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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세가 (148/344)

사마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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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이쪽이네.” 

“예, 어르신.” 

정오가 가까워져 올 시간, 소동파를 따라 사마광의 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 사마광의 집에 간다고 등청(登廳)도 짼 것 같은 소동파가 나를 사마광의 집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저래도 되나?’ 

송 시대 관원들의 군기는 무척 센 편이라서, 기루에 가서 기녀를 끼고 술도 못 마시고. 

지각이나 째는 것도, 꽤 벌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당당하게 하루를 재껴 버린 소동파. 

귀향 좀 다녀왔다고 이제 막 나가려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어르신 이렇게 등청을 안 하셔도 괜찮습니까?” 

그렇게 걱정을 담아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신난다는 목소리 그리고 걱정 없다는 표정. 

“관가께서 명하신 일을 하느라 밖에서 뭘 찾아봐야 한다고 하고 나왔으니, 괜찮네. 뭐 이럴 때도 있어야지. 내 얼마 전에 판교진에도 다녀왔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아니 그런가? 사람이 그 먼 곳까지 고려의 왕자를 데려오느라 고생했는데, 하루 정도야 뭐.” 

“아, 그, 그러시군요?” 

‘아, 출근 도장 찍고 외근?’ 

어찌 배짱 좋게 등청을 안 하나 싶었더니, 출근 도장 찍고 바로 외근 신청을 한 모양. 

전생이나 현생이나 공무원들의 땡땡이는 다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소동파를 따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앞에 사람들이 번잡스럽게 들락거리는 집이 하나 나타났는데, 소동파가 그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기네 청운.” 

“벌서 도착입니까?” 

소동파에게 대꾸하며 천천히 집 쪽으로 다가갔다. 

소동파의 말로는 사마광의 집이 제갈각 숙부님의 집에서 크게 멀지는 않다고 했었는데 정말 별로 멀지 않았다. 

애초에 제갈각 숙부님댁이 있는 곳이 고관대작들이 모여 사는 부촌. 

한 마디도 송 시대의 강남이니 다들 근처에 모여 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사마광의 집에 당도한 첫인상은 생각보다 외관이 검소해 보인다는 것. 

여태까지 봤던 당가나 제갈세가 공부보다도 외관은 한참 못 미쳤다. 

다만 집은 그렇게 으리으리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멀리서 보았을 때처럼 꽤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는데, 재상쯤 되니 아무래도 와이루 그러니까 급행료가 많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뭔가 품에 안고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맨몸으로 되돌아 나오는 것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사마 놈들이란. 쯧쯧···.’ 

사람들이 사는 곳에 급행료야 당연히 오고 갈 수 있는 것이고, 박봉에 고생하는 공무원들 쌈짓돈 정도야 챙겨줄 수 있다지만. 

적당히 해 처먹어야지 대놓고 너무한다 싶어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데, 다시금 소동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쪽에 소식이 왔다고 전하시게.” 

“안녕하십니까! 예부랑중(禮部郞中) 어르신! 알겠습니다.” 

소동파가 입구를 지키는 무사에게 연통을 넣어 달라고 부탁하자, 소동파를 알아보는지 이등병처럼 대답한 무사가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잠시 후 하인 둘을 끌고 웬 젊은 남자가 뛰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예부랑중 어르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님께 이야기를 들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물건은 준비해두었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 반질반질하게 생긴 익숙한 녀석.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자 녀석이 나를 향해 포권을 하며 아는 척을 해봤다. 

“식룡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응? 누구지?’ 

얼굴이 낯익긴 한데 누구인지 확 떠오르지 않았는데, 내가 잘 기억이 안 난다는 얼굴을 하자 그가 서운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접니다 사마결. 혼례식에서 뵈었는데 벌써 잊으셨습니까?” 

‘혼례식? 사마결? 아!’ 

“아!” 

그제야 기억나는 얼굴. 

