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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鄭州) (153/344)

정주(鄭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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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냥 가셔도 됩니까? 아직 많이 남았고, 싸드릴 테니 가서 나눠 드시지요.” 

“아니네, 내 충분히 먹었네. 그리고 이리 먹고 염치없이 어찌 또 싸달라고까지 한단 말인가. 내 아무리 거지라도 낯짝이 있지.” 

자기의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란 표정이 된 식룡. 

저건 분명 그걸 아는 놈이 그랬냐는 눈빛이 분명했다. 

처음에 개에게 물릴뻔하고 식룡이 원했던 정보가 들어있는 서책까지 잃어버리는 바람에 어쩌면 당연한 눈빛. 

천구 때문에 망신을 톡톡히 당했지만, 두둑이 양고기로 배를 채웠으니 그따위 부끄러운 과거는 잊기로 했다. 

거지가 체면 따위 챙겨서 뭘 한단 말인가 챙기려면 끼니를 챙겨야지. 

걸륜은 거지 주제에 체면을 챙기는 놈은 덜 배고픈 놈이라는 생각이었다. 

체면이 밥을 먹여주진 않으니까 말이다. 

거지들이 눈총받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모르는 척 일관하며 식룡을 향해 대답했다. 

“그리고 뭐 어차피 가져가지도 못하네. 늙은이가 보면 지랄을 할 테니.” 

“아···. 아참, 그렇지요.” 

“그렇네, 내 마음만 받지. 아, 그리고 오늘 같은 대접이라면, 내 다른 정보도 잘 챙겨줌세. 언제라도 부탁하게. 크헤헤” 

식룡이야 무림의 인사라지만, 일단은 요리사. 

누군가를 죽이거나 뒤로 이상한 일을 벌일 리도 없으니, 정보를 조금 챙겨주고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면 지속해서 거래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고관대작들의 구린 정보나 무림인들이 요구하는 피로 얼룩진 정보가 아닌 것. 

조금 중요한 자료이긴 했지만, 장모를 찾고 자기 불능을 치료하기 위해 약왕을 찾는 정도면 아주 귀여운 요구였다. 

더군다나 그는, 그의 별호인 식룡에 어울리는 요리실력을 갖췄기에 지속해서 이런 요릴 맛볼 수 있다면, 그와의 거래는 지속해서 나쁠 것이 전혀 없었다. 

늙은이 몰래 연양은 많이 먹어봤지만, 오늘처럼 씹지도 않았는데 물처럼 넘어가는 연양은 처음 먹어보는 극상의 맛이었던 것이니까. 

자기의 하찮은 거지의 혀도 놀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언제라도 정보를 내어줄 것 같이 말하자 식룡도 오늘 정보에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야, 총타주님께 이리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지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크흐흐. 그러면 부디 ‘그분’ 잘 만나시게.” 

“예, 총타주 살펴 가십시오.” 

식룡과 눈깔 시퍼런 천구가 배웅하는 제갈가를 나서 걸륜은 곧바로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아까 동경으로 들어왔을 때와 반대로 개방의 총타로 향하기 시작했다. 

-타타탓 

고관대작들만이 산다는 곳을 지나, 민가들의 지붕 위를 뛰어, 성벽을 넘어 그렇게 성벽에서 아래로 몸을 날렸을 때였다. 

-꾸루룩 

‘응?’ 

뱃속에 느껴지는 통증. 

귀한 양고기를 마음껏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뱃속에서 갑자기 아우성이 일어난 것. 

‘너, 너무 오랜만에 기름진 것을 먹었나?’ 

너무 귀한 것을 먹어 뱃속이 놀란 듯했지만,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대로 쏟아낼 수 있나. 

걸륜을 일단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열심히 발걸음을 옮겨 저 앞에 다 쓰러져가는 폐가인 개방 총타주가 나타났을 때. 

-꾸르르르륵 

다시 한번 느껴지는 뱃속의 통증과 갑자기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느낌. 

걸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풀밭으로 뛰어들었다. 

-푸드득 

“어흐···. 죽을뻔했구나.” 

그리고 그렇게 아깝게 먹은 것을 다 쏟아내고 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 

“이게 어디서 나는 고소한 냄새지?” 

‘허읍! 느, 늙은이!’ 

갑자기 들려오는 걸왕의 목소리에 걸륜은 쪼그려 앉은 채 두, 눈알만을 굴려댔다. 

그리고 최대한 숨을 죽였다. 

‘거, 걸리진 않겠지? 늙은이가 잠도 없어서는···’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푸드득 

뱃속에서 아까 먹었던 연양이 계속 쏟아지고 있었던 것. 

‘이런 망할!’ 

