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
.
하인의 손에 들려 잠시 식사가 멈추었던 식탁 위로 고화람궐어가 올랐다.
표면의 밀가루 껍질이 완벽히 노릇하게 구워져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처럼 배를 부풀리고 있는 쏘가리구이.
노릇한 밀가루 껍질 여기저기 뚫어둔 구멍으로 뜨거운 김이 민가의 굴뚝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불에 구워왔으면 이렇게 김이 솟아오르지 않았겠지만, 아마 도자기 그릇이 달구어져 계속 뜨거운 온도를 유지하니 안에서 계속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이, 이건···.”
고화람궐어를 보자 놀란 공겸의 목소리.
그리고 그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시례은행이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꿀이 입혀지고 설탕으로 코팅된 은행구이.
반짝거리는 표면과 은목서꽃의 진한 향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공겸은 두 가지 요리를 보고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반복하다가, 나를 부엌으로 안내했던 이 집의 집사정도로 보인 늙은 하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뭔가 대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그러자 늙은 하인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희의 요리법보다 더욱 나은 방법으로.”
아마 오븐구이 고화람궐어가 인상 깊었던 모양.
그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도 공겸에게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권했다.
“요리는 겉뿐만 아니라 맛도 중요하니 맛까지 확실히 확인해 보시지요.”
원래 중원인들은 의심이 많은 법.
혹시 모를 의구심을 완전히 날리기 위해 그에게 요리를 권하자 그가 허겁지겁 젓가락을 들어 먼저 고화람궐어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바스락
그가 젓가락을 가져다 대자 부풀어 올랐던 밀가루 반죽이 깨지며, 크게 솟아오르는 뜨거운 김.
-화악
날이 살짝 추워지고 있어서 식사하는 장소에 이 시대의 난로인 화거(火柜)를 놓았지만, 김은 뚜렷하게 식탁 위를 흘러넘치며 점령했다.
콧속으로 밀려드는 찐 쏘가리의 향과 죽순, 버섯, 돼지고기, 닭고기까지 섞인 담백한 향.
“오오, 이렇게 향이 진하게 뿜어져 나오게 굽다니!”
그는 얼른 젓가락을 가져가 쏘가리의 담백한 살점을 입안으로 가져가더니,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하며 말했다.
“우리 가문의 찜이 확실하구려. 아니, 막삼 그대의 말대로 어쩌면 훨씬 더 대단할지도···.”
그리고는 곧바로 시례은행을 한 알 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것 또한 완벽하구려.”
짧은 평가였지만, 그는 내 실력을 완벽히 인정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그가 입을 열어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다.
“류공자 혹시 이 은행구이의 이름을 만든다면 무엇이 좋을 것 같소이까? 시례당 앞에 자란 은행나무에서 딴 은행으로 얼마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요리인지라 이름이 없는데, 혹시 요리사로서 괜찮은 이름이 떠오르시지는 않소?”
‘아! 그렇구나!’
그의 질문에 내가 약간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원래 대로라면 은행구이는 시간이 흐르며 공가 가문의 사람들에게 시례은행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인데, 아직 이름이 없는 시례은행.
곧 달리 말하면 아직 시례은행이라는 요리는 그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상태인 것이었다.
시례은행은 시례은행이라는 이름이 붙어야만 비로소 공가의 정신을 상징하는 요리가 되는 것인데, 아직 이름이 없으니 공가를 상징하는 요리가 아닌, 그냥 공가에서 만들어 먹는 다른 요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마도 공겸의 말대로 이것이 만들어지는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그런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실력행사는 충분했지만, 원래 목적에서는 약간 벗어난 상태.
‘의미가 없으면 의미를 부여해야겠지?’
이런 개꿀이 기회를 차버릴 수 있나?
갑자기 터진 작명(作名) 이벤트에 곧바로 돌입해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내가 시례은행에 직접 이름을 지어준다면, 역사의 뒤편에 살짝 한 줄 정도 나의 이름이 추가될 것이며, 내 본래 목적도 이룰 수 있기 때문.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공자께서 그분의 장자에게 시경의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줄 모르고, 예의를 익히지 않으면 인생사를 모른다고 말씀하셨기에, 그 후손들인 공가의 자손들이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살기 위해 시례당을 지었다고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놀란 눈으로 대답하는 공겸.
내 입에서 자신의 가문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렇네, 자네 말이 맞네. 자네는 정말 알면 알수록 놀라운 사람이구만.”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미소를 지어주다가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해주기로 했다.
