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대(海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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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요리 몇 가지를 만들어 안으로 들이고, 제갈각 숙부님과 소동파가 식사하는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소동파.
“이 요리는 뭔가? 새콤달콤 한 것이 아주 맛있구만.”
-바스락
바삭바삭하게 조리된 탕수육을 씹으며 물어오는 소동파.
역시나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양반이었다.
‘그러니까 좀 조정에 눈치도 좀 보고 기름칠도 좀 하고 그랬으면, 다른 고관대작들처럼 양고기를 자주 즐겼을 것인데···.’
소동파는 벼슬 기간에 귀향으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은지라, 형편 되는 싼 돼지고기만 사 먹어서 그런지 돼지고기만 좋아하게 되어버린 돼지고기 바보.
탕수육은 돼지고기 바보인 그의 분노한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한 요리인 모양이었다.
“아, 탕수육(糖水肉)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다마다. 돼지고기를 이렇게 먹는 것도 아주 맛있구만. 뭐 돼지고기는 어찌 먹어도 맛있는 고기이긴 하지. 아! 그리고 자네가 만들어 주었던 동파육을 집에서 만들어보았는데 말이지······ 어찌 요리해도 맛있다니, 돼지고기는 역시나 맛있는 고기 아니겠나?”
“그런데 어르신 아까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그는 내가 알려준 동파육 레시피대로 동파육을 만들어 먹은 이야기와 돼지고기에 대한 찬사를 한참 늘어놓다가, 내 질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청한 도움에 관해 설명했다.
“아아, 내 이런 정신을 보았나. 그래, 내 자네의 도움이 좀 필요하네.”
“도움에도 종류가 많은데, 한낱 요리사인 제게 어떤?”
분명 나에게 도움이라면 요리에 관한 것일텐데 감이 별로 오지 않았기에 되물었다.
“아, 자네 혹시 지금 고려 놈. 아차, 자네는 고려인들을 이리 부르는 걸 싫어하지. 아무튼 고려의 왕자가 변경에 와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아, 예 들어보았습니다.”
사마광에게 직접 들은 내용인지라 고개를 끄덕이자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튼 내가 그자, 아니 고려의 왕자를 그 먼 판교진에까지 가서 변경으로 데리고 왔는데 말이야.”
“예, 사마광 어르신을 통해 고려의 왕자를 맞으러 가셨다고는 들었습니다.”
“아니, 자네가 그분을 어찌!?”
내 입에서 재상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화들짝 놀라는 소동파.
요 며칠 제갈각 숙부님의 말을 들어보니, 송나라 조정은 신법파와 구법파라는 것으로 나뉘어 치열한 정쟁을 이어가는 중이라는 것.
그런 구법파의 수장이 사마광, 그 행동대장이 소동파라는 느낌으로 말씀하셨는데, 내 입에서 자기 보스의 이름이 흘러나오니 조금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것은 나중에 설명해드릴 테니, 일단 그 도움이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시지요.”
“그렇지. 무척 궁금하긴 한데, 일단 내 이야기부터 하는 게 맞겠지.”
내 말에 그가 탕수육 한 점을 입에 밀어 넣고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튼 고려의 왕자를 데리고 오는 길에, 관가께서 은혜롭게도 고려의 왕자에게 음식을 내리셨다네. 해주에 있을 때 내시성의 황영석을 통해서, 또 남경에서는 나를 통해서 말이야. 그런데 관가의 은혜도 모르고 그자가 음식을 통 먹지를 못하지 뭔가! 그래서 내 그 사실을 보고했는데, 벌을 내려도 부족할 판에!”
-탕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식탁을 내리친 후, 젓가락을 쥐고 손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다시 음식을 내릴 테니 그, 그자가 먹을만한 음식을 알아 오라 하시니. 끄르릅!”
‘아! 의천 그분께서 송나라 음식에 적응을 아직 못하고 계시는 것 같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동파의 소망과는 다르게 송의 조정에서는 의천을 국빈으로 맞아 상당한 대우를 하는 모양인데, 의천이 아직 음식에 적응하지 못해 황제가 내린 음식을 잘 먹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소동파는 황제가 내린 음식을 감히 맛있게 먹지 못한 고려의 왕자를 디스하려고 보고를 올린 모양이지만, 송의 조정에서는 두 번이나 보낸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그가 먹을 만한 음식을 찾아 다시 보내라 했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소동파가 빡칠만 한가?’
소동파 입장에서는 자기가 싫어하는 고려, 그것도 고려 왕자의 입맛까지 돌봐야 하니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뭐 공무원이 그냥 상사도 아니고 위에서 황제가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그냥 명령도 아니고 황제의 어명인데.
개꿀잼 상황에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아, 그럼 고려의 왕자가 먹을만한 음식을 알려드리면 되는 겁니까?. 큽! 쿨럭쿨럭··· 이거 왠 기침이···.”
웃음을 참아내며 묻자 소동파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 아닐세. 고려의 왕자가 먹을만한 음식을 알아 오라는 이유가 있네. 며칠 후에 계성원(啓聖院)에서 중서사인(中書舍人) 전협이 주최하는 고려의 왕자를 위한 환영연이 열린다네, 관가께서 직접 행차하실지도 모르는데, 고려의 왕자가 그 자리에서는 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였으면 해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개성원에서 직접 고려의 왕자를 위한 요리를 만들어 줄 수 있겠나?”
“제가 환영연 음식을 전부 말입니까?”
“아니, 자네는 고려의 왕자와 그 제자가 먹을 몇 가지 요리만 준비해주면 되네.”
‘아, 황제가 행차할지도 모르는 환영연 자리에서 음식을 깨작거리면 모양이 좀 그러니까, 의천이 허겁지겁 맛있게 먹을만한 그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만들라는 것이고만?’
이번 퀘스트는 난이도가 좀 높았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고려인을 조상으로 둔 대한민국 남자의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선조들이 뭘 먹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는 법.
더군다나 그것이 일천 년 전이라면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거기에 의천은 승려.
승려들에게는 지랄 같은 오신채(五辛菜) 금기가 존재했다.
오신채란 구채(韭菜 부추), 총(蔥 대파), 대산(大蒜 마늘), 산산(山蒜 달래), 흥거(興渠 아위)를 뜻하는데, 승려들은 저 다섯까지 재료를 먹으면 안 되는 것.
요리하는 사람인지라 당연히 오신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고, 원래 불교에는 없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데, 다행스럽게 이시대의 양파는 오신채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대파와 마늘이 문제였다.
특히나 마늘.
‘대체 한국 음식을 만드는데 마늘이 빠지면 뭘 만들어 먹는단 말인가?’
우리의 선조인 웅녀님도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셨다는데, 그 좋은 마늘을 빼고 만드는 한국 식이라니.
살짝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건 그날 뺄까?’
이제 변경에 올라와 며칠 쉬었으니, 장인에게 연통도 넣어야 하고, 거지새끼들에게 길도 물어봐야 했기에 보상도 없는 퀘스트는 패스하는 게 맞았다.
소동파가 딱히 나에게 뭐 큰 보상을 주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어르신 제가 그런데···”
대충 둘러대고 밥이나 먹여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핑곗거리를 찾는데, 그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아차! 이런 내 정신을. 그것을 먼저 보여주어야 했거늘. 번칠! 번칠! 어디 있는가!?”
아마 자신을 모시고 온 하인을 부르는 모양인데. 그가 밖을 향해 외치자 하인 하나가 곧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찾으셨습니까? 어르신.”
“아까 오는 길에 구한 그것을 좀 가지고 와보게.”
왠지 잔뜩 인상을 쓰고 무엇인가를 가져오라는 소동파.