그리고 적막한 폐가 주변에 울려 퍼진 소리에 풀숲이 부스럭거리는가 싶더니, 걸왕이 풀숲 사이로 얼굴을 빼꼼하고 내밀며 외쳤다. 

“네놈. 어디 가서 계율을 어기고 양고기를 처먹고 왔구나!?” 

분명 제갈가에서 나오기 전에 옷의 냄새도 확인했고 얼굴도 제갈가에 있던 걸레로 문질러 닦았는데 귀신같이 알아챈 늙은이. 

늙은이의 말에 당황해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그걸 어떻게!” 

“이놈아 나 걸왕이니라! 네놈이 작년 이맘때 뭘 처먹었는지도 네놈 똥 냄새만 맡아도 알 수가 있느니라.” 

-빠악 

“꽤액!” 

걸륜은 그 자리에 그대로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 

걸륜을 배웅하고 돌아오자 처소 안쪽에서 아내와 영영이의 목소리가 소곤소곤 들려오고 있었다. 

“언니, 저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괜찮대도. 아주 약한 것이었어.” 

좀 전에 총타주를 배웅하고 온다고 하고, 날이 추워 둘을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둘이 같이 내가 아내와 묵는 처소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제갈가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영영이는 혼자 방을 따로 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혼자 자기가 허전했던 것 같았다. 

영영이가 혼자 자는 것에 허전함을 느낄 것으로 생각한 이유는,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닌데 복주의 본가에 있을 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었다. 

마교도들에게 슥삭 당하지 않으려고 모여서 자려고 했던 데서 시작한 기묘한 동침. 

그 후에도 본가에서는 전각 문제나 그런 것 때문에 셋이 계속 같이 자게 되었고, 여행 중에도 어지간하면 자연스럽게 한방에 묵었으니 자연스럽달까? 

그런 이유로 혼자 자니 심심하다고 요 며칠 투덜대고 있어서 이럴지도 모를까 했는데, 오늘 마침 기회가 좋으니 합류한 모양. 

제갈각 숙부님도 오늘 걸왕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아침까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하려는 느낌인 것 같았다. 

‘오늘은 고통이 두 배겠구나.’ 

영영이의 방문 사실에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다가갔다. 

새벽에 영영이를 자기 처소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남들이 보면 내 속도 모르고 양손의 꽃이니 복에 겨운 놈이라니 하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 

송 시대에는 혼례 전 속도위반은 큰 범죄. 

사회적으로 생매장되어버린다. 

물론 내가 아니고 영영이가 말이다. 

‘말만 사회적 생매장이지 불에 태워 죽이기도 하니 그보다 더할지도.’ 

혼전 임신은 가문과 부모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니 혼례를 허락받으려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인 것. 

그러니 그 전 단계에서부터 조심하는 게 맞았다. 

여긴 일회용 방어막도 없고···. 

거기에 의심이 가는 행동을 했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혼례 전에 수궁사(守宮砂)를 확인해볼 수도 있으니 무조건 조심해야 하는 것이었다. 

수궁사 확인이라는 것은 일종의 처녀 감별인데, 이게 정말 비과학적이고 또 골 때린다. 

수궁(守宮)이란 도마뱀의 일종으로 벽을 타고 오를 수 있는 중원 도마뱀을 말하는 것인데, 이 도마뱀을 잡아 흥(汞), 또는 단사(丹砂)라 부르는 수은을 일곱 근 먹여 기른 후.

그 도마뱀을 곱게 갈아 그것을 여자에 팔에 점처럼 찍은 것을 수긍사라 부르는 것이다. 

처녀면 그 점이 붉게 남아있게 되지만 처녀가 아니게 되면 그 점이 사라진다나? 

그냥 의심되는 여자는 다 잡아 죽이려고 만든 감별이 아닐까 싶기도 한 방법. 

그러니 먼저 허락을 받아 우리 관계가 인정받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로 조심해야 했던 것. 

그러니까 같이 잔다고 해도 양쪽에 하나씩 끼고 십자형님 만자형님을 번갈아 가며 속으로 외치다가 잠이 드는 것이 일상. 

나의 초인적 인내심의 부담만 두 배로 가중될 뿐이랄까? 

‘소처가 생겼는데, 뭐 나아진 게 없냐···.’ 

투덜거리며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정말 내가 소림사 들어갔으면 몸에서 사리 몇 가마니는 나왔을 거야.’ 

오늘도 생불이구나 생각하며 문을 열려고 할 때 다시금 들려오는 아내와 영영이의 목소리. 

“그런데 정말 죽지는 않는 거죠?” 

“그냥 설사나 좀 하다 말 거야. 너도 좋다고 했잖아?” 

“하지만 아까 숨이 멎는 줄 알고 정말 놀랐습니다.” 

“나도 그때는 좀 놀랐긴 했어.” 

