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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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새끼가 밥 처먹는 소리가 지끈지끈 울리는 머리를 더욱 혼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쩝쩝. 후루룩. 슈르릅.
점심때부터 삶아 녹아 없어질 것처럼 부드러운 양고기를 숫제 마시다시피 하는 모습.
내 칭찬까지 조미료로 곁들이고 있었지만, 귀에는 들려오진 않았다.
“어이구 맛이었어라. 연양이 아주 죽처럼 부드럽구먼, 역시 식룡이라니까? 헤헤···”
그 모습에 나와 아내, 그리고 영영이까지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지만, 초개 걸륜이라는 개봉 총타주는 우리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내며 연신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저 새끼 저거 일부러 그러는 게 확실하구만.’
매일 눈칫밥 처먹는 거지가 눈치 없이 저러기가 쉽지 않은데, 분명 일부러 저러는 것이 분명했다.
밥그릇 뺏고 밥숟가락으로 마빡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표정과 행동.
오늘 우리의 인내심으로 만들어진 사리를 모으면, 사리가 한 가마니는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후···.”
한숨을 푹 하고 내리 쉬자 처박고 있던 그릇에서 고개를 든 걸륜이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헤헤···”
그러자 들여오는 영영이의 비아냥거리는 소리.
“이렇게 온 집안사람에, 주변 집들에까지 다 알려지고, 사람 살려달라는 소리에 지나가던 관병들까지 무슨 일이냐고 찾아왔는데, 그럴 거면 그냥 정문에서 무사들에게 안내해달라 이야기하면 좋지 않나요? 하 정말···. 온 동경 사람이 총타주가 찾아온 걸 다 알겠어요. 아니지, 이럴 거면 그냥 찾아왔다고 대문 앞에서 소리를 치는 게 나았을지도···”
그러나 걸륜은 미안하다는 표정 대신 손가락의 기름을 빨며 영영이를 향해 변명했다.
“쩝쩝··· 아니, 꼭 내 잘못만은 아니잖소. 소저. 저리 날렵한 것으로 보아 남만야수궁의 천구(天狗)가 분명한데, 후르륵··· 저놈 저번에 우릴 물었던 그놈 아니요?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약왕에 대한 정보를 부탁하더니, 약왕을 찾아 남만의 야수궁을 직접 찾은 모양이구만. 똥개 새끼가 어찌 천구가···.”
“아르르르르릉···”
“어이쿠! 시, 식룡 개, 개 좀 붙드시오!”
똥개라는 말에 기분이 나쁜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 것처럼 몸을 웅크리는 덕구.
그 움직임에 화들짝 놀란 걸륜이 입에서 양의 살점을 뿌려대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개방 총타주는 구걸 순으로 뽑나?’
총타주라는 직책이 의심되는 모습.
성질 같아서는 가운데 다리라도 물어뜯으라고 하고 싶지만, 일단 덕구를 진정시켰다.
“덕구야 그만.”
-쩝쩝 촵촵
덕구를 말리자 눈치를 보던 총타주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얼른 다시 식사를 시작했고.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는지, 벌써 수북이 올린 연양이 두 접시째.
‘아니지, 거지가 들어앉은 것이 아니라. 거지 그 자체니 당연한가.’
한심한 면상을 더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날 것 같아, 부탁한 것을 받고 음식은 싸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일단 부탁한 물건은 제대로 가져왔는지 물었다.
“총타주 부탁하신 정보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내가 부탁한 물건은 20년 전 새외혈사 관련해서 북해빙궁과 관련된 자료 일체와 북해빙궁의 위치를 아는 자는 없는지에 대한 것.
그리고 우리를 안내해줄 사람이 없는지도.
내 물음에 두 번째 접시의 국물까지 들이켜던 걸륜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헤헤, 당연히 내 잘 모셔 왔지. 이리 품속에··· 어!?”
하지만 말을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당황한 외침.
문서를 가지고 온 모양인데, 의기양양하게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걸륜은, 곧 자기 가슴에 주먹만 하게 뚫린 구멍으로 손을 빼내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 분명 푸, 품 안에 이, 있었는데···”
총타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밖으로 벌컥 열리고 아내와 영영이가 뛰어나가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거, 거기 아무도 없습니까?”
“거기 아무도 없나요!”
곧이어 아까의 소란에 잠을 깼다가 다시금 잠을 청하러 들어간 무사들이 놀라 허겁지겁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한밤중 제갈각 숙부님댁 내부에서 수많은 횃불을 든 무사들이 종이 뭉치를 찾아 헤매야 했다.
***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두 번이나 사고를 친 걸륜은 연양을 더 먹고 싶은 눈치였지만, 손가락만 빨며 우리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뻔뻔하게 굴었으면 아내에게 딱밤이라도 한 대 후려치라고 이야기하려 했는데, 총타주는 웬일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쪽쪽.
“크흠···.”
