수군거리며 들려오는 말을 들어보니 역시 중원 판 노량진이며 유교의 총본산답달까?
개중 흑화한 서생 놈들이 수군거리는 말에 영영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한 번 받아?’하는 기운을 흘리기에 영영이의 시선을 황급히 얼굴로 가린 후,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고갯짓해주었다.
앞에서 공겸이 향을 올릴 수 있게 우리를 불렀기 때문.
“이쪽으로 오시지요.”
공겸의 안내에 위패 앞으로 걸어가 나 센터, 우 청, 좌 영영 순으로 자리를 잡아 향을 올리고 공손히 참배를 드렸다.
원래는 입신양명(立身揚名) 합격을 기원하는 곳인데, 나야 뭐 그냥 예의 상 드린 것.
그렇게 참배를 끝나고 나가려는데 들려오는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아 너는 그런데 무슨 소원 빌었어?”
“저는 그냥 저희 셋 다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언니는요?”
“나는 나중에 가가 닮은 잘생기고 똘똘한 아들 하나 낳게 해달라구··· 헤헤”
‘여기가 그런 소원을 비는 곳은 아닐 것인데···’
이제 실력으로 안 되니 종교의 힘을 빌리려는 영영이.
그런데 이거 생각해보니 영영이의 자식이면 결국 나중에 내 자식이라는 말.
‘여긴 성형도 없는데 이거 안 되겠구나!’
영영이는 이제부터 시간 날 때마다 만두 만드는 것을 특훈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공자의 위패를 모신 공묘에서 참배를 마치고 방에 가서 쉬다가 저녁을 먹는가 싶었더니, 우리가 안내된 곳은 목욕탕이었다.
강남에서 배를 타고 오는 동안 며칠간 씻지를 못해 몸이 찌뿌둥했는데, 센스 있게 우리를 목욕탕으로 안내한 공겸.
‘강북에서 목욕이라니, 기대하지 않았는데 개꿀이구나’
한국 사람들 모두가 중원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
중원인들은 잘 씻지 않고 냄새가 난다.
무려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인식인데, 이건 장강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좀 차이가 난다.
‘더 더러운 놈’들과 비교적 ‘덜 더러운 놈’들로.
따듯한 강남은 땀이 많이 나고 물이 풍부하기에 비교적 자주인 며칠에 한 번 몸을 씻지만, 강북 쪽 중원인들은 잘 씻지를 않는 것.
물론 부자들은 비교적 잘 씻지만, 일반인들은 기온도 차며 강은 흙탕물이 흐르는 황하강뿐이고, 물을 데우는데 들어가는 땔감과 긷는데 들어가는 품까지 많이 드니, 이런 다양한 원인 들로 잘 씻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가문인 공부에서는 손님이라 그런지 우리에게 목욕을 권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연성공. 그렇지 않아도 목욕이 아주 하고 싶었는데.”
내가 고맙다는 목소리로 말하자 공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목욕을 좋아하신다니 잘됐습니다. 그러면 몸을 정결하게 하고, 공묘에 예를 다해 다시 한번 제례를 드립시다.”
“예? 아까 분명 한번 했던 것으로?”
갑자기 아까 오자마자 들렀던, 공묘에 다시 한번 참배를 하자는 공겸.
내 당황한 목소리에 공겸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까 도착해서 한 것은 도착해 인사차 한 것이고, 이제 몸을 정결하게 하고 정식으로 졔례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뿔싸··· 여기 중원 최대 종교인 유교 탈레반의 중심지였지···’
전생에 추석이나 설날 때도 제사 지내기 싫어 배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고 누워있던 나였는데 맙소사.
‘설마 하루에 몇 번씩 제사를 지내는 건 아니겠지?’
좀 불안감이 솟았지만, 결국 우리는 목욕재계를 하고 공묘에 가서 다시 한번 참배해야 했다.
물론 흑화 서생들의 시기 어린 시선과 질투를 받으면서.
[대체 저놈은 뭔데 정식으로 제례까지, 저런 호사를 누린단 말이오!]
[부럽구려. 나도 부모님이 고관대작이었으면.]
[우리는 혼례도 못 올리는데, 저놈은 여자를 둘이나 끼고]
“꺼흡!”
참배를 드리는 도중 갑자기 들려오는 남자의 비명.
다들 눈을 부라리며 소리는 낸 서생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쥐구멍에서 들어가고 싶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 갑자기 뭐에 찔려서···]
[어허! 학문을 하는 자가 이리 참을성이 없어서야! 참지 못하고 제례 중에 소란을 피우다니. 그래해서 학문을 하겠소!]
[뭐요! 이자가 그런 악담을!]
결국 투덕거리는 서생들은 관병에게 끌려 나가고 말았고, 그 뒤로 영영이가 혀를 날름 내밀며 말했다.
[시(屎)! 베에!]
시라는 것은 중원 말로 ‘똥’이라는 말.
아마도 영영이가 아는 제일 나쁜 말인 것 같았다.
[영영아 그런 나쁜 말 하면 안 돼요.]
[예, 가가···]
***
그렇게 약간은 소란스러운 두 번째 참배를 끝내고 안내된 처소에서 쉬고 있을 때, 시비 하나가 찾아와 우리를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곳으로 안내했다.
“공부의 요리라 기대가 되는구나.”
시비를 따라가며 혼잣말하자 내 말에 의아함을 가지고 묻는 영영이와 아내.
“여기 요리가 맛있어요?”
“저도 공부가 공자님 말고 요리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부의 요리란.
이 시기에 공부를 찾은 고관대작이나 왕들이나 먹는 요리.
일반인들에게 소문이 날 수가 없는 것.
하지만 내가 살던 전생에는 공부의 요리를 공부채(孔府菜)라 부르며 특별하게 취급했고, 한편으로는 유교 요리라는 별도 카테고리로 취급할 정도.
전생 중국에서는 유교 요리인 공부채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도 했으니, 기대할만한 것이었다.
“아마 상상하는 것 이상일 것이요.”
내 대답에 아내와 영영이가 기대가 된다는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