아는 척을 해왔던 놈은 혼례식에서 감히 나와 제갈가에 감히 수작을 걸어왔던, 건방진 사마의 자손 사마세가의 사마결였다. 

소롱포로 놈의 입천장을 다 조져놨었는데, 혀가 매끄러워진 것이 어느새 부상에서 회복해 옹알이 좀 하게 된 모양이었다. 

‘아주 그냥 그때 벙어리로 만들어 두는 것인데!’ 

언제 봤다고 친한 척인지. 

아니, 한번 봤는데 무슨 친한 척인지. 

단호박같이 대하고 싶었지만, 대충 보니 사마광의 손주인 모양. 

어쩔 수 있나? 나도 친한 척을 할 밖에. 

진짜 사마세가 놈들은 질긴 놈들이었다. 

재상 자리를 꿰차다니. 

“이런 죄송합니다. 사마결 공자, 혼례식에는 워낙 정신이 없었기에···.” 

전혀 미안하진 않지만 미안하다는 얼굴로 대답하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해합니다. 혼례식이라는 것이, 원래 정신이 없는 법이지요.” 

그냥 사랑해서 하는 결혼식이나 중매로 하는 혼례식도 당사자들은 당일에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는데, 강제 혼례인 내가 제정신일 리가 만무한 일. 

아니, 제정신을 유지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아내의 얼굴 정도면, 결혼하는 남자의 정신이 아니라 혼까지 쏙 빠져나가는 것이 당연했다. 

나도 이미 아내에게 반쯤 영혼이 저당 잡힌 상태니까. 

‘천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 류청운 같은 선택을 하리라!’ 

짜증 나는 사마가 자손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지 않기 위해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마결 공자.” 

“자자,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드시지요. 오랜만에 만났고, 때가 때인지라 주식(昼食)이라도 하며 이야기라도 나누고 가시지요.” 

주식이란 점심을 가리키는 것. 

중원에서 세 끼니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송대. 

경제가 발전하고 인구가 강남으로 유입되어 삼모작이 가능한 장강 이남의 땅들에서 식량이 넉넉하게 생산되니, 사람들이 점차 점심을 먹게 된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평민 대부분은 두 끼로 식사를 해결하고, 시장의 식당에 가도 아침 장사하고 점심에는 쉬었다 저녁에 장사하는 식당들이 대부분이라지만, 좀 잘나가는 집안에서는 이렇게 세끼를 챙겨 먹는 것. 

사마세가 놈들이 점심을 챙겨준다니 왠지 내키지 않아 거절하려는데, 눈치 없는 소동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 저희가 급해···.” 

“오오, 주식이 준비되어있는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자 청운 어서 들어가세, 사마세가의 요리는 특별한 것이 있다네.” 

“아니, 어르신 저희 바쁘지 않았···.” 

“아무리 바빠도 주식 먹을 틈 정도 없겠는가?” 

그렇게 내키지 않게 소동파에게 반강제로 끌려간 사마세가의 식당. 

식당에 앉자마자 차가 나오고 사마결이 하인을 시켜서 보자기에 싼 무엇인가를 가져왔다. 

“마침 고려의 상인들을 통해 구매한 것이 남아있었습니다.” 

그가 보자기를 풀자 나타난 것은 해대(海帶)인 다시마. 

잘 말려져 하얀 가루가 겉에 예쁘게 피어난 질 좋은 다시마가 보자기 안에서 나타났다. 

“찾으시는 것이 이것이 맞습니까?” 

해대를 내밀며 물어오는 사마결.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찾던 고려의 해대가 맞는군요.” 

“고려에서는 곤포(昆布)라고 부르더군요.” 

“아, 곤포! 그렇군요.” 

어쩐지 시장에서 아무리 찾아도 없다 싶었더니, 아마 고려에서 수입되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 모양. 