다행스럽게 20여 년 전 일어났던 새외혈사와 관련된 문서 모음은, 걸륜 총타주가 덕구에게 물려 살려달라 빌었던 그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풀숲에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집들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경의 제갈각 숙부님 댁 내부를 횃불을 든 무사들이 몰려다니며 뒤졌으니, 누가 봐도 두 번이나 여기서 무슨 일이 났다고 알려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거지새끼들을 믿은 내 탓이지.’
전생 무협에서는 거지들도 인텔리하고 유능하던데, 이곳 거지새끼들은 정말 하나같이 거지다웠다.
너무 거지같아 믿어지지 않을 지경.
원래 무협의 전형적인 거지라는 것이, 속세와 연을 끊은 기인(奇人)들이 모인 곳이라 상당히 유능하고 인텔리한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여기는 뭐랄까?
인텔리? 유능? 그런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저런 놈들이 정보는 대체 어찌 다루는지 이해가 안 될 지경.
“영영아 아무튼 이리 찾았느니 그만하거라.”
“어휴···. 예, 가가.”
사납게 걸륜을 쏘아보는 영영이를 진정시키고, 아무튼 그가 가져온 종이 뭉치를 펼쳐보았다.
하는 꼴을 보아하니 정보가 제대로일지 의심되지 않을 수 없는 것.
확인하고 내용이 확실한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공짜 정보이니 더욱 신뢰도가 하락.
중원 놈들의 특징 중 가장 희한한 것이 거래할 때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도매상에게 호텔 주방에서 사용할 새우를 구매한다고 할 때 1,000원짜리 새우를 500원에 달라면 거절하지 않고 좋다며 알았다고 하는데, 나중에 도착한 물건을 보면 본 것과 다른 물건을 보낸다.
그래서 왜 이따위 물건을 보냈냐고 하면, 네가 500원짜리 물건을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 것.
중원식 계산법이랄까?
그러니 호의로 두 번 공짜로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했지만, 정보의 질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팔락
그렇게 가득한 의심을 품고 첫 장을 펼치자 떡하니 붙어 있는 제목.
『새외혈사 중 북해빙궁과 관련된 문파와 사건. 제갈세가 제외.』
제목을 보니 정말 잃어버렸으면 어찌 되었을지 정신이 아찔했다.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슬슬 훑어보니 북해빙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났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런 것들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된 모습.
어느 문파와 충돌이 있었고 서로 간에 얼마나 피해를 보았는지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어리숙해도 개방은 개방인지 정보는 나름 정확했다.
그러나 적당히 훑어봤지만, 북해빙궁의 위치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기에 걸륜을 향해 물었다.
“혹시 북해빙궁의 위치에 관련된 내용은 이 서책에 없는 것입니까?”
“아 그것은 내 머릿속에 있지, 빼 올 수가 없어서 말이야. 외우느라 고생 좀 했지.”
“그럼?”
알고 있는 내용을 알려달라 질문하자 빈 접시를 한번 바라본 걸륜은, 영영이의 싸늘한 눈총을 받고 영영이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며 대답했다.
“아마도 새외무림의 본거지를 정확히 아는 자료나 사람은 없을 것이네. 우리도 중원에 나타날 때부터만 기록하니까 말이야. 다만 서하(西夏)에도 우리 거지들이 있어 이십 년 전 첫 기록은 서하 이북에서 나타난 것으로 기록되었더군.”
개방도 하오문 보다는 범위가 넓지만 중원 내부에만 빠삭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 중원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중원 외에는 관심이 없으니 당연하다랄까?
걸륜이 말한 대로 서하 이북에서 처음 북해빙궁의 무리가 발견되었다면 그곳은 또 요나라.
북해빙궁은 요나라 그 이북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느낌.
서하라는 나라를 지나 또 요라는 다른 나라까지 두 번이나 다른 나라를 통과해야 하는 것이었다.
‘큰일이군.’
장모님을 찾아뵈러 가기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느낌이기에 고민에 빠지자, 걸륜이 목소리를 죽이며 물어왔다.
[그런데 식룡, 북해빙궁을 찾는 것을 보니, 장모라도 만나러 가려는 것인가?]
[어, 어떻게 그것을!]
‘이 새끼 아까는 일부러 그런 거 확실하구만!’
눈치가 빠삭한 물음.
놀란 목소리로 대답하자 걸륜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개방이 모르는 것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걱정하지 말게. 우리는 같은 정파 무림인의 치부를 들추는 짓을 하지는 않으니. 더군다나 뭐 자네 부인이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자네 장모도 사랑하는 남자와 아이를 낳은 것뿐이니까. 이십 년 전 그 사건에서도 자네 장인과 장모가 사람을 많이 살렸지.]
‘꼴에 거지라도 개방은 개방이라 이것인가?’
20년 전 일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고 있는 느낌.
아까의 소란 덕분에 믿음은 가지 않았지만, 장모가 계시는 곳을 알아야 했으니 알고 있는 내용을 좀 더 캐묻기로 했다.
[예, 뭐 말씀대로 장모님을 좀 찾아뵈려 합니다. 일단 혼례를 올렸으니 아내의 어머니를 뵙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아내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았고.