“그런 이유로 공자의 자손들은 자신들의 가문을 시례세가(詩禮世家)라 자처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도 맞습니까?”
“그렇네,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를 시례세가라 불러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옛 어른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은 자손들의 도리가 아니겠나.”
나의 질문이 무르익고 이제 그를 감동의 쓰나미에 익사시킬 때.
“그러면 요리의 이름을 이리 부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시례은행(詩禮銀行).”
그는 약간 의외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시례은행? 은행요리에 그런 이름을 붙여줄 어떤 이유가 있는가?”
아마 고작 은행구이 따위에 자신들의 자부심이 담긴 시례라는 뜻을 왜 담아야 하는지 하는 의문인 모양이었다.
훨씬 대단한 요리들이 공가에는 많이 있으니까.
그러나 이것은 쓰나미가 오기 전 썰물이 오는 상태라고나 할까?
쓰나미 제 일파 시전.
“먼저 시례당 앞에서 자란 은행나무에서 딴 은행으로 만든 요리이기에 그 첫 번째 이유가 됩니다.”
이것은 그가 바라는 대답은 아닐 것이지만, 일단 일차원적인 의미.
조금 실망의 눈빛으로 변하려 하는 그에게 곧바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쓰나미 일파는 원래 좀 그래, 이 다음부터가 진짜지.’
이어지는 두 번째 파도.
“그리고 두 번째 이유로는 은행나무는 수백 년에서 천 년도 넘게 살아가는 나무이니. 공자께서 남기신 말씀이 그리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오, 그래. 그런 의미라면···.”
그는 두 번째 의미만으로도 만족하는 모양이었지만, 전생 우리 민족은 무조건 뭘 해도 삼세번.
‘내기를 해도 세 번이요, 씨름을 해도 세 번이요. 혼례를 올려도 세 번 아니, 이건 아니구나.’
나는 잠시 끼어든 쓸데없는 망상을 털어버리고, 그를 향해 마지막 이유를 이야기했다.
쓰나미 제 삼파.
“그리고 세 번째로 이유로는 시례은행이 은목서의 꽃으로 향기를 냈으니, 은목서꽃의 향기처럼 온 중원에 그분의 말씀이 널리 퍼지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입니다.”
내 말에 조용해진 식당 안.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에 슬쩍 주변을 돌아보자, 아까 나를 안내했던 늙은 하인이 감동의 눈물을 떨구고.
공겸이 혼잣말하듯 시례은행의 이름을 되뇌었다.
“시례은행. 시례은행이라···”
어서 나를 이 감동에서 구원해달라는 듯한 그의 단말마.
그렇게 몇 번 은행구이에 부여된 이름을 되뇐 공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두 손으로 공손하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고맙네. 내 아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우리의 요리에 그분께서 남기신 말씀을 받들 수 있게 그런 대단한 이름을 지어주다니! 이 공겸 참으로 감동했네!”
나는 그의 외침에 마주 예를 취하며 겸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보잘것없는 요리사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정도면 꽌시 스택 맥스 충분하지?’
그의 반응과 분위기에 이정도의 감동 이벤트면, 그 누구라도 크게 감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그냥 꽌시도 아니고 꽌시 중의 꽌시 중원 최고의 꽌꽌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어린 마음을 품고 있을 때.
그가 늙은 하인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삼, 그런데 내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것이 있네.”
“예? 어르신 그게 무엇인지?”
“우리가 가문에 큰 도둑을 들였음이야.”
‘이런 젠장! 그걸 그렇게 해석하나? 완두는 그냥 넘어갔잖냐!’
공가의 요리란 그들의 자부심이며 최고의 비밀.
내가 한두 번 먹은 것으로 요리를 완벽히 만들어 낸 것이 레시피 도둑질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어, 어쩌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할 때 이어지는 공겸의 질문.
“도둑질한 죄인은 공부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던가? 막삼.”
“예, 우선 귀 뒤에 구멍을 뚫어 쇠고리를 매달고 채찍으로 친 후, 이마와 양 볼에 낙인을 찍어 옥에 가두지요.”
‘뭘 뚫고? 뭘 찍어!?’
“그러면 류 공자는 어찌해야겠는가?”
“당연히 법의 지엄함을 알게 해주려면, 귀 뒤에 구멍을 뚫어 쇠고리를 매달고 채찍으로 매우 친 후, 이마와 양볼에 낙인을 찍어 옥에 가둬야겠지요?”