-삐거덕 

그러나 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둘의 목소리는 곧바로 잦아들었다. 

그리고 둘이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가가, 어, 어서 오세요. 추, 추우셨죠?” 

“노공, 이, 이쪽으로 겉옷은 주시고.” 

“고맙소.” 

겉옷을 아내에게 건네주고, 몸을 부르르떨며 항(炕) 위 침상 속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항이란 황하 이북에만 존재하는 일종의 난방 장치인데, 중원에서 많이 사용하는 침상을 벽돌이나 돌을 쌓아서 만들고 그 아래 불을 때 난방하는 형식. 

방 전체 난방이 아닌 침상 하나만 난방하는 것이라서, 요렇게 침상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 

침상 위에서 따듯한 온기를 느끼며 영영이를 향해 말했다. 

“영영아.” 

“예?! 옛?” 

도둑질하다 놀란 것처럼 토끼 눈을 뜨는 영영이. 

아내랑 둘이 나 몰래 뭔가를 한 것 같은데, 뭐 별일이야 했겠나 싶어 영영이에게 주의 사항만 전달했다. 

“이따 새벽에 하인들이 깨기 전에는 돌아가야 하느니라.” 

“예, 아, 알겠어요. 가가.” 

“부인 어서 잡시다.” 

“예, 노공.” 

마음속으로 두 형님의 존함을 찾을 시간이었다. 

*** 

오늘 아침 식사는 셋이 하게 되었다. 

늦게 자기도 했고 항이 너무 따듯해서 몸이 녹아버려 다들 늦잠을 자버렸기 때문. 

밤늦게까지 침상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빡 잠들어버린 것으로 하고 말이다. 

‘이러다 언젠간 걸리겠어···.’ 

이러다 걸려서 독왕 어른의 만천화우라도 뒤집어쓰는 건 아닐까 마음속으로 걱정이 되었지만, 영영이는 오랜만에 같이 자서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만두를 먹고 있었다. 

-냠냠 

아내도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상이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여!’ 

가슴속 한탄이 이어질 때, 영영이가 만두를 먹으며 나를 향해 물었다. 

“가가, 그냥 저희 외가부터 가면 안 돼요?” 

마침 어제 총타주가 알려준 정보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는데, 영영이가 개봉에서 가까운 숭산(嵩山)의 소림사(少林寺)보다 하북팽가를 먼저 가길 요구하고 있었던 것. 

둘 다 조금 애매한 정보이긴 했다. 

원해 승려들의 전통적인 고행 지라면 고비사막인데, 북해빙궁은 그보다 더 북쪽. 

고비사막보다 더 북쪽으로 고행을 떠났다니 좀 애매했다. 

‘어지간히 길치가 아니고서야.’ 

또한 하북의 팽가가 하북에서 요에 밀려 도망칠 때 북해빙궁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니 이것도 애매했던 것. 

20년 전 새외혈사에서 북해빙궁은 중원 동북쪽인 하북이 아니라, 감숙 지방인 공동파 근처에 처음 모습을 보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방향이 전혀 반대였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금 들려오는 영영이의 보채기. 

“가가~ 부탁이에요. 먼저 가요~ 네?” 

어제도 자기 외가를 가자고 나에게 매달리며 말했는데, 그때는 확실히 대답하지 않은 상태. 

왜냐하면 팽가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 정보가 전부 애매한 느낌이기에 일단 영영이에게 물었다. 

“팽가가 대체 어디 있기에 그러느냐? 영영아.” 

어제 총타주의 말로는 하북에서 요나라에 쫓겨 아래로 내려온 느낌이었기에, 중원 어디에 자리를 잡았나 묻자 영영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정주(鄭州)요.” 

“정주라면?” 

“네, 개봉에서 숭산 가기 전에 있어요.” 

중원 지리를 생각해보니 개봉에서 서쪽으로 정주가 있고 정주에서 서쪽으로 숭산이 있는 것. 

결국 지나가는 길이었다. 

‘그럼 고민할 필요가 없지.’ 

영영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팽가부터 가자꾸나. 그런데 혹시 팽가 어르신들은 뭘 좋아하시느냐? 가는 길에 선물이라도 사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장인이 되실 당가의 가주는 사람이 꽤 괜찮은 분이니, 영영이가 나에게 시집을 오겠다면, 당황하실 수는 있어도 무난하게 허락해주실 듯한데. 

문제는 의조부 아니, 이제는 처조부가 되실 독왕의 성깔이 대단하니 이럴 때는 주변 공략이 필수. 

가는 김에 일단 영영이의 외가 쪽으로도 기름칠을 좀 해두려는 뜻에서 묻자. 

영영이가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답은 무조건 하나라는 듯이. 

“고기요.” 

‘음. 역시 팽가려나.’ 

영영이의 고기라는 말에 왠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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