걸륜은 내가 약왕을 찾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그가 제공한 두 프리정보권 중 하나를 약왕의 위치를 묻는 데 사용했기 때문.
물론 개방에서 정보를 제공하기 전에 약왕은 내가 직접 찾았느니, 프리정보권은 그대로이겠지만 그 이유는 모르는 상태.
아마도 그 이유로는 절대 나지 말아야 나에 대한 할 소문이 이유라 생각하고 있을 터.
일단 아내에 관한 내용은 숨기고 혼례 후 장모를 만나려 한다고 설명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지. 뭐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 새외무림인 이라도 천륜을 져버리면 쓰나.]
‘유교가 또 이런 알리바이로는 좋구만.’
유교 하니까 연성공 형님이 생각나고, 거지에게도 조금 인맥을 자랑해주었다.
[예, 제가 이번에 연성공을 형님으로 모시게 되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말입니다.]
[헛! 자네 연성공의 의형제가 되었단 말인가!?]
[예, 뭐. 자랑은 아닌데. 부족한 저를 형님께서 아껴주셔서···.]
아직 내가 연성공의 의형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퍼지지 않은 모양.
다분히 의도적인 언급이었지만, 이제 전 중원에 소문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
‘이러면 알아서 온 중원에 소문이 나겠지?’
슬쩍 형님을 언급해 걸륜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때 그를 향해 다시 질문했다.
[북해빙궁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면, 혹시 북해빙궁을 찾는데, 도움이 될만한 사람은 없겠습니까?]
[이 사람 왜 없겠나! 내 당연히 알아 왔지!]
[그럼 어느 분이?]
아내와 영영이 나까지 셋이 그의 입에서 정보가 들려오기를 집중할 때.
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런데, 그···.”
“그?”
“여, 연양 한 접시만 더 먹고 말하면 안 되겠나? 내가 작년 이맘때부터 굶어가지고···.”
그의 말에 집중했던 우리가 병신같아진 상황.
이젠 착한 아내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여자들 특유의 경멸하는 표정으로 눈알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걸륜을 노려봤다.
“그런데 총타주. 사람이 일 년을 굶으면 뒤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되묻자 들려오는 개소리.
“내가 언제 밥을 일 년 굶었다고 했나? 밥이 아니라 양고기를 일 년 굶었다고 했지. 늙은이가 계율이니 뭐니 하면서 이 맛있는 양을 왜 못 먹게 하는지! 내 부탁이네. 지금 먹으면 또 언제 먹을지 알 수가 없네!”
‘실컷 처먹고 쓸데없는 정보기만 해봐라.’
그의 부탁에 아내와 영영이를 바라보며 부탁했다.
“연양 한 접시만 더 가져다주시오.”
“알겠어요. 노공.”
“치···. 가자 청아. 부엌에 같이 가지러 다녀오자.”
“네, 언니.”
그리고 잠시 후.
아내와 영영이가 연양을 접시에 수북이 가지고 오고, 연양이 다시 식탁에 놓이자마자 숟가락을 들고 연양을 한입 가득 퍼먹은 걸륜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커억!”
‘급하게 처먹다 걸리기라도 했나?’
깜짝 놀라 물이라도 챙겨주려는데 느껴지는 이상한 움직임.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아내가 당황한 얼굴로 영영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아내와 영영이의 행동.
그러나 거지가 숨이 넘어갈까 싶어 일단 물을 따른 컵을 들고 걸륜을 바라보자, 그가 입안 가득 베어 물었던 고기를 꿀꺽 삼키고는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허어! 좀 식으니까 더 맛있구려!”
목이라도 막힌 줄 알았더니, 그냥 맛있어서 지른 감탄에 찬 음성인 모양.
‘아니, 이 새끼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행동에 짜증을 내며 옆을 그제야 아내와 영영이를 다시 확인하자, 둘이 뭔가 안심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목메 죽을 뻔한 것은 걸륜인데 둘이 안심하는 표정.
‘뭐지?’
-달그락. 달그락.
그러나 둘의 행동에 궁금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걸륜의 입에서 트림이 흘러나왔다.
“꺼억. 아휴 잘 먹었다.”
그렇게 몇 분 되지 않아 세 번째 접시도 바닥을 드러내고.
배를 두드리며 트림까지 한 걸륜의 입에서 우리가 궁금해하던 정보와 의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하북팽가(河北彭家)가 요에 쫓겨 연주(燕州)을 버리고 내려올 때, 북해빙궁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소림사의 현원법사(現原法師)께서 고행하실 때, 북해빙궁이 있는 곳까지 가셨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두 곳을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네.”
‘현원법사는 그렇다고 치고, 연주라면 북경이라는 말인데, 요 때문에 하북에서 팽가가 쫓겨 내려왔다는 것인가? 팽가라면 영영이의 외가인데···. 그런데? 걔들 어제 일도 기억 못하는 거 아닌가?’
팽가라는 말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자기 외가의 이름이 언급되자 영영이가 기쁜 표정으로 나에게 매달리며 말했다.
“그럼 저희 외가로 먼저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