그리고는 나를 보고 늙은이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
포 형님을 만날 때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때는 아내인 제갈청의 명옥 패라도 있었지, 지금은 이 상황에 먹히는 아이템이 하나도 없는 상황.
어쩌겠나?
일단 납작 엎드려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거 솜씨를 뽐내려다가 감히 공가에 결례를!”
‘아들도 구해줬는데, 왜 이런 전개냐! 종교인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이제 여기서 살아나가면, 유교는 상종도 안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일단 사정없이 빌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자 공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런데 말이지 막삼. 내가 아들의 목숨을 구해준 이를 잡아 가둔다면 세인들이 나를 뭐라 말하겠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류공자의 죄를 없게 만들 방법은 없나?”
“공가의 요리를 만드는 비법은 공씨가문의 사람들에게 허락된 일. 사위로라도 맞으시면 모르겠지만, 따님이 없으시니···. 아! 꼭 가문의 일원이 아니더라도 의형제 정도면 요리비법을 알려준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르신.”
“자네 생각도 그런가? 나도 그런데? 역시 자네는 우리 가문의 충신이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둘의 목소리에 뇌가 따라가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공겸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축축해진 등줄기.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그가 술잔 하나와 술병을 가지고 내 쪽으로 걸어와서는, 넋이 나간 내 손에 술잔을 쥐여준 후, 술을 따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생, 어서 한잔 마시고 이 형에게도 한잔 따라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내일 환영연을 잘 좀 부탁하네.”
평소에 농담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이 농담하면 어떤 기분인지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저세상 유머 아니 저세상으로 보낼 유머.
멍하게 술잔이 따라지는 잔을 손에 들고 있자 공겸의 의문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 농이 재미가 없었나?”
이젠 정신을 차려야 할 때, 생존 압축 혓바닥이 형님의 ‘농담’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말을 뱉어냈다.
“아하하하, 하하, 혀, 형님. 노, 농이 아주 재, 재미있었습니다.”
“그래? 하하하하. 역시 내 재미있을 줄 알았네. 자자 어서 한잔 쭉 들이키게.”
형님의 첫 농담은 그 재미에 오줌을 지려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형, 너무 재미있어서 지릴뻔했다니깐?’
***
오줌 지릴 것 같은 의형제 결의식이 끝나고, 그것이 끝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시작.
다음날 형님은 유교의 식대로 아주 격식 있게 의형제 결의식을 치러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환영연 요리를 준비하는 나를 따라다니며 말씀하시는 형님.
“그저 술잔을 나눈 것 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형님.”
“어허, 그 무슨 소리인가! 내 도착할 손님들 앞에서 자네를 당당히 의형제로 맞을 것이네!”
‘뭔 신부도 아니고···.’
강호에서는 술 한잔 나누는 것 만으로도 약식으로 하니,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집안이 집안인지라 격식 있는 제사는 피해 갈 수 없었다.
‘아차. 여기 유교의 총본산이었지···.’
그렇게 합참의장과 국무총리를 모신 환영연 자리가 끝나고, 우리들의 의형제 결의식 제사도 치러야 했다.
아주 격식 있게 치러진 의형제 결의식.
이 시대의 국방부 장관과 국무총리의 축복을 받으며 의형제 결의식을 치르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식사 자리.
국방부 장관과 총리 그리고 형님과의 식사였다.
“아, 제갈가 가주의 사위였구먼. 제갈각의 조카사위였어.”
“예! 옛! 그, 그렇습니닷!”
“하하하하, 이 친구 긴장 풀게. 연성공의 의형제라는 사람이 어찌 이리 긴장하누.”
너무 높은 분들이라 절로 이등병이 되어버리는 나.
그렇게 불편한 식사를 이어가는데 높은 두 분이 재미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어쩐 행차십니까?”
형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추밀사.
“아, 누가 이쪽으로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가 동경으로 데려가려고 말입니다.”
“어떤 분이 오시길래 대체 두 분께서?”
형님이 대체 누굴 맞으러 왔기에 둘이 동시에 움직이냐는 듯 놀란 목소리로 되묻자, 추밀사가 뭔가 믿기 힘든 이야기를 꺼냈다.
“고려에서 왕족이 밀항을 해와서 말입니다.”
“예? 왕족이 밀항을요?”
고려 왕족이 밀항을 해왔다는 이야기는 내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아니, 선조님! 대체 여기가 뭐가 좋다고···. 근데 누구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