아무튼 다시마를 구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마를 한쪽으로 챙기는데, 소동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주식으로 뭐가 나오나? 나는 그 가끔 여기 오면 먹는 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크흠.” 

아마 사마광이 구법의 수장이라 작당 모의 하려고 자주 들리는 모양인지, 소동파는 자주 먹는 메뉴까지 있는 모양. 

‘돼지고기 바보가 좋아할 만한 돼지고기 요리인가?’ 

이 집에 뭐가 맛있는 게 있는 모양인지 아까부터 뭔가를 찾는 소동파. 

사마세가 따위에 뭐 얼마나 대단한 요리가 있을까 싶긴 했지만, 소동파의 반응에 흥미가 좀 동하기 시작했다. 

“대단히 맛있는 요리인가 봅니다? 예부랑중 어른께서 이리 기대하시는 것을 보니.” 

소동파가 돼지고기 바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중원에서 알아주는 미식가. 

어지간한 음식으로 이런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기에, 궁금하다는 투로 묻자 소동파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이를 말인가? 사마가에 온 사람은 그 요리를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으니까 말이야. 자네의 요리도 맛있지만, 사마가의 요리도 그에 못지않지.” 

‘아니, 이 양반이?’ 

소동파의 말에 살짝 눈썹이 움찔거렸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나는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호텔의 주방으로 스카웃 되다시피 한 인재 중 인재. 

하찮은 사마가의 가전 요리 따위를 내 요리와 비교하다니, 깊은 빡침이 느껴졌다. 

‘저 양반이 사마세가 따위와 내 요리를 어디 감히! 더군다나 나는 제갈을 대표하는 몸인데 어디 사마 따위와 우리를 라이벌 구도로 만든단 말인가!’ 

깊은 분노가 느껴졌지만, 그놈의 벼슬과 권력. 

재상의 집안이니 한 수 접어 줄 밖에. 

“그, 그렇군요. 그리 말씀하시니 아주 기대가 됩니다.” 

분노를 참으며 대답하자 눈치 없는 사마결 놈이 소동파의 말에 고개를 기뻐하며 대답했다. 

“하하, 예부랑중 어르신 감사한 말씀입니다. 저희가 다른 건 몰라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그 요리만큼은 어딜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고는 생각합니다. 아마 청운 공자께서도 드셔보시면 맛있다고 하실 겁니다.” 

‘그래 얼마나 대단한 요리인지 한번 보자!’ 

둘이 아주 그냥 서로 빨아대는 통에 역겨울 지경. 

삼국지 조조 휘하의 역적 중에 소 씨가 누가 있었는지 한참을 떠올려야 했다. 

저런 케미를 보인다는 것은, 분명 고대로부터 내려온 역적들끼리의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르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요리인지 한번 이 중원 특급요리사 류청운이 매서운 심사를 해주겠다고 기다리자. 

곧 몇 가지 요리가 준비되어 식탁으로 서빙되었는데. 준비된 요리리를 살피자 딱히 눈에 들어오는 특별한 요리가 없었다. 

‘별거 없는데?’ 

이것이 다냐는 듯 소동파를 바라보았고, 그러자 그가 눈짓으로 막 방안으로 들어서는 하인을 가리켰다. 

하인의 손에 들려 큰 접시에 담겨 안으로 들어서는 요리. 

아마 오늘 점심의 메인요리인 모양이었는데, 식탁 중앙에 놓이고서야 요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난 또 뭐라고, 고작 역적 요리였구만?’ 

둘이 서로 아주 그냥 합방이라도 할 것처럼 굴기에 얼마나 대단한 요리인가 싶었더니. 

고작 닭요리. 

그것도 마와 함께 요리한 닭요리로 내가 익히 아는 요리였다. 

사마회부계(司馬懷府鷄). 

“사마회부계로군요?” 

“오, 자네 이 요리를 아나?” 

“아니, 류 공자 저희 요리를 아십니까?” 