그의 지시에 하인이 잠시 사라졌다가, 종이로 몇 번이나 감싼 사람 머리통만 한 무엇인가를 하나 가지고 안으로 들어섰다.
뭔가를 꽁꽁 밀봉한 모양이었는데, 소동파는 그것을 보더니 질색하는 표정을 하며 그것을 나에게 건낼 것을 지시했다.
“그걸 류공자에게 주게. 나에게서는 좀 멀리 떨어져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질색하는 걸 나에게 건네라는 소동파.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양손으로 받자 묵직하게 느껴지는 무게.
식탁 위에 그것을 올리고 소동파에게 물었다.
“어르신 대체 이것이 무엇입니까?”
“아이고, 괜히 가져오라 했는가? 고려취(高麗臭)가 벌써 나는 것 같구만!”
‘고려취? 고려취라면 고려의 냄새라는 뜻인데? 이거 고려의 물건인가?’
대답도 하지 않고 질색하는 소동파.
그는 코를 잡고는 그제야 나에게 대답했다.
“자네 혹시 고려장(高麗醬)이라고 아는가?”
“예? 뭐, 뭐요!?”
“고려장 말이네.”
비슷한 발음에 화들짝 놀랐지만, 아마도 고려에서 만든 장(醬)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시대 고려의 장이라면 한가지.
“서, 설마!”
-촤아악! 부욱!
종이로 감싼 것을 거칠게 잡아 뜯었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자네 그걸 설마 열어보려는가?!”
내 행동에 화들짝 놀라는 소동파의 목소리.
그러나 지금 그의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것의 실체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뿐.
‘설마, 설마! 설마!’
그렇게 종이를 거칠게 잡아 뜯자 나온 것은 사람 머리통만 한 항아리였고.
항아리의 뚜껑을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열자 풍기는 진한 냄새.
“어이쿠! 고려취가!”
소동파의 비명과 함께 항아리의 안에서 나온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된장!
‘된장이라니!’
중화요리에 대해서 배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웍, 칼, 불이 조리에 필요한 도구에 관한 내용이라면, 요리 그 자체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장(醬).
중화요리에서 장은 요리의 풍미와 간을 하는데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재료이기에 아주 특별하게 취급된다.
그렇기에 요리 학교에서도 사용법이나 만드는 법부터 그 유래까지 자세히 배운다.
‘그러니까 내용이···.’
교육과정에 배운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뭐든지 다 자기들 것이라 우기던 교수들도 장에서만큼은 인정하는 부분을 말이다.
중원에서 장이 등장하는 문헌은 주나라 때의 관제에 대해 기록한 주례.
여기서 중원의 전통 장이 등장하는데, 새, 짐승, 물고기를 말려 술에 담그고 누룩을 넣어 만든다고 나온다.
그러니 중원의 전통 장은 육장(肉醬)으로 그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데, 다만 콩으로 만든 장에서는 한 수 접어주는 사실이 있다.
‘동이의 장 담그는 솜씨가 훌륭하다.’
그 어디도 아니고 290년 간행된 진수의 정사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서 고구려인의 장 담그는 솜씨가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책에 나올 정도면 그 훨씬 전부터 장을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하기에 육장은 중국에서, 콩으로 만든 장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민족의 콩으로 만든 장에 대한 기록이 얼마나 되었는지 한국 자료도 살펴본 적이 있는데, 고려시대에는 절에서 메주인 시(豉) 만들어 전매하기도 했다고 확인하긴 했으나 이렇게 그 실물을 직접 대하니 절로 감회가 새로웠다.
손가락을 가져가 손끝으로 장을 찍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것의 맛을 확인했다.
‘아··· 짜구나···’
일천 년 전 장맛은 혀가 저릿하게 매우 짰다.
‘뭘 기대한 거냐? 나란 놈. 장이 짜지 그럼 다냐?’
감격에서 빠져나오자 들려오는 소동파의 목소리.