사마회부계는 사마의의 닭요리라고 알려진 하남 요리 중 하나인데, 그럴듯한 요리에 위인들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중원의 전통으로 인해 사마의의 닭요리라는 이름이 붙은 녀석. 

별건 없었다. 

하남에서 많이 나는 재료인 마를 이용해 닭을 요리한 것으로. 

간장에 재운 닭을 전분으로 버무려 먹기 좋게 자른 마와 함께 돼지기름에 튀기고, 술과 소금, 간장, 파, 생강, 설탕, 팔각을 닭 육수에 넣어 그것을 대접에 넣어 튀긴 닭과 마와 함께 푹 찐 후. 

먹기 전 쪄낸 소스를 닭과 마에 뿌려 먹는 요리. 

중원 판 찜닭이라고 보면 되는 것. 

‘고작 찜닭 따위에···. 소동파 이 양반 중원 미식가 타이틀 반납해야겠구만?’ 

고작 중원 찜닭에 이리 호들갑이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고, 뭐 나온 음식이니 맛이나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젓가락을 들자, 소동파가 어느새 사마회부계를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루룩 

-퉤 

무슨 국수 면발 치듯 호르륵 빨아들이는 소리. 

그리고 곧이어 무엇인가 뱉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닭의 날개. 

소동파는 재주도 좋게 고기는 쏙 빨아가고 뼈만 빼내 입 밖으로 뱉어냈다. 

“허허, 역시 이 맛이야. 사마가에 오면 사마회부계를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 자네도 어서 먹게 뭐하냐?” 

호들갑을 떨며 맛있게 먹는 통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예, 뭐.” 

그렇게 사마회부계를 입 안에 넣자 뭐 딱 생각했던 맛이 느껴졌다. 

간장과 팔각, 파, 생각으로 간이 된 한번 튀긴 찜. 

그냥 튀기는 데서 끝났으면 더 괜찮았을 요리. 

‘튀긴 걸 대체 왜 찌냐고!?’ 

호들갑 떨 만큼의 맛은 아닌지라 떨떠름하게 식사를 시작하자 옆에서 사마결의 물음이 들려왔다. 

“어찌 괜찮으십니까?” 

재상인 할아버지를 생각해 찬사를 해주고 싶었지만, 어쩌겠나 내가 느끼기에는 나쁘지 않은 정도인데, 요리에서만큼은 거짓으로 평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 예. 뭐. 나쁘지 않군요.” 

그렇게 엉겁결에 대답이 튀어나와 버렸고, 내 대답에 사마결과 소동파가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나쁘지 않다니. 이 맛있는 요리를 어찌 그리 평한단 말인가?” 

“저희 가문의 요리가 벼, 별로 마음에 드시지 않나 보군요. 예,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입맛이란 다, 다르니까요.” 

애써 내 평가를 부정하는 사마결과 당황한 소동파. 

“아니, 자네 얼마나 맛있는 요리를 알고 있기에 이것이 나쁘지 않은 정도란 말인가? 정말 이보다 맛있는 닭요리가 있단 말인가?” 

소동파가 자기가 먹어본 닭요리 중 제일이 사마회부계라는 투로 물어왔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 

“예, 뭐 한 두어 가지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한두 가지 정도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소동파와 사마결이 믿기 힘들다는 투로 대답했다. 

“내 그 요리를 먹어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네.” 

“저도 저희 가문 요리보다 더 맛있는 요리라니, 무척 궁금하군요.” 

자꾸 짜증을 나게 하는 둘. 

어쩔 수 있나 못 믿겠다면 믿게 해줄밖에. 

“그럼 뭐 한번 만들어드릴까요?” 

어디 사마회부계 따위를. 

사마 가문 정치질이나 할 것이지, 요리의 영역을 넘보면 어쩌겠나? 

제갈가의 사위가 밟아 줄밖에. 

사마회부계를 눌러줄 요리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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