“고려취가 역하지도 않은가?”
생각해보니 소동파가 아까부터 언급한 고려취란 된장 냄새인 모양.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나가면 된장 냄새난다고 외국인들이 뭐라 한다는데, 아마도 소동파가 말하는 것도 그것인 것 같았다.
‘이런 된장에 진심인 민족 같으니. 천 년 전부터 된장 냄새를 풍기고 다녔다니!’
내가 중식 전문 요리사이긴 했지만, 이 퀘스트는 반드시 받아야 했다.
된장국이나 찌개는 나도 먹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하면 모국 음식이 간절히 생각나는 것이니까.
지금, 이 순간 만큼 이 된장은 아주 괜찮은 보상.
“어르신.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힘 써보기로 하죠.”
“오오! 그래 주겠나? 환영연은 닷새 후니, 그때까지 준비되면 사람을 통해 연통을 좀 보내주게.”
내 대답에 소동파가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
-후루룩
“후아, 맛있구나.”
소동파가 다녀간 다음 날 아침.
지방이 적당한 소고기를 얇게 잘라 끓인 된장찌개는 정말 꿀맛이었다.
차돌 된장찌개랄까?
“냄새는 좀 나는데, 맛은 좋은 것 같아요. 가가.”
“맞아요. 노공.”
아내와 영영이도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이 시대에 호박은 없으니, 두부와 버섯, 양파와 파만으로 끓였을 뿐이지만 천년 전 장이라 그런지 장맛이 깊어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만 끓여 대접해도 밥 한 그릇 뚝딱 이겠지만, 문제는 의천은 승려.
파도, 소고기도 마늘도 넣을 수가 없었다.
된장에 홀려 퀘스트를 수락하고 말았지만, 보상에 비해 역시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다.
‘고려시대에도 된장으로 국은 끓여 먹었을 테니, 된장국은 나쁘지 않은데 육수가 문제네.’
된장찌개는 무엇보다 육수가 중요한 법.
하지만 고기나 해산물로 육수를 낼 수 없으면, 남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해대(海帶)와 향고(香菇).
다시마와 표고버섯.
육수를 내는 데는 이 두 가지만 한 것이 없는 것.
전생 사찰 음식에도 국을 끓일 때 육수를 내기 위해 사용하던 것이니, 이 두 가지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표고버섯이야 송의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지만, 송에 유통되는 다시마는 한국에서 나는 다시마와는 전혀 다른 품종.
깊은 맛이 부족한 것이었다.
송의 다시마는 맛의 깊이가 약하고 그렇다고 많이 넣으면 국물 맛이 텁텁해지니 곤란했는데, 그러니 의천에게 한반도 유전자의 맛을 선사하려면 고려산 다시마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게 그날 오후부터 시장을 뒤지고 제갈각 숙부님까지 동원해서 고려 다시마인 해대를 찾았지만, 찼을 수 없었고, 그렇게 흘러간 하루.
‘된장에 덜컥 수락했다가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닌가?’
돌파구는 없고 다가오는 날짜.
명색이 황제 주선 잔치인데, 의천의 반응이 별로면 큰일 나는 건 아닌지 조금씩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른 재료를 찾아야 하나 부엌에서 한참을 고민할 때, 소동파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확인하러 왔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 나에게 진작 이야기를 할 것이지!”
중원 미식가인 소동파라 그런지 아마도 있는 곳을 아는 모양.
“오, 알고 계십니까? 그럼 어디에?”
“당연히 알지! 내 사마광 어르신 댁에서 몇 번 먹어봤으니 정확히 알고 있네. 이러지 말고 내일 나와 같이 가세나!”
“예? 어딜?”
“어디긴 어딘가 사마광 어르신 댁이지!”
‘사마광의 집으로 가자고? 역적의 가문에 발을 들여야 한단 말인가?’
공명 어른을 생각한다면 